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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Babies> Thomas Balmes (2010)


<Babies>


나미비아,몽골,샌프란시스코와 도쿄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들을 관찰한 영화.

아이들이 태어나서 혼자의 힘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까지의 일상을 나레이션이나 인터뷰를 배제한채 담담하게 담아낸다.

나미비아의 건조한 사막에서부터 몽골의 초원, 샌프란시스코와 도쿄의 마천루까지 

울음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시작되서 각기 다른 공간과 환경, 사고방식에 의해 길러지며 자라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인생.

영화는 각기 다른 문화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이런저런 문제와 충돌하며 과연 잘 키우고 있는것일까, 정말 가치있는 고민인걸까 반문하는 부모들은

아마도 이 영화가 특정 메세지를 전달하려는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보게될것이다.



영화의 장면장면을 다시 보고 있자니 영화라기보다는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아이 중심의,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는것 같다.

광활한 자연속에서 태어나서 한 부족의 구성원으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육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것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물론 그들도 단순한 사회 구성원이 아닌 한 부족의 카리스마있는 부족장으로 키우기 위해 해야 할 것 따위의 육아 지침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나미비아의 신생아들은 물론 기저기를 사용하지 않는데, 아이가 똥을 싸면 엄마는 자신의 무릎언저리에 엉덩이에 묻은 똥을 닦고 바닥에 지천인 모래로 그 똥을 씻는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아버지는 멀뚱멀뚱한 아이옆에서 열심히 진공 청소기질을 하고 그도 모자라서 아이옷에 붙은 먼지를 걷어낸다.

이를 두고 위생의 개념에 대해서 얘기하는것은 부질없는 짓일거다. 

단지 이런 차이를 접하고 나면 우리가 신경과민을 보이는 일부 이슈들에 대해 약간은 관대한 자세를 취할 여지를 준다.



명칭도 알 수 없는 재밌는 유아용 놀이기구. 일부 유아용품들은 바쁘고 지친 부모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울음과 웃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얘기들하는데 정말 그런걸까.



드넓은 초원에서 겔을 짓고 사는 몽골인들. 아마도 정기적으로 혹은 출산 후 얼마간 의사가 방문진료를 하는 모양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저 파란 옷을 주섬주섬 입히는 장면 뒤로 이제는 너무 커버려서 저울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몽골아이들의 몸무게를 쟤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아이처럼 그네를 타듯 저울 아래에서 천진난만하게 움직이는 아가.



가짜 젖꼭지 대용으로 아이 입에 물린것은 돼지비계같다. 리투아니아에서도 즐겨 먹는 돼지비계인데 나도 저렇게 해볼까. 하하. 입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성냥을 끼워놓았다. 

몽골편에서 신기했던것 중 또 다른 하나는 엄마가 모유수유를 하면서 모유를 아이의 얼굴에 뿌려 세수를 시키는 장면.

 


어려서부터 다양한 집단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많은 도쿄의 아이.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일본인들은 뭐랄까 지극히 메뉴얼적인 인간이랄까. 국가의 관점에서 국가를 위해 길러지는 아이들 같다.

하긴 넓게보면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이루는 작은 부속품일지도.  



열심히 서는 연습을 하는 나미비아의 아이들.



도쿄와 샌프란시스코의 아기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던 몽골아이의 미소.

수많은 익숙한 장난감들 사이에서 뭘 해야할지 몰라 지루해 울음을 터뜨리던 신경질적인 아이가 아닌 그냥 아이여서 그 자체로 행복해보이던 아이.

나 역시도 도시의 작은 공간에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 가끔은 아무런 공간적 제약이 없는 널찍한 자연에서 얼마간 아이를 키워보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어디에서 키우느냐는 것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하고 천진하고 밝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은 될 수 없을것이다.

물론 여건이 되면 기회가 오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보는것은 아이에게도 내 개인적인 삶에도 도움이 될것이니 사양하진 않겠지만.

하지만 그 '어떻게' 키우느냐의 이슈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누군가의 아이는 어디에 살기때문에 어떤 부모의 자식이기때문에 어떤식으로 자랄것이다라는 생각이 아닌 

부모로써의 혹은 하나의 자아로써의 나를 먼저 순수하게 인정하고 자부했을때 내 아이도 나만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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