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nius Chronicle2016.02.03 19:59



빌니우스  시내를 걷다 보면 어디에서든 마주 칠 수있는 신문 가판대 Lietuvos의 spauda.  리투아니아어로는 이런 신문 가판대를 가리켜 키오스카스 (Kioskas) 혹은  키오스켈리스 (Kioskelis) 라고 부른다 . 키오스크 라는 단어는 여러 언어에서 광범위하게 쓰이지 만  리투아니아어에서는  일부  남성 명사가  -as 로 끝나는 것을 감안하여  변형시켜 kiosk+as 와 같이 키오스카스로 사용 하는것예를 들어 브래드 피트 (Brad Pitt ) 의 이름을 리투아니아식 으로 바꿔야한다면 브래드 +as / 피트+as 로 브래다스 피타스라고 적게되는데 브래드 피트를 주어가 아닌 다른 문장 성분으로 사용해야 할 때 -as 형태에서 -o, -UI, -a, -u, -ame  어미 를 붙여 격변화를시켜 준다. 



이런 신문 가판대는 주로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 발견 할 수있다 .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보통 이곳에서 버스 카드를 충전하고 각종


 공과금 지불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 , 자잘한  군것질을 비롯하여 따끈한 커피를 구입하기도한다



꼭 버스 정거장 근처가 아니더라도 인파가 몰리는 구시 가지 내에서도 종종 발견 할 수에있다. 신문 가판대를 오징어도 아닌 쭈구미로 만들어 버리는이 바로크 식 교회는 성 카지 미에로 교회 SV. kazimiero bažnyčia (st.casimir). 빌니우스를 방문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들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직 리투아니아 화폐 인 리 타스를 사용 할 무렵 식당에는 항상 거스름 돈이 부족해서 은행에서 정기적으로 동전을 교환해서 쓰곤했다. 그런데 10 센트 20 센트의 동전들과 달리 1 센트 2 센트 같은 동전들은 화폐 가치가 거의없고 (유로화가 도입 된 지금 가장 작은 1 센트를 리타 스로 컨버트하면 3.45 센트) 1 센트 10 개를 모아도 10 센트로는 할것이별로 없으니 사람들은 거스름 돈으로 발생하는 그런 센트들을 챙기지 않고 팁으로 남기곤 했었는데 그 작은 센트들을 처치하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한 꾸러미를 모아도 얼마되지 않는 그 동전들을 은행에 가서 바꾸려면 역설적으로 바꿀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했던 것. 그런데 직원 혼자서 하루 온 종일 좁은 공간에 앉아 손님을 상대하는 이런 키오스크 같은 경우 혹시 거슬러 줄 돈이 모자라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집에서 식당으로가는 길목의 대여섯 개의 키오스크에 센트 꾸러미를 가져다주고 돈을 바꾼 적이있다. 그러므로 이런 신문 가판대에서는 가능하면 종이 돈 대신 지갑을 탈탈 털어 동전을 사용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지갑은 가벼워 질 것이고 직원은 거슬러 줄 돈이 없어 난처한 상황에 직면 할 경우가 줄어들게 될테 니. 



작년 즈음에  이 신문 가판대들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 식품 진열 공간도 훨씬 늘어 났고 쵸코바 나 과자류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류도  팔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가판대 외부에 프린트 된 레트로 스타일의 흑백 사진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은 총 5 개의 이미지인데 아마 더 이상의 다른 이미지는 없는듯하다. 흑백 사진 하단에 커피 이미지가 있고 '1944 년부터 리투아니아를 깨운다'라는 공통된 문구와 각각의 사진에 어울리는 캐치 프레이즈가 추가되어있다. 신문 가판대하면 역시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아직 덜 깬 정신으로 몸을 추스 리며 일터로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미 침대 밖을 빠져 나온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했다는 승리감에 안도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 손에는 따끈한 커피가 다른 한 손에는 갓 발간 된 일간지나 즐겨 보는 잡지가 쥐어 져 있다면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손바닥만한 스마트 폰 하나면 굳이 거추장스럽게 종이를 넘기고 붙잡고 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서 더더욱이 신문 가판대가 이미지 쇄신 용으로 선택한 옛 사진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지키고있다. 변하는 것은 그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이 신문 가판대의 흑백 사진 전략은 그렇게 아직 제자리를 지키고있는 것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다가왔다. 리투아니아 인의 일상 생활에 깊숙히 파고 들어 그들 삶의 일부가되어 버린이 신문 가판대를 어린 아이의 모습 비롯하여 청년들, 첫사랑의 순간들에 융화시킨 것은 이미 그 시절을 산 사람들에게는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킬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옛 흑백 고전 영화를 볼 때의 희열처럼 그들이 겪지 못한 어떤 과거에 대한 동경 혹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이 순간들이 색깔을 잃게 될 먼 미래에서 현재의 모습을 반추 해 볼 여지도 준다. 



