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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Code 46> Micheal Winterbottom (2003)



<Code 46>


"Can you miss someone you don't remember?

Can one moment or experience ever disappear completely

or does it always exist somewhere, waiting to be discovered?"


우리의 경험의 근간이 되는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우리는 경험에 의거해서 또 다른 내일을 계획하고 먼 미래를 상상하고 꿈꾼다.

경험해본 적 없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알고보면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 서술된 사실에 의한것이다.

토요일 아침의 늦잠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기에 우리는 쉬는 날을 기다리고

여행이 즐거웠던것을 기억하기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

어릴 적 통조림 굴의 물컹함에 놀랐던 기억은 굴을 볼때마다 그 비누같은 미끈거림을 상기시킨다.

크기의 차이가 있을뿐이지 새로운 경험을 주저하게 만드는것도 알고보면 나쁜 기억들이다.

우리의 행동과 생각하는 방식은 사회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통제되어왔지만

우리가 마음속으로 뭔가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상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그나마 능동적일 수 있다.

타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내 기억이 언제든지 삭제당할 수 있는 이 영화속의 세상은 그래서 끔찍하다.

인간은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나마 불행한 삶을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의 기억속에 존재할것이라는 믿음은 잠시나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잊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잊혀졌던 순간들이 우연히 떠오를때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우리 기억속의 어떤 순간과 경험들이 단순히 우리가 기억하고 되새기는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발견되어지길 기다리는 주체라는 마리아의 독백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윌리엄의 기억이 삭제된 탓에 마리아와 윌리엄이 공유한 순간들은 발견되어질 가능성 자체를 박탈당한다. 

하지만 바깥 세계로 추방당한 그녀의 기억은 오히려 삭제되지 않았기에

그녀에게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기억해야하는 벌이 주어진다.  



고등학생때 정말 좋아했던 팀 로빈스. 너무 오랜만에 봤는데도 별로 변한게 없어 깜짝 놀랐지만 알고보니 2003년도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아마 <미스틱 리버>와 <사랑도 리콜 되나요 High Fidelity> 일 가능성이 큰데

<사랑도 리콜 되나요>에서 머리 긴 이안으로 출연한 그를 보며 '이건 정말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기억에 사로잡혀 더 이상 그의 영화를 찾아보지 않은걸까? 

나에게 기억되어지길 바라면서 그가 참고 견딘 긴 세월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하하핫

누구라도 느꼈겠지만 윌리엄(팀 로빈스)이 출장 차 낯선곳으로 떠나와서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설정은 

<사랑도 통역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속의 밥(빌 머레이)을 떠올리게 한다.

밥이 일본에 머무는 동안 느끼는 문화적 충격과 이질감이 윌리엄이 상하이에 도착해서 느끼는 혼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밥 역할을 빌 머레이 대신 팀 로빈스가 연기했었더라면 훨씬 로맨틱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두 영화 모두 2003년도 영화이니 팀 로빈스가 스케쥴상 포기한것이라고 또 내 멋대로 생각해본다.

심지어 <Shame>에서 마이클 파스빈더가 연기한 성도착자역도 의외로 잘 어울렸을듯.



윌리엄은 이렇게 상대방에게 자신에 관련된 사실 하나만 말해보라는 질문을 던지고선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empathy virus 라는것을 가지고 있다.

SF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물리적인 배경이 이렇게 현실적인 SF 영화는 

영화 주제가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져있더라도 줄곧 감정이입을 하면서 본다.

다양한 인종들이 한 공간에서 혼합된 언어를 사용한다는 설정도 몹시 현실적이다.

십년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발달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가 변함없이 김치찌개를 먹고 비슷한 옷을 입은채 여전히 삼사십년도 더 된 건물에서 살고 있는것처럼 

생활 형태의 변화라는것이 기술의 변화만큼 급격한것은 아닌데 

등장인물들이 젤 형태의 음식을 먹고 메탈 재질의 옷을 입고 있는 영화는 그래서인지 별로 감정이입이 안된다.



여주인공의 머리가 이렇게 짧을 경우 백퍼센트 슬픈 영화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된다.

데미무어의 <사랑과 영혼>은 말할것도 없고 위노나 라이더가 나온 <뉴욕의 가을>이 그랬고 

미아 와시코프스카가 나온 <레스트레스>가  그랬으며 진 세버그가 나온 <네 멋대로 해라>도 따지고보면 슬픈 영화니깐.

사만다 모튼이라는 이 배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물속에 누워있던 배우아닌가. 

미래에 발생할 범죄를 사전에 포착하고 통제하는 세상과 사랑과 기억을 통제하는 세상. 우연의 일치는 아닐거다.

마리아 역에 너무 잘 어울린다. 독백도 많고 대사도 많은데 워낙에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목소리가 예뻐서 더 몰입하며 봤다.

마리아의 대사중에 좋은 대사가 많은데 하나를 옮겨 보자면 


"If we had enough information,we could predict the consequences of our actions.

would you want to know? if you kissed that girl, if you talked to that man, if you take that job or marry that womoan or steal that papel? If we knew what would happen in the end, would we ever be able to take the first step to make the first move?''


불법으로 사람들에게 위조된 신분증을 나눠주고 조사받는 마리아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바깥 세계' 보낸 경험이있다.
그 황량한 사막에서의 생활이 어떤것이라는것을 알기에 신분증을 위조한 행위는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본능에 의한 것.
조금이라도 유전적인 동일함이 있으면 강제로 낙태되는 세상에서
스치듯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유전자에서 복제된 인간이었을거라고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것이다.
나중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사랑의 감정을 통제 하지 않은 죄로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을 빼앗긴다.
따지고보면 유부남이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그것을 알게된 부인이 남편의 기억을 없애버린 스토리에 불과하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영화가 아무리 잔혹해도 사랑의 감정이 모든것을 초월해서 견고하길 바라는 우리에게
기억을 지울 수 밖에 없었던 아내의 입장도 그리움을 간직해야하는 마리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이 가장 측은하며
 언젠가는 자신의 기억도 삭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그들 모두가 잠재적인 피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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