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3.21 <밤과 낮> 홍상수 (2007) (2)
  2. 2012.12.03 <호노카아 보이> 사나다 아츠시 (2009)
  3. 2012.11.12 <오! 수정> 홍상수 (2000)
Film2014.03.21 06:38



<밤과 낮>


<밤과 낮>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까지 이번달에 우연찮게 홍상수의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다.

수년간 인터넷 사이트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그의 영화들을 운좋게 놓치지 않았던것인데 

어쩌다보니 최신작인 <우리 선희>를 빼놓고 그의 모든 영화를 본 셈이 되었다.

매번 거기서 거기인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이 그 캐릭터들 사이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는 느낌을 준다는것은 퍽이나 웃기다.

예를 들어 잠들어 있는 유정(박은혜)의 발가락을 빨다 핀잔을 듣는 김성남(김영호)의 모습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이 이응경의 발가락을 빠는 장면이 오버랩되는것처럼

 어떤 지점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느냐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 따위는 없지만 혹시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머릿속에 따끈하게 남은 전작의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현재 감상중인 영화의 캐릭터를 대입시켜 몰입하는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들처럼 한때는 첫 경험을 갈구했고 철없는 연애를 경험했으며 

어쩌다 결혼을 해서 이제는 연애가 아예 불법이 되어버린 관객 자신의 넋두리 같은것인지도 모른다.

대마초를 피우고 해외 도피를 감행한 화가 김성남은 홍상수의 캐릭터 중에서 나름 가장 극적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최초로 한국을 떠나 낭만의 도시 파리에 당도한 주인공에게 헌정된듯한

'김성남의 감정의 기록' 이라는 부제도 그럴듯하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지구 반바퀴를 돌아 도착한 파리의 낮과 서울의 밤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결국 딱 삼청동에서 북촌, 경주에서 통영, 신안에서 모항까지 만큼만 이동한 느낌이 든다.

김성남의 독백을 들으면서 이 영화가 홍상수 식 로드 무비의 절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보았다.

영화속에서 김성남이 파리에 도착한 날짜가 8월 8월이다.

작년에 파리에 도착했던 날짜가 하루 빠른 8월 7일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신선하고 습도도 하나 없는' 파리의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영화 초반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날짜를 집어 넣는 장면이 잦다가 그 빈도는 점차 줄어들고

김성남 역시 신변의 문제를 잊고 점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밤새 국제전화를 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듯 괴로움을 토로하다 나중에는 아내에게 신음 소리를 요구한다던가 하는 장면 등등. 

 파리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파리 여행중에 인상적이었던 모습들을  감독도 포착해낸것같아 신기했다.

그렇게 포착된 특징들은 약간 엉뚱해보이면서도 재치있게 영화 중간중간에 배치되었다.

파리 시내 골목길 한켠에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이 흐른다. 분수대와 식수대도 유난히 많았던 파리. 

영화 <카페 드 플로르>와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물이 흐르는 거리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파리가 배경인 모든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일지도.

도시 환경 정화 차원에서 일까?

어딘가에서 흘려 나와 계속 길을 따라 흐르다가 다시 어딘가로 흘러 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것인가?

영화속에서는 파리의 청소부가 그 물로 똥을 쓸어내고 김성남이 종이배를 접어 그 물에 띄운다.

그 똥을 거기 일부러 가져다 놓은것일 수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것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이미 홍상수에 몹시 익숙해져서 그 단순한 장면도 의도적인 장치였겠거니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는것.

그런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를 장치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기분으로 그냥 지나가는 행인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해변의 여인>에서 옆으로 조깅하며 지나가던 여자들과 나중에 술을 마시게되는 주인공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

유럽 어떤 도시보다 거지가 많았던 파리.파리에는 이불과 박스를 들고 다니며 주택가에서 진지하게 거주하는 거지들이 많았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임대료를 적게 낸다고 참 좋은 나라라고 치켜 세우는 유학생이 있는 한편

다른 가난한 유학생에게 샌드위치를 얻어먹는 파리의 집없는 거지를 대비시키는 센스 같은것.

