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일기'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5.11.15 아기의 일기 10_ 비가 내리고 (2)
  2. 2015.11.03 아기의 일기 9_ 하루의 시작 (2)
  3. 2015.10.23 아기의 일기 8_안녕, 엄마 (4)
  4. 2015.10.21 아기의 일기 7_안녕, 낙엽아 (1)
  5. 2015.10.01 아기의 일기 6_Take me somewhere nice
Boy's Diary2015.11.15 07:03



엄마는 나를 가슴으로 끌어당겨 커다란 샤워 가운을 입어 나를 감쌌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엄마 품은 항상 따뜻하지만 그날 유난히 따뜻했다. 머릿카락 사이로 찬 바람이 지나가려는 찰나에 엄마는 내 머리 정수리까지 옷깃을 끌어 올려 여몄다. 엄마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그 느낌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내가 피노키오가 빨려 들어갔던 고래의 뱃속보다 훨씬 어두웠던 그곳을 뚫고 나오던 날, '아아 우리 엄마는 저기 있는데요' 라는 내 외침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번도 본적없는 이 사람 저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며 드디어 엄마의 가슴 위에 얹어졌던 그 날, 졸려서 감기는 눈꺼풀에 겨우겨우 힘을 줘서 엄마 아빠를 보았을때, 불빛이 내 눈동자에 닿을까 담요를 끌어 올리던 그날의 엄마 말이다. 엄마는 집안의 모든 창문과 발코니 문을 열어 젖히더니, 비가 올땐 신기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날아와 모인 공기중의 먼지들이 자신의 모든 역사와 추억과 슬픔들을 남김없이 빗방울에 쏟아 부으면서 사라져가는 그 순간, 그 먼지들이 뿜어 내는 냄새들로 사람들도 많은 것을 기억해 낸다고 했다. 온 집안에 한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냄새가 가득차 올랐다. 선반위의 종이 인형들도 우두커니 서있는 마네킹도 침대위의 하마 인형도 심지어 액자 속의 엄마 아빠도 순식간에 퍼진 향기에 뭔가를 분주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과연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도 가운속에 꽁꽁 숨겨진 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나는 그날의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엄마는 들뜬 표정이었다. 엄마와 나는 그 날 결국 샤워 가운 속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비오는 세상을 함께 걸었다. 창밖으로 살랑살랑 거리던 나뭇잎들은 이미 빗물에 말갛게 된 후였다. 내 자동차 바퀴는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더 많은것들이 기억나려는 순간에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비가 그친 줄 알고 엄마가 잠시 유모차 덮개를 열어 젖힌 사이 빗방울 하나가 내 얼굴을 적셨다. 비는 정말로 그친 후 였다. 그것은 아주 작은 낙엽 끝을 간신히 붙들고 있다 결국 떨어지고만 나만큼 작은 빗방울이었다. 나에게 또 다른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아기와 비를 맞으러 나갔던 어떤 날)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11.03 06:20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일어났지만 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밖이 깜깜하지만 나는 지금이 몇시쯤인지 알 수 있다. 아침 6시쯤이 되면 공중 케이블에 매달려 움직이는 트롤리버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일어나서 사방을 돌아다니려니 버스도 피곤하겠지. 그러니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을 깨울만큼 하품소리가 요란한거다. 버스가 한바탕 하품을 하고 지나가면 침대 너머로 엄마와 아빠의 쌔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거인처럼 크다. 내가 본 사람중에서 제일 크다. 이들이 나를 보러 내 침대 위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컴컴해진다. 입은 또 얼마나 큰 지 내 손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나는 아침 어스름속에서 엄마 아빠를 쳐다보고있는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는 내가 몰래 훔쳐보고 있는걸 알아차렸는지 창피해서인지 이따금 거대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이불을 끌어당겨 새로 덮는다. 문제는 이 이불이라는 친구가 아빠보다 훨씬 크다는것이다. 얼마나 큰지 순식간에 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만다. 엄마도 덩달아 없어진다. 그럴때면 난 조금의 지체도 없이 이불속에 빠진 엄마와 아빠를 구하러 출동한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난 아직 그럴 수 없다. 내가 내 작은 담요를 쾌걸조로처럼 펄럭이며 칼 루이스가 허들을 쓰러뜨리듯  침대를 뛰어넘어 엄마 아빠에게 달려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난 너무 작으니깐. 난 그냥 낑낑거리며 허공에 팔을 마구 휘저을 뿐이다. 이 작은 팔로 바람을 일으켜 마법처럼 아빠를 뒤덮은 이불을 걷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럴때 기적처럼 이불을 걷어차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엄마 아빠이다. 이불한테는 미안하지만 역시 우리 엄마 아빠가 이불보다 힘이 훨씬 센것이다.  나는 매일 그렇게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큰 이불을 물리칠 수 있는 나의 엄마 아빠라니 말이다.


