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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디레일드 Derailed> Mikael Håfström (2005)



나는 이 배우의 이름을 클라이브 오웬이라고 쓰고 영국인 제라르 드 파르디유라고 읽기로 했다.

'겉만 멀쩡하고 뭔가 응큼하고 엉성하다'라는 이미지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완전히 굳어졌는데

사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그의 몇몇 영화들 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나름 괜찮은 옛날(?)스릴러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후의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서 구축된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라르 드 파르디유는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은 나름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졌지만 

이 두 배우가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뭔지 너무 흡사하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억지로 갖다 붙이는 걸수도 있다.ㅋ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낙타의 표정과 어정쩡한 동공의 위치는 말할것도 없고

뭉툭한 콧날은 한대 때려주고 싶지만 동기 결여로 주저하게 만드는 앙팡진 귀여움을 지녔으며

굳게 다문입은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할 말이 있음에도 간신히 참고 있는듯이 보인다.

더 재밌는것은 <그린카드>에서 처럼 자신의 모카포트를 들고 다니며 맛있는 커피의 의미를 역설하는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자유 분방하고 유연하지만 나름의 원칙이 있고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의 캐릭터를 지녔다면

클라이브 오웬은 성급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진 않지만 몹시 실리적이고 치밀한 영국인의 인상을 주는데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미구같다' 라는 사투리인것 같다.

피해자라고 하기에도 뭔가 어정쩡한 이 영화에서 정말 그는 미구 같다.



배우자를 놔두고 바람을 피우다 된통 혼나는 영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이 있었는데.

<위험한 정사>처럼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내연녀에게 큰 코 다치는 구성 혹은

<언페이스풀>처럼 바람 피운 아내가 후회하고 제자리로 돌아옴에도 남편이 이미 내연남을 죽여버려 일이 꼬여버리는 구성

그러고 보면 애드리안 라인처럼 이런 주제를 잘 살리는 감독도 아직 없는것 같다.

 김기영의 <화녀>에서 남성 위주의 완벽한 전통 사회에서 외도라고도 불리지 않던 남성의 권력 행사에 대항하는 

여자들의 욕망과 복수는 <위험한 정사>에서 고양이를 삶는 글렌 클로즈에 못지 않게 음산하다.

보통은 이렇게 한눈을 판 배우자에게 혹은 외도의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복수하거나 

외도의 대상이 된 제 3자가 역으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려는 줄거리인데

이 영화는 외도라는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일탈에 철저하게 배반당하는 가장의 이야기이다.

삶의 촛점이 아픈 딸에 맞춰진 한 가정의 피곤한 가장이 매력적이고 똑똑한 여성에게 끌리면서 아름다운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 그 일탈이 스스로 판 무덤이었음을 알아버렸을때의 절망감을 클라이브 오웬은 정말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연기한다.

'모든것을 아내에게 털어놓고 함께 해결할 길을 찾아봐 제발' 이라고 보는내내 목놓아 얘기했어야 할 만큼

그는 설상가상으로 곤경에 빠지지만 그는 특유의 의뭉스러움과 꿍꿍이속으로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뱅상 카셀은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가해자이고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사기 범죄는 더할 나위없이 악랄하고

점점 궁지에 몰리는 클라이브 오웬이 가엾기도 했지만

마치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는 비밀인냥 결국은 모든 일을 가족 모르게 해결해버리는 용의주도함은

'아 잘한다. 후련하다. 결국은 너가 이기는구나'하고 응원하기엔 뭔가 찝찝하다.

거기에는 뱅상 카셀의 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너한테는 그냥 외도의 대상이었을 뿐이잖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피로함. 일에 몰두하는 배우자에게서 느끼는 소외감. 자아 상실 등등

외도는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궁지에 몰린 자신의 나약함을 감상화 하고 이상화 시키면서 돌진하는 

불구덩이와도 같은 탈출구인지도 모른다.   

현재 함께인 사람을 마지막처럼 사랑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덫 같은 것....

탈선한 열차는 절대로 스스로 선로로 돌아올 수 없다.

단지 어떠한 속도로 어느 순간에 벗어난 선로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열차 속 승객의 다음 운명이 결정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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