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3.02.20 09:52

 

<투스카니의 태양>

 

언제나처럼 나는 주제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이 기나긴 일기를 시작하려한다.

 블로그의 유입로그를 들춰보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날들이 가끔씩 있다. 

지난 주말 같은 경우에는 유입 키워드의 대부분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알고보니 작가 김영하가 공중파 토크쇼에 출연한 것.  

전세계 20여개국중 리투아니아어로도 번역된 그의 소설이 있으니

하루키같은 글로벌 작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한국의 작가는 정말 김영하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것은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마치 뇌가 손가락 끝에 달린것처럼 글이 술술 써진다는 그의 말이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판타지와 현실로부터 얻은 영감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설득력있는 메세지까지 첨부해서 전달 할 수 있는 직업 마법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속에서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결말까지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능력과 통찰력.

 일관성없이 중구난방하는 주인공을 들여놔도 소설을 관통하는 일관성은 필수불가결한것이니 이들에게 요구되는것은

풍부한 상상력뿐만아니라 극도의 집중력인것이다.

 

 

근데 나는 사진을 업로드해놓고 멍하니 앉아서 거의 30분째 이 장면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손가락 끝에 뇌는 커녕 식욕을 촉진하는 혈자리가 빼곡히 박혀 자판을 두드릴때마다 음식 냄새가 흘러나오는것 같다.

중간에 갑자기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가 떠올라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를 검색해서 듣고 왔다.

그리고 왜 미야자키하야오가 갑자기 생각났지를 생각해내는데 다시 10분이 흘러갔다.

프란시스가 마르첼로를 찾아 포지타노에 도착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달릴때 경쾌하게 흐르는 노래와

케이팝 스타에서 노래 잘한 참가자들 심사평을 할때 희망차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 비슷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케이팝 스타에 나온 노래가 모노노케 히메 영화음악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음악을 찾으러 유튜브에 간거다.

이 빵점짜리 집중력과 본인의 생각을 역추적하는 쓰잘데기없는 집요함으로 대략 4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진 속 프란시스는 여전히 '브레마솔레'의 뒷마당에 앉아서 오후의 와인을 만끽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두고두고 곁에 둘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과정과 다름없다.

지금부터 서두르지 않고 죽을때까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100권을 모으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물론 고르는 책마다 매번 감동받는 기적이 일어나거나 정말 다독을 하지 않는 이상은 어쩌면 100권도 적은량은 아닌것 같다.

책 한권의 두께가 대략 2-3센티 정도라고 하면 100권의 책을 위한 공간은 140센티미터짜리 선반 하나 혹은 두개면 충분하겠다.

영화 얘기를 하자면 구체적으로 나만의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을 만들고 싶다.

그런 영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챙겨보고 까먹지 않을정도로 감상을 기록한 후에 피아노위에 쪼르륵 세워두고 싶다.

각기 다른 영화들의 주인공들을 끌어내서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그들을 좋아하는 '나'라는 관객을 매개로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 사랑해가는 과정을 상상한다.

얼마전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나에게 피로감을 주는 몹쓸 것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에게도 '힐링'이 필요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어떤식으로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문맥상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글들을 적어내려 가는것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보는것.

무엇보다도 '힐링'에 다급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런 영화들을 다시 한번 봐주는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을 나만의 콜렉션에 집어넣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투스카니의 태양>의 프란시스도 작가다. 학생을 가르치고 문학비평도 한다.

글을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비슷비슷한 길을 가는가보다.

자기 작품을 쓰고 누군가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며 남의 작품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글쓰기에 필요한 어떤 기술이 있고 훈련을 거쳐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는것이 미심쩍으면서도

그런 기술을 자신있게 전달할 수 있고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작가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한번 만나보고싶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이곳저곳을 떠돌며 정착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원하는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부 작가들의 삶.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해방되어 아무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듯한 그들의 삶.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 엄청난 성공에서 얻어지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안다.

