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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Russia 05_오래전 러시아 여행 회상하며 보낸 소포



(Vilnius_2006)



러시아부터 발트 3국을 여행하고 바르샤바로 떠나기전 빌니우스에서  해당 나라의 론니 플래닛을 전부 잘라서 버렸다.  동유럽 론니 플래닛이 너무 두꺼워서 무겁기도 했지만 (물론 그것을 잘라 버렸어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3월말에도 짖궂게 쌓여있는 눈을 보며 4월에는 제발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물론 지금은 4월에 겨울 부츠를 신고다니는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겨울에 익숙해졌다.  '여름이 싫다, 추운 나라에 살면 좋겠다, 겨울이 긴 나라에 살고 싶어.' 라는 어릴적 나의 막연한 생각들은 어느 겨울의 끝자락, 러시아로 나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러시아를 추억하는것이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낯설지 않은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러시아 여행에 다녀온지 어느덧 10년. 옛 여행을 추억하면서 함께 여행했던 언니에게 작은 소포를 보냈다.  소포에 채워넣은것들은 우리가 처음 접하면서 신기해 했던것들, 내가 여행속에서 알아갔던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들이다. 늘상 떠올리는 여행이지만 소포의 내용물 덕에 옛 사진도 들춰보며 러시아 여행을 회상했다. 언니와는 이집트 시와의 어느 이름 모르는 왕의 무덤 위에서 처음만났다.  '우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로 움직이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할때 그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것은 우리 자신이에요.' 어느 이집트의 호스텔에서 언니가 내뱉은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특히 이집트 여행 이후로 개인적으로 가장 우울한 시기를 겪었고 여행경비와 유학경비를 모으며 물질적으로도 많은 절제가 필요했고 정신적 지지가 필요했을때 언니의 존재는 나에게 큰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지나온 여행을 생각하며 다가올 여행을 꿈꿨었던 그때.  여전히 옛 여행을 회상하는 우리. 길지 않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러시아를 언니와 함께 여행했다는것이 참 뿌듯하다. 




(Russia_2006)


우리는 속초에서 동춘페리를 타고 러시아의 자루비노라는 항구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때 속초에서 배 타기전에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먹었던 양념 간장이 끼얹어진 차가운 두부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많은 백반이 그렇듯이 따뜻한 스테인리스 공기밥에  대충 곁들어져 나오는 반찬들은 차갑고 성의없기 짝이 없다. 긴장감에 잠못이루고 새벽부터 움직여서 도착한 터미널에서 무사한 여행을 기원하며 입으로 집어넣던 텁텁하고 차갑던 그 두부.  아마도 이제 당분간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 맛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Russia_2006)



페리 내부에는 러시아로 돌아가는 고려인이나 봇따리 장수들이 많았다.  언젠가 인천에서 중국의 단동으로 가는 배를 탔을때 중국 동포들을 봤을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국말을 하지만 러시아어를 했고 중국어를 하던 사람들.  피부색이 다른 백인이나 흑인들을 볼때에도 느껴지지 않는 약간의 우울을 동반한 어떤 낯설음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우리는 3등석을 탔다. 아주 넓은 공간이었지만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었던 곳.  우리는 낯선이들로 가득했던 그 좁은 공간에서 배낭을 곁에두고 그때 무슨 얘기를 했을까.  남아있는것은 이 사진 한장이다.  일분일초 모든것을 시시콜콜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는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10년전. 아마도 그래서 그 두부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진해지고 선상위에서 내 이마로 떨어지던 빗방울의 차가움은 더 선명해지는것인지도 모르겠다. 





(Russia_2006)



자루비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한 블라디보스톡.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횡단열차 기차표를 끊었고 며칠간 블라디보스톡을 여행했다.  호텔을 나와서 시내로 갈때 항상 걷곤 했던 오래도록 켜켜히 쌓인 눈이 천천히 녹고 있었던 저 가파르고 좁았던 거리.  언니는 걸어다니면서 몸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러시아인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눈치채지 못한 그런 사실들을 인지하는 언니가 참 신기했었다.  그 이후로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몸을 스치면 짧게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게 당연한것처럼 되어버렸지만 한동안은 블라디보스톡에서의 그 순간을 자주 떠올렸다.  



