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s Diary2016.08.01 08:00




아침에 엄마 친구와 그녀의 친구 도빌라스를 만나기위해 집을 나섰다.  비 온 뒤라 온 세상이 촉촉했다.  땅이 다 젖어 있었는데도 도빌라스는 시금치 같은 초록색 위에 덥썩 앉았다.  엄마 말로는 도빌라스가 도빌라스(클로버)를 찾고 싶어서라고 했다.  도빌라스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것이 있었다.  엄마는 강아지를 보면 멍멍 이라고 하고 아빠는 어우어우라고 한다.  아마도 멍멍은  강아지들이 기분이 좋을때 하는 말 같고 어우어우는 슬플때 하는 말인것 같다.  배가 고플때는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커피 마시는 엄마 옆에서 말없이 물만 홀짝거렸다.  다음에 만나면 용기를 내어서 꼭 물어봐야겠다. 



/리투아니아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표현할때 보통 '어우어우'라고 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6.07.06 08:00



엄마가 드디어 나에게도 국수를 주셨다...엄마가 국수를 먹을때마다 항상 외우는 주문은 벨파르니엔테 라돌체비타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6.01.30 06:24



방안으로는 점점 물기를 머금은 신선한 공기가 차오르고 유모차 속 이불은 전처럼 얇아졌다. 주행을 방해하던 뭔가 묵직한 고무 덩어리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덜컹거림도 줄어들었다. 하늘은 전보다 밝아졌고 이불속에서 꼼짝못하게 잠을 재촉하던 추운 공기는 조금 너그러워졌다. 이제 조금씩 이불 밖으로 팔을 꺼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직 서두르지 말아야지. 유모차 밖으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으니. 털모자와 장갑 그리고 코트속으로 묵직하게 감긴 머플러도 전과 똑같았다. 바깥은 아직 추운 모양이다. 엄마도 나처럼 이불속에 들어가서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하늘에는 아직 미처 내리지 못한 눈들이 많았다. 진작에 하늘을 떠나 차가운 땅 위에 내려앉아 한달 내내 꽁꽁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밟히고 개들에게는 화장실이 되어주었던 그 눈들은 아직 내리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녹아 버리고 있다. 하늘에 남아 있던 놈들은 또 그들의 사정대로 땅 위의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부랴부랴 눈물을 쏟으며 정신없이 내려왔다. 그 눈물로 땅 위의 친구들이 더 빨리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르는채. 슬픈일이다. 엄마는 그 눈물 바다를 차마 건너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번에 눈이 내릴때엔 내가 너네들을 만져줄 수 있기를. 따뜻한 내 손바닥 위에서 기분좋게 사라질 수 있을거야.


(한국은 추웠다는데 빌니우스에는 따뜻한 날씨 덕에 눈이 전부 녹았다. 장마처럼 일주일 내내 비도 내렸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6.01.19 05:56


마지막 일기를 쓴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난 정말 너무나 바빴다. 운동을 한번 시작하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던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 이유는 놀아 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파까지 기어가서 엄마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말겠다고 마지막 일기에 적었는데 요즘의 나는 부엌에 서있는 엄마에게도 세탁기 근처의 엄마에게도 기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어가는 길목에 재밌는것들이 너무 많아 애초에 목표로 했던 엄마는 곧 잘 잊고 만다. 가끔은 엄마에게까지 가는것이 귀찮아서 일부러 구석에 숨거나 의자 바퀴나 아빠의 헤드폰 줄 따위에 입을 대어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엄마가 어느새 걸어와서 내 옆에 서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알아서 나에게 오니 엄마가 보고 싶을때 내가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다. 소파를 잡고 일어 설 수도 있게 되었고 잡고 옆으로 움직일 수도 있게 되었다. 놀아 달라고 조르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물 밖에서도 항상 잠수 안경을 끼고 있는 노란 오리 한마리가 있고 귀가 빨간 커다란 무당벌레 한마리가 있고 하마 친구도 있다. 내가 놀아주지 않으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아직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동물들이다. 이 동물들이 나만큼 자라있을때 내가 아직 얘네들과 놀고 싶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오늘은 공원에도 다녀왔다. 눈이 정말 많이 왔는지 유모차가 몹시 덜컹거렸다. 눈을 가만히 감고 얼굴에 닿았다 말았다 하는 털이불의 감촉을 느꼈다. 간지러울때쯤 엄마가 이불을 정리해주었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작은 숲 한가운데에서 엄마는 유모차 덮개를 아주 조금 젖히고 운전을 멈췄다. 나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노랗고 빨갛던 낙엽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나뭇가지는 집에서 창밖으로 보던것처럼 앙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무리의 까마귀들이 내 머리 위의 나무를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어떤 까마귀들은 나무에 내려 앉지 않고 주위를 빙빙 날아다녔다. 까마귀들도 나처럼 이제 막 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것일까. 저렇게 높고 추운곳에서 까마귀들은 무슨 그렇게 할 말이 많았을까. 혹시 너무 춥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유모차속의 따뜻한 양털 속에서 포근히 누워 가만히 까마귀들을 올려다보는것이 갑자기 너무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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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일기 11] 운동을 시작하다 

[아기의 일기 10] 비가 내리고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12.04 06:37



요즘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세상과는 정반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매달려 있거나 벽에 붙어 있는 줄만 알았으니깐.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들은 여전히 내 하루중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누워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최대한 고개를 돌려봤자 항상 비슷한 각도에서 멀찌감치 보이던 장소들과 물건들에 조금씩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요즘 난 너무 기쁘다. 나는 심지어 만질 수도 있고 무슨 맛인지도 느낄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손바닥에서 거미줄이 나와야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것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좀 미안하지만 머리 위에서 똑같은 표정으로 흔들거리고 있는 동물 녀석들에게는 좀 싫증이 났다. 특히 몇 달 내내 팔을 벌리고 낙하산에 매달려 있는 토끼는 피곤하지도 않은건지. 온 종일 눈을 뜬 채 잠도 안 자고 입은 꾹 다물고 있다. 내가 심심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거라면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누워서 빈둥 거리기만 하는 듯 보이는 그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유익하게 보냈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거다. 난 하루종일 누워서 질문과 상상을 거듭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딸그락 딸그락 거리면서 엄마를 급히 달려가게 하던 그 녀석은 무엇이었을까. 아빠는 어디로 사라져서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 밥 먹고 올게 하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서 밥을 먹는걸까. 엄마 아빠가 먹는 밥이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새로운 것을 알게되는 하루하루가 신이 난다. 엄마 아빠는 저기쯤에서 밥을 먹는구나. 엄마가 물을 끓일때 요란하게 딸랑거리는 커피포트는 저렇게 생긴거였구나. 아빠는 바깥에 나갔다가 항상 저렇게 커다란 구멍을 열고 나타나는 거였어. 새로운 세상에서는 좋은 점이 한가지 더 있다. 모두가 내가 점점 살이 찐다고 기뻐하지만 내가 뚱뚱해지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가만히 누워서 먹기만 해야 했을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발차기였는데 이제 드디어 좀 더 힘든 운동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내일은 왠지 소파 근처까지 갈 수 있을것 같다. 가서 꼭 엄마의 발을 간지럽혀야지. 

(기어가려 애쓰는 아기 옆에서 함께 운동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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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