돈과 물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구조에서 자정능력을 갖추고 순환하는 그런 독립된 삶이 분명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프란시스의 삶은 시간과 돈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토대위에서시작되고

마치 우연처럼 운명처럼 다가온듯한 그 새로운 삶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말랑한 심장으로 그는 토스카니의 호흡에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영화 속 투스카니의 풍경과 한적한 코르토나의 오래된 고택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런 장면은 시종일관 지지직거리며 내 동공에 촛점을 맞추려 애쓰는 시력 검사기 속의 풍경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스포이드로 점을 찍어놓은듯 촘촘이 피어있는 붉은 양귀비 꽃과 초코송이처럼 줄지어 서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마치 이 험난한 인생에서 너희를 구제해 줄 수 있는것은 우리뿐이라고 말하는듯 도도하고 새초롬하다.

구불구불 엉켜있는 코르토나의 좁은 골목사이로 막간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던 식당 종업원이 떠오른다.

2주간의 이탈리아의 여행에서도 코르토나를 피렌체나 베네치아보다도 우선순위에 두었었다.

그만큼 영화는 인상적이었고 한번의 기차 여행으로 이 언덕위의 소도시에 닿을 수 있다는 현실은 더욱 감격스러웠다.

여행을 다녀온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영화를 다시 보고나니 투스카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하나의 풍경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많은 자잘하고 구체적인 풍경들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 핀 남편때문에 이혼을 하지만 캘리포니아 이혼법에 따라 오히려 자기 집을 위자료로 주고 마는 프란시스.

평생 죽을때까지 사랑하겠다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단 한순간도 사랑한적 없다고 말할때의 절망감을 아냐고 묻는 프란시스.

지은 죄를 봐서는 에이 그깟 집 먹고 떨어져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녀의 말처럼 'it's so surreal'이다.

가구와 집기들을 전부 내버려두고 책이 담긴 종이상자와 파란색 유리병만 달랑 들고 나와

각기 다른 절망에 허덕이는 세입자로 가득한 허름한 임대아파트에 잠시 새 둥지를 튼다.

그리고 게이 커플들과 함께 떠난 투스카니 투어에서

그녀가'브레마솔레' (태양을 갈망하다)라는 이름의 오래된 집을 충동적으로 구입할때까지

프란시스는 길을 잘못들어서 여기저기 퍼덕거리며 부딪히는 비둘기처럼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이혼 후 좌절상태에 놓인 프란시스는 자연스러운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은 마치 다양한 형태의 문학적 언어로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는 그들에게서 삶의 영감을 얻는다.

때로는 분수대에 뛰어들어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을 재연하는 이탈리아인 캐서린의 시적인 운율로

글을 쓰는 사람이면 세입자들 유언쓰는것을 도와주면 되겠다고 조언하는 아파트 임대업자의 시니컬한 블랙유머로

이미 수만명의 이혼 서류를 낭독했을 변호사의 '넌 곧 다시 행복해 질거야'라는 위로는

마치 조간 신문 한 귀퉁이에 적혀진 그렇고 그런 처세술처럼

채팅으로 바다 건너 젊은이와 사랑에 빠진 할머니와 서로 죽고 못사는 소년 소녀는 어느 낭만소설의 미사여구처럼

 그녀의 표정과 마음가짐을 조금씩 움직인다.

그녀는 더이상 이전처럼 전지전능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네 작품의 등장인물은 비현실적이야'라고 비판할 여력이 더이상 없는것이다.

그녀는 그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동시에 그들에게서 치유받는다.

 

 

프란시스를 보면서 문득<사이드웨이>의 마일즈가 생각났다.

똑같이 이혼을 경험하고 방황하지만 전남편과 전부인은 이미 마음 붙일 상대를 찾아 보란듯이 살아간다.

불행은 얼핏 절대자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행복을 집어삼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옭아매는것은 상대적인 박탈감인것.

그녀가 상속받은 수천병의 빈 와인병과 그가 차에 싣고 떠나는 한 상자의 샴페인.

그가 햄버거와 함께 들이키는 61년산 와인과 텅 빈 정원에 앉아 홀로 홀짝이는 그녀의 와인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이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다이앤레인의 풍부하고도 능청스러운 표정연기와

달콤한 포도알처럼 목구멍을 넘어가는 다이앤 레인의 나레이션이다.

