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2017.06.10 09:00



베를린과 커피. 나로 하여금 수십잔의 커피를 마시게 한 도시. 당분간은 다른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대신 이곳에만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 그곳에 갈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고 싶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듯한 정말 마음에 드는 나만의 카페를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곳.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난 누군가가 몹시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카페에서  손수 고른 예쁜 에스프레소 잔과 커피콩과 엽서를 선물받았다. 베를린도 아닌 드레스덴에서 가슴이 따뜻해졌던 유쾌한 만남이 있었다. 이 정열적이고도 몽환적인 커피잔은 프라하의 에벨이라는 카페문을 나서서 똑같은 이름이 적힌 종이 가방에 담겨져 노란 꿀벌 버스를 타고 나에게로 왔다.  꿀벌이 날라다 준 커피. 어찌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만간 프라하로 달려가 커피에 메도브닉을 먹으라는 토끼님의 계시라고 받아들였다. 




그 낯선 도시에서의 급조된 만남이라는것은 때마침 프라하로 휴가를 오신 블로그 이웃인 토끼님과 프라하와 베를린의 중간 쯤인 드레스덴에서 조우한것이다.  사실 드레스덴은 베를린보다는 프라하에서 오히려 더 가까웠지만 갑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은 새벽 버스도 마다하지않고 국경을 넘어와주신 덕택에  가능했던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식당을 찾아 일요일의 드레스덴 시내를 조금 걸었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차와 커피를 마셨다. 나는 오스트리아 슈니첼은 본래  송아지 고기로 만든다는 사실과 와인 chianti 를 챤티가 아닌 키안티로 읽는다는것을 토끼님을 통해 알게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접했던 토끼님의 일상이나 삶의 방식, 향기로운 홍차 냄새와 달콤한 조각 케잌들. 물병에 담긴 장미들. 아름다운 발레리나들. 모든 소소한 감상들과 이미지들, 짧은 댓글을 통해 나눴던 교감들이  지지직 거리는 3D 프린터를 통해 드레스덴의 카페 테이블 건너편에 토끼님을 구현해낸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마주하고 있었지만 실감하기 힘든 만남이었고 5시간 남짓한 시간이  거꾸로 세워놓은 유리병속의 모래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짧았지만 실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토끼님의 블로그를 우연히 알게되어 가장 먼저 읽게된 포스팅의 주제도 베를린이었던걸로 기억한다. 7년전에 베를린에 왔던것도 프라하를 여행하다 충동적으로 기차를 잡아 타고 온것이기에 내게 프라하와 베를린은 여러 경로로 항상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있다.  언젠가 프라하에 다시 가게된다면 베를린과 드레스덴을 통해서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페 에벨에도 꼭 가보고싶다. 엘베강이 흐르던 드레스덴. 그리고 에벨. 드레스덴이 딱히 마음에 드는 도시는 아니었지만 에벨 덕택에 엘베는 절대 잊지못할 이름이 되었다. 꼭 다시뵈요. 토끼님. 그곳이 리가이든 뻬쩨르이든 프라하이든 빌니우스이든 이문동 영화장이든요. 감사해요!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lin2017.06.05 09:00



