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3.22 <자유의 언덕> 홍상수 (2014)
  2. 2013.02.01 <북촌방향> 홍상수 (2011)
Film2015.03.22 21:10




<자유의 언덕>


올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영화제 Kino Pavasaris 에서는 홍상수의 2014년작 <자유의 언덕>도 상영이 된다.

빌니우스의 관객들이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들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들이 있을까도 싶고 

그 연결 장치조차 우연처럼 가장 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알고 볼때에야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작품내에서가 아닌 오히려 작품외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든다.

그는 이미 어떤 등장인물이 참가해도 무리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가진채로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공간에 불러다 놓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버무려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사건의 나열은 뒤죽박죽이고 간신히 정립해놓은 인과관계도 익숙한 공간의 뜬금없는 등장으로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린다.

그의 습관들은 영화속에 녹아있고 그가 영화를 정말 습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우리는 습관처럼 그의 영화를 본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기본 뼈대는 일본인 모리가 권을 찾아오는 여행과 기다림의 장치인데

그 기다림은 이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생겨났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있어오던 영화의 외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전 작품인 <우리 선희>에서 이선균과 김상중이 그리고 정유미 조차 늘상 기다리던 정재영의 집 건너편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있는 모리를 보고 있자면 현해탄을 건너온 그가 기다림에 임하는 자세 역시 그저 단순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것이 없는 새로운 영화에서 감독은 또 무얼 얘기하려는걸까. 



이 영화 포스터는 뭔가 너무 가볍고 화사하고 동적이어서 기분이 좋다.

여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강원도의 힘>에서처럼 찐득거리고 질척거리는 불쾌지수 만빵의 여름이 아니라 

곧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의 적당히 뽀송뽀송한 습도의 여름이랄까.

흑백으로 찍어진 그의 몇몇 겨울 영화가 실제보다 훨씬 추워보여서 실내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따스한것처럼

인물들의 가벼운 옷차림과 화사한 표정처럼 이 영화는 점점 높아져가는 늦여름의 하늘색을 닮았다. 

빚더미에 앉은 남자나 집나와서 유부남과 여관에 머무르는 여학생이나 답장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본인이나

그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에 의식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시덥지 않은 자잘한 현상들을 보는것에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항상 때가 지났다고 밥을 주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모리(카세 료)는 왜 저 사람은 이 시간에 밥을 먹느냐고 묻는다.

마루에서 밥 먹는 사람은 사업하다 큰 빚을 진 조카이지 손님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하는 주인. 

평소 모리와 살갑게 영어로 대화하고 아부떨던 조카는 무슨 그런 얘기까지 하냐며 불만섞인 한국말을 내뱉는다.

공기밥 하나만 얹으면 오손도손 같이 먹을 수 있지만 그런 살갑고 인공적인 전개를 감독이 보여주지 않을것을 우리는 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에 의거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상적인 반응들.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면 인물들은 주춤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까칠해진다.

까칠하다거나 찌질하다는 단어는 특정 성격을 묘사한다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가까운 요소이다.

사실 자유의 언덕이라는 제목 자체도 모리가 일본어 간판인 동명의 카페를 찾는다는 설정에 의거한것일테지

거기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으려드는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영화에서 살짝 보여지는 자유의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통용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편견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말과 타인의 의견에서의 해방같다.

현재 과거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낸 틀일뿐 실체가 아니라는 모리의 책속의 구절도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계단에서 흩어진 편지로 뒤죽박죽된 시간처럼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술적인 장치 정도를 의미할뿐이다.



재밌었던 장면 중의 하나인데. 

<우리 선희>에서 교수님 해외 출장갔다고 뻥치던 이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서> 이자벨 위뻬르가 출연했을때부터 언젠간 홍상수가 외국 남자 배우도 섭외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표정을 지닌 배우 정도면 무슨 영화과 초빙 교수로라 나오면 엉뚱하고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재밌는것은 일본인에게 필요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보이는 문소리를 쳐다보는 이민우의 표정이다.

언젠가 문소리도 저런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자벨 위뻬를 여신대하듯 대하는 권해효를 바라보던 임신 막달의 문소리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보다 우리가 시급히 이해해야 할것은 그것에 어떠한 자세로 대처할것인가의 문제같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적 잣대를 통해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왜 저런 고민을 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편견속에서 

타인의 고민과 삶을 한창 가볍게 여기는 오류를 우리는 자주 범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도 누군가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누군가는 잔혹 호러물을 그리고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연인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남자의 골치아픔의 무게를 우리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의 무게는 그가 들고 다니는 딱 저 작은 책만큼 가벼워 보인다.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행동.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 따위도 알고보면 우리 스스로의 이상이 빚어낸 허상일 뿐.

흘러가는 한 마디의 말, 미세한 표정에서도 부자유스러운 우리가 과연 더 큰 자유를 열망한다는것은 허세가 아닐까.


<우리 선희> 리뷰 보러가기

<오!수정> 리뷰 보러가기

<밤과 낮> 리뷰 보러가기

<북촌방향> 리뷰 보러가기

<다른 나라에서> 리뷰 보러가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생활의 발견> 리뷰 보러가기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2.01 03:39

 

 

<북촌방향>

 

내가 언젠가 거닐던 익숙한 풍경들은 흑백의 필터를 통해 시간의 정체성을 잃고 나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추억처럼 모든 이들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영화 <오! 수정>이 그랬던것처럼 <북촌방향>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해 나의 추억을 더듬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은행이 노랗게 물들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곳 정독도서관.

 600원이면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도서관 식당의 가락국수.