세상의 모든 여배우를 통틀어서 과도하지 않게 가장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는 그녀가 아닐까.

앤디맥도웰은 더이상 영화를 찍지 않는것 같고 샤를롯 갱스부르는 이미 모두의 뮤즈가 되어버린듯해서 배제한다.

마르첼로와 하룻밤을 보내고 침대위를 텀벙거리며 환희에 젖는 그녀와

친구의 임신소식에 레스토랑이 떠나갈듯 '곧 이모가 되요.제가 곧 이모가 된다구요'라고 능청스럽게 떠드는 그녀.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는 어둠속에서 부엉이와 마주보고 '넌 안전해, 제발 날 놀래키지마'라고 부서질듯 애원하는 그녀.

 

 

어떤 장면에서는 문득 문득 '언페이스풀'의 그녀가 생각나서 묘한 긴장감도 느꼈다.

긴 바바리에 롱스커트를 입고 로마를 배회하는 시크한 그녀가 이탈리아인 마르첼로를 만나는 장면과

 포지타노의 해변에서 마르첼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그녀는 숨길듯 숨기지 않으며 욕망을 드러낸다.

'언페이스풀'에서도 아마 긴 코트를 입었던 그날 갑자기 불어오는 폭풍에 상처를 입고 그 몹쓸 프랑스인을 만난다. 

낯선 프랑스 청년의 서재에 앉아서 그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고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책망하던 그녀의 표정.

 

 

사슴같은 슬픈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벽난로 앞에 앉아서 울먹거리며 마르티니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다이앤레인의 표정은

정말 빨리 불을 그만 지피고 와서 나를 안아줘 하는 눈빛이었다

슬픔에 허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당신이 자꾸이러면 사랑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마르티니

솔직하고도 멋진 신사인 그가 그런다.  난 한번도 부인을 배신한적이 없다고.

i've never been 'unfaithful' to my wife

대화 전개상 별다른 의도없이도 워낙에 자연스러운 단어 사용이지만

오드리 웰스가 <언페이스풀>에 출연한 다이앤레인을 생각하며 재치를 부린게 아닐까 하고 또 혼자 몹쓸 상상에 잠긴다.

적어도 다이앤레인이 파벨과 극장에서 오드리 웰스의 <조지오브정글>을 보는 장면은 몹시 센스있었으니깐.

한밤중에 일어나서는 밥먹을 사람도 없고 잠 잘 사람도 없는 이 집을 산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이 집에서 누군가가 결혼을 하는 상상,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한다는 그녀에게

이탈리아인 마르티니는 그녀를 포함해서 '힐링'이 필요한 모든이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는 제머링(semmering)이라고 불리우느 알프스 산맥의 한 구간이 있다.

매우 험준하고 높은 지역에 위치한 빈과 베니스를 잇는 그곳에 사람들은 철로를 만들었다.

그들은 아직 기차가 존재하지 않는 시기에 이미 철로를 만들었다.

언젠가 기차가 다닐거라는것을 알았기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서 사랑을 하기위해서 우리는 정말 눈이 멀어야 할 필요가 있는것일까.

예측불가능한 내일을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오늘을 재단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며 현실을 평가절하하고 추상적인 행복에 집착하는것에 너무 익숙해진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에 서툰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희망을 북돋는것에 익숙하지만 막상 우리 스스로가 슬픔에 닥쳤을때 우리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덜익은 올리브처럼 쓰고 포도처럼 달콤하고 시큼한 레몬첼로처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인생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는데에는 훈련이 필요하고 인생의 달고 씀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그 훈련이라는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던 것.

사람들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무당벌레를 찾아 헤매지만 행복은 역설적이게도 그 본질을 망각하고 있을때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곳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것이다.

성 로렌조 상을 선물받고 폴란드인 수리공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나서

내 주변에 항상 내가 요리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었구나 하고 깨닫는 프란시스의 나레이션이 생각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2.12.30 08:31

 

 

<사이드웨이 sideways>

 

세상에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와인을 좋아하려는 사람이 많은게 확실하다.

