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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Paris 12_아랍 월드 인스티튜트 (Institut du monde arab)



다시 가고 싶은 파리. 2년전 여행에서는 충실한 관광객이 되어 모두가 바삐 들르는 관광 명소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다시 여행한다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긴 가봐야겠지?' 와 같은 모종의 부담감을 털어내고 한결 간편한 게으름뱅이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파리에서 우리가 머물었던 곳은 파리 5구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였다.

빌니우스에서 저가항공을 탔기에 우리는 파리 보베 공항으로 입국했고 공항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고 5구에 위치한 숙소까지 이동해야했다.

보베 공항에서 공항 버스를 타면 라데팡스가 출발역인 1호선의 Porte Maillot 역까지 이동한다. 보베 공항에 가려면 그러니깐 이 역에서 공항 버스를 타면된다.

그곳에서 우리가 지하철을 갈아 타야하는 1,5호선 Bastille 까지는 열정거장을 넘게 가야했지만 파리 지하철은 역과 역사이의 거리가 몹시 짧아서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때마침 우리가 여행했던 때에 5호선 환승역인 Bastille 와 Place d'italie 구간이 공사중이라 그 구간을 오가는 버스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야하는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항상 지하철을 애용하는 우리였기에 아마 그 공사가 아니었음 버스를 탈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꽤나 먼거리를 이동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짐을 풀고 숙소를 나와서 배회하다보니 주요 명소까지의 거리는 몹시나 짧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보니 숙소가 위치한 Saint marcel 역부터 사방으로 빽빽하게 적힌 역 이름들이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센 강도 바로 근처여서 센 강변만 계속 걷다보면 파리 어디에서든 걸어서 돌아올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파리가 내가 생각하는것보다 덜 고풍스럽기를 기대했다. 굳이 라데팡스의 빌딩숲까지 가지 않더라도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 몇개는 만날 수 있겠지 기대하며.

다음날 아침 일찍 노트르담을 향해 걸을때 멀리 대로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축물은 아랍 세계 연구소였다.



파리의 지하철을 한두번만 타고 다닌다면 혹은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를 보았다면 그리고 얼마전에 본 <히든>같은 영화만 떠올려 보더라도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가는 제3세계 이민자들의 삶이 어떤것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는 지위를 얼렁뚱땅 얻었가는 동안 프랑스인들이 만들어 낸 일련의 영화들의 공통점이라면 

그 통속적인 낭만을 빌려 낭만적이지 않은 날것의 파리를 더할나위없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데 능하다는것. 

그리고 센 강변, 파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 아랍아랍하는 건물이 얼마나 타당하고 합리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지에 딴지를 거는이는 아마 없을것이다.



누벨하면 누벨바그, 누벨바그 하면 장 뤽 고다르라고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배용준이 그랬었다. 

부잣집 아들과 친해지고 싶은 이종원은 듣도 보도 못한 고다르이지만 미리 공부해서 고다르광인척하는데 성공하지.

 무엇이 이 아랍 세계 연구소 사진을 보며 추억의 옛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냐하면 

바로 이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이다. 장 누벨. 이름도 너무나 거장스러운, 우리에게는 삼성 리움 미술관 설계자로 유명한 그 누벨이다.

어떤 사람이 건축가가 되는걸까. 한국에서 건축 공학과는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들이나 그나마 꿈꿔볼 수 있는 전공이 아닌가.

선생님이었던 장 누벨의 부모님은 아들이 수학이나 언어를 전공하기를 바랬지만 누벨은 회화와 같은 예술방면에 흥미를 느꼈고 

그의 부모님은 계속해서 기계나 교육쪽 전공을 택하길 바랬지만 결국 미술이 아닌 그나마 건축이 아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것이라 여겨 타협을 했다고 한다.

자기 분야에서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의 재능을 어릴적부터 발굴하고 육성하고 물심양면 지원하는것은 아닌듯. 

그래도 아들의 의지를 완전 묵살하지 않고 건축으로 방향을 잡아준 누벨의 부모는 현명하다 해야하나. 

아니면 장 누벨은 뭘 했어도 잘했을 그냥 천부적인 사람일까.



아랍권에 식민지를 많이 가졌던 프랑스. 프랑스내에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프랑스에게있어 아랍은 분명 귀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아랍권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정보와 아랍 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며 프랑스와 아랍 국가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와 협력을 위해 1980년대에 파리에 설립된 아랍 세계 연구소.

특히 과학 기술 교류에 중점을 둔 연구소는 비단 프랑스와 아랍권의 관계뿐아니라 아랍국가들과 유럽 전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햇빛이 풍부한 아랍권에서 격자 무늬의 패턴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진 옥외 발코니에 쓰여지는 아랍 특유의 디자인, 무샤라비에.

볕이 잘드는 연구소의 남향에 이 무샤라비에 패턴을 이용하는 재치. 하지만 단순히 창문에 격자 틀을 넣거나 아랍에서처럼 콘크리트 작업을 할때 아예 틈새를 만드는것이 아닌

마치 빛에 반응하는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흔들때마다 모양이 바뀌는 칼레이도스코프처럼

건물에 내리쬐는 태양의 양은 240개의 알루미늄판에 연결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필요에 따라 열고 닫히며 조절된다고 한다.

얼핏보면 모두 같은 기하학적 모양같지만 저마다 조금씩 덜 열리고 더 열려있는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못해본게 너무 많은 여행. 연구소 옥상에 올라가서 차도 한잔하고 

일층에 위치한 서점에 마냥 눌러앉아 하드 커버의 각종 화보들과 사진집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반드시 둘러봐야 할 장소들이 너무 많았다.

굉장히 사고 싶었던 다이어리가 있었는데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했고 

떠나기 전 날 주어진 나만의 시간에 넋놓고 5구를 배회하다 부리나케 다시 들렀지만

월요일 휴무로 굳게 잠겨있었다.

다음에 파리에 간다면 첫번째로 들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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