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스 스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4.15 <다운로딩 낸시 Downloading Nancy> Johan Renck (2008)
  2. 2014.04.08 <빈얀 Vinyan> Fabrice Du Welz (2008)
Film2014.04.15 01:35




<Downloading Nancy>


기계적으로 루퍼스 스웰의 영화를 찾아보는 중. 시작부터 영화의 색감과 배경음악에 끌렸고

화면 아래로 크리스토퍼 도일과 제이슨 패트릭의 이름이 지나가자마자 깜짝 놀라 더욱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초반의 버스씬과 색감에서 <만추>의 느낌이 물씬 풍겨 여주인공인 낸시에 대한 궁금증이 급상승했고

배경음악은 가레스 에드워즈의 <몬스터>와 너무 흡사했다.

<몬스터>속 두 주인공의 여행이 비극적으로 끝나서였는지 낸시와 루이스의 대화와 움직임 하나하나에 몹시 불안했다.  

애써 부릅뜨지 않아도 충분히 크고 검은 루퍼스 스웰의 눈은 웃고 있으면 오히려 섬뜩하고 화를 내고 있으면 측은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눈이기에 무표정할때 가장 흡입력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흡사 작업복스러운 평상복을 걸치고 펩시 콜라를 입에 달고 스크린 골프에 푹 빠져있는 영화속의 알버트(루퍼스 스웰)는

 검은 수트나 갑옷을 걸치고 세상에서 가장 신중하고 결단력있는 사람의 표정을 지어 보이던 이전의 그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퇴근 후 우편물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평범한 동선에서 특이사항을 발견하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소파는 겉포장을 뜯지 않은 그대로 사용하며 A4 용지는 가로 세로 규격에 맞춰 놓아야 직성에 풀리는 알버트.

개성없는 가구들과 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제 자리에 정돈된 물건들이 대사없는 움직임만으로도 그의 성격을 짐작케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직원이며 동료들과의 사이도 좋지만 아내인 낸시와는 무관심과 단절로 점철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어릴 적 삼촌에게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낸시(마리아 벨로)는 학대 자체를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인지하는 매저키스트.

알버트가 그녀를 때리고 학대하며 쾌감을 얻는 사디스트였더라면 오히려 그들의 결혼생활은 유지 가능했을지 모른다.

 심지어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 수도 있었을거다.

하지만 알버트는 자기 감정을 내보이는데 서투른 사람이며 심지어 감정을 억압하는데 길들여진 인물로써

오히려 자신의 무관심에 반응하는 낸시를 또 다시 무시하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또 다른 형태의 사디스트.

보통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소금이나 후추와 같은 양념통은 좀 건네주지 않겠냐며 부탁을 하는데

알버트는 굳이 일어서서 낸시 앞에 놓인 양념통을 가져온다. 

낸시는 자기 접시에 소금을 몽땅 붓고 남은 으깬 감자를 전부 접시에 부은 후 새총놀이를 하듯 알버트의 얼굴에 감자를 던진다.

알버트는 화를 내거나 함께 장난으로 대응하는 대신 너에게 반응하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묵묵히 밥을 먹는다.

알버트가 집 지하에 스크린 골프장 같은 자신만의 낙원을 만드는 동안

낸시는 남편의 무관심속에 집안에 갇힌 박제된 꽃이 되어간다.

낸시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지고 알버트는 마치 낸시에 관한 파일을 다운로딩하듯 조금씩 그녀에 대해 알아간다. 



철저히 낸시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영화를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낸시 자신도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 했을거라 생각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도와줄께'하고 낸시에게 손을 내밀지만 결국은 잔뜩 날이 선 이론적인 정신분석만 늘어놓았던 정신과 여의사처럼.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의 성별부터 확인하고 보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절대 될 수 없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가진 극단적인 상대주의 자가 아닌가 싶어 뜨끔했다. 

낸시의 자해나 집착이 알버트로써는 인정할 수 없는 행위였을 수 있다.

이들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수 있고

결혼 후의 특정한 사건으로(자식을 잃었다거나) 서로에게서 멀어진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않고 얼렁뚱땅 알버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듯 싶어 그것은 찝찝했다.