와인이라는 녀석 자체가 그런 느낌을 준다.

마치 이유없이 그냥 친해지고 싶은 그런 친구. '나 걔랑 되게 친해'라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친구. 

입어서 예쁜 옷도 아니고 먹어서 맛있는 음식도 아니지만

맛있게 마실 줄 알고 녀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 할 수 있을때 우리의 존재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믿게 하는 녀석.

특별히 와인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지만 와인을 마실 기회는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비싼 돈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와인들이 분명히 있고 세일기간이라도 겹치면 비싸다 싶던 와인도 맛 볼 기회가 있다.

차이는 모르겠다. 정말 비싼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으니

 마셔보고 '정말 차원이 다른 맛이군'이라고 실감하지 않는 이상

오래된 와인이 항상 비싸고 맛있다는데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다이앤 레인이 코르토나에 오래된 빌라를 사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장면이 있는데,

창고에서 라벨이 전혀 붙여져 있지 않은 먼지 쌓인 수십병의 빈 와인병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그냥 뭐랄까 비싼 와인에 목매고 코르크 마개를 훈장처럼 수집하는 스노비즘에 코웃음치게 하는 장면이랄까.

2006년산 와인이 우연히 눈에 띄어서 한 병 샀는데 와인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2006년 산 와인을 사보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해일지도 모르니깐.

시간이 흐를 수록 우리의 2006년산 와인은 구하기도 힘들어질거고 비싸질거다.

모르긴해도 나도 언젠가는 부쩍 비싸진 2006년산 와인을 돈아까운줄 모르고 사려고 들지 모른다.

오래되고 비싼 와인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추억과 동갑내기 녀석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와인병에 새겨진 네자리숫자에 시선이 꽂힌 사람들은 마트 한구석에서 자신의 옛추억을 떠올리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라면 오래된 와인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이 2006년산 와인을 쳐다보고 있으니  문득 다시보고 싶어진 영화가 있다.

알렌산더 페인의 <sideways>

 

 

내가 산드라 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영화인

<투스카니의 태양>에도 그녀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연애 상대가 결혼을 앞둔 남자인것을 알고 헬맷으로 코가 부셔질때까지 두들켜 패는 사이드웨이의 스테파니나

동성연인에게 차이고 절망상태에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투스카니로 날아오는 패티의 생명력은 뭔가 닮은구석이 있다.

 

계속 저장해놓고 생각날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웰메이드 영화이다.

와인을 좋아하고 좋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영화일테고

그들이 쏟아내는 찬사와 온갖 메타포들이 비단 와인에만 국한된것이 아니기에 또 의미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와인잔속에서 부딪쳐 흘러내리며 수만가지의 색다른 질감과 빛깔을 뿜어내는 와인들처럼

인생에는 때가 되면 잊어야하는 슬픈 감정이 있고 한번도 느껴본적없는 희열의 순간이 있고 분노도 있고 실망과 절망도 있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라지는 그런 별 같은 우리의 감정말이다.

 

 

와인의 맛에도 남성적인 맛이있고 여성적인 맛이있단다.

커피에도 시큼하고 달고 쓰고 탄맛이 공존하는것처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전투적인 포도들이 있고 아무데서나 막 자라지 않고 낯을 가리는 포도들도 있댄다.

이혼을 한 남자와 결혼을 하려는 남자가 있고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짐승같은 남자가 있고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능글맞은 남자가 있다.

결혼을 앞 둔 한남자의 머릿속은 여자들과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고

소설가라는 이상과 중학교 영어교사라는 현실사이에서 절망하는 이혼남은 

전부인의 결혼소식과 출판될지 않을지 모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지경.

한가득의 와인과 한상자의 원고를 싣고 두 남자는 부랴부랴 여행을 떠난다.

 마일즈의 엄마집에서 두 남자는 마치 숙성이 덜 된 신생와인처럼 덜 자라서 미숙한 소년의 행동을 보여준다.

