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2015.09.10 03:56





2010년,밀라노행 티켓을 상품으로 받고 부랴부랴 떠나게 된 2주간의 이탈리아 여행. <투스카니의 태양>의 코르토나, <냉정과 열정사이>의 피렌체와 그의 두오모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것이 있다면 아마도 비행기에서 내려 생소한 밀라노 시내에서 첫끼로 먹은'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란 가지요리였다. <아이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이 오르던 밀라노 두오모는 그렇게나 화려했지만 그 장엄함 뒤의 무기력함을 발견해버리면 한없이 초라해졌다. 밀라노의 명품거리는 오히려 희소성을 잃은채 투탕카멘 분장의 거리 예술인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몽땅 빼앗긴듯 보였다. 약속이나 한듯 말끔하게 차려입고 베스파를 몰고 다니는 이탈리아인들로 붐비던 밀라노의 점심시간, 넉넉한 체구의 중년의 아저씨가 주문을 받는 테이블 몇개가 고작인 간이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서서는 직원과 몇마디를 나누며 선채로 에스프레소를 급히 들이키고 유유히 사라지던 이탈리아인들. 따뜻한 라떼와 차가운 아포가또, 치즈가 흘러나오던 파니니, 그리고 신세계,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그 좁은 식당 구석구석에서 마주쳤던 모든 피사체들이 내 기억속의 밀라노의 전부가 될줄이야. 리투아니아에 가지요리가 있는것도 아니고 게다가 5년전엔 지금처럼 마트에서 쉽게 살 수있는 야채도 아니었다. 하얼빈 생활때부터 가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한 나.  파르미지아나라는 단어만 보고 선택한 이 음식과 그렇게 사랑에 빠질줄이야.  이탈리아 여행 내내 메뉴판에서 melanzane 라는 단어를 보면 거리낌없이 주문을 했다. 






이것은 반나절동안 머문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서 먹은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부엌이 갖춰지지 않은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데워만주는 편의점같은곳이었는데 역시 맛있는 음식은 차게 먹어도 그냥 데워먹어도 맛있나보다.

리투아니아어로 가지가 바클라자나스 Baklazanas 인데 왠지 어감이 비슷해서 정감있고  코즈믹 러브 라이더스의 멜라니라는 노래를 떠올리게하는 멜란자네라는 단어도 야채 이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은가.






어제 만들어 먹은 멜란자네. 모짜렐라를 이미 아래층 가지 사이사이에 너무 많이 써버린탓에 맨 마지막에 덮어버릴 모짜렐라가 모자랐다.

이 음식을 만들때 가장 손이 많이 가는것은 기본적으로 가지를 굽는것인데. 소금을 뿌려놓고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를 조금 뿌려 기름에 살짝 굽는것.

가지가 구워지면 사이사이에 파르미지아노와 모짜렐라, 토마토 소스와 풀어진 계란을 순서대로 뿌리고 덮어주면 된다.

그래서 만들때마다 생각하는것이 이탈리아에는 올리브 오일에 구워져 이미 말랑말랑해진 가지 자체를 따로 팔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절여진 오이지를 파는것처럼, 동그랗게 차례대로 썰어서 엄마가 조물럭조물럭 참기름 양념만 하면 되는것처럼 말이다.



매번 느끼지만 가지를 굽는 과정만 생략된다면 좀 더 자주 만들어 먹을 수 있을텐데.

하지만 가지를 가지런히 동일한 굵기로 써는 솜씨가 늘어나고 리투아니아에 좀 더 양질의 모짜렐라가 생기고 

꼬졌다고 생각했던 구소련 가스 오븐에 익숙해지면서 이 음식을 만드는 속도도 맛도 나아지고 있다.



다음번엔 모짜렐라 바다에 가지가 겨우겨우 떠있는 느낌이 들도록 더 많은 모짜렐라를 사야겠다. 

계란도 두개 정도는 풀어서 끼얹어야겠다. 

그리고 좀 더 큰 오븐 용기를 사야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5.09.09 03:08




세상 어디에도 만두 없는 나라는 없을거다. 그래서 우리는 면요리만큼 만두를 사랑한다. 

형태와 내용물, 먹는 방법은 다르지만 어딜가나 만두라 부를 수 있는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외국여행 중 현지 마트를 방문 할 기회가 있거나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만두처럼 보이는 냉동식품을 사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밀가루 반죽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물음표로 남겨두고 말이다.

두부와 숙주 당면 김치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을 수는 없었지만 리투아니아 생활 초기부터 꾸준히 만들어 먹던것이 만두였다.