한편으로는 낸시의 욕망 자체는 채찍을 휘두르는 두 세명의 여성과의 섹스를 성적 판타지로 포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욕망과 크게 다를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남편의 무관심이 그녀의 이상행동을 야기했을 수도 있지만 

그 행동만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때 그녀가 아주 금기시 되는 뭔가를 욕망했다고 볼 수 있는가.

낸시와 여의사와의 뻔한 대화가 인상적이다.

Doctor- Nancy, you are beautiful woman, intelligent woman.

Nancy-  No. we can not always be what we want to be and what we wish to be could be.

삼촌에게 학대받고 남편의 무관심속에 살아가며 사디스트인 루이스(제이슨 패트릭)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낸시는 남성들에 의해 꽃으로 불리고 그들의 무관심으로 시들며 그들의 사랑으로 구제받는 의존적인 여성처럼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지지 않은 삶을 포기한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

결국은 상대가 어떠한 인간인가에 대한 알려는 노력과 이해 부족으로 이들은 불행해진다.



낸시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루이스(제이슨 패트릭)는 결국 낸시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구제해준다.

(자막에서 제이슨 패트릭의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그가 <러쉬>의 제이슨 패트릭이라고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낸시처럼 정신적인 상해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보통 이상의 관심과 보호속에서 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삶에서 구제받는 길이 죽음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4.04.08 03:43



<Vinyan>

 

요새 재밌게 본 영화가 너무 많은데 짧게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전부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

누군가가 언급했거나 어디서 봐서 다시 한번 기억하는것과 내가 마음속에 담아 두고 능동적으로 떠올리는것은 확실히 다르다.

글로 적어두면 확실히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으니깐.

이 영화는 순전히 루퍼스 스웰 때문에 봤는데 얼마전에 <다크시티>를 다시 보고 

이 배우가 내가 좋아 할 만한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할 수 있는 배우가 된다는것은 절대 이 배우에게서 어떠한 단점도 발견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것에 가깝다.

얼마전에 그가 출연한 <ZEN>이라는 티비 드라마를 보았는데 그는 로마가 배경이면 이탈리안 같고 

영국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영국인, 스페인에 있으면 히스패닉일거고 엠마누엘 베아르와 있으니 프랑스인 같다.

정작 이분은 항상 영어를 하고 계시지만.



실종 아동과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는 영원 불멸의 소재일것이고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정말 무궁무진하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라면 휴 잭맨의 <Prisoner> 라던가 할 베리의 <The call> 같은 영화.

납치범으로 몰린 사람들이 알고보니 오래전에 납치된 실종아동이었다던가 911로 걸려온 전화로 실시간 범인을 역추적한다거나.

이 영화 <vinyan> 역시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나서는 부모의 이야기이지만

동남아의 밀림과 음산한 배경 음악 탓에 영화는 몹시 주술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풍긴다.

 쓰나미라는 자연 재해로 사라진 아들이 외딴 섬 어딘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는 엄마와

절망에 빠진 아내와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남편이 아내의 부탁에 마지못해 아들을 찾아나서는 영화. 

사라진 아들을 그리워하는 엠마누엘 베아르의 텅빈 눈초리는 그녀의 믿음 자체가 공허한 환상에서 비롯된것이란 느낌을 주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루퍼스 스웰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총동원에서 있는 힘껏 현실을 지탱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자식을 찾으려는 절박한 외국인 부부를 까마득한 원시림으로 이끌면서 돈만 받아 먹으려 애를 쓴다.

늪은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질퍽거리고 안개가 자욱한 이 원시림은 불필요한 희망을 준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의 의지를 꺽을 수 없는 루퍼스 스웰이 처량하다. 

현실은 미쳐가는 엠마누엘 베아르보다 제정신인 루퍼스 스웰에게 훨씬 가혹하다.

빈얀은 억울하게 죽어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이란 뜻이란다.

누구도 이 원시림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그것은 죽음이라는 그림자에 가둬진 남은자들의 숙명같은것일지도.

기형도의 시 일부분이 띄엄 띄엄 생각난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의 영토 속에서...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거느리는가..' 

이 영화는 하나의 죽음이 거느린 남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루퍼스 스웰덕에 잊고 있던 기형도를 떠올리게 되다니 기쁘다.

기형도는 역시 천재였구나.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