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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났다. 며칠 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과 달리 과감한 옷으로 갈아 입은 중고 옷가게의 마네킹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언젠가 운좋게 10유로를 주고 겨울 코트를 사며 소탈한 주인 아주머니를 알게 됐는데 이 아주머니가 드디어 공격적 마케팅에 눈을 뜨신걸까 생각하며 다른 진열창으로 눈이 옮겨 가던 참에 위풍당당하게 걸려있는 에펠탑을 보게 됐다. 설마 우연일까. 파리 테러 이전부터 걸려 있던것 같진 않은데 아줌마도 대세를 따라 정치적 입장 표명을 하신걸까. 파리 테러를 두고 전 세계가 병적으로 들썩이는 와중에 유럽의 변방으로서 서유럽 강대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리투아니아에도 파리 테러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이다. 하지만 뭐랄까 파리 테러를 대하는 세계의 자세는 나에겐 퍽이나 기형적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앞 다투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프랑스 국기의 배경으로 바꾸고 심지어 동네 옷 가게 아주머니도 에펠탑 커튼을 거는 이 애도 분위기속에서 기형적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에서 새로 임명된 국무장관이 학생때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언급한 미국의 이스라엘 관련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코멘트가 몇십년후에 독이 되어 돌아오는 부분이 생각났다. 이럴땐 내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 나갈 야망을 가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내 가족이 테러를 통해 희생되었다면 나는 슬플것이고 혹은 내 자신이 희생되었다면 내 가족은 분노할것이다.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것도 아니다. 애도 자체는 항상 순수하지만 애도를 부추기는 분위기의 저변에는 항상 구린내 나는 정치적인 계산들이 깔려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세계 곳곳의 빈국들에는 삐쩍 마른 외골수 종군 기자들만 기웃거릴뿐 우린 정작 세상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구에 의해서 왜 죽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구조속에서 살고 있으니깐. 가끔은 세상의 많은 국가들의 밀고 당기고 협력하고 등 돌리는 치밀한 모습들이 각양각생의 학생들이 모인 작은 교실 속 풍경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 테러를 애도하는 분위기는 뭐랄까 큰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 학생이 학교 폭력으로 죽자 그 회사에 납품하고 그 회사에서 일하는 그 회사와 연결된 다른 집 아이들의 부모들이 앞다투어 비싼 화환을 보내는 그런 모습이다. 시리아 난민 수렴 문제로 정치적으로 양분된 유럽은 좀 더 공고해지고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문제로 유럽에서 왕따가 된 러시아는 이번에 우리 여객기도 격추됐는데 이 참에 우리 좀 친하게 지내자 하고 손가락으로 유럽의 등을 콕콕 찌르는 모습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선주자는 대통령이 되면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물고문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고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하니 돈 제일 많은 반의 반장 선거를 지켜보는 다른 반 아이들의 부모들은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희생된 사람들이 불쌍하여 섣불리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희생자들을 이용하는 권력에 산 채로 또 다시 이용 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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