(Russia_2006)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서는 거주등록이 가능하고 역에서 가까운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내 러시아어는 초급 수준이었고(뭐 지금도 그닥 나아지지 않았지만..) 여행 시작이라 짐도 많고 추웠고 게다가 러시아에서는 거주 등록이 필요했기때문에 숙소비를 아끼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그때 우리를 맞이했던 호텔 밖 전망은 정말 훌륭했다. 여행 초반 부터 이런곳에 머물어도 되나 일종의 죄책감마저 유발했던.  꽁꽁 언 바다와 덩그러니 시공중인 고층 건물. 소련에 부는 변화의 물결 뭐 그런 느낌이 드는 풍경이기도 했다. 러시아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했고 루블을 한국에서 미리 환전해가서 지출안배가 어느정도 가능했기에 머물수 있었던 호텔이었다.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져있을거라 생각한다. 





(Russia_2006)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먹은 점심.  내 기억이 맞다면 몹시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테이블이 야외에 놓여져있었다.  수저와 포크가 놓인 접시에는 절인 양배추와 감자가 들어간 음식이었던것 같다.  밥만있었다면 뭔가 굉장히 기사식당의 백반스러운 포스였다.  특히 저 나물처럼 보이는 음식을 먹으며 더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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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차표를 끊었을때 우리는 많이 상기됐었다.  우리는 분명 밤기차를 탔는데 시간에는 13시라고 표기되어 있다. 횡단열차에 적히는 시간은 모스크바 기준이어서 항상 헷갈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든이들이 죽기전에 꼭 한번은 타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겨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배경으로 한 <트랜스 시베리안> 이라는 영화가 있다. 

(http://www.ashland11.com/86)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되도록이면 여행 후에 보는것이 좋다. 약간 러시아 여행에 관한 편견과 공포심을 조성할 수 도 있으므로. 





(Russia_2006)


열차밖으로는 이런 박음질된 풍경들이 하염없이 끝없이 고집스럽게도 이어졌다. 저 짙고 깊은 숲 사이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이곳에서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게 정말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오싹해졌고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자유롭다 느꼈었다.  열차안은 상대적으로 너무 아늑했다. 난방의 열기에 노골노골해질때쯤 열차 창문에 볼에 가져다 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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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숙소 밖 풍경.  생각해보니 언니는 바이칼에 갔었던것 같다. 난 바이칼 호수에도 가지 않고 또 이르쿠츠크 어딘가를 방황함.  따뜻한 열기가 배어져 나오던 이르쿠츠크 트롤리버스의 좌석. 아주 작은 물건들까지도 가격이 정성스럽게 붙어있던 키오스크.  우리가 자주 회상하는 러시아의 일부들이다. 





(Russia_2006)



이르쿠츠크에서 처음으로 열차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러시아 여행이 시작됐다.  이르쿠츠크의 마트에서 처음 조우했던 롤똔 라면. 그때는 스마트폰같은것도 없었고 액정이 망가진 니콘 쿨픽스를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특히 접사의 경우 촛점이 엉망인 사진이 대부분이다. 롤똔 라면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간혹 사먹는다. 봉지 라면이지만 보통 물만 부어서 먹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양이 적기 때문에 달걀도 풀어넣고 파도 썰어 넣어 먹을때가 많다. 





이것이 소포에 넣은 롤똔 라면. 원래 러시아어로 표기가 된것만 팔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영어 포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도시락면을 비롯해서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가 쉬운데 라면 소비 인구가 많아서인지 한국 라면 기술의 영향인지 러시아 브랜드의 라면은 다른 유럽 라면보다 훨씬 맛있다. 





(Russia_2006)


횡단 열차에서 우리는 일군의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서 이틀간을 함께 여행했다. 그들은 하바로프스크였는지 크라스노야르스크인지로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이었다.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고 사상적으로 무장되어있었고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도주의 위험이 적은 느낌을 풍기는.  이미 러시아라는 넓은 세상을 경험한 그들은 우리와의 대화에 있어서 북한 사회의 폐쇄성 같은것을 일부러라도 내비치지 않았다. 친절했고 살가웠지만 어떤 자존심과 우월함 같은것도 풍기려했다. 정확히 어떤 역이 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작고 검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체만한 짐을 들고 우르르 기차에 올라탔을때의 울컥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언니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 기분은 참으로 오묘한것이었다. 나는 그들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것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안타까움의 본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는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처음 횡단열차를 타며 차내에서 먹을 음식을 별로 챙겨가지 않은 우리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 일부 를 나눠주었다. 김치와 고추짱아찌와 밥. 전분기 없이 뚝뚝 끊어지던 라면.  챙겨간 보존 용기에 김치를 꾹꾹 눌러담았다. 





