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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빈얀 Vinyan> Fabrice Du Welz (2008)



<Vinyan>

 

요새 재밌게 본 영화가 너무 많은데 짧게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전부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

누군가가 언급했거나 어디서 봐서 다시 한번 기억하는것과 내가 마음속에 담아 두고 능동적으로 떠올리는것은 확실히 다르다.

글로 적어두면 확실히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으니깐.

이 영화는 순전히 루퍼스 스웰 때문에 봤는데 얼마전에 <다크시티>를 다시 보고 

이 배우가 내가 좋아 할 만한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할 수 있는 배우가 된다는것은 절대 이 배우에게서 어떠한 단점도 발견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것에 가깝다.

얼마전에 그가 출연한 <ZEN>이라는 티비 드라마를 보았는데 그는 로마가 배경이면 이탈리안 같고 

영국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영국인, 스페인에 있으면 히스패닉일거고 엠마누엘 베아르와 있으니 프랑스인 같다.

정작 이분은 항상 영어를 하고 계시지만.



실종 아동과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는 영원 불멸의 소재일것이고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정말 무궁무진하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라면 휴 잭맨의 <Prisoner> 라던가 할 베리의 <The call> 같은 영화.

납치범으로 몰린 사람들이 알고보니 오래전에 납치된 실종아동이었다던가 911로 걸려온 전화로 실시간 범인을 역추적한다거나.

이 영화 <vinyan> 역시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나서는 부모의 이야기이지만

동남아의 밀림과 음산한 배경 음악 탓에 영화는 몹시 주술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풍긴다.

 쓰나미라는 자연 재해로 사라진 아들이 외딴 섬 어딘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는 엄마와

절망에 빠진 아내와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남편이 아내의 부탁에 마지못해 아들을 찾아나서는 영화. 

사라진 아들을 그리워하는 엠마누엘 베아르의 텅빈 눈초리는 그녀의 믿음 자체가 공허한 환상에서 비롯된것이란 느낌을 주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루퍼스 스웰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총동원에서 있는 힘껏 현실을 지탱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자식을 찾으려는 절박한 외국인 부부를 까마득한 원시림으로 이끌면서 돈만 받아 먹으려 애를 쓴다.

늪은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질퍽거리고 안개가 자욱한 이 원시림은 불필요한 희망을 준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의 의지를 꺽을 수 없는 루퍼스 스웰이 처량하다. 

현실은 미쳐가는 엠마누엘 베아르보다 제정신인 루퍼스 스웰에게 훨씬 가혹하다.

빈얀은 억울하게 죽어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이란 뜻이란다.

누구도 이 원시림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그것은 죽음이라는 그림자에 가둬진 남은자들의 숙명같은것일지도.

기형도의 시 일부분이 띄엄 띄엄 생각난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의 영토 속에서...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거느리는가..' 

이 영화는 하나의 죽음이 거느린 남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루퍼스 스웰덕에 잊고 있던 기형도를 떠올리게 되다니 기쁘다.

기형도는 역시 천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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