다른 여자들로 부터는 돈 안쓰고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유정이지만 거지와 대화를 나누고  샌드위치를 사다 준다.

옆에서는 여자들이 은근슬쩍 여자 욕을 하지만 그런 장면에 감동받는 남자를 대비 시킨다. 

여자가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남자.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항상 대조적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굴을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가 굴은 쳐다보기도 싫어한다고 기억하는것처럼

자신이 만든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몹시 이중적인 우리의 습성. 

둥지에서 떨어진 새는 우연히 성남의 어깨에 부딪혀 살아남아 성남은 마치 자신이 새를 구한것처럼 느끼지만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혀 도자기가 깨지자 우연히 그렇게 깨질 수 없다고 온갖 욕을 해대며 몰아붙이는 습성 같은것.

한 두세번 다시 보면 모르고 놓친 장면이 아주 많을 것 같아 꼭 다시 보고 싶은 재밌는 영화였다.

2주라는 시간은 몇몇 파리의 명소들을 서두르지 않고 방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내 관심 위주로 짜여진 여행이 아니어서 가보지 못한곳도 참 많았다.

오르세 미술관도 그렇고 빌라 사보이 같은 르 코르뷔지에 관련 건축물들이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유정의 말처럼  오르세 미술관의 옥상 레스토랑의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오르세 미술관에 가봐야겠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앞에 서면 파랑 봉다리에 성경책을 넣어서 모텔을 빠져나오는 성남의 모습이 생각날거다.


<우리 선희> 리뷰 보러가기

<오!수정> 리뷰 보러가기

<자유의 언덕> 리뷰 보러가기

<북촌방향> 리뷰 보러가기

<다른 나라에서> 리뷰 보러가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생활의 발견> 리뷰 보러가기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2.12.03 23:44

 

 

<호노카아 보이>속의 정지된 마을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눈에 무뎌진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첫눈은 항상 누구에게나 상징적인가보다.

'오늘 첫눈이 내렸다'라는 평서문을 머릿속에 담고 시작하는 하루.

반쪽짜리 식빵 네 조각을 펴놓고 땅콩잼 한층 딸기잼 한층 땅콩잼 한층을 발라 우유와 먹었다.

여기엔 내가 좋아하는 땅콩잼과 포도잼이 세로로 길게 섞인 그 스트라이프 잼이 없다.

사실 작년에 한국에 갔을때 그 잼을 사오려했지만 막상 서울에서 한번 먹고나니 너무 시시해보였다.

내가 그 잼을 리투아니아까지 배달해 왔을때 느낄 만족감이 그리 가치있어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 별것아닌 만족감을 충족시키는것은 어떻게 보면 그 물건을 과대평가하는것은 아닐까.

태어난곳에서 떠나와 다른 세상에 정착해서 살아간다는것.

철저한 계획에 의한 이민으로 해외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고.

우연처럼 흘러들어왔다가 돌아갈 기회를 놓친사람들이 있을것이고. 

중요한것은 인생이란것이 칼로 탁하고 토막을내서 1막2막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물건은 결코 아니라는것.

어떤 동기들에 일정량의 우연과 필연이 결합되어 인생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런 인생과 그 속의 일상들을 미니멀하게 최소한의 시나리오로 조용하게 풀어가는 영화들이 좋다.

우스운 습관들을 장난꾸러기처럼 의미없이 나열하고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자기만의 단어가 있는 주인공들.

혼자있는것에 익숙하고  친구가 필요한것같지 않아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음악으로 치면 yo la tengo나 slowdive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들.

<천국보다 낯선>의 에바나 <반칙왕>의 임대호같은 친구들.

나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행위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내어서 더 많은 인생의 동기동창을 만들기위함이다.