(Russia_2006)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산 롤똔 라면에 그 김치를 걸쳐 맛있게 먹었다. 






이것은 내가 기차에서 러시아인들이 먹는것이 너무 맛있어보여서 마트에서 큰 기대를 가지고 사서 먹어보았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결국 먹다가 버린 감자퓨레이다. 우유와 허브가 들어가있다. 그때 너무 실망했지만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것도 소포에 넣었다. 지금 먹어보면 왠지 맛있을것도 같은데 한번도 사먹어 볼 생각을 못했다.  뒤에 설명을 읽어 보지 않았는데 이런 인스턴트 음식 설명에 ml 이 들어가있으면 물양이고 min 이 뚜겅 덮고 기다려야할 시간이다. 전자포트 버튼 누른줄 알고 착각해서 찬물 부으면 정말 낭패이다. 





(Russia_2006)



우리는 횡단열차를 두번을 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첫구간의 기차 속에서 러시아인들이 먹는 음식을 구경한탓에 이르쿠츠크에 내려서는 모스크바까지 먹을 음식들을 좀 넉넉하게 샀다. 이 사진은 이르쿠츠크의 숙소에서 마트에서 득템한 러시아 라면들을 늘어 놓고 대만족하며 찍은 사진이다. 양 가장자리의 감자 퓨레가 보인다. 저때만에도 정말 맛있겠다 기대를 했었지만. 도시락면은 돼지고기만 소고기만 닭고기맛등 종류가 여섯가지는 족히 됐었던것 같다. 맨 아래는 라면은 아니고 쌀요리 쁠롭. 필라프라고 보면되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쁠로바 라고 부른다. 이것은 먹은 기억이 없는데 언니의 선택인가. 





이것도 어찌보면 한국에서 살 수 있는것이지만 맥주 안주로 올리브 먹기를 즐기던 언니 생각이 나서 샀다.  열차에서 언니가 처음 맛봤던 도수에 따라 0부터 9까지 번호가 붙는 러시아 맥주 발티카도 마음같아서는 소포에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한국에서도 파는곳이 있다고 한다. 3번부터 9번까지 파는듯.  (http://baltika.co.kr/) 리투아니아에서 파는 올리브는 보통 유리병에 담겨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산인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 진공 포장된 그리스산 올리브가 나왔다. 올리브는 씨가 없는 올리브라고 써있어도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드물지만 씨가 박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콱 깨물었다가 이가 아팠던적이 의외로 빈번함.





소포에 들어간 이것은 리투아니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봉지쌀이다. 그냥 끓는 물에 넣고 20분정도 삶으면 익어서 통통해진다. 리투아니아식 햇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물과불이 필요하고 냄비도 필요하고 뜨거운 봉지를 꺼내려면 젓가락이나 포크도 필요하다. 봉지 맨 위에 작은 구멍이 있어서 다 삶고 나면 건져서 물이 빠지도록 걸어 놓을 수 있다.





사진상 왼쪽이 삶기 전 오른쪽이 삶은 후 통통해진 모습이다. 한국에 널린게 쌀인데 굳이 별로 맛이 없고 번거로운 쌀 두봉지를 보내는 이유는 이런 쌀의 존재를 알았다면 (분명 러시아에도 팔것이라고 생각함) 우리는 뻬쪠르부르그 어느 대학 기숙사 주방에서 냄비밥을 하지 않아도 됐을거고 밥이 눌러 붙어 검게 탄 냄비를 닦느라 한밤중에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것이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냄비를 들고 방으로와서 간장에 프랑크소세지와 절인 미니 오이와 먹던 그 밥도 잊을 수 없다. 





(Russia_2006)



이것이 뻬쩨르부르그의 숙소에서 먹었던 저녁.  올~달걀도 풀어서 볶았네. 올리브가 열려져 있는것으로 보아 간장병뒤에 자리 잡고 있는것은 맥주가 아닐까 싶다.  씨디 플레이어 리모콘에 불이 켜져 있네.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저 무게쟤서 사는 웨하스 비슷한 과자도 우유에 곁들여 참 맛있게 먹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소련식' 이라고 보통 일컫는 법랑 냄비에 지은 밥.  저 젓가락은 아마 북한 아저씨들이 준것인가 보다. 여러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다. 





