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2017.06.15 16:00


 딱히 신발이 필요한건 아니었지만 방앗간 못 지나치는 참새도 아니지만 심심해서 들어가 본 신발가게. 가끔 이런 엄청난 선택의 여지 속에선 '너에겐 내가 분명히 필요해' 라고 말을 걸어오는 치명적인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계절이 바뀌어서, 때가 되어서, 필요하니깐, 결코 싸지않은 돈을 지불하고 미적찌근한 기분으로 사야하는 새 물건들보다 한번의 이별을 경험한 이런 물건들과의  감정적 연대가 더 끈끈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으니 내가 다시 한번 이들을 구제해주고 정성스럽게 입고 쓰다가 적당한때에 내손에서 완전히 폐기된다면 두번 버려지는 그들의 삶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라는 생각도 한다. 물건을 살때엔 이게 나한테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생각하지만 동시에 내가 이것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전자는 금전적 가치에 관한 습관적인 고민일것이고 후자는 일종의 로버트 드니로 컴플렉스. 정확하게 말하면 마이클 만의 <히트> 속 거물 도둑 로버트 드니로가 내게 심어놓은 딜레마이다. 영화 속에서 그가 사는 아파트는 종합병원 시체 안치실이나 도축장의 냉동고처럼 차갑고 싸늘하다. 그에게 집이란것은 '어디 가니?' 라고 물었을때 집에 간다고 대답할수 있는 어떤 방향으로만 존재할뿐 그 자신이 집안에서 어떤 안락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는것도 마다한 텅 빈 상자에 불과하다. 목표물을 설정하고 초시계를 손안에 들고 목적을 달성하고 사냥감을 나누고 또 숨어들어 또 다른 기회를 엿보는 그의 삶. 그는 언제든지 필요할때 미련없이 떠날 수 있으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집은 텅 비어있다.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정착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않은데 정말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때 미련없이 떠날려면 어느정도로 덜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남기고 떠나도 아깝지 않은것. 잃어버려도 슬프지 않은것들과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와 반드시 함께 움직여야 마음이 놓이는 물건들의 비율을 어떻게 설정할것인가.  가진것이 이미 별로 없는데 그나마 가진 몇가지 안되는것들에 집착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신발을 겹겹이 신어서 집채만해진 발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게 아니라면 신지 않는 신발 한켤레 정도는 버려야할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7.06.11 09:00



가끔 가는 파네베지인데 파네베지를 제목에다 끌어 쓸 생각은 한번도 못했다. 괜히 미안해진다. 파네베지가 '내 이름뒤에도 숫자를 달건가요? 빌니우스에는 숫자 매기지 않잖아요. 저에게도 빌니우스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주세요.' 라고 절규하는것도 같다. 빌니우스가 어쨌든 당분간은 무한대의 존재감을 주는 공간이라는것은 분명하다. 문득 도시에 번호를 달아주는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홍콩 여행을 시작으로 도시에 숫자를 달기 시작한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여행의 유한성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리인것 같다. 끝나버린 여행의 사진은 고갈될것이지만 난 다시 여행을 하든 어떤식이든 왠지 숫자는 계속 늘어날것이라는 기대를 마음 한 켠에 지니고 있는것 같다.  베를린에서 빌니우스에 돌아온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파네베지에 5일째 머무르는 지금 초여름의 기온을 보인다. 껌종이 은박지처럼 살살 긁어내면 민낯을 드러낼것 같은 뜨거운 지붕. 지붕의 굴뚝에서 폴짝 뛰어오르면 가로등이 점이 되어 사라지는 저 먼 공간까지 구름을 딛고 뛰어나갈 수 있을것만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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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10.06 08:00




리투아니아에서 등록되서 돌아다니는 차의 번호판은 원칙적으로 3자리의 알파벳과 3자리의 숫자로 이루어진다.  그 세개의 알파벳으로 완전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약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혀 연결되지 않는 어색한 알파벳 조합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걸어다니면서 자동차 번호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간혹 마음을 흔드는 단어들이 출현하기도 한다. 어쩌면 차주가 그 단어를 좋아해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얻어낸 알파벳인 경우도 있을것이다.  어휘력 늘리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연결되지 않는 알파벳 조합인 경우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말하면서 어떤 문장을 만들거나 마치 그 세 알파벳이 어떤 문장이나 단어의 약자인것처럼 상상해볼 수도 있다.  유럽에서 자동차 번호판 속의 유럽연합 마크 아래에 LT(Lithuania) 가 들어가있는 자동차를 보았다면 리투아니아 등록 차량이다. 간혹 저 유럽 연합 마크대신 리투아니아의 국기인 노랑 초록 빨강 삼색기가 그려진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리투아니아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기 이전에 생산된 자동차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번호판을 보자마자 소닉 유스의 <Goo> 앨범에 수록된 노래 'My friend goo' 가 생각났기때문임.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음악으로써 좋아하지는 않지만 뭔가 짖궂고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에 가끔 찾아서 듣는데 차 번호판에서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혹시 차주가 소닉 유스의 팬이라는 어떤 중거를 남겼을까 싶어 차 안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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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10.04 08:00



