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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Demolition_Jean-Marc Vallée_2015



참으로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  자주타는 비행기는 아니지만 비행기에 앉으면 역시 영화 목록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된다. 제작 발표가 나왔을때부터 보고싶다 생각했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온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이 한눈에 들어왔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http://ashland.tistory.com/170)이나 <와일드> 같은 영화로 알려지긴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얼떨결에 접하고 푹 빠졌었던  <카페 드 플로르>(http://ashland.tistory.com/133)의 감성으로 남아있는 감독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두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가 함께 나와서 그들의 음울하고 매혹적이었던 어떤 영화들, 나이트크롤러나 에너미(http://ashland.tistory.com/186), 25그램 같은 영화들도 연달아 떠올랐다. 그 영화 속 그들의 표정을 끌어낸다면 난 이 영화도 좋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맨 뒷자석에 앉았던 탓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영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취침모드로 한 톤 낮아진 조명아래에서 승무원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가 만지고 놀던 기내 제공 이어폰의 스펀지가 떨어져나가서 신경질적인 발성이 귀를 괴롭히긴했지만 한쪽이 망가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때만큼의 불편은 느껴지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지 않겠냐는 물음에 그러겠다고 하고 기내식으로 나온 치즈와 빵을 잘랐다. 10시간 가량되는 비행동안 나는 이 영화를 띄엄띄엄 그리고 고집스럽게 세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한편의 영화를 매끄럽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그런 상황에 모종의 쾌감을 느끼며 그래도 보고말거야 라는 오기와 함께.  와인은 엎질러질것이 무서워 여유롭게 마실 수 없었고 잘라놓은 치즈와 빵은 얼마지나지 않아 작은컵에 섞어 담았야했지만 여행을 하고 있다는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는 모든게 충분했다.  그야말로 하늘에 붕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어떤 영화들에는 그런 장면이 있다. 깜깜한 하늘속 비행기에 주인공이 앉아 있는데 마치 그 자리만 구멍을 낸것 같은 효과를 써서 모니터가 뿜어내는 빛으로 주인공 얼굴만 환하게 비춰주는.  소리없이 영상만 봐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진공상태에서 유영하는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들이 내 주위를 느리게 감싸 돌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애써 감정을 전달하려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사 자체를 듣지 못해도 영상만으로 가슴에 묻어나는 감동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배우들의 눈빛과 적당한 여백과 침묵.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해주는 전체적인 색감 같은것들.  정말 좋은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아마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아름다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다시 대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때엔 마치 정말 알고싶었던 누군가의 심정을 전해 듣는것 같아 또 뭉클했다.  




 Demoliton_Jean marc vallee_2015


망가진 자판기는 초코바를 토해 내지 않고 망가진 냉장고 속에는 물이 흐른다. 기계는 고장이 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불편을 주지만 무시하려고 하면 흐르는 물 아래에는 접시를 받쳐놓으면 되고 돈을 삼킨 자판기는 운이 없다 생각하고 뻥차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영원히 방치될 수도 있고 수리를 하려는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삐걱대는 감정도 무시할 수 있다.  타성에 젖은 사랑의 감정은 완전무결하게 보여지는 직업이나 집같은 물질적인 배경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얼마간은 유지가 된다.  돈을 줄테니 집 부수는것을 도와줄 수 있게 해달라던 깔끔한 양복 차림의 제이크 질렌할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영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어떤 물건이나 감정을 한켠에 두고  모자름 없는 어떤 완벽한 상태를 도리어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 부서져 내려앉은 감정을 재복원하려는 그의 변화를 예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나 물체에 관해 차곡차곡 싸여 성처럼 거대해진 우리의 감정이 망가진 물건을 해체해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는것처럼 어떤 파괴과 분해를 거쳐서 조사되고 이해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끝을 향해 치닫는 감정들의 아주 미세한 성분까지 알아내어 그것에 대처하는 일목요연한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면 삶은 조금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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