(Russia_2006)



눌러 붙은게 보인다. 평생 밥을 먹으면서도 냄비밥이 어려운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탄 냄비를 닦느라 낑낑거렸던 재밌는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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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쪠르 관광후에 돌아와서  우리가 앉아서 하루의 인상을 털어놓으며 얘기를 나누던 곳.  항상 궁금한것은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이다.  저 소세지는 헬싱키까지 가져가서 먹었다. 비타민을 보충해야한다는 본능이었을까. 주스 사진은 왜 그리 많은지. 2리터짜리 주스는 항상 끊이지 않았던듯. 초코크림도 맛있었고 뮈슬리도 잘 먹고 다녔다. 언니는 내가 마트에서 적절한 음식들을 잘 찾아낸다며 칭찬해줬다. 우습지만 언니의 그말에 난 진심 기분이  좋았었다. 







사실 과일이나 카라멜 향이 첨가된 홍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혹시 몰라 호기심에 한번은 다 먹어 보는데 이 아몬드 홍차는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보냈다. 홍차를 마시는데 마지판이 들어간 케잌을 먹고 있는 느낌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차인데 언니는 좋아했으면 좋겠다. 언니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속에서 유리잔만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손잡이가 달린 러시아식 철제 컵 홀더에 담아주는 홍차를 사서 마신 기억이 있다.





(Russia_2006)



이것이 열차에서 홍차를 담아 주던 컵홀더이다.  열차의 제일 끝에 침대 시트를 파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 이 컵홀더에 따끈한 홍차를 담아서 팔았다. 그것은 우리가 접한 어떤 러시아스러움의 극치였다. 춥고 컴컴한 블라디보스톡 기차 역에서 제대로된 플랫폼에 서있는지 몰라 알쏭달쏭해했고 가까스로 올라 탄 기차안에서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사서 끼운 후에 한 숨 돌리고 앉아서 '아 이제 드디어 횡단 열차를' 하며 마셨던 그 차를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이글즈 커피인데. 정확히 이 커피는 아니겠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언니가 비슷한 포장의 이런 인스턴트 커피를 보며 기분좋게 웃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믹스 커피와는 약간 다른 맛.  우리가 '아주 개인적이고도 작은 애정' 을 느꼈던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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뼤쩨르에서 헤어지기 전에 시간을 보냈던 커피 체인.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과 유사한 디자인의 더블 커피라는 커피 체인은 리투아니아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내부에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 거렸고 우리는 자리를 한번 옮겨서 앉았다. 옆에 큰 배낭을 놓고. 언젠가 다시 가서 앉아 수다떨날이 올까.   







5분 보르쉬치. 크루통이 담겨있지만 사실 크루통을 넣어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검은빵을 곁들임. 언니와 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프를 먹었을까. 왠지 그런것 같지 않아서 하나 넣었다. 자주 해먹는 음식이고 수백가지의 레시피가 있겠지만 나는 보통 당근과 양파를 채쳐서 넣고 훈제햄이나 돼지 비계를 넣고 볶다가 절인 비트무를 넣고 끓인다. 







언니에게는 주로 다크 초콜릿을 보내고 싶었다.  10년전 러시아에서 이런 초콜릿을 처음 먹어보기도 했지만 이것을 다크 초콜릿이라고 부른다는것도 언니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뻬쪠르부르그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허기져서 에르미타쥐 박물관을 구경 할때 '다크 초콜릿이라도 먹으면 에너지 보충되고 배가 좀 부를거에요' 라면서 언니가 분질러 주었던 그 두툼하고 묵직한 초콜릿을 잊을 수 없다. 페르갈레 (pergale) 라고 쓰여있는 초콜릿은 리투아니아 국산 브랜드이다. 아주 큰 초콜릿이다. 뻬제르에서 언니는 우즈벡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모스크바로 돌아갔고 난 헬싱키로 가기위해 잔류했다. 그때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는 언니를 배웅하고 혼자 쓸쓸해져서 걷던 눈날리던 어두운 네프스끼 대로를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여행중에 나는 다크 초콜릿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쉬까는 리투아니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근처에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실  관광지에서 대량으로 놓고 파는 마트로쉬까는 정말 기념품 냄새가 물씬 풍겨서 가격과 상관없이 사기 꺼려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둘다 마트료쉬까를 사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여행이 많이 남았는데 번거롭게 들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정말 예쁘다 싶은것들은 너무 비쌌던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언니는 아주 값싸고 볼품없는 마트료쉬까였더라도 그 때 하나 샀더라면 아이한테 참 좋은 장난감이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이것은 꿈꾸는 소녀가 더 크기전에 보내는 선물이다. 