보통은 다진고기에 양파 정도만 넣었지만 언젠가부터 두부와 당면도 넣을 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한국처럼 간편하게 살 수 있는 만두피는 리투아니아에 없었으니

매번 반죽을 해서 병으로 밀어 컵으로 찍어 만두를 빚어야 했는대 양 계산을 잘못해서 만두속이라도 많이 만들어 놓으면 반죽을 밀어 만두속을 없애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만두속은 남겨서 동그랑땡으로 부쳐 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땐 그 생각을 못한건지 아니면 난 그냥 죽도록 만두가 좋았었나 보다.



작년부터인가 리투아니아에 나타난 냉동 만두피. 

사실 시중의 일반 마트에는 아직 판매되지 않고 식당의 거래처가 작년부터 수입하기 시작했다. 

제발 꾸준히 수요가 생겨서 오랫동안 판매되길 바란다.  

물론 이 만두피는 네모나서 동그랍게 접어 오므리는 우리나라 만두보다는 라비올리 같은것을 하기에 적합한 식감과 모양이다.

만두피가 워낙에 얇고 부드러워 조금만 오래 끓이면 쉽게 벌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밀가루 반죽의 부담없이 쉽게 만두를 만들 수 있게되서 어찌나 기쁜지!

봉지 하나에서 대략 만두 60개정도가 나오는데 빚어서 얼려놓고 필요할때마다 꺼내먹는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5.09.06 23:13



아이를 갖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임신 과정이나 아이 상태에 관한것이라기 보단 의외로 산후조리에 관련된것이었다.

아이를 낳으러 한국에 들어올것인지 리투아니아에 한국과 같은 산후조리원 문화가 있는지 산후조리는 누가 어떻게 해줄것인지에 관한것들이었는데.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리투아니아에는 특별한 산후조리 문화는 없다. 대다수가 이용하는 한국의 산후조리원도 이곳에선 일반적이지 않다.

요양원같은 시설은 있을 수 있지만 오로지 산후조리만을 위한 산모를 위한 전문적인 기관은 없다고 보면 된다.

산모와 신생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병원에선 보통 출산 후 3일 후 퇴원을 시킨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는 한달간의 출산휴가가 주어지고 아마도 그 기간동안 집에서 자연스럽게 산후조리가 이루어지지 않나 싶다.

주변의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서도 맞바람을 조심하라던가 무거운것을 들지말라는 조언외에는 별다른 주의사항을 듣지 못했다.



임신기간동안에도 그렇고 출산후에도 뭘 먹어야 할지는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태아에게 좋고 안좋고, 먹어도 되는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대한 고민은 둘째치고 최소한 끼니를 거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것이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면 내 냉장고가 아닌 엄마의 냉장고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던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항상 밥솥에 밥은 가득한데 보장된 반찬은 계란 후라이뿐. 가끔 굽는 김과 실리콘 냄비에 데워서 간장 뿌려먹는 두부. 

찢은 양상치에 토마토 한개 몽당몽당 썰어 넣어서 기름을 두른것들이 주메뉴였던듯.

외국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살다보면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된장국을 밥없이 그냥 식전 수프 먹듯 떠먹게 되고 카레를 빵에 발라 먹기도 하며 남은 치킨 육수에 스파게티와 감자를 넣어 칼국수처럼 먹는다던가

아주 잘 익어서 거의 버터처럼 되어버린 아보카도를 밥에 짓이겨 먹기도 하며

따신 밥에 간장게장을 먹는게 아니라 각종 차가운 통조림 용품들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말이다.



산후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준비라면 내가 먹고 싶을지 모를 음식들과 다들 먹어야 한다고 이구동성 부르짖는 미역국을 끓여 냉동시키는것.

지프락 봉지에 생각보다 음식이 많이 들어가서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냉동실을 채울수 있었다. 냉장고가 초소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준비는 아주 유용했던것 같다. 출산에 임박해서 냉동실의 얼린 음식들을 보며 마음이 편해지곤 했으니.

타지에서 남편이외의 주변인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얼리기를 추천한다.

우선은 파에야용 후라이팬을 샀기도 했으니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섞은 파에야용 소프리토를 한 솥 끓였다. 

물을 부으면 수프로 먹을 수 있고 만두나 라비올리에 얹으면 멋진 소스가 되는 여러모로 아주 유용한 놈이다.



이것 역시 해동해서 크림을 넣으면 치킨 크림 수프가 될 것이고 고형카레를 넣으면 카레가 될 기특한 놈이다.

만두도 한 100개정도 빚었고 떨이로 파는 딸기 2킬로를 설탕과 섞어 얼려놓기도 했다.

 음식을 해서 얼린적은 만두를 빚거나 스파게티용 소스를 만들때 뿐이었는데 여러모로 자주 이용해야겠다.



