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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I'm off then_Julia von Heinz_2015



한국에서는 '나의 산티아고'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 제목만 보고서는 칠레가 배경인 줄 알았다. 아마도 그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배경인 영화를 봐서 더 그랬던 듯.  영화는 극심한 과로로 무대에서 쓰러진 유명 배우 한스 페터가 3달 동안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극약 처방을 받고 집에서 뒹굴 거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내용. 순례길에 오른다는 그의 결심을 저지해보려는 친구에게 '그럼 나 이제 떠날게' 라는 유쾌한 말을 남기고선 짐을 꾸린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원제목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정에 대한 순수한 설레임의 어조라기 보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있다가는 설득당해서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릴지 모르는 여정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 누군가는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하지만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좌절하는 한스 페터는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잊고 있던 독일어 특유의 운율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영화를 통해 접해 오던 어떤 외국어들. 조곤조곤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하게 날이 선 프랑스어는 보통 서로 지기 싫어하는 논쟁의 언어였고 스페인어는 최고 온도를 경신하고 고장나 45도 정도쯤에서 멈춰버린 온도계 마냥 항상 열에 들떠있다. 조심스럽고도 자조적인 독어의 운율,  혼자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끊이지 않는 투박하고 신경질적이면서도 자아성찰적인 한스 페터의 독일어 나레이션은 어쩌면 죽어라고 일하고 나서 여기가 어디지 라고 묻는 독일인들, '독일인은 참 멋진 책을 쓰는 사람들이죠 이를 테면 나의 투쟁이요' 라고 짖궂게 말하는 무신론자 같은 여행자의 말에 기겁하며 윗세대가 남긴 멍에를 은연중에 짊어지고 갈까 안절부절하는 또 다른 독일인들의 속마음 처럼 느껴졌다.  



어떤 여정에든 끝이 있다는 것, 도달할 목표가 있다는 것은 모든 고통을 이기는 유일한 처방전인지도. 그 침묵과 고행의 마침표를 찍는 어느 순간을 기다릴 수 있는 가능성만한 큰 선물이 있을까. '600킬로미터를 걸어왔다.' 라고 말하며 끝모를 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200킬로 미터 남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안식을 선사 받는 것.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길도 그것을 일주일에 끝내든 30일에 끝내든 일년에 걸쳐 끝내든 하루에 30킬로를 순례하든 3킬로씩 순례하든 그곳엔 도착 지점이 있다. 현대인들의 순례에는 하루 평균 얼마라는 물리적 척도가 존재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길 여권에 마지막 도장을 받고 다시 처음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한 극기의 행진보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굳이 다시 거꾸로 밟는 여행이라면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 페터가 순례 중간에 마시는 우유를 넣은 커피. 얼마나 달콤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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