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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2.06.18 01:49

 

 

<건축학 개론>

 

'나이가 든다'는 동사를 꼭 나이 마흔이되고 예순이되어야 쓸 수 있는것은 아닐것이다.

하다못해 열 살에서 열두 살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지만

단지, 우리가 그 변화를 알아차릴때쯤엔 열두 살이 아닌 이미 스무살이 되어있다는 사실.

벼름박에 그어 놓은 어린시절의 키처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존재를 깨닫게되는것이 바로 세월, 나이, 그리고 추억이 아닐까.

사람들이 재밌다 재밌다해서 꼭 봐야 할 영화처럼 되버린 영화를 보고 공감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나도 모르게 나만의 교집합을 찾아나가는것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다.

그만큼 이해할 수 있는것이 늘어나고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는것을 알고

이해가가지 않는것에 대해서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자신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나이.

하지만 보통은 그마저도 잊고 산다.

보통은 그냥 나이가 든다.

꿈이 많았었던것도 잊고 꿈이란것이 무엇인지도 잊는다.

그것이 나이를 먹는 최악의 방식이다.

아련한 옛 첫사랑을 떠올려보기에 앞서

내가 제대로 늙어가고 있는지, 혹시 나도 매운탕처럼 살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속도는 모두에게 똑같다.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가진 365일, 하루 24시간의 시간. 

누군가는 경험해보지 않아도 모든것을 안다.

누군가는 모든것을 살얼음 걷듯 가슴 아프게 경험한다.

누군가도 한때는 순수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철이 들고 단단해진다.

누군가는 속물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누구도 순수와 속물에 대해 제대로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모두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있는것 같다.

누구도 한 자리에 견고하게 머물러 있지 못하지만 모두가 누군가는 그러길 바란다.

 

 

나도 재수를 하던 시절 대학들어간 친구를 만나서 술을 먹던 때가 있었다.

친구의 사랑 얘기도 들었던것 같다.

난 저 친구처럼 친구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해주지는 못했다.

영화는 여러가지 다른 경로로 모두의 추억을 두드려주는것 같다.

 

 

나는 이 영화의 이런 디테일들이 좋더라.

중간부터 눌러서 찌그러진 오뚜기 마요네즈, 열리는 문과 함께 떨어지는 각종 봉지들, 십년넘게 찌그러져있는 문 등등.

특정한 누군가의 습관일 법 보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

공감을 끌어낼 구석을 알고있는것은 작가의 중요한 능력이니깐.

 

 

영화보는 내내 지질이도 못나보이던 엄태웅. 

남의 집 지으려고 밤새고 새우잠자면서 자기 엄마사는집은 십년넘게 찌그러진 문을 달아두고 있다니.

집이 30년은 되야 그게 집이지 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엄마더러 이 집이 지겹지 않냐고 묻는다.

엄마는 아들이 오래전에 던져버린 게우스티셔츠를 입고 우문현답을 한다.

'집이 지겨운게 어딨어 집은 그냥 집이지.'

순대국 파는 어머니의 이 말씀은 건축계의 히포크라테스같은 말이 아닌가.

 

 

내가 대학시절들었던 무수한 개론 수업들을 떠올려 보았다.

모든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중 단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든 수업.

내가 발들여놓기 쉽지 않은 분야에 아마추어로 접근하지만 기대했던것 이상의 많은것을 알게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주던 그런  수업.

자기 전공수업보다 훨씬 반짝반짝한 눈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리출석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그런 교양수업

압서방파 선배의 말처럼 타과학생들이 많이 들어서 물이 좋은 그런 수업.

어쩌면 모든 아마추어들이 모이는 그렇고 그런 수업.

한마디로 매운탕같은 수업.

 

 

사진을 올려놓고 보니 너무 생뚱맞은 사진만 올려놓아서 모두가 원하는 그런 사진 하나 정도는 올려본다.

첫사랑 개론에 어울릴법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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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