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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9 Vilnius 32_거리음악축제와 에릭 사티 (2)
Vilnius Chronicle2016.06.09 08:00





지난 5월의 셋째주 토요일.  매년 5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빌니우스의 큰 행사, 거리 음악 축제가 있었다. 언젠가 소개했던 리투아니아 노래의 작곡자인 가수 안드리우스 마몬토바스의 (http://www.ashland11.com/343)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축제로 5월의 어느 토요일은 빌니우스 구시가지 곳곳이 음악으로 가득해진다.  혼자 우두커니 서서 리코더를 연주하는 초등학생도 있고 큰 스피커며 앰프를 대동하고 유명 락 넘버들을 카피하는 젊은 아이들도 있고 레스토랑측이 마련한 장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멋부리며 디제잉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카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까지 아주 다채롭다. 두말할것도 없이 새벽까지 영업하는 클럽이나 펍들은 이 축제를 위해 특별 공연을 마련한다. 그런데 이날은 거의 항상 비가 온다. 아주 큰 비가 오는것은 아니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비를 뿌리고 오후까지 흐릿하다가 저녁이 되어가는 무렵에 해가 나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 시기의 빌니우스는 오후 10시까지 환해서 그렇게 비가 내리고 멈추고 해가 나는 과정을 지켜보는것에서 조급함을 느낄 필요는없다. 그렇게 매년 날씨가 흐린것을 감안하면 일주일을 앞당기거나 뒤로 늦춰도 될것 같은데 왜인지 축제시기는  변경되지 않는다. 이 거리음악축제를 전후로 일주일은 날씨가 또 항상 좋다.  금요일밤의 숙취를 풀고 한나절 잠을 자고 일어나 비개인 오후에  음악이 가득한 구시가지로 느릿느릿 모여드는것이 모든이들에게는 전통이 된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도 비를 탓하지 않는다.






그렇게 올해에도 어김없이 비가 왔고 우리가 집을 나선 5시 경에 해가 나기 시작했다. 집을 나서서 구시가지 중심까지 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는 작은 놀이터에 일찌감치 자리잡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놀이터 앞에는 근처 수제 햄버거집이 내다 놓은 테이블들과  간편하게 맥주를 서비스할 수 있는 햄버거집의 맥주바가 있었다. 그들은 편안하게 맥주를 마시는 보장된 관중을 지닌 통기타 트리오였다. 그들이 연주하는 착한 가사의 착한(?) 음악이 내 귀를 사로잡지는 않았다. 내 눈에 띈것은 잔디에 놓인 기타들과 나무에 거꾸로 걸린 우산이었다. 그런데 햇살아래 여유롭게 늘어져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왠지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잔디 위의 기타들은 오히려 비에 축축해진 잔디에 놓여진채 되려 젖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거꾸로 매달린 우산에는 왠지 나무에 내린 비가 떨어져 고일것만 같았다. 물잔이 얹어진 마그리뜨의 우산이 떠올랐다. 그들을 비추는 햇살과 그곳에 투영된 그림자들에서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았다. 





거리음악축제의 날에 덩그러니 매달린 검은 우산을 보고 떠오른것은 에릭 사티였다. 장마철을 이겨내고 꾸덕꾸덕해진 장판처럼 고집스럽고, 벽에 갇힌 검은 고양이 처럼 그로테스크하고 뭔가 흉흉한 그의 음악은 물론이었다. 항상 똑같은 검은 옷을 입고 다녔고 비가 오면 우산이 젖을까 코트속에 자신의 우산을 감추고 오히려 비를 맞고 다녔다는 괴짜 사티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다들 자신들의 소중한 기타를 챙겨서 헐레벌떡 파라솔이 놓인 테이블로 몸을 감추고 이 우산은 왠지 그냥 저렇게 대롱대롱 걸려서 내팽겨져서는 하늘이 토해내는 비를 전부 받아내야할 운명 같았다.  에릭 사티의 코트속에 숨겨진채 본분을 다할 수 없었던 우산들과 저렇게 거꾸로 매달려서 처량하게 바람에 흔들거리는 우산 모두 왠지 누군가의 손에 잡히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추락하는 빗방울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심란했다. 







세시간정도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도 우산은 여전히 외롭게 걸려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던 이들도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쓰임새가 없어 곧잘 잊고 마는 우산, 비가 왔어도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누군가의 우산. 우리가 잊은채 여기저기 놔두고 다니는 숱한 우산들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내가 지금까지 잃어버린 우산은 몇개이며 난 지금까지 몇개의 우산을 주워왔을까. 







가끔 두들겨보는 사티의 짐노페디. 3개의 짐노페디중 난 두번째가 가장 좋다. 낭만적이고 고요하고 서정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곡이고 이 곡이 비지엠으로 쓰이는 상황들을 보면 거의 낭만을 극대화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독하게 죽은 사티의 인생과 여타 다른 그의 곡들을 떠올려보면 이 곡은 오히려 우울과 권태로 충만한곡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망상인지 사티의 망상인지 항상 묻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문득 사티야말로 슈게이징의 창시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