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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uania

[리투아니아생활] 리투아니아의 인스턴트 식품




지난 가을 집 근처에서 일본인 여행객이 말을 걸어왔다. 집주변에 저렴한 호스텔도 많고 괜찮은 호텔 하나가 들어서서 여행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절반은 역에서 나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를 찾으러가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짐을 풀고 구시가지쪽으로 발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 뭔가 곧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영감을 얻을 것 같아 상기된 표정, 그들을 보며 내가 여행했던 십년전이 떠올라 난 줄곧 기분이 좋아진다. 지도를 펼쳐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혹시 도움을 청해올까 싶어 일부러 가까이 지나가본다. 물론 절대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을 걸진 않는다. 낯선곳에서 스스로 방향을 감지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기분이 얼마나 즐거운것인지 알기에.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만치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알아서 말을 걸어오겠지. 그날의 일본인은 스마트폰을 내밀며 혹시 식당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적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알아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을텐데 모르긴해도 내가 일본인이 아닌것을 알고 약간 멋쩍어져서 급조해낸 질문 같았다. 그날 내가 그에게 적어 준 음식은 감자를 주재료로 한 일련의 음식들이었다. 리투아니아어로는 대충 이렇게 적는다. Cepelinai, Virtiniai su varske.




여행을 가면 요리가 가능한 숙박을 보통 한다. 현지의 식재료를 써서 해먹는 요리책속의 음식들도 물론 매력있지만 가끔은 그냥 냉동 인스턴트 식품들을 사곤했다. 가장 서민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현지식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은 마트의 인스턴트를 사는것이다. 한국 편의점들의 숱한 도시락들이 그렇다. 리투아니아의 이런 인스턴트 식품들은 언젠가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가정식과 정말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음식은 찐 감자를 소량의 밀가루와 반죽해서 만든 식품인데 감자 전분땜에 식감은 우리나라의 감자떡과 비슷하다. 내용물은 없다. 그냥 감자. 딴 첨가물을 찾아보려고 해도 그냥 오로지 감자. 잘게 썬 양파나 돼지비계 따위를 잘 볶아서 소스로 곁들이고 보통은 사워크림을 뿌려 먹는다. 위의 식품은 '감자 배꼽'이라고도 부른다.




크기가 큰 것은 속에 하얀 코티지 치즈가 들어가있다. 반으로 잘라진 사진이라도 좀 찍을걸 먹느라 바빴구나. 리투아니아의 마트에 가면 백퍼센트 발견할 수 있는 냉동식품이다. 저렇게 크기가 크다면 코티지 치즈나 고기가 들어가있을 확률이 높다. 물이 끓을때 집어 넣고 크기에 따라 위로 떠오르는 시간부터 10분-15분 정도 끓이면 된다. 끓이고 나면 녹아 내릴 전분때문에 물이 걸쭉해져 있을것이다.그래서 되도록이면 큰 냄비에 물을 충분히 넣고 끓이면 훨씬 맛있다.




원래 버터에 양파를 볶으며 사워크림을 넣고 볶기를 완성하기도 하지만 볶은 양파를 따로 먹고 싶은 생각에 오늘은 섞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냉장고에 있던 딱딱한 치즈를 꺼냈다. 저 치즈들은 뭐랄까 짜장면 집 테이블 위에 놓인 고추가루와 간장 같은 존재이다.





내가 치즈를 갈아서 뿌려 먹겠다고 하니 남편은 '오우 무슨 짓이야'라고 반응했다. 사실 파마산 치즈 같은 하드 치즈들을 뿌리면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짭쪼롬하고 퀴퀴한 치즈 맛으로 먹는다고 해야 맞으니깐. 보통의 리투아니아인들은 후추나 소금 정도를 뿌린다.




인스턴트를 먹을때는 눈이 즐거워야 한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 먹게 된다...그게 인스턴트의 소울이니깐. 기억속에서 완전 잊혀진 티비판 에반겔리온을 보기 시작했다. 일본 문화 개방 되기전에 복제 테이프를 돌려보고 대학 축제 상영회를 찾아 다니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버튼 하나면 그냥 찾아 볼 수 있는 시대. 정의로움으로 가득찬 주제가 여자 목소리도 변함없다.




에반겔리온의 시대적 배경이 2015년이네. 20년전에 상상하는 2015년은 그토록 아득했었는데. 심지어 어린 시절 2010 원더키디를 보면서는 저런 우울하고 암울한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한참전에 지나갔고 서기 2019년 블레이드 러너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삶은 아직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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