거리 이름들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돌아 온 지금 어떤 거리들을 돌아다녔는지 그곳이 베를린의 어디쯤이었는지 별로 감이 안온다.  환승을 자주 했던  Hermannplatz 나 Kottbusser tor 역 정도만이 선명하게 기억날뿐이다. 다행히 론리플래닛을 남겨놓고 오는 대신 데리고 온 베를린 지도를 가끔씩 들여다보니 내가 갔던곳들이 어디의 어디쯤이었는지 좌표를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 거기 저기를 가자고하면 친구는 아침에 루트를 만들고  R2D2 와 같은 헌신적인 자세로 모든 여행을 지휘했다. 그 덕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Jabba 처럼 거리에 눕다시피한 무대뽀 마인드로 베를린을 부유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떠나왔기때문이 아니라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구글맵스같은것을 켜면 지도위의 나와 목적지를 가리키는 마크에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는 나로써는 우리가 어디쯤인지 어떤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리고 가장 가까운 카페가 어디쯤인지를 척척 알려주는 친구가 신기하고 고맙기만 했다. 이 날은 친구가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맛본 날이었다. 여기저기 생각지도 못한 장소들을 짧게 짧게 들르면서 마음에 드는 카페 하나를 발견하고 예쁜 물건들로 가득했던 문방구와 옷가게를 지나서 걷다 브란덴부르그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까지 지나와 밤에 문을 연 카페를 찾아 100번 버스를 탔다. 100번 버스는 베를린 중심의 많은 명소들을 지나치는 노선이라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타는 투어버스 같다고 한다. 그리고 내리지 않았어도 굴러가는 버스의 차창밖으로 티비타워가 보였다. 티비타워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시간대에 보았지만 이날 버스에서 본 이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상의 모든 높은것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보일것처럼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것이라 포장된 포스를 지닌다. 그것은 일견 아름답지만 그 존재는 더 많은 아름다운것들을 그 아래에 거느리고 있기때문에 가치있는것 같다. 창밖의 티비타워는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휙하고 사라졌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lin2017.06.04 09:00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때 방금 막 비가 내린 상태의 축축함이나 공기중에 아지랑이처럼 묻어나는 흙냄새를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나간 어떤 여행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모든 여행들이 좋았기에 그런것같다. 하긴 여행이 싫었던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는 매우 짧고도 인상적인 비가 딱 한번 내렸다. 내가 비를 맞은 횡단보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지경이다.  밤이되면 친구의 어플속에서 새어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나에게 할당된 빗방울의 전부였다. 그외의 순간들은 모두 해가 쨍쨍났다.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32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다소 덥다 싶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지만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을때나 공원 벤치따위에 몸을 뉘였을때 나를 배반하지 않는 착한 바람들이 불어왔다. 이탈리아 도시들의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블라인드나 파라솔들은 아니었지만 베를린의 주택가에도 햇살을 이겨내기 위한 울긋불긋한 파라솔들이 곳곳에 눈에 띄였다. 그것은 태양에 저항한다기보다는 인사를 건네는, 태양에 달궈진 붉은 하늘이 반사된 색안경 같은 느낌이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lin2017.06.03 09:00



베를린 도착 다음날.  그날 두번째로 갔던 카페의 화장실 문에 저런것이 걸려있었다. 얼마전에 운명을 달리 하신 캐리 피셔 공주님. 베를린 화장실 문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죽어도 죽지 않은 그녀. 묵념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같은 날 자리를 옮겨 혼자 돌아다니다 들어간 카페.  이름하여 'Karl Marx says relax'  칼 마르크스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그래 맛있는 커피나 마시며 칼 옹 말씀대로 릴랙스 하자였는데 화장실 문을 보는순간 카페 이름을 더 실감하게 했던. 10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이분도 베를린의 카페 화장실 문속에서 진한 핑크빛으로 살아계셨다. 사실 꼭 외국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어딜가든 항상 가게되는 장소들이나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물건들에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어쨌든 첫날부터 발견한 두개의 인상적인 화장실 뮤즈들 덕분에 그 뒤로도 계속 화장실을 유심히 지켜보았으나 캐리 피셔님과 마르크스 선생님을 능가하는 화장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lin2017.06.02 05:53


빌니우스에서 베를린까지 한시간 반. 가방을 올리고 앉자마자 거의 내리다시피 했다.  보딩패스도 미리 프린트를 해갔기에 짐가방의 무게를 체크하는 사람도 없었고 작은 테겔 공항을 아무런 입국 절차도 없이 엉겁결에 빠져나왔을때엔 마치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는듯한 느낌으로 친구가 서있었다. 두달만에 만난 친구. 서울도 빌니우스도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베를린의 첫 느낌은 그랬다.  몹시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횡단보도 스위치는 빌니우스의 그것과 같았지만 길거리를 가득 메운 케밥 가게와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지나가는 아랍 친구들을 불러 세우는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이곳은 분명 내가 모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이곳에서는 여행객이라기 보다는 이민자의 지위를 가지고 묻혀버릴 수 있겠다는 막연한 느낌이 좋았다.  밤 10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각이라 먹을곳이 마땅치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집주위를 빙돌아 걸어서 언젠가 이집트에서 시샤 향기에 둘러싸여 내가 먹곤 했던 케밥과 팔라펠 같은 음식들을 주문해서 먹었다. 절반은 포장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틀내내 몹시 고기다웠던 케밥속의 고기를 양상치에 싸서 아침으로 먹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