 

내년이면 이곳에서의 생활도 5년째로 접어든다.

그래서 유독 외국에서의 생활을 그린 영화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우리나라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해외생활이란 아직까지 그저 너무 로맨틱하고 화려하기만하다.

본질을 보여주는데 서툴다고 해야할까.

(지난번에 홍상수의 밤과낮을 끝까지 보지 않은것은 그래서 너무 후회된다. 그의 눈에 비춰진 파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행을 다니거나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거나 으례 여유로운 사람일거라는 편견이나 일종의 피해의식같은게 있는걸까.

영화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을 접하기란 쉽지않다.

해외생활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그 생활에 대한 암묵적인 로망으로 가득차있다고 할까? 

몇몇 일본영화들에서 아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그들의 경제수준은 둘째치고라도

카피와 응용, 자기화와 토착화에 능한 일본 사람들이니 뭐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감성이 우리의 그것보다 세련된것은 아닐까.

 

 

<카모메 식당>의 헬싱키나 <냉정과 열정사이>의 이탈리아.

북유럽스타일과 '로맨스인 유럽'을 기본 골격으로 했다고는 해도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장면와 내러티브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마치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처럼.

그게 혹시 해외에서 오래 살아 본 감독이 찍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감독이 찍은 영화의 차이라면 더이상 할말은 없다.

어쩌면 감독의 로망을 내 로망인척 감정이입하며 봐야하는 영화가 불편하고 싫은건지도.

 

운좋게 보게된 영화 <호노카아 보이>

한국어로는 <하와이언 레시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하와이에 머물며 소일하는 일본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민하고 불평불만많은 여자친구역으로 짤막하게 아오이유우가 출연한다.

극중 등장인물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등장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별이 반짝이고 달무지개가 뜨는 보석같은 해변으로 장시간을 날아 하와이까지 여행을 오지만

얼굴이 예쁘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그녀의 마음과 표정은 정말 화산처럼 말라 비틀어진 상태이다.

여행객의 대부분은 지겹도록 똑같은 모토로 여행을 떠난다.

화산같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토대로 떠나오지만 결국은 화산만보고 돌아온다.

그 내면의 일상성을 버리지 못하고 저 아오이 유우처럼 불편함과 단조로움만 불평하다 여행을 망치는것.

산이 큰것도 죄고 길이 하나뿐인데 왜 이렇게 길을 헤매냐고 몰아붙이는것도 바로 여행자의 역설이다.

여행후에 여자친구와 헤어진 레오는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동네영화관 영사실 보조로 살아간다.

 

 

빌니우스에 살다보면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는 이곳에서 느끼는 이 정적이 과연 정당한것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게된다.

조금 작은 도시로 가면 빌니우스는 상대적으로 대도시같다.

주말을 여름농장에서 보내고 그 조그만 도시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급 피로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에게는 시골같은 그 도시가 아주머니에게는 문명으로의 귀환같은것인거다.

고요함이란 그렇게도 상대적인것이다.

그 지독한 정적을 레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서술해 나간다.

 

 

심지어는 어딜가도 누구에게도 나란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낯설은 상황들에 자연스럽게 대처해나가는 레오의 담담한 나레이션은

뭐랄까 비이 할머니가 양배추롤에 끼얹던 말갛고 담백한 스톡같이 들렸다고나 할까?

영화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정지된 컷들.

사용되지 않은채 그저 싸여있는것만 같은 일련의 물건들.

파도치는 바다.

사람들이 염원하는 달무지개.

많은것이 필요한 삶을 사는것은 피곤한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은 그냥 물건일뿐 그리고 자연일뿐.

 

 

하지만 그러한 정적속에서도 누군가의 일상은 세상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더이상 팝콘 기계 옆에 앉아서 낮잠을 잘 수 없게된 할아버지와

안마기를 차고 손님을 기다릴 수 없게 된 매표원의 일상이란것이 존재하고 있더라.