<Ištikimas įpročiams 습관에 대한 믿음>


사진 속 남자는 <대부 2>의 젊은 로버트 드 니로를 참 닮았다. 야망에 가득 찼지만 아직은 그저 평범한 얼굴로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하는 어느 가장이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일터를 향하는 중간에 담배와 신문을 사 들고 끽연하는 모습을 상상 해보았 다. 무엇을보고 웃고있는 걸까. 아침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를보고? 신문 가판대 근처에서 과일을 파는 아줌마, 아침부터 고주 망태가되어 널 부러져있는 술 주정 뱅이 혹은 엄마 손을 잡고 남자의 자전거 바퀴는 만지작 만지작 거리는 꼬마가 있었던 걸까. 이 사진은 왠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떠들썩 거리고있는 풍경의 커다란 사진 속의 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Pirmojo pasimatymo jaudulys 첫 데이트의 설레임>


설레임은 뭔가가 영원 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감정이다. 숱한 설레임을 경험하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소적 인 독백을 몇번 날리고 나면 아마 1.5 센티 정도 성장하는 것이 우리들 감정 일까. 하지만 감정은 무한대. 더 이상 그 깊이를 가늠하지 않을 때 그 영원함은 이만치 다가와있는 것인지도. 



<Pauzė- Muzikos dalis 정지, 음악의 일부>


콘서트의 리허설 중이었을 까. 모든 연주자들이 악기를 남겨두고 떠났을 때 홀연히 자리를 지키고있는 소녀는 무슨 생각을하고 있었 을까. 아 누군가가 돌아 오면서 나에게 차가운 음료 한 잔 건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악기를 가져 왔더라면 이렇게 무료하지 않았을 텐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의 <blow up>에 보면 포토 그래퍼인 주인공이 공원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 속에서 뭔가 수상 쩍임을 눈치 채고 일련의 사진들을 현상하고 확대해서 역 추적하며 사건을 파헤치는 데 실제로 어딘가를 응시하고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그들이 무엇을보고 있고 무슨 생각을하고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 참 자연스러운 일 이었구나 사뭇 깨닫게된다. 



<Augantis smalsumas 자라나는 호기심>


지금은 책을 맛보고 움켜 쥐고 싶어하는 아기이지만 언젠가 자라서는 책을 읽어달라고 나를 끌어 당기고 책을 사달라고 조를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글귀를 줄로 그을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책장에 편지를 써서 선물을 할 지도 모르겠다. 책을 베개 삼아 잠들지 모르며 평생 책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책을 들고있는 자연스러운 사진은 한 장 남겨야겠다고이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 며 머리를 맞대고 함께 책을 읽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Popietės potėpiai 오후의 붓질>


