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ilnius Chronicle

Vilnius Sculpture 01_로맹 개리 조각상


이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둔탁해지고 밤은 조금 더 깊어지겠지. 이제 곧 썸머타임도 해제되니 한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물론 모두가 만능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시간도 알아서 자동으로 바뀐다. '시계바늘 돌리는것을 깜빡해서 지각했어요' 같은 소리는 창피해서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것이다. 이런식으로 많은 아날로그적 실수들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행복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간다. 지난 토요일 아침, 텅빈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은 최근 경험한 감정 중 가장 시적이고 정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정적만큼 아날로그적인것이 또 있을까. 잠든 가족을 남겨두고 정해진 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되내이며 헐레벌떡 집을 뛰쳐나왔지만 마치 꿈속에서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잘 움직여지지 않는것처럼 누군가가 등뒤에서 코트 자락을 잡아 당기는듯 주변의 모든 풍경들이 바쁘겠지만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가을은 완연했다는 칭찬을 해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아주 금세 끝날 낌새를 보인다. 모든 움직이는것들의 무심한 발자국에 싱싱한 낙엽들이 하나둘 짓이겨지기 전에 예쁜 낙엽 몇장 주울 수 있다면 좋을텐데. 세상에 낙엽만큼 결백한것들은 없을테니. 여행을 가면 밤기차를 타는것이 항상 설레었었다. 오르고 내리는 승객들로 등언저리는 시린 찬바람에 항상 무방비상태였지만 그런 불편함 마져도 익숙해져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갈때쯤 기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피골이 상접해져서 걷는 텅빈 도시의 아침은 그럼에도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그리고 이렇게 제자리에서 살면서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우리는 항상 어떤 조건을 갖추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그 능력 자체에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여름이 되어 밤이 짧아지면 새벽에 나가자 보채는 아이를 데리고 걷게 될지 모를 이 거리들. 언제나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되는 빌니우스의 거리들. 



일방통행 도로 한켠의 노란 페인트 자국이 벌레먹은 은행잎처럼 낡았다. 이 거리의 이 지점에 서서 저 끝의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마주할때 언제까지나 내 인생의 하나뿐이었던 그 10월의 토요일 아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빌니우스 구시가지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조각들. 약속 장소를 잡을때, 혹은 전화 통화중에 어디 어디쯤이라고 얘기할때 조각들의 이름을 얘기할 수 있는것은 나에겐 퍽이나 낭만적이다. 낭만은 현실속에서 숨쉬어야 한다. 낭만은 온갖 노력을 다해서 무슨 행사처럼 일시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깐.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감정을 매일 매일 되새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낭만주의자이다.





 

바사나비치어스 J.Basanavičiaus 거리와  민다우고 Mindaugo 거리의 교차로에는 양손에 고무신을 꼭 쥔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소년의 동상이 있다. 그의 꼭 쥔 두손에는 사계절 꽃이 끊이질 않는다. 거리의 낙엽이든 시든 꽃다발이든 꺽인 나뭇가지이든 그는 항상 꽃과 함께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무신을 뜯어 먹었다는 일화의 주인공, 바로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소설가 로맹 개리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형상화한 조각이다. 일부 자료에선 로맹 개리의 출생지가 러시아로 표기되어있지만  실제 로맹 개리는 리투아니아계 유태인 홀어머니와 함께 빌니우스에서 태어나 이 동상이 세워진 거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프랑스로 이주한것으로 알려져있다. 외교관이자 극작가, 영화 감독, 소설가까지 다재다능했던 그. 절대로 같은 작가에게 두번 시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로맹 개리는 공쿠르 문학상을 두번이나 받았다. 한번의 공쿠르상 수상 이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던것. 그리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개리였다는 사실은 그의 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물론 그가 그 잘난 문학상을 타려고 이름을 바꿔 집필을 시작한것은 아닐것이다.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말끔하게 아름다웠던 진 세버그의 연인이었고 그녀의 죽음 이후 권총 자살을 하지만 유서에는 내 죽음이 진 세버그의 죽음과는 상관없다고 언급한다. 그의 많은 작품 중 단 두권의 소설을 읽었을뿐이지만 그 특유의 유머의 기저에는 진한 우울이 깔려 있다. 이 동상을 지날때마다 그래서 슬픈 감정을 느낀다. 





소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무신을 뜯어 먹었다는 일화는 <새벽의 약속>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가 언급했다고 한다. 전자책 사이트에 많은 로맹 개리의 작품이 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찾을 수가 없다. 이 소년의 사연을 아는 이라면 예쁜 꽃다발을 준비해서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여인과 소년의 발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아 어쩌면 소년이 지니고 있는 꽃다발들은 그 숱한 사랑 고백을 거절당한 이들이 남기고간 씁쓸한 증거물일지도 모르겠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다보면 로자 아줌마의 아파트에서 다른 창녀의 아이들과 길러지는 엄마 없는 모모의 형상이 이 동상에 겹쳐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고파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고도 도망가지 않고 서있던 모모. 엄마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여자가 주인인 상점을 드나들던 모모.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냐고 천진하게 묻던 어린 모모. 어쩌면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던 로맹 개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은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배신감때문이었을지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