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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21_없는 것 없는 중고 옷 가게



빌니우스 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발견 할 수 있는 중고 옷 상점들. Humana, 50c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체인점들도 구시가지내에 서너군데 있을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야무진 가게들도 많이 있다. 나는 옷을 즐겨 입는 옷쟁이가 아니라 보통은 옷이 필요하다 싶을때에야 큰 결단을 하고선 옷을 사러 가는 편인데 물론 그렇게 필요에 의해 옷 가게에 가면 적당한 옷을 찾기가 힘들다. 꾸미기 좋아하는 내 친구중 몇몇은 주기적으로 재미삼아 이런 상점들을 방문하는데 그들 대부분 깔끔하니 옷을 잘 입는다. 비싼옷도 새옷도 아니지만 상황과 날씨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잘 갖춰 입는 모습이 보기 좋다. 뭔가에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옷입기에도 예외는 아닌것 같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작은 노력이니깐. 






똑같은 중고 상점들이지만 그 모습은 천지차이 이다. 새옷과 별반 다르지 않은 좋은 품질의 옷에 가게 라벨을 달아 살롱처럼 그럴듯하게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곳들이 있고 바구니에 옷을 담아서 그램수대로 가격을 매기는 곳도 있으며 저런 물건을 누가 살까 싶은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놓고 파는 가게들도 많다. 그런 가게들의 경우 그 물건들을 팔아서 크게 이윤을 낼 목적은 없어 보인다. 단지 누군가에게 쓸모 없어진 물건들이 혹시나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버리지 않고 진열해 놓는것이 나에게는 퍽이나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 역시도 가끔은 재미로 가끔은 필요에 의해 이런 저런 가게들을 구경하러 다니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있을까 시간이 될때마다 들여다 보는 중이다. 금세 자랄 아이에게 굳이 새 옷을 입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새 옷은 가끔 들어오는 선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이런 상점들에서 파는 옷들은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 수거된 옷들을 판매 가능하도록 세탁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거친 옷들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살때에도 입지 않는 옷을 넣는 큰 초록색 컨테이너 같은것을 길거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가게들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안국동의 아름다운 가게를 떠올리게도 한다. 





옷도 고르기 쉽게 색상 별로 진열해 놓는다. 이렇게 정리가 잘 된 가게들은 옷을 입어 보고 나오면 점원들이 계산대로 가져다 주거나 제자리에 걸어 놓기도 한다. 손님이 입어 본 후 아무데나 걸어 놓은 옷들을 정리하려면 배로 힘들테니 말이다. 저런 로션이나 향수 같은 것들은 어디서 가져오는것인지 모르겠는데 물건 자체는 전부 새 것이다. 사진을 찍고 보니 저기 존슨즈 베이비 로션 냄새가 나는것 같다. 초등학교때 연필을 깎아서 쓸때, 연필깍이 상자를 제때 비우지 않아 꽉 차면 상자를 열때 넘치면서 찌꺼기들이 방바닥에 쏟아 지곤 했는데 그때 방바닥이 시커매지면 저 로션을 휴지에 발라서 말끔하게 지우곤 했었다. 그리고 방바닥에 항상 코를 대어 보곤 했었다. 쓰다보니 연필깎이 냄새도 나는듯 하다.





아이들 옷이나 장난감도 연령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이 가게는 구시가지의 중고 옷 가게중에 가격이 나름 비싼 가게이지만 비싼 가격도 적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최저 몇센트부터 최고 30유로 정도로 보면 될것 같다. 





똑같은 검은 셔츠만 수십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남편을 위해 항상 들어 가자마자 들여다 보는 코너. 어떤 가게는 아예 이렇게 일괄적으로 가격을 정해 놓는 곳도 있다. 그리고 해피 타임이라고 해서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데 어떤 사람들은 옷을 미리 골라서 맡겨 놨다가 그 시간에 와서 사는 경우도 봤다. 반칙!





이것은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 한켠에 놓여 있던 물건들이다. 날씨가 추우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에서 여유로우니 뭐든지 직접 만들고 수선하고 바꾸는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물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 이런것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특히 엄마와 손잡고 들어와서 이런 바구니들에 코를 박고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소박한 습관들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엉뚱하게 가게 한 구석에 이런 주방 살림들을 가져다 놓은 가게도 있다. 밥솥도 보이고 와플 기계도 보이고 샌드위치 누르는 기계도 보이고 각종 블렌더도 보인다. 이런 물건들은 뭐랄까 약간 어디서 빼돌린 물건을 파는 느낌이 살짝 든다.




이번 달 나의 가장 큰 이슈였던 아기띠도 보인다. 리투아니아는 한국처럼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인구 3백만의 소국이니 수요가 적어서 무슨 물건을 사려고 하면 대부분 몇군데의 이름있는 회사의 제품만 보인다. 그마져도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나 서유럽의 수입 물품이다. 가격이 싸다 싶으면 한국의 중국산처럼 이곳에선 폴란드산 인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수십개의 업체가 경쟁해서 가격이 내려가는 시스템은 없다. 신디 크로포드 닮은 여자가 메고 있는 저 아기띠는 10유로라고 적혀 있어 솔깃했지만 친구가 물려줬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런데 이런 가게들을 순회할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싸다고 해서 이것저것 사다보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왕창 살 확률이 높다는것이다. 그래서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들때, 근데 꼭 필요한것이 아닐때 보통은 다음번에 와서도 있으면 그때 사자 하고 사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번에 갔을때 아직 있는데 그때도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면 또 다음번에 와서 있으면 그때 사자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음번에 갔을때 누군가가 이미 사버리고 없으면 아 내 물건이 아니었나보다 생각하지만 그때도 있다면 정말 내 물건이었구나 생각하고 잘 쓰게 된다. 