전부 읽지도 못할거면서 꾸역꾸역 대출해서 결국은 그대로 반납하곤 하던 소설들.

도서관 무료 상영회에서 동생과 배꼽잡고 보았던 <스쿨 오브 락>.

그리고 그 웃음을 뒤로하고 문제집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했던 우울한 시간들. 

내 기억은 내가 보낸 시간의 일부이고 그 일부의 기억을 우리는 평생 추억하며 살아간다.

<북촌방향>을 따라가는 카메라속에 나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곳에는 왠지 내가 나만의 공간처럼 여겨도 되겠다 싶었던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그 공간이 아무리 상업화되고 고급화되어도 내 추억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10년후에도 20년후에도 난 이 흑백장면속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분홍색 열람증따위를 떠올리겠지.

가끔은 '오늘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라는 절망적인 푯말도 함께.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꿈과 생각으로 갈팡질팡했다.

그 숱한 오해와 엇갈림은  분명 우리가 탓 할 수 있는 '과오'같은것은 아니지만

후회도 인간이 가진 미덕이라면 우리는 그 미덕으로 그나마 덜 잊고 더 추억하는것이 아닐까.

그 추억의 깊이를 가늠해보는데에 흑백화면만큼 절묘한 장치도 없는것 같다.

차갑게 절제된 영상속에선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성준(유준상)이 고갈비집에서 만난 처음보는 학생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장면에선 

'한번 웃어봐요'라는 재훈(정보석)의 요구에 '제가 왜요?'라며 황당해하던 수정(이은주)의 표정이 생각나 잠시 쓸쓸해졌고

경진(김보경)의 방바닥에 앉아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성준(유준상)을 보니

언젠가 수정(이은주)이 영수 (문성근)와 여관에 간 그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돌고 돈다. 지나고나면 그저 한페이지의 일기로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쌓여가는것이다.

 

 

'짝'이란 프로그램을 제작년에 한국갔을때 처음 보았다.

그 전까지 포털에서 여자 2호, 남자 3호하는것을 두고 전혀 이해못하다가 프로그램을 보고났을때 아 이거였구나 했다.

그 이후로 매주는 아니어도 간혹 찾아서 보고있는데 요새 몇편의 홍상수 영화를 다시 보고는 생각했다.

이 둘은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인류가 사랑을 멈추지 않는 한 감정의 엇갈림과 집착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멸의 과제로 남을게 분명하지만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이 둘이 표현해내는 것들은 기가막힐 정도로 일치했다.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공통된 명령어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들의 짝이 된 후의 달콤 쌉싸름한 여정이나 만사형통의 결말따위는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녀의 관계에서 우리가 도출하고자 하는 결론은 순정과 일편단심, 찐득한 여관방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과 같은 형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치열한 머릿싸움과  결론없는 드라마 속의 궁상맞고 피튀기는 과정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뿐이다.

 

호감을 표시하고 그 호의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움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우쭐해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표현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양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고 수도없이 좌절하고 안도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느끼는 슬픔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느끼는 슬픔은 같은 종류일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도 나를 좋아할 때의 기쁨,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나를 누군가 좋아해 줄때에 느끼는 기쁨은?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 티비출연까지 감행해야했던 출연진들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방법과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홍상수의 첫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온 김의성이 주인공의 첫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나온다.

술마시고 꼬장부리는 캐릭터는 여기서도 똑같구나.

이번 홍상수의 신작에도 출연하는것 같던데 아마도 비슷한 캐릭터일까?

하지만 김의성의 꼬장은 항상 그럴듯하다.

'별거를 했으면 여자문제때문이겠지.사귀는 사람 없어?'

성준의 의미심장한 거리감 두기에 '넌 날 꼭 '중원이'형으로 부르더라'라며 날카로운 직격탄을 날린다.

갑자기 나타난 어느 누구의 짝도 아닌, 그냥 택시에 빨리 태워서 보내야 할것 같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인 김의성은

인간관계에 대한 몇가지 날 선 분석을 내놓고 사라진다. 

 

 

서울에 올라와 술에 취해 경진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내내 경진의 문자를 받는 성준.

단순한 영화 팬에서부터 제자에 술집 주인에 아는 형의 동료까지

이토록 많은 여자들에 경계의 뉘앙스를 주지않으려 애쓰는 캐릭터도 없었던것 같다.

문자를 읽는 성준의 태도는 시크하기 짝이 없다. 그래 놓고서 일기를 꼭 쓰라느니 정신 바짝차리라니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에서 쇼팽의 녹턴을 치는 주도면밀함까지.  

<생활의 발견>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라는 명숙의 전화를 받는 경수의 태도는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상대가 듣고자 하는 말만 골라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런 얘기를 믿고 감동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솔직한 얘기에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호감이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에나 나오는 이야기.

모두가 운명적인 화학반응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수학과 기술에 가까운 사랑이 더 흔한법이다.

 

 

'얘기를 해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한번 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째도 이렇게 되고보니 보통 인연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우리를 엮어주는것은 변함없이 우연과 의외의 이론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에 있어서 수만가지의 서로 상관없는 우연들이 작용하고

사람들은 몇가지 우연들을 편리하게 강조해서 사건화하고 극대화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화시킨다. 이미 의도했고 그토록 원했던 결론이니깐.

하지만 그 우연을 가능케했던 그 이전의 우연과 그 전의 전의 우연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판단과 결론은 완전할 수 없다. 거기에서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해변의 여인>의 중래의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상이며 <짝>의 등장인물들이 빠져드는 운명론의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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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