소포에 넣을 엽서로 언니가 좋아하는 마티스의 붉은방을 골랐다.  에르미타쥐에서 우리는 함께 걷기도 했고 때로는 따로 떨어져서 그림 구경을 했다. 관람을 끝마치고 나올때 언니의 손에는 마티스의 그림 몇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언니의 거실 한켠에 걸려있다. 





(Russia_2006)


에르미타쥐에서 사진촬영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림 곁을 지키고 있는 나이지긋한 할머니들은 조금 무서웠다. 나중에 정 해먹고 살게 없으면 박물관 그림 옆에 서 있는 일이나 오페라 하우스 같은곳의 코트 맡겨두는곳에서 번호표 주는 일을 해도 좋겠다 가끔 생각한다. 사실 '정 해먹고 살게 없으면' 이라고 폄하할 직업도 아니다. 왠지 그 직업에도 자격 미달일것 같은 불행한 예감이 든다.  이 사진은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서 소심하게 찍은 사진이다. 에르미타쥐의 표구가 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왠지 그림들의 일부분을 담는것이 나에겐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찍는데도 선명하게 이렇게 작은 일부만을 담을 수 있다는것은 내가 그 그림을 코앞에 마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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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에르미타쥐였는지 푸슈킨 뮤지엄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나는 위트릴로의 그림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의 이름에서 풍겨지는 묘한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계속보고 있으면 참 성의 없다고도 느낄 수 있는 그의 작품들. 뭔가 병약하고 안일하고 단조롭고 지금도 누군가가 계속 그리고 있을것 같은 획일적인 그림들이 오히려 그러면 그런대로 좋았다. 그 자신의 엄마는 많은 낭만주의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본인도 독특한 자화상들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는 정작 어떤 부류에도 속하지 않고 따로 노는 화가였다는 사실도 뭔가 신선했다.  이미 10대때 알콜중독이와서 치료차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그래서인지 파스텔톤의 작품들도 그렇고 왠지 쇠라나 쉴레처럼 요절했을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의 작품을 숭배했던 부자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도 뭔가 엉뚱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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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쪠르의 밤. 뭔가 위트릴로가 좋아했을 풍경이다. 좀 어둡긴 하지만.  뼤쩨르의 날씨는 왠지 게을러보이는 위트릴로가 살기에는 너무 혹독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자에 엽서와 물건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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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쓰는것을 좋아하는 나는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엽서를 썼다. 서점이며 미술관에서 산 엽서들을 많은 이들에게 보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마음에 드는 엽서를 샀다면 내것도 따로 한장 소장용으로 사둘걸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어떤 내용을 누구에게 보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 하지만 저 마티스의 춤 그림은 아마도 옆 침대에서 누군가에게 엽서를 쓰거나 메모에 열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언니에게 보냈음이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어디를 여행하든 꼭 나를 위한 엽서를 살것이다. 도시당 한장 정도의 엽서는 스스로의 주소로 보내왔지만 더 많이 보내도 아깝지 않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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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우체국은 노란색. 러시아의 우체국은 파란색이다.  문득 그리스의 우체국은 무슨 색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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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언니의 파카를 보니 왠지 느껴진다.  언니가 참 좋다고 해준 노래 중 하나가 모비가 리메이크한 뉴오더의 템테이션이었다.  원곡과는 다르게 아주 느린박자로 꿈꾸는듯한 목소리의 여자가 부르던.  불끄고 이 노래 틀어놓고 잠든 적 많았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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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쪠르의 책방 돔 끄니기를 나와서 언니가 쏜 일식.  러시아에서 일식이 아무리 유행이었다고 해도 간장 원가가 싸지 않을텐데 저렇게 간장을 아낌없이 담아줬다니 새삼 신기하다. 음식은 맛있었던것 같다. 롤도 먹었었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을 시작으로 그의 모든 소설을 러시아어로 읽고 말겠다는 대단한 포부가 있었지만 실상은 저 책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리투아니아어만이라도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지금 그 바램은 왠지 요원해 보인다. 슬퍼지는 순간이다. 언니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참 좋아했다. 특히 악령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에는 함께 갔지만 언니가 꽃을 들고 그의 무덤을 찾을때 나는 <은밀한 유혹> 영화 음악을 들으며 네바 강변을 배회했었다.  




(Russia_2006)



이렇게 추운데 고생하며 달리는 아저씨들 보며 혼자 노래 부르면서 그냥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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