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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07 이별한 카페 (2)
Cafe2018.09.07 07:00

오래 전에 이곳에서 커피 마신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http://ashland.tistory.com/385). 이곳은 나에게 겨울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이었다. 이곳의 계절은 겨울과 겨울이 아닌 것 둘이다. 그것은 어쩌면 모두가 다 싫어해도 나는 좋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유치한 과장인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의 겨울은 지나간다기 보다는 잠깐 움츠러들었고 나머지 계절들은 제 스스로 찾아온다기 보다는 간곡히 초청을 해야만 겨우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 겨울 부츠와 여름 샌들이 오래된 모래알을 교환하며 좁은 신발장에서 자리를 바꾸듯, 카페의 테이블도 창고 밖으로 빠져나오고 다시 돌아가는 시기를 맞이한다. 결국 오고야마는 겨울을 싫은 척 하면서도 가슴 깊이 안게 되지만 이 카페에 겨울이 찾아오면 늘 조금은 우울해졌다. 이 거리를 걸을때면 이 정도면 충분히 따뜻해진거겠지 라는 조급한 생각과 함께 늘 저 깊숙한 마당을 훔쳐보곤 했다. 이곳에 테이블이 놓이면 비로소 겨울도 잠깐 비껴난 느낌이 들었다. 반대로 테이블이 자취를 감추면 오히려 그제서야 여름을 체념할 수 있었다. 이곳의 탁자들은 습관적으로 시즌을 맞는 다른 카페의 그것과는 좀 달랐다. 스스로 걸어나와 자신의 앞마당에서 온 몸을 늘어뜨려 햇볕을 즐기고선 더 이상 필요 없다 생각되면 미련없이 사라지던 것. 난 이곳의 커피나 음식이 좋았다기보단 신발 아래를 스치는 바닥 타일 사이의 이끼, 함께 오르자고 눈길을 잡아끌던 담쟁이 덩굴, 울룩불룩한 돌마당을 조심스레 운전해서 빠져나가던 차량들, 호기심에 들어와서는 머뭇거리다 되돌아가는 사람들, 익숙하게 들어와 담뱃불을 붙이고 천장 가득 연기를 풀어놓고 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탁자 위의 찻잔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좋았다. 아이는 오래된 건물의 더 깊숙한 마당까지 들어가 한참을 뛰어다니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탁자들은 또 다른 여름을 즐기려는지 매년 긴 휴가를 떠나곤 했다. 그림자만 고스란히 남겨두고 탁자가 없다. 내게 주어진 도시의 여름은 턱없이 짧은데 이들은 겨우내 쌓인 먼지를 다 털어내버리자마자 야속하게 한 달 가까이 문을 닫고 휴가를 즐기러갔다. 그들이 느지막히 돌아오고 나면 아침은 서서히 겨울의 냄새를 흘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또 다음해를 기약하며 그들은 또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새학기, 9월이 다가와도 어쩐지 등장하지 않던 탁자와 의자들. 

그리고 이 카페는 그렇게 문을 닫았다. 왜일까. 이 날 나는 근처의 새로 연 카페들을 기계적으로 서성거리며 커피 세 잔을 언거푸 마셨다. 오랜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홧김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드라마 속 풍경은 어쩌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조차 들었던 날. 저 마당의 햇살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곳에 무엇이 생기든 계속 기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 잔과 스푼 따위가 바뀔뿐이겠지. 

이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이곳의 내부는 겨울 그 자체였다. 찻잔과 커피가 가구 같은 곳. 커피콩과 초콜릿, 생강쿠키상자가 먼지처럼 쌓여 있는 곳. 목재가구는 오히려 카펫 같고 커튼 같고 벽난로 같다. 어깨를 부딪히며 대화에 열중하던 여행자들로 빼곡했던 다르질링의 호스텔 카페처럼. 이곳에 들어서면 왠지 한참동안 서서 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돌아볼 정도의 큰 소리를 내며 신발에 묻은 눈을 털어내야 할 것 같다.  곧 이어 코트를 걸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그렇게 다 털어냈다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도 조금 후면 마룻바닥에는 녹은 눈이 만들어낸 신발 자국이 남겠지. 겨울은 다 녹아버리는데 난 왜 끝끝내 남는것은 겨울뿐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걸까.  

이곳엔 궁륭이 남아 있다. 이곳에 생기는 가게들이 몇번 바뀌어도 아마 내부 구조가 바뀌는 일은 없을거다. 

갈때마다 한 장 두 장 찍어 놓은 사진들. 남는게 사진이라는 것은 사람을 찍을 때나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뭔가 리빙스턴 경이나 제임스 힐튼 같은 사람적 사람들이 수집한 찻잎을 모셔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공간.

카페의 모든것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 자리.

난 단 한 번 딱 저 끝까지 가봤다. 

시작은 늘 

때로는

가끔은

때로는

가끔은

때로는

가끔은

그리고 무수했던 커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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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