맨 가장 자리의 퍼즐과 보드 게임을 지난번에 갔을때 봐두었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다 사지 않고 남겨 뒀었다. 보드 게임은 이미 개봉된 상태라 게임 내용물이 빠짐없이 다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결국 사지 않았고 비닐 포장된 1000피스짜리 퍼즐을 2.5유로 주고 구입했다. 상위에 펼쳐 놓고 오며 가며 한 조각씩 맞출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보드 게임이었을까. 퍼즐은 아주 쉽지 만은 않아 보이지만 언젠가 친척 언니 집에서 겁없이 빌려 왔다 퍼즐만 색상 별로 나누다 돌려 준 15000 피스짜리 퍼즐을 생각하면 식은 죽 먹기로 보인다. 





겨울이 춥고 긴 리투아니아에서 우주복은 아기들의 외출에 필수인것 같다. 리투아니아 날씨가 한국과 비교해서 엄청 춥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곳의 날씨는 그냥 '위험하다'. 날씨 따뜻하네 하고 방심했을때 감기는 이미 걸려 있다. 이곳에서 따로 김치를 담궈 먹지 않아 나의 면역력이 떨어진건지 7년 사는 동안 내 체질 자체가 리투아니아 사람처럼 변했는지 모르겠다. 아직 눈이 내렸던 3월 말 이곳을 처음 여행했을때 난 구멍 난 청바지에 목도리도 장갑도 모자도 없이 여행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버릴 생각으로 동생 친구의 털 다빠진 파카를 입고 있었는데 아직 한국 체질이었던 그때 비를 맞고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었다. 지금 그렇게 입고 다니다간 정말 큰 병에 날 것이다. 아주 잠깐 베란다에 나간다해도 절대 실내복 차림으로 그냥 나가선 안된다. 아기띠를 메고 다니는 사람 중에 위 아래 분리된 옷을 입힌 사람을 본적이 없어서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친구가 어차피 한 두해 입는것이니 아주 큰 것을 사서 다리와 팔 부분을 묶어서 입히라고 조언해줬다. 중고 상점 마니아인 친구의 조언이다.





신발 종류도 항상 많다. 추운 나라에서 필요한것은 털 양말을 신고도 여유있는 따뜻한 부츠, 수도사들이 입고 다니는 옷 같이 큼지막한 모자가 달린 코트 같은 것들이다. 






쿠션이나 침구류도 빈번히 판다. 양말 같은 것들은 새것이다.







다양한 용도의 섬유들. 마음에 드는 천들을 보면 구입 한 후 재봉질 하는 친구에게 초콜렛 한 블럭을 선물로 주며 침대 시트나 베갯잇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출산 임박해서 아기 침구류도 그렇게 급하게 만들었는데 아기가 과연 언제 이불을 덮을런지 모르겠다.






우리집에 카우치 서핑을 통해 하루를 묵었던 세계 여행중인 한국인 처자가 '언니, 옷 가게에서 누가 입던 속옷도 팔던데요' 하고 놀라서 말하던게 기억난다. 속옷은 사이즈가 크기도 엄청 크지만 나도 아직 사본적이 없다. 상의는 그렇다치고 하의는 모르겠다. 열심히 고르는 사람 몰래 도촬해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한번 잘 살펴 봐야겠다.




오랫동안 걸려 있었던 미키 마우스 가방. '다음번에 와도 있으면 사자' 게임에서 미키 마우스가 이겨서 구입했다. 디즈니 광인 친척언니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전당포에 온 기분이다.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옷을 정말 잘 입는 멋쟁이들을 볼 기회도 많다. 정말 의외로 특이하고 괜찮은 옷들도 많은데 그런 옷들은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훨씬 저렴할때가 있다. 이런 파티 용 의상이나 테마 파티 같은데 입을 일회용 의상을 구하러 오는 학생들도 항상 손님중에 한명은 있다. 짙은 스모키 화장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워커를 신은 고딕 스타일, 혹은 펑크 스타일, 기성복 가게에서는 자기 취향에 맞는 옷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예쁜 부츠를 득템하신 아주머니, 전당포 앞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계신다.





가끔 괜찮은 영화 디비디도 판다. 물론 정품은 아니다.





추운 겨울에 집에서 뜨개질 하는 사람도 많으니 실 종류도 항상 볼 수 있다.





최대한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장난감. 그래도 내가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혹시 있을까 한번 정도는 쳐다봐 준다.





그릇도 판다.





책은 원래 잘 안사는데 파란 책이 눈에 띄었다.





뒤집어서 1유로라고 적혀 있으면 사야지 했던 블랙 커런트 향초. 7유로 씩이나 해서 제자리에 놔뒀다. 





절약은 돈이 없어서 하는것이 아니라 돈을 가치있게 쓰려고 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리투아니아의 소득 수준이 서유럽 수준에 가까워진다면 어쩌면 이런 가게들도 사라질지 모른다. 리투아니아에서 버려진 옷들이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시 같은 나라로 이민을 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칙대로 라면 변하는것은 없어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남이 입던 옷을 어쩔 수 없이 입는것이 아니라 이것은 일종의 소비에 관한 원칙의 문제니깐. 비싼 옷을 사도 정말 그 옷을 사랑해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다면 아름답다. 밑창을 갈아가며 등산화 하나를 수십년간 신었다는 전직 대통령처럼. 몇십년된 양복을 버리지 않고 입고 다닌다는 월가의 투자가처럼. 비싸든 싸든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물건들을 아주 조금만 가졌으면 좋겠다. 





이 날 나는 옷을 사진 않았고 하늘이 절반인 고즈넉한 퍼즐 한 상자와 파란 책 한 권과 검은 미키 마우스 가방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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