여자와 자는데에만 혈안이 된 폴의 망할 욕정은 사람들이 시음 후에 쏟아부어버리는 항아리 속 와인같다.

'나는 영화배우고 난 내 육감과 기분에 따라서 행동해.도대체 넌 왜 나한테 그 육감을 모른채하라는거야.!'

넌 와인이랑 책을 그렇게 잘 알면서 도대체 왜 내 욕정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거냐!'

출판이 무산된 사실을 안 무기력한 마일즈는 그 와인을 항아리채 들이켜마신다.

'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휴지에 묻은 똥자국같은 존재라고!'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존재의 이유로 직시하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폴과

진정 원하는것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을 감추고 와인에만 몰두하는 마일즈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이다,

스테파니와 마야가 다른것처럼. 피노와 카베르네가 다른것처럼.

 

 

'이룬게 하나도 없어'

실패한 결혼과 무산된 출판.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의 감정에도 솔직해 질 수 없는 마일즈.

그냥 와인 저장고에 가지런히 놓인 와인들처럼 쌓여가는 먼지와 함께 조용히 늙어가면 안되는것일까.

하긴 포도송이도 와인으로 탄생되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좀더 쓸모있는 존재로 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헛된것이라고 말하는것도 몹쓸짓이다.

 

와인에 대해 마일즈와 마야가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아마 많은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피노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기술적으로 술술 서술해내는 마일즈와

와인을 재배하고 세상을 떠나간 옛 사람들과 그 해의 햇살과 흘러내린 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와인의 생명력과

숙성되고 변하고 사라지는 와인의 진화를 서정적으로 찬미하는 마야.

마치 세상의 와인들이 수천가지의 다른 방식과 이론으로 수십만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듯

마일즈와 마야는 상대의 사고방식과 인생관에 조금씩 매료된다. 

 

 

나와 함께 있었을때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의 행복을 바라봐야하는것처럼 가슴아픈것이 있을까.

폴의 결혼식이 끝나고 전부인의 임신사실까지 알아버린 위.기.의 마일즈는 피로연에도 가지 않고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와

결혼 10주년을 기다리며 고이 모셔둔 61년산 와인을 망설임없이 꺼내든다.

거의 톰이 갈라진 벽틈으로 숨어들어간 제리를 찾을때의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마치 차속에서 와인병을 꺼내들고 산기슭을 달리며 분노의 와인을 들이킬때처럼, 항아리째 와인을 퍼부울때처럼

절망의 순간에서 들이키는 와인은 우아하게 음미하고 찬미하는 와인보다는 훨씬 덜 가식적이다.

가장 솔직할때도 가장 솔직하지 않을때도 공교롭게도 마일즈는 와인을 마신다.

 

 

결국은 햄버거가게에서 콜라잔에 몰래몰래 부어 61년산 와인을 전부 마셔버리는 마일즈.

실패한 결혼과 과거에 대한 미련처럼 특별한 날과 특별한 사람을 위한 의미부여와 함께

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와인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다른 의미로 사라진다.

  와인 병마개를 따는 그 날이 바로 의미있는 날이 될거라는 마야의 말처럼.

집으로 돌아온 마일즈는 자동응답기를 통해 마야의 목소리를 듣는다.

 

 

마일즈가 마야가 있는 솔방을 향하는 길로 우회전을 하는것으로 영화는 우리에게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라는 주문을 내린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는 결과에 초연해져야 하는것이 아닐까.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것은 마일즈의 생각이고 스테파니의 생각이다.

 

마야가 예찬한 와인의 생명력을 우리를 둘러싼 수만가지 감정의 생명력에 견주어 본다면

우리는 변하는 사랑과 사람과 인생관과 끊임없이 화해할 필요가 있는것 같다.

와인은 어찌보면 코르크마개에 막혀 썩어가는것이 아닐까.

곰팡이 핀 치즈처럼 공기중의 수분과 열과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들은 부패해간다.

우리가 변해버린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듯 슬픔도 좌절도 그져 감내해야하는것이 인생 아닐까.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