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2018.12.10 00:39


Paris_2013


'아주 오래 전' 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쓸 수 있는 말일까. 5년,10년 혹은 20년 전, 어쩌면 일주일 전, 하루 전, 한 시간 전. 똑딱똑딱 흘러가는 시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간절할때, 단지 이미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없었던 것 처럼 느껴지는 어떤 순간들을 위한 말일 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7.08.06 09:00



(Paris_2013)



작년에 서울에 가기전에 새로 한 안경에는 현재 임시방편으로 파란 철사테가 휘감겨져있다. 오래쓰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서 빨리 가서 테를 새로해야할텐데 그래도 1년은 버텨야 진작에 수명을 다한 안경테에 대한 예의라는 이상한 생각. 실상은 게으름과 돈아까움.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6.04.28 05:55



(Paris_2013)



나는 일하는 도중에 나와서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뒷문의 후미진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쫓기듯 담배를 피우고 땅바닥에 멋없이 비벼끄는 사람들보다는 곧 돌아가야 할 일터를 등지고 먼곳을 응시하고 서서는 난 지금 쉬는중이요. 알았소? 라고 말하고 있는듯한 당당함이 좋다. 그들 대부분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거나 키친 클로스따위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고 있었다. 가게 안은 그로 인해 텅 비어 있다. 대신 주문을 받아줄 수 있는 동료가 있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여유로워 보였다.  배가 고프오? 나는 담배가 고프오.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우리의 욕망은 충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허기짐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거대한 운석을 그저 넋놓고 바라보는 버려진 위성의 파편처럼 느껴졌다. 몽마르뜨는 나에게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뭐랄까. 가을 설악산의 가파른 산자락에서 무수한 등산객들을 뚫고 시내보다 두배는 비싼 두부김치나 감자전따위를 파는 식당들을 지나 흔들바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몽마르뜨의 곳곳이 붉은 풍차에 감염된듯 붉었고 그곳은 과도한 흥분 상태였다. 그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일상도 어제와 같은 오늘일 그들에게 어떤 순간은 오히려 정지된듯 보였다. 




코르토나의 담배 피웠던 아저씨_http://www.ashland11.com/257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6.04.27 05:46


  

(Paris_2013)



 파리의 어디쯤이었을까.  아마도 머물던 집을 나와서 센강 주변으로 이동할때 지나치던 길목중 하나였을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머물던곳은 파리 5구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는데 세탁소와 헌책방이 있는 평범하고 한적한 동네 어귀를 돌아 얼마간 걷다보면 당혹스러울만치 뜬금없었던 매우 커다란 이슬람 사원 (Mosquee de Paris) 이 나타났다. 그 사원은 우리가 여전히 길을 잃지 않고 노트르담 사원 (Cathedrale de Notre Dame de Paris) 이 있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그렇게 서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골목의 초입부터 항상 북적북적되던 무프타르 거리 (Rue Mouffetard) 가 나왔다. 길게 늘어진 오르막길 양옆으로 간판에 그리스 국기가 그려진 아주 맛있는 크레페 가게와 작은 서점, 아이스크림 가게와 중국 반찬 가게가 있었다. (이 시장통 골목에 수없이 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었지만 내가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곳에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리의 왼편의 샛길들로 방향을 틀면 판테온 (Place du Pantheon) 과 파리 6구를 향하는 룩셈부르그 정원 (Jardin du Luxembourg) 이 나왔고 한눈팔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면 센강에 이르렀다. 아마 지도에 동그라미쳐진 그 목적지들중  한군데를 향하던 중 어느 거리에서 이 카페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약간의 내리 막길로 보아하니 센강이 자리잡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던것도 같다. 몇초간 멈춰서서 건너편 카페를 쳐다보았다. 길을 건너 고개를 끼워넣고 두리번거릴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이 거리를 지나가다 이 카페를 마주치는 사람들중 몇이 퍼시 애들론의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바그다드가 도시 이름이라는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어쩌면 중동 레스토랑 일지도 몰랐다.  제라르 드 파르디유같이 생긴 프랑스 남자가 직업 소개소를 통해 식당으로 찾아온 아랍 남자가(라고 하기에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아랍 이민자들이 넘쳐났지만) 바그다드 출신인것에 영감을 얻어 우연의 일치를 남발하며 식당이름을 그냥 이렇게 지어버린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글을 끄적이는 지금은 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파리의 바그다드 카페에서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흔적을 찾아 연결지어보려 노력하지만 이 카페를 실제로 지나치던 그 몇분간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뭔가 프랑스적인 느낌을 감지하려 골몰했던게 기억난다. 바그다드 카페에 도착하는 쟈스민은 독일인이었고  브랜다의 아들이 주구창창 연주하던 피아노곡은 드뷔시나 사티에의 것이 아닌 독일인 바흐의 평균율이었다. 항상 의기소침했던 데비가 읽던 소설은 루이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 죽다였다. 잭 팔란스가 그리던 그림들은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이었다. 아 어쩌면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마음에 들었던 데비가 그나마 가장 파리스러운 인물이었을까. 새침했고 시크했던 힘겹게 보호해온 자신의 고독을 고이고이 간직하려 분주한 카페를 도망치듯 떠나던 데비 말이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뷰_http://www.ashland11.com/138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5.08.18 04:14



다시 가고 싶은 파리. 2년전 여행에서는 충실한 관광객이 되어 모두가 바삐 들르는 관광 명소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다시 여행한다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긴 가봐야겠지?' 와 같은 모종의 부담감을 털어내고 한결 간편한 게으름뱅이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파리에서 우리가 머물었던 곳은 파리 5구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였다.