가장 마음에 드는 이미지이다. 햇살이 한 가득 내리 쬐는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고있는 청년들의 모습이 오래된 러시아 영화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 모스크바의 거리를 산책> 속의 낭만적 인 모스크바의 여름을 떠올리게한다을. 같은 유니폼을 입고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어쩌면 미술 시간에별로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레닌의 동상을 스케치하고있는지도 모를 일. 어쩌면 지루한 수학 시간에서 도망쳐 나와 구시 가지 광장을 스케치하고있는 미래의 미술 학도 였는지도. 분명한 것은 기나 긴 겨울, 회색 빛 터널을 뚫고 나와 햇살 아래에서 붓질을하면서 그들이 느꼈을 희열이다. 그들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면 왠지 그들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 듯, 파란 하늘에 이어폰을 대면 바람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광장 바닥에 온도계를 대면 용기내어 양말을 벗고 한 발짝 내 디뎌도 차갑지 않을만큼의 기분 좋은 온도를 가리킬 것도 같다. 물감 한 방울을 사진에 떨어 뜨리면 왠지 모든 피사체들이 자기 ​​색깔을 찾아 입고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좋은 사진이란 아마 이래야 하는거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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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9.14 06:23




 즐겨가는 빵집 건너편, 집에서 5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건물에 그려지고 있는 벽화. 현재 빌니우스의 우주피스라는 동네가 파리의 몽마르뜨처럼 빌니우스의 예술가의 동네라고 불리워지고 있지만 빌니우스 토박이들의 추억이 깃든 오래된 건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헐리고 있으며 그 자리에 세련되고 럭셔리한 주거공간들이 하나 둘 채워지며 땅값이 오르고 있는데





빌니우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진입로이자 저렴한 호스텔이 밀집해 있는 이 곳, 이따금 마약 투여용 주사들이 길바닥 한켠으로 쓸려나간 낙엽과 함께 뒹굴고 쓰레기통에서 뒤진 빈병을 유모차 한 가득 싣고 보드카 한병을 사기 위한 돈을 바꾸러 바삐 움직이는 중독자들이 보이는,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과 아무런 말도 유혹의 표정도 없이 구석진 거리에서 왔다 갔다 고객을 기다리며 방황하는 거리의 여인들을 만날 수 있는, 어쩌면 이것은 내가 운이 좋아 가까스로 비켜간 삶일지도,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메우고 있는 누군가의 삶일 뿐이라고 한없이 상대적이 되게하는, 빌니우스에서 가장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빌니우스의 이 구역은 어쩌면 날로 비싸지고 고급스러워지고 있는 우주피스의 지위를 대신 할 수 있지 않을까. 값싼 임대료에 매료된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이름있는 셰프들의 작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고 실리적인 힙스터들이 모이는 좁은 클럽들과 역전이라는 우범지대에 관용을 베풀 준비가 된 빌니우스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 곳,





이탈리아인 밀로의 벽화가 그려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Kauno 거리에 폴란드 벽화 예술가 SEPE & CHAZME 가 그리기 시작한 벽화. Corest fity. 기존에 보아오던 벽화들에 사용된 선명한 색깔들과는 다른 애매한 파스텔톤 페인트를 즐겨 사용하고왜인지 우울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http://sepeusz.blogspot.com

http://chazme718.blogspot.com




하지만 왜 벽 전체를 사용하지 않은것일까. 왠지 미완성의 느낌을 주는 이 그림들. 하지만 기존의 벽화들이 건물의 창문이나 굴뚝이나 하늘들을 벽화의 소재로 사용해 건물과 소통하는 벽화를 그리는것과 달리 이들은 그저 건물 외벽이라는 콘크리트 도화지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놓은 느낌이다.




펠리컨 부리 같은 마스크를 쓰고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던 중세 이탈리아의 의사들. 저 부리 끝에는 장미나 카네이션과 같은 마른 꽃이나 식초를 적신 스펀지, 박하 같은 허브들을 넣어 불쾌한 냄새를 최대한 덜 맡도록 했고 그런 허브들이 역병을 물리쳐 감염을 방지한다고 믿었다고 위키피디아에. 이것저것 연결짓기 좋아하는 나는 왜 굳이 저 마스크를 쓴 사람을 그렸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 이 건물 건너편 빵집이 100년전에는 약국 자리였다는 사실을 또 상기시키고.




아무튼 이 음울한 마스크의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음침한 이 거리의 시작에 몹시나 잘 어울리는듯 하다. 역병이 돌무렵 의사들이 입고 다니는 이 마스크 복장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미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다고.