리투아니아에 한국의 반찬 가게와 같은것은 없지만 이곳 마트에도 반찬을 판다.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는것은 기름이나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야채 샐러드들.  샌드위치에 발라먹는 스프레드 같은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점심시간즈음에 이런 반찬과 빵을 바구니에 집어 넣고 장을 보는 직장인들을 간혹 마주칠 수 있다.  이 반찬을 처음 사본것은 에스토니아 탈린을 여행할때였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찾은 호스텔에는 부엌이 없었고 구시가지와 떨어진 동네의 외진곳이어서 늦게 돌아와서 먹을만한 식당도 없고해서 대형 마트에 갔더니 크기가 다른 3종류의 플라스틱 용기에 원하는 만큼의 반찬을 덜어서 팔고 있었다. 난 그때 맛살과 스위트 콘이 섞인 샐러드와 쌀밥을 사왔는데 호스텔에는 전자렌지조차 없어서 따뜻했었어도 딱딱했을, 차가운 롱그레인 쌀을 차가운 샐러드와 함께 먹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때 그 마트의 반찬 코너에 왠지 전자렌지가 있었을것 같다. 리투아니아의 경우에는 전자렌지가 있어서 주문을 하면서 데워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리고 탈린 이후 내가 이 반찬들을 딱 두번 더 사먹었는데 입덫이 심했을때 혹시 의외로 이런 음식이 엄청 맛있어서 잘 먹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을때였고. 근데 역시 맛이 없어서 다 못먹고 버렸고. 얼마전에 혹시 요즘처럼 귀찮아서 잘 안해먹는 상황에서 그냥 사먹으면 편한맛에 또 맛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사 먹어봤는데 이번엔 의외로 맛있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이런 반찬들 특히 샐러드류를 폄하하는 이유는 마트에서 상품성 별로 없는 원재료들을 유통기한 지나기전에 빨리 처리할 목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기때문이다. 내가 이날 산것은 중국식 스윗칠리소스 치킨 조림과 당근 조림이라고 불렀어도 무방했을 야채 조림. 그리고 시들어서 칼질할때 물기한방울 안나오는 그런 파프리카가 들어간 그리스식이라고 이름 붙은 샐러드였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차갑게 먹을때 오히려 빛을 발하는 법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데워먹는게 좋다. 그래서 조림들은 밥과 함께 전자렌지에 돌리고 샐러드를 넣어서 치즈를 뿌려서 먹었다. 





옥수수 통조림 까지 뜯어서 패스트푸드의 대단원을 썼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09.02 08:00



갑작스런 손님 맞이를 위해 부랴부랴 마트에 갔다.  사실 이렇게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경우가 미리 오래전부터 예고를 하고 오는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더 편하다.  좀 엉성하게 준비될것같은 예감에 약간의 불안감이있지만 사실 방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주어진 시간이 적었으니 크게 뭔가를 기대할것 같지 않고 대접하는 입장에서도 그래서 심적 부담이 덜하고 며칠전부터 손님 생각하며 고민할 필요도 없고 짧은 시간에 오히려 휘리릭 하고 지나가는 그런 느낌도 좋고.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며 메뉴를 정하는 즉흥적인 상황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기대치가 떨어져서 좋음...그래서 마트에 가서 요리에 쓰려고 할인해서 3유로하는 와인 한병을 사고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초코바하나와 라임과 아보카드가 잔뜩 든 봉지를 들고 서있는 남자가 말했다.  '오늘 9월1일이라서 주류 못사잖아요.ㅋㅋ' 나는 ' 아 맞아요. 깜빡했네요. 가져다놓고 올게요. 내 물건좀 부탁해요' 그리고 사진 한장 남기고 와인을 들고 주류 코너로 향했다. 





9월1일은 무려 3개월에 달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일괄적으로 나라 전체에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학생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 날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접점이다. 뭔가의 시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나면 Su rugsėjo pirma! 라는 축하인사를 건넨다. su는 '~와,~~함께'라는 전치사이고 기본적으로 어떤 날을 기념하거나 축하할때 날짜나 기념일의 명칭 앞에 붙는다. Rugsėjo pirma 는 9월의 첫째날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개학이나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건네는 축하인사지만 그냥 만나는 사람들과도 가볍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사이다.  가족중에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도 있고 9월1일은 뭔가 평소보다 더 싱그럽고 풋풋한 그런 정서가 있다. 아마도 오전에 거리에 꽃을 들고 걸어 다니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확률적으로 이즈음의 날씨는 항상 좋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대학교 신입생들도 많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학식날ㅇ 리투아니아 마트에서는 주류를 팔지 않는다. 오후 10시 넘어서만 살 수 없는것이 아니라 그냥 하루종일 팔지 않는다.  개학식날 술을 많이 마시고 싶다면 그러니깐 8월 31일 22시 전에 미리 사두어야 한다.  






새학기를 맞이해서 8월말부터 보이기 시작한 팻말이다. 9월2일부터 주류 구입하려면 신분증 지참해야 한다는 팻말이다. 원래도 그러긴 했지만 아마 9월 한달 주류소비가 늘것을 감안한 조치같다.  





물론 술집에서는 술사서 마실 수 있다. 그래서 미어터진다. 특히 빌니우스 기차역의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이 Peronas 라는  펍은 사실 이 긴 플랫폼에 그렇게 탁자가 많았어도 꽉찬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오늘은 미어터졌다.  





와인을 도로 가져다놓고는 집에와서 어쩔 수 없이 10살된 와인을 땄다. 5년전에 지스타에서 데리고 온 프로토스 병마개 모자를 쓰고 있다.  그냥 여기저기 무식하게 세워두었기에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하지만 절대 닦지 않을것임.   2006년은 특별한 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보일때마다 사두던 저렴한 와인들이었는데 이제는 2006년도 와인을 찾기가 너무 힘들고 있어도 너무 비싸다. 사실 모든 와인이 오래도록 보관하기에 적합한것은 아니라고 함.  모든 와인이 요리에 적합한것도 아닐거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