스파게티 소스로 쓰거나 역시 물을 부어서 바로 수프를 끓일 수 있는 라구소스를 평소처럼 한 솥 끓여 얼렸다.

지금보고 있으니 고추장 불고기의 느낌이 나는데 고추장 안넣은 간장 불고기 같은것도 해서 얼리면 괜찮을것 같다.



이것은 출산당일에 만든 아스파라거스 리조토인데, 

비싼 아스파라거스가 3일후 병원에서 돌아왔을때 썩어있을걸 염려해서 진통의 시작과 함께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계속 육수를 보충해가면서 밥을 익히는 리조토, 진통이 오고 멈추는 시간이 물을 보충하고 밥을 휘젓는 타임과 교묘히 맞아들어가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봉지는 이미 먹고 한봉지가 남았는데 맛있긴 했지만 밥요리는 사실 그다지 얼릴게 못되는듯.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산후조리용 음식이라 생각해 미역국도 세 번 정도 큰 냄비에 끓였다.

지프락이 워낙에 작아보여 출산 이주전에 매일매일 끓여서 얼려놓자 생각했지만 

국그릇에 한끼양을 담아서 계산해보니 이렇게 꽉채워 얼리면 세끼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 될듯했다.

딴에는 냉동홍합도 넣고 소고기도 넣었지만 솔직히 별로 미역국맛을 느낄 수 없었다.  

 국간장이 없어서 인가. 맛이 날때까지 간장을 넣었다간 까만국이 될것 같고 소금도 별로 넣고 싶지 않아 그냥 먹기로 했다.

국자로 국을 퍼담으면서 남편에게 '부인이 사골국을 끓여 냉동실에 얼리기 시작하면 남편은 긴장해야한다'는 한국의 우스개소리를 알려주었다.

그럼 부인이 미역국을 끓여 얼리기 시작하면 출산에 임박했다는 소리인가.크크크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5.07.30 02:55






<빌니우스 출산 병원>


'아이를 어디에서 낳을거야?'

출산을 앞둔 임산부라면 누구나 듣게 되는 질문이겠지만 리투아니아에서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꽤나 한정되어있다.

한국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줄어들고 출산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고는하나 모르긴해도 출산 병원에 대한 선택권은 훨씬 폭넓을것이다.

300만여명의 인구가 사는 리투아니아에서, 인구 50만명 남짓의 미니 수도 빌니우스에서라면 어떨까.

국민 대다수가 한국의 보건소와 같은 국립 병원을 이용하는 이 곳, 빌니우스에서 무료로 출산을 할 수 있는 병원은 대략 3곳이다. 



출산을 1주일정도 앞두고 우리도 아이를 낳을 병원을 방문했다. 

방문이라고 해봤자 그냥 어디쯤인지 위치를 알아두려는것이지 출산전에 행정적으로 해야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에서 걸어서 15분정도, 빌니우스 중앙역 뒤편을 조용히 걷다보면 나오는 병원.

 사실 중앙역 뒷동네는 우범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평소에는 갈일이 거의 없는 동네인데 병원이 있는곳은 나무도 우거지고 

고요해서 살기 괜찮은 동네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9달동안 한달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받던 병원과 아이를 낳을 병원은 분리되어 있다.

진통이 시작되면 9달동안의 내 상태가 기록된 수첩과 출산 가방을 들고 출산이 가능한 세 병원중 한곳에 가면 되는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어디에서 낳겠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보통 이 세곳 

'티젠하우주 tyzenhauzų, 안타칼니오 Antakalnio, 산타리스(sh)키우 Santariškių.' 중 하나이다.

빌니우스를 큰 덩어리로 나눴을때 각각의 지역에서 접근이 용이한 거리에 위치한 병원들이다.



네이버에서 출산 관련 지식을 검색하다보면 자주 보이는 한국의 출산 관련 켜뮤니티나 카페처럼 리투아니아에도 육아관련 커뮤니티들이 있다.

구글 리투아니아에 '출산 병원' 키워드를 집어 넣으면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질문은

'어떤 병원에서 낳는게 가장 좋아요?' 와 '출산에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요?'.

첫번째 질문은 내가 생각할때 우문이고, 두번째 질문도 참으로 이상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병원들은 순수 출산에 관련된 비용은 청구하지 않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비스 좋은 개인 병원이나 값비싼 치료센터가 아닌 보건부 산하의 공짜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엄마들이 

출산과 관련된 병원 시설이나 의료진의 실력, 산후 관리에 관해 의문을 가지는것은 당연한일이다.

특히나 아직까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공산주의적 관습이나 사고방식들이 곳곳에 남아있을거라는 고정관념을 불식시키진 못한 공공기관이라면 말이다.