우리 모두가 같은 얼굴을 가질 필요 없듯이 우리의 거리도 도시도 각자의 성격을 지녀가는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리의 예술들이 모든이들이 수긍할만한 일반성을 가지긴 힘들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개성과 누군가의 철학이 담긴 예술들이 거리의 성격을 바꾸고 도시의 외관을 형성하며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꿔 나간다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8.10 02:47



빌니우스 구시가지를 걷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바로 녹색 그물망으로 아랫부분이 꽁꽁 싸매어진 발코니이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건물 처마 밑의 거대한 고드름이 무서워서 인도로 걷더라도 긴장하게 되는 구시가지인데 

고드름말고도 또 다른 골칫거리가 바로 이 오래된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부속물들. 



땅아래에 이미 떨어져서 산산조각난 일부 콘크리트 조각을 보면 그 순간에 지나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예전에 우리집 베란다를 떠올리면 그곳엔 계절이 지나 더이상 필요없게 된 물건들을 넣어 놓을 수 있는 선반 같은것이 있었고

물 빠질 배수구가 있으니 호스를 끌어와 화초들에 흠뻑 물을 줄 수도 있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기능은 물론 첫번째로 중요한 기능이었을테고

하지만 베란다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서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던가 책을 읽는다던가 했던 한가진 기억은 없다.



요새 빌니우스에 새롭게 지어지는 대단위 주거단지들을 보면 베란다 면적이 훨씬 넓은 한국의 아파트 형태와 비슷한 건물들이 많다.

하지만 구시가지의 몇십년 혹은 백년이 넘었을지도 모르는 이런 건물들의 발코니는 한두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고

그 기능도 봄부터 여름까지 화분으로 치장하거나 자전거를 놓거나 자그마한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 위한 공간에 가깝다.

한마디로 날씨 화창하고 따뜻한 봄과 여름을 위한 공간.



심지어 대부분은 샷시도 없어서 겨울이 길고 추운 이곳에선 그 기본적인 기능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할때가 많다.

그러니 자연스레 커다란 발코니가 무용지물인것이다.



나라 전체가 한날 한시에 난방을 시작하고 끝내는 난방 시스템을 갖춘 이곳에서

오래된 건물과 샷시 없는 발코니는 단열 효과를 떨어뜨리니 비싼 난방비의 주요 원인인데.

그래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건물 전체를 단열하는 리노베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축 건물들이나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도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 경우 난방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난방 리노베이션이 안된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이라면 집이 춥고 따뜻하고와 상관없이 한달동안 집을 비우고 말고와는 상관없이

주택 면적에 해당하는 난방비를 의무적으로 지불해야한다.




이만하면 난방을 중단해도 상관없겠다 싶은 따뜻한 늦겨울에도 어쩔땐 난방이 지속될때가 있으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당연.

특히나 구시가지의 이런 옛 건축물들은 창문 길이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천장이 신축 건물보다 훨씬 높아서 난방비도 많이 든다.

하지만 빌니우스에 사는 동안 한번쯤은 이런 옛 건물에 살아볼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발코니 공사가 진행되기전까지는 안전상의 문제로 이렇게 그물로 싸매놓고는

콘크리트가 아닌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무너져가는 발코니는 물론 행인 뿐만아니라 아래층 발코니에서 일광욕 하는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다.

부서지는 발코니위에 서있는것도 물론 안락한 느낌은 아닐거다. 



이런 건물은 보면 알겠지만 도색도 새로하고 아주 정성들여 리노베이션된 구시가지의 건물인데 왠일인지 발코니 공사는 하지 않은듯.



같은 건물에 으례 발코니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도 아예 제거해버려서 없는 건물들도 많다.


아직까지 나무재질의 창틀인곳도 많다. 나도 살아봤지만 겨울엔 엄청 추울텐데.


 

요즘 같이 좋은 날씨의 빌니우스에서 평화롭게 앉아서 차가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발코니를 가졌다면

부서져가는 발코니여도 아마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기분좋은 미소를 흘릴 수 있는, 지나가는 나 역시도 그들의 망중한에 눈인사 할 수 있는 그런 아우라말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