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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Leos Carax (1984)

 

<Boy meets girl>

 

올해 빌니우스 영화제에서는 레오 까락스 회고전을 통해 다섯편의 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맨 앞에서 가장 뒷줄의 부스럭거림이 들릴 정도로 작았던 예전의 동숭씨네마텍이나 코아 아트홀의 가장 작은 상영관과 비슷한, 멀티플렉스가 아닌 빌니우스 토종 극장 Skalbija 에서 영어 자막이 담긴 필름에 리투아니아어 자막이 동시에 지나가는 자막 기구와 함께 매우 고요한 가운데 보았다. 이 영화는 동숭씨네마텍이 개관하고 두번째인가 세번째 상영작이었다. 왜인지 꼭 한 번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이 흑백 영화를 그렇게 우연인듯 필연인듯 다시 보았다. 

 

 

 

제목이 너무나 예쁜 영화다.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제목도 그냥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다. 동사가 문장에 마지막에 오는 우리말 특성 때문에 생겨난 소년과 소녀사이의 쉼표도 뭔가 낭만적이다. 가끔은 쉼표가 없이 그냥 우리가 만나는것이 소년과 소녀였더라도 더 아련했겠다 싶다. 

이것과 똑같은 포스터를 극장에서 받아와서는 책상에 까는 고무 받침에 싸서 일년을 쳐다봤더랬다. 짝사랑도 연예인도 누군가를 그냥 몹시 좋아해본적도 없었던 소녀의 시절. 탭댄스를 추는 미레이유 페리를 보며 이렇게 예쁜 여자도 실연을 당할 수 있구나 생각했었다. 저렇게 머리를 아무렇게나 잘라도 예쁘다니 전성기의 시네드 오코너, 위노나 라이더 만큼이나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렸다. 20년이 지나서 다시 본 30년전의 영화는 내가 더 나이가 들어 헤어짐을 경험했던 시절에 봤더라면 몹시 가슴 아팠을 영화였다. 30년 전의 흑백필름속의 그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심지어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했다. 냉장고 불빛에 의지해 타자기를 두드리는 알렉스의 어두운 방과 파리의 어두운 밤. 그리고 그들의 머리로 흘러 내리는 저 별들. 아마도 그 당시의 나에겐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영화였나보다. 언제 사랑을 하든 언제 헤어지든 똑같이 가슴 아플 수 있는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소녀이고 소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 영화는 처절히 아팠던 이별의 기억도 예쁜 추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된 나에게 여전히 아름다웠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를 추억할 수 있다는것은 아직 젊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벽에 걸린 액자 뒤에 처음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자신의 모든 기억들을 기록해 나가는 알렉스처럼 계속해서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느낌과 경험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겠다. 오늘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으니. 더 아름다울 내일을 기대하는 것보다 오늘을 추억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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