 

 

우연히 밀가루 배달을 왔다가 비이 할머니에게서 점심을 대접받는 레오.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다는 레오의 말에 적적하게 사는 할머니는 매일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호의를 배푼다.

매일매일 정성스레 차려진 할머니의 점심을 먹고  사진 한장씩을 남기는 레오.

그래도 인스턴트 라면으로 가득한 소포를 받는 기쁨은 그것과는 또 다른 가치이다.

이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너무 슬프게 보인다.

폴라로이드와 비디오카메라는 왠지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일을 굳이 잡아두려는 미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 보여서 싫더라.

 

 

 유일하게 요리과정을 발랄하게 보여주는 이 양배추롤은 리투아니아식 양배추 롤과도 기본적인 레시피는 똑같은것 같다.

어떤 양배추 잎사귀는 마치 배추잎처럼 보이더라.

양배추가 무척 얖고 크고 초록빛이 나는게 훨씬 더 싶게 롤을 만들 수 있게 보인다는것.

근데 마요네즈에 크림까지 끼얹는것은 좀 많이 느끼할것 같고

리투아니아에서는 마요네즈대신 케찹을 넣어서 빨간 국물로 만들어 내는 때도 있다.

사실 일본의 여러음식들이 그렇지만 특히 카레나 돈카츠, 고로케 같은 요리들은 전부 기존의 외국요리를 응용해서 만든것인데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일종의 카레 컴플렉스 같은게 있는것같다.

영화 <텐텐>에서도 그렇지만 항상 카레에 망고잼이나 망고 처트니 같은것을 첨가해야한다는것을 강조한단 말이지.

잼이나 처트니 같은것은 또 얼마나 아시아적이지 않은것인데 말이다.

 

 

하와이에 정착한 일본 이민자들의 고요하지만 외롭고 적적하나 달달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한번 볼까말까한 달무지개를 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 오는 사람들.

페넬로페 크루즈에 안달하고 자신의 성적 판타지에 관대한 어느 할아버지의

병상에 누운 부인을 바라보고 앉은 뒷모습에서도

댓가없이 매일매일 진수성찬을 차리지만 질투에 불타 땅콩을 다지는 할머니에게서도

얻어지는 결론은 사람은 결국 다 똑같다는것.

단지 우리가 개개인에게 그들이 그들답기를 항상 강요하는것일뿐.

하지만 그들다워야 한다는것의 정의와 그 강요의 기준과 이유는 타당하지 않을때가 많다.

게다가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라는것은 때로는 본질과 너무 동떨어져있지 않은가.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2.11.12 03:47

 

 

영화 <오! 수정>을 다시 보았다.

영화가 개봉했을때 보고 다시 본게 처음이니 거의 12년만이네.

영화보는 틈틈이 홍상수의 또 다른 영화인 <북촌방향>을 떠올렸다.

거의 십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이지만

두 영화를 잘 편집해서 하나의 영화로 합쳐놓아도 보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것 같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으면 모르는 영화 두 세편을 새로이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는 감독.

그의 개봉작을 때맞춰 못봐도 별로 조바심 안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그만큼 세월을 타지 않기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끝자락에 앉은 사람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코아아트홀에서도 가장 작은 관에서나 봐야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는 영화가

홍상수 영화라는 의견에 누가 뭐 반대할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것은 어떤 이들은 그런 영화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즐겨 본다는것.

  워낙에 다작을 하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목숨걸고 관객을 기대하는 감독같지 않아서 부담이 적다.

흥행하는 영화를 볼땐 결과적으로 그 영화가 나한테 재미있는 영화인가와는 상관없이

남이 보는 영화를 나도 본다는것에 대해 우선 만족하려는 심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계속 실패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를 볼땐 관객들도 그들만큼 불안한 법이고.

개인적으로 홍상수나 김기덕의 영화는 감독컷으로 캐스팅비화나 촬영비화같은것을 곁들여서 한정판으로 내면 좋을것 같은데.

