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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트랜스 시베리안 transsiberian> 브래드 앤더슨 (2008)

 

 

<트랜스 시베리안>

 

나는 겨울이 좋아 추운나라를 동경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겨울이 전부일것만같은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관문이었다.

달리는 열차 속 그 폐쇄된 공간 속에서 나는 내가 여행자로서 누려야 할 특권에 대해서 생각했다.

달려도 달려도 끝나지 않을것 같은 긴 여정속에서 내려야 할 순간을 떠올리며 여행의 목적을 되묻는것이 과연 의미있는것일까.

길을 잃지 않는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가치있는것이 아닐까.

우리의 미래란것은 도착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기차표속의 낯선 문자에 불과할 뿐

닫혀진 공간속에서의 나의 기록과 기억들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사라져버릴 환영같았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주일여의 시간을 들여 부지런히 달리면 9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를 수 있다.

누군가 블라디보스톡이나 베이징에서 모스크바를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면

그의 시간은 그가 과거 어딘가에서 이미 흘려보낸 시간을 향해 거꾸로 흐른다.

블라디보스톡 바다의 짙푸른 어두움을 통과하고나면 모스크바를 향하는 내내 세상이 점점 밝아진다고 느끼게 될것이다.

잠이 들면 다가와서 툭툭 건드리며 여권을 보여달라는 불청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옆자리의 동승객에 간신히 정을 붙있수있을때쯤 그와 작별해야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방문객을 맞이하고 그들의 버릇과 습관들에 익숙해질 무렵에도 헤어짐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가장 절대적이고도 순수한 회색이 어떤것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다.

눈이 내렸던 모스크바의 붉은광장도 블라디보스톡의 바다도 좀 더 옅고 짙음의 차이가 있었을뿐 그것의 본질은 회색이었다.

그 모호함.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듯한 수수께끼같은 색깔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 시베리아를 묘사한 이런 부분이 있다.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들만이 시베리아에 뿌리를 내리고

그런 이들에게만 시베리아는 축복받은 땅이 될 수 있다.

그런면에 있어서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속에서 그중에서도 시베리아에 살아가는것은 오히려 달콤한것이다.

하지만 시베리아를 찾는 이들 중 그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금새 싫증을 내고 시베리아를 떠나간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시베리아는 어쩌면 우리가 여행하려고 하는 세상의 모든곳에 관한 본질이 아닌가 싶다.

 

베이징에서 짧은 선교활동을 끝내고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는 미국인 부부

블라디보스톡에서 사라진 마약과 돈의 행방을 찾기위해 기차에 오르는 수사관 일리야.

매사에 거침없고 모험을 즐기는 카를로스와 그가 불안하기만한 애비.

그들에게 이 여행은 하나의 계기이자 해결방법 해답같은것이다.

누가 그 해답을 풀 수 있을까.

 


 

제시와 그의 남편이 소속된 교회 장로가 연설 중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세상은 결코 회색이 아니다.

그곳에선 흑과 백, 선과 악, 거짓과 진실이 선명하게 대립하고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신념이 있는 자에게 선택은 훨씬 수월하다'

자기가 믿는것만이 진실이고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무시무시하다.

권력과 결탁하지 않은 종교가 과연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경우가 있었던가.

 

 

버려진 목조 교회

사건의 발단이자 불안의 시작이다.

 

-우리 러시아 속담에 이런게 있지.

거짓말을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순 있어도 뒤로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너 정말 진실을 말하는거야? 왜 거짓말을 하지?'

- 그냥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어

- 불안이야 말로 오히려 인간을 가장 이성적으로 만들지.

우리 러시아의 역사는 불안이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영화초반의 몇몇 불필요한 복선을 제외하면 나름 잘 만들어진 영화같다.

사실 그 불필요한 복선조차도 초반의 긴장감 조성을 위해선 불가피한것이었을수도 있겠다.

여주인공의 캐릭터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착하고 순진하고 무고한 여자였다면 진실은 항상 승리하고 미국인은 항상 옳다는 역겨운 결론에

또 한번 떠밀르듯 동의할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전혀 색다른 결말을 보여주는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러시아와 중국을 비꼬고 결과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외국인은 천하제일의 범죄자로 둔갑시켜버리지만

적어도 미국인 자신이 결백하다고 거짓말하지 않는 최소한의 양심은 가진 영화라고 해두자.

 

많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밀폐된 4인용 쿠페에 관한 묘사는 적절했던것 같다.

(에밀리 모티머와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라는 배우는 애드리안 라인의 <언페이스풀>을 연기했었어도 어울렸을법한 조합이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유럽남자는 특히 스페인이나 프랑스 남자는 미국인에게 일종의 로망인것일까?)

나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기 위해 폐쇄형 2등석을 선택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서 문을 닫고 함께 잠을 자야한다는 아이러니.

두세명과 함께 여행하면서 침대칸 전부를 구매한다면 모를까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2등석을 탄다는것은 큰 모험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난 완전히 개방된 3등칸을 탔기때문에 지나다니는 승객들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지만

안전을 걱정하는 여행객이라면 오히려 모두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편이 낫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복판 수많은 인파에 섞여있는것과

허허벌판 시베리아 한가운데 버려진 교회속에 낯선자와 단 둘이 남는것중 어떤것이 더 아늑한지 상상해보라. 

일정 시간이 되면 일괄적인 소등이 이루어지는데

한번은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내 자리인줄 알고 침대를 짚었는데 알고보니 러시아 아주머니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나마 착한 아주머니여서 'oi, malinkaja!' 비슷한 말로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셨다.

말린까야..얼마나 애정섞인 단여였는지 기분이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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