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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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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의 테킬라. 올해 볼 연극 공연들을 예매하고 나니 지난 시즌의 테킬라들이 떠올라서 회상한다. 작년 2월에 구시가의 청년 극장에서 연극 '아연' (https://ashland.tistory.com/1258)을 봤었다. 손님이 몰리기 직전의 한산한 멕시코 식당에서 공연에 대한 설렘을 안고 간단한 타코 한 조각에 테킬라 한 잔을 마셨다. 그날의 테킬라가 진정 너무 맛있었기에 그 이후로 일종의 테킬라 한 잔의 전통이 생겼다. 어떤 테킬라를 마주하든 친구와 그날의 테킬라를 회상하고 분석하며 감탄했다. 딸려 나온 자몽에는 시나몬과 케이언페퍼를 비롯한 각종 매콤한 가루가 뿌려져 있었고 호세 페르난도 알레한드로가 할머니 찬장에서 꺼내준 듯한 저 호리호리한 잔은 밀집된 향에 코를 박고 작은 양을 나눠마시기에 완벽한 구조였다. 무엇보..
2023년 12월의 반려차들 반갑고 고맙게도 친구가 보내준 차력 (어드벤트 티 캘린더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 매일매일 짧게나마 기록한 12월의 반려차들. 12월이 되었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 생각보다 일찍 갑자기 큰 눈이 와서 급하게 아이들 방수되는 겨울부츠와 옷을 장만하느라 허둥댔다. 해가 더할수록 뭔가를 미리 준비하기보단 코 앞에 닥쳤을 때 해치우는 것에 크나큰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12월 1일 오늘은 유치원에 초대되어 나뭇가지와 상록수들의 잎사귀를 엮어 어드벤트 리스를 만들었다. 오래전에 리가를 처음 여행할 때 중앙역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이 회사의 50그램짜리 딸기향 홍차를 샀었다. 커다란 딸기 두 개가 그려진 귀여운 빨간 틴케이스였는데 그것이 아마 내 돈 주고 산 첫 차가 아니었는지. 부엌에 놔두고 양념통으로 쓰..
적절한 시기 요리를 언제 하느냐 하면 요리책을 펼쳤는데 재료가 집에 다 있을 때.
20세기 13시10분의 하늘 프라하에서부터 눈 덮인 선사유적지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기억 속에서 계속 연장되어 언젠가 상점 계산대 앞에서 보았던 엽서 앞까지 나를 데려다 놓는다. 엽서를 뒤집어 보았다면 빅벤의 8촌 동서 정도 되보이는 저곳이 어디쯤이었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동상의 뒷모습이 의미심장하여 그냥 묻어 둔다. 종탑의 시곗바늘은 명명백백 오후 한 시를 넘겼고 화단 삼총사들이 뒤섞여 있었을 동상 주위의 원형 화단은 정직하기 짝이 없다.
프라하와 선사유적지 프라하에서 온 엽서를 보고 있자니 흡사한 엽서 한 장이 떠오른다.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고 그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어쩌면 오래전에 프라하에 갔을 때 똑같은 엽서를 사서 스스로에게 보낸 것인가 싶었다. 편지 상자와 책 페이지 사이사이를 뒤져서 결국 찾아낸 것은 알고 보니 한국의 눈 덮인 선사유적지 엽서. 아주 오래전에 양양 오산리 박물관에 갔을 때 빗살무늬토기 마그넷과 함께 가져온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프라하와 선사유적지의 풍경을 착각했다고 생각하니 누군가가 어부사시사에 드보르작의 미뉴에트 음정을 붙여 읊는다고 해도 마냥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늦여름의 노란 자두 푸르고 빨간 자두는 마트에 팔지만 신호등 사탕 만한 이 노란 야생 자두는 오며 가며 걸어 다니다 바짓가랑이에 쓱쓱 닦아 먹을 수 있는 빌니우스 거리의 과실수 중 하나이다. 구시가의 지름길을 찾아 남의 집 마당을 지나다 보면 꼭 한 그루 정도는 있어서 잔뜩 떨어져 있는 자두를 보면 아 8월이구나 하고 봄이 되어 모든 나무들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면 아 이것이 자두꽃이었지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앙상해지면 지난봄의 초입과 8월의 자두를 회상하는 것이다. 지난달에 동료가 바람이 불어 마당에 노랑 자두가 많이 떨어졌는데 그걸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겠다고 했다. 20년 넘게 그 집에 사는 친구가 자두의 용도를 모를 일이 없다. 이제는 다 귀찮아서 자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며칠 후에..
8월의 레드 오랜만에 간 극장. 이 빌니우스의 토종 극장에선 거의 7년전에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봤었다. 이날은 이타미 주조의 회고전에서 탐포포를 보았다. 일정 기간마다 기억해서 꺼내보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 극장에선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좋아하는 옛날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접한다는 것은 독특한 즐거움이다. 모든것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 가운데 아직 남았다면 그것이 모든 영역의 클래식이다. 탐포포가 라멘 육수를 끓이다 좌절하며 거대한 육수냄비를 뒤엎는 장면의 그 열기는 끈적했던 8월의 어느날 관객으로 꽉 찬 냉방이 되지 않는 극장 속으로 여과없이 뿜어져나오며 예상치 못한 고통을 유발했다. 늘 따끈한 라멘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부추겼던 이 귀여운 영화가 빌니우스에서도 찜통 열기를 떠올릴수 ..
누구의 바다도 아닌 발트 홍상수 감독이 영화 제목은 참 잘 짓는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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