특히 이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이은주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였구나.

홍상수의 영화를 아무리 더봐도 이 영화만큼 노골적이고 응큼했었던 영화는 없었던것 같다.

스크린 데뷔작에서 이만큼의 노출을 감행할 수 있었을땐 이은주라는 배우도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그냥 제작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하지만 <은교>의 김고은도 그렇고 그런 연기를 하라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것 같다.

뭐 그런연기를 했을때 신인상을 가져가는것도 불문율 같고.

아무튼 이은주에게서는 또래 배우들이 가진 발랄함이나 상큼함보다 항상 새침함과 우울함이 강조되었던것도 같고

그래서 신인 여자 배우로써는 약간 다른 길을 가게 되었던것도 같다.

위 장면은 정보석의 외제차를 타고 가면서 천장 창문을 열어주자

'나 어렸을때 엄마아빠랑 김포공항 다니면서 저 위로 얼굴내밀고 막 그랬거든요. 그땐 우리가 잘 살았었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드라마 불새에서 갑자기 가난해져서 다른 삶을 살아가야했던 그녀와 오버랩되면서

무척이나 그럴듯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이은주가 연기했던 양수정이라는 캐릭터로부터 홍상수의 여자 캐릭터는 정립된것처럼 보인다.

송선미든 고현정이든 김보경이든 코트를 입든 야상점퍼를 입든 무용을 하든 작곡을 하든

그녀들의 취한 얼굴, 방바닥을 손으로 짚고 취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런 모습들.

애타는 사람을 전화기 저편에 세워놓고 무심하게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뻔뻔한 수정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없는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의도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들 각자가 원하는것이 있고 그것이 상대의 목적과 부합할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자기 본능에 충실한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동안 누군가는 뜨끔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속에서의 시간은 얽히고 섥혀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진짜 복잡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산 케이블카가 멈춘 시점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것.

그렇다고해도 장소와 시간의 배열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것도 아니다.

편집실에서 수정과 영수는 서로에게 그렇고 그런 호의를 보이고

수정은 저런 얘기를 뭐하러하지 싶은 자신의 성경험까지 솔직하게 풀어놓는데 나중에 정보석이 합류하고.

수정에게 그림을 보러 가자는 영수와 화랑을 나와서 경복궁 참 작다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저만치 떨어져있고.

화랑을 나와서 재훈이 운전기사한테 밥먹으라고 돈주는 장면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부유한 재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재훈은 영수에게 수정의 이름을 물어보고, 수정은 재훈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것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재훈은 수정이 자신의 장갑을 찾은 우연이 필연같기만 하고 기억력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혈액형 물어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그것들이 일사천리로 그 누구의 밤과 낮도 아닌 불특정다수의 습관들로 쭉쭉 나열된다.

 

 

누군가는 항상 안절부절해한다.

누군가는 항상 그걸 모르는척 한다.

그 누군가는 또 모르는척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절부절해한다.

누구도 지지 않는 경기.

우이동에 좋은 호텔을 알아요 라고 말해도

어머 이 남자가 나랑 말고도 호텔을 많이 다녀봤나봐 라며 섭섭한 뉘앙스를 풍길 여자가 여기엔 없다.

 

 

-활짝 웃어봐요

-뭐요? 제가 뭔데요?

 

화면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저 막걸리는 왠지 너무 달콤할것 같다.

벼름박에 한가득 적혀진 낙서와 낮은 천장.

언젠가 우리도 머물렀던곳같은 흑백화면속 고갈비집.

살아서 흑백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우는 나름 행운이었겠다 싶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수정이 탄 남산 케이블카가 공중에 매달려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에 붕 뜬 모두의 감정들처럼.

케이블카가 작동되면서 뜨는 자막

'짝만 찾으면 만사 형통'

티비 프로그램 <짝>의 '둘은 통했다' 라는 나레이션이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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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