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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Paul Greengrass (2013)


<Captain Phillips>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카트린느 드뇌브 같은 배우들이 한때 절대미의 기준이었고 많은 이들의 뮤즈였겠지만

더 아름답고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는 캐서린 키너나 샤를롯 램플링 같은 배우들 같다.

중성적인 생김새와 낮은 톤의 목소리, 목소리에 객관적 혹은 중립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절제된 캐서린 키너의 목소리는 항상 상황을 관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위험에 처한 남편과의 절절한 통화나 무사 귀환한 남편과 온 가족이 부둥켜 안고 조우하는 뻔한 장면은 없었고

캐서린 키너가 톰 행크스와 나누는 짧고 굵은 포옹과 남편을 내려주고는 쌩하고 사라지는 첫 장면은

마치 3인칭 관찰자의 느낌을 주는 캐서린 키너의 무덤덤한 시선까지 더해져서

이 영화가 평범한 미국 시민의 영웅담을 보여주는 감상적인 영화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들이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누는 짧고 일상적인 대화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가장의  전형적인 고민과 

그런 남편과 자식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정신적인 가장인 캐서린 키너의 담담함을 보여준다.

출항을 앞두고 긴장된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톰 행크스를 그녀가 위로한다. '모든것이 잘 될거야'라고.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민과 문제점들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어질 수 없다는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주문 같은 것.

해적인 무세도 필립스 선장도 안타깝게 되뇌이는 습관적인 주문.

거대한 바다에 위태롭게 정박한 선박. 국가라는 시스템에 조립된 작은 부품일뿐인 우리.



배에 올라탔을때의 선장은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오 마이 캡틴'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역시도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냐며 푸념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피곤한 가장일뿐이다.

생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달콤하게 늦잠을 즐기는 소말리아인 무세 역시 인력 시장에 내던져진 하루살이 일꾼일뿐.

 필립스 선장을 미국 네이비실이 비호하고 소말리아 해적 무세가 보스들에게 철저하게 버림당하지만

사실 그들 둘의 모습은 완벽하게 대구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면 선장이 될 수 있었던 자기 세대와 일자리 하나에 수십명이 몰리는 현실을 비교하며 자식 걱정을 하는 필립스.

무장한 깡패들이 지프를 몰고 등장하면 이들 소말리아 사람들은 돈을 쥐어주면서까지 너도나도 배에 타려 안간힘을 쓴다.

덜 세련되고 덜 원시적인 차이가 있을뿐 생존을 위한 경쟁의 본질은 똑같다.



우리가 속한 국가라는 거대 조직과 그 수십의 조직들이 이권을 다투는 세계 정세를 우리가 속속들이 알기란 어렵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아프리카로 실어나르는 구호 물자와 식량들이 과연 정말 빈국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강대국의 원양 어선 때문에 영세 어부들의 어획량이 줄고

잘사는 나라들에서 쏟아지는 잉여 음식들이 아프리카로 무분별하게 쏟아지면 실제 아프리카의 소농들이 살아갈 여력을 잃는다.

구호 물자라는 약물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투여되면 궁극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은 자생력을 잃을것이고

과도 정부나 테러 단체들이 강대국의 사탕 발림에 넘어가며 맺어진 불평등 조약으로 그들은 결국 불구가 될것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한 강대국들이 끼리끼리 동맹을 맺고 영토를 잠식하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대할 야먕을 펼치는데 가장 적합한 곳.  

백년후의 아프리카 지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직선의 큼직한 국경선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캐스트 어웨이>와 <터미널> 

그 대상이 대자연이든 고독이든 국가이든 그는 항상 홀로 싸운다. 

한 두번 잘 연기하면 비슷한 역할이 들어오는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톰 행크스도 이런 느낌의 배역이 싫진 않은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고선 절정이라고 느껴졌는데 평범한 소시민인 톰 행크스가 멋지게 위기를 모면해서가 아니라

'혼자 죽도록 고생했는데 뭐야 이제와서 날 구해낸 척 생색내는 이것들은' 이라고 어느때보다 처절하게 말하는것 같아서였다.

톰 행크스가 조만간 국가 전복의 야망에 불타는 전직 정보 기관 요원이라던가 무정부주의자 혹은 

<인 투더 와일드>의 크리스토퍼처럼 모든것을 다버리고 알래스카로 들어가는 이상주의자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는 정의에 불타는 강한 미국 시민이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강한 나라에서 그들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속에

세뇌되어진 전형적인 미국인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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