빌니우스에서 저가항공을 탔기에 우리는 파리 보베 공항으로 입국했고 공항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고 5구에 위치한 숙소까지 이동해야했다.

보베 공항에서 공항 버스를 타면 라데팡스가 출발역인 1호선의 Porte Maillot 역까지 이동한다. 보베 공항에 가려면 그러니깐 이 역에서 공항 버스를 타면된다.

그곳에서 우리가 지하철을 갈아 타야하는 1,5호선 Bastille 까지는 열정거장을 넘게 가야했지만 파리 지하철은 역과 역사이의 거리가 몹시 짧아서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때마침 우리가 여행했던 때에 5호선 환승역인 Bastille 와 Place d'italie 구간이 공사중이라 그 구간을 오가는 버스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야하는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항상 지하철을 애용하는 우리였기에 아마 그 공사가 아니었음 버스를 탈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꽤나 먼거리를 이동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짐을 풀고 숙소를 나와서 배회하다보니 주요 명소까지의 거리는 몹시나 짧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보니 숙소가 위치한 Saint marcel 역부터 사방으로 빽빽하게 적힌 역 이름들이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센 강도 바로 근처여서 센 강변만 계속 걷다보면 파리 어디에서든 걸어서 돌아올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파리가 내가 생각하는것보다 덜 고풍스럽기를 기대했다. 굳이 라데팡스의 빌딩숲까지 가지 않더라도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 몇개는 만날 수 있겠지 기대하며.

다음날 아침 일찍 노트르담을 향해 걸을때 멀리 대로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축물은 아랍 세계 연구소였다.



파리의 지하철을 한두번만 타고 다닌다면 혹은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를 보았다면 그리고 얼마전에 본 <히든>같은 영화만 떠올려 보더라도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가는 제3세계 이민자들의 삶이 어떤것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는 지위를 얼렁뚱땅 얻었가는 동안 프랑스인들이 만들어 낸 일련의 영화들의 공통점이라면 

그 통속적인 낭만을 빌려 낭만적이지 않은 날것의 파리를 더할나위없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데 능하다는것. 

그리고 센 강변, 파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 아랍아랍하는 건물이 얼마나 타당하고 합리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지에 딴지를 거는이는 아마 없을것이다.



누벨하면 누벨바그, 누벨바그 하면 장 뤽 고다르라고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배용준이 그랬었다. 

부잣집 아들과 친해지고 싶은 이종원은 듣도 보도 못한 고다르이지만 미리 공부해서 고다르광인척하는데 성공하지.

 무엇이 이 아랍 세계 연구소 사진을 보며 추억의 옛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냐하면 

바로 이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이다. 장 누벨. 이름도 너무나 거장스러운, 우리에게는 삼성 리움 미술관 설계자로 유명한 그 누벨이다.

어떤 사람이 건축가가 되는걸까. 한국에서 건축 공학과는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들이나 그나마 꿈꿔볼 수 있는 전공이 아닌가.

선생님이었던 장 누벨의 부모님은 아들이 수학이나 언어를 전공하기를 바랬지만 누벨은 회화와 같은 예술방면에 흥미를 느꼈고 

그의 부모님은 계속해서 기계나 교육쪽 전공을 택하길 바랬지만 결국 미술이 아닌 그나마 건축이 아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것이라 여겨 타협을 했다고 한다.

자기 분야에서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의 재능을 어릴적부터 발굴하고 육성하고 물심양면 지원하는것은 아닌듯. 

그래도 아들의 의지를 완전 묵살하지 않고 건축으로 방향을 잡아준 누벨의 부모는 현명하다 해야하나. 

아니면 장 누벨은 뭘 했어도 잘했을 그냥 천부적인 사람일까.



아랍권에 식민지를 많이 가졌던 프랑스. 프랑스내에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프랑스에게있어 아랍은 분명 귀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아랍권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정보와 아랍 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며 프랑스와 아랍 국가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와 협력을 위해 1980년대에 파리에 설립된 아랍 세계 연구소.

특히 과학 기술 교류에 중점을 둔 연구소는 비단 프랑스와 아랍권의 관계뿐아니라 아랍국가들과 유럽 전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햇빛이 풍부한 아랍권에서 격자 무늬의 패턴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진 옥외 발코니에 쓰여지는 아랍 특유의 디자인, 무샤라비에.

볕이 잘드는 연구소의 남향에 이 무샤라비에 패턴을 이용하는 재치. 하지만 단순히 창문에 격자 틀을 넣거나 아랍에서처럼 콘크리트 작업을 할때 아예 틈새를 만드는것이 아닌

마치 빛에 반응하는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흔들때마다 모양이 바뀌는 칼레이도스코프처럼

건물에 내리쬐는 태양의 양은 240개의 알루미늄판에 연결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필요에 따라 열고 닫히며 조절된다고 한다.

얼핏보면 모두 같은 기하학적 모양같지만 저마다 조금씩 덜 열리고 더 열려있는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못해본게 너무 많은 여행. 연구소 옥상에 올라가서 차도 한잔하고 

일층에 위치한 서점에 마냥 눌러앉아 하드 커버의 각종 화보들과 사진집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반드시 둘러봐야 할 장소들이 너무 많았다.

굉장히 사고 싶었던 다이어리가 있었는데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했고 

떠나기 전 날 주어진 나만의 시간에 넋놓고 5구를 배회하다 부리나케 다시 들렀지만

월요일 휴무로 굳게 잠겨있었다.

다음에 파리에 간다면 첫번째로 들르고 싶은 곳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