임신 기간동안 병원에서 제공하는 출산 교실에 참여했는데 임신중 음식 섭취나 신생아 예방 접종,신생아 돌보기와 관련된 다섯시간 남짓의 수업이었다.

소박하게 대여섯명의 임산부들이 의사와 옹기종기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식의 수업이었는데

마침 '어떤 병원을 추천하겠느냐'는 한 산모의 우문에 의사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한것이

'본인이 출산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졌다면 어느 병원이라도 적합할것이다' 였다.

지나치게 상대적이고 극단적인 대답일지 모르지만 저와 같은 질문에 더이상 이상적인 대답은 할 수 없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같은 병원에 관한 사람들의 의견은 천차만별이고

각자의 기질과 성격,평소의 사고방식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대처하고 기억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빌니우스 출산의 집 Vilniaus gimdymo namai>


병원로고와 조각. 아무리 봐도 아이를 낳는 병원임을 보여준다.

직장을 가진 여성이라면 임신 기간동안의 진료비와 출산 비용은 따로 들지 않음에도

출산 비용을 묻는 질문은 마치 뇌물처럼 혹은 감사치레로 환자가 의사에게 돈을 주는 관습이 일부 남아있기때문이다.

이들 출산 병원의 급여체계를 알지는 못하지만 의료진의 급여 수준은 분명 사설 병원 의사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다를것이다.

환자이기이전의 고객으로써 정해진 의료 서비스를 받고 많든 적든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는 사설 병원이 아닌

나라의 예산으로 경영되는 병원이니 의료의 질을 높이려면 우선 고임금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환자 스스로가 의사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것도 구소련 시절의 사고방식이고 

그러한 사고방식이 의료진의 사고방식도 과거에 머물게끔하는 악순환을 일으키는것같다.

그래서 일부 불안한 산모들은 출산 전에 미리 병원에 방문에서 아이를 낳을 의사와 미리 합의를 해놓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그냥 출산 당일 병원에 방문해서 처음 보는 의사들과 간호원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사실 나의 출산 당일은 출산 예정일을 하루 넘긴 날로써 이날도 출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담당 의사를 방문했어야 하는 날이었다.

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었고 너무 일찍 병원에 가지 말라는 조언을 상기시키며 '아 이 정도 진통은 내 생각보다 세지않은 진통이겠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진통이 와서 출산을 할것 같으니 방문하지 않겠다고 진료시간에 맞춰 담당의사에게 전화해서 알렸다.

진통간격과 진통시간을 얘기하니 항상 무뚝뚝하고 엄격하던 의사는 빨리 병원에 가지 않고 뭐하고 있냐뭐

 뭐랄까 굉장히 걱정스럽고 상기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리고 만약에 아이를 낳는다면 내일 꼭 전화해서 다음 방문 날짜를 잡자고 친절하게 얘기했다.




사실 9개월간의 진료에서 우리의 대화 패텬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불편한데도 없구요'

그럼 침대에 올라가서 배둘레를 쟤고 심장소리를 들려주고

다음번 소변검사나 피검사 용지를 주며 다음 진료 날짜를 잡는걸로 끝이 났다.

출산 직 후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를 받고 한 달 반후에 방문하는걸로 약속을 했다.



출산 전 병원에 방문했을때 내가 알고 싶었던것은 단 하나. 많은 입구가 있을텐데 헤매지 않고 어떤 입구로 빨리 들어가야 할까였다.

그리고 일주일후에 택시를 타고 바로 이 입구에 도착, 10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출산실에 들어섰다. 

출산까지 병원에서의 세시간 반의 시간, 9개월의 시간이 정말 휘리릭 하고 지나갔다고 느껴졌다.



자연분만후 보통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경우 3일정도 병원에 머물게 되고 퇴원을 시킨다.

원한다면 남편이 출산 과정에 참여 할 수 있다. 출산 전에 의대생들의 출산 과정 참여여부에 관해 묻고 서명하는 부분도 있다.

내 경우 남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 함께 했다. 세시간 내내 진통이 오는 순간 손을 잡아 주었고 물을 주거나 땀을 닦아주며 

가끔 의료진과 농담도 나누는등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번은 리투아니아의 티비 프로에서 남편의 출산 과정 참여에 관한 찬반 토론이 있었던적이 있다.

산모 스스로가 남편의 참여를 원치 않는 경우 체질적으로 약하거나 피를 두려워하는 남편들이 원치 않는 경우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경우 등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글쎄, 개개인의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남편의 참여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출산 후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 방에서 3일을 지냈다. 

거동이 불편하고 모든 새로운것에 적응하는것은 힘들었지만 뭔가 굉장히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쏭달쏭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 우리를 쳐다보는 남편.

짧고도 긴 터널을 무사하게 지나왔다는 안도감에 행복했던 3일이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