(깨어나서 조용히 날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시선을 느낄때.)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10.23 05:24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에게 인사한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안녕이라고 말하는것은 당연한것이지만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올때에도 밥을 먹기 시작할때에도 새 옷을 입혀줄때에도 기저귀를 갈기 시작할때에도 유모차에서 날 꺼낼때에도 엎드려있다가 제자리로 돌아 눕힐때에도 엄마는 항상 안녕이다. 엄마가 너무 놀래서 안녕이란말을 조금 덜 할 수 있도록 그냥 시간 끌것없이 지금 엄마한테 '안녕 엄마'라고 대꾸해볼까 하는 생각에 단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자신이 그렇게 여러번 인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이다. 내가 '엄마'라는 말 대신 '안녕'이라는 말을 먼저 내뱉으면 그때서야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이 인사를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작별인사는 불을 끄고 꿈나라로 갈때 딱 한번이다. 정말 눈꺼풀이 주체할 수 없이 무거워 저절로 감기던 그 순간들말고는 아직까지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해본적이 없다. 엄마와 '안녕 잘있어 나중에 봐' 라고 여러번 작별해야 할 순간들도 언젠가 오겠지? 그때 눈물 콧물 흘리며 지금 엄마가 인사를 자주한다고 불평했던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부터라도 엄마의 인사에 더 친절하게 웃어줘야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10.21 05:41


밖을 나섰을때 뭔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것 같은데 한참을 돌아다닌후에 집으로 돌아올때쯤 나타나던 검은색이란 놈이 머리위에 한가득이다. 아마도 이 검은색의 귀가시간이 앞 당겨진 모양이다. 그럼 엄마와 나도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오면 되는것 아닌가 싶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혼자서 내 자동차를 집까지 끌어 올리려면 엄마는 중장비 자격증이라도 따야할지 모른다. 더 중요한것은 아빠가 일을 끝마칠때쯤 약속을 하고 나가야 우리 셋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날 수 있는것이다. 모르긴해도 그 검은 어둠이란 놈도 보고싶은 아빠를 만나러 가느라 그렇게 일찍 나타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각만하며 그 검은 어둠을 미워하는것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오후 6시쯤의 파란 하늘과 작별하는 대신 내 엉덩이 아래에서 굉장히 부스럭거리는 친구들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엄마는 평소처럼 조용히 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갑자기 급정거하더니 방향을 틀어 뭔가 대단히 사각사각거리는 언덕 같은곳으로 날 데려갔다. 엄마가 운전을 하며 나쵸 봉지 따위를 뜯을리도 없고 쓰레기 봉지를 바꾸는것도 아닐텐데 난데없는 이 소리들은 무엇일까. 코밑까지 끌어올린 이불 너머로 보이는 거무스름한 하늘 아래에서 무언가가 사정없이 흔들거렸다. 아마도 집에서 엄마 다리에 누워서 바라보던 창밖의 그 푸르스름한 아이들의 친구들인가보다. 며칠 전 엄마가 그랬다. 춤추기 피곤해진 친구들이 휴식을 취하러 앞다투어 땅위에 내려 앉고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나뭇가지가 완전히 앙상해지면 내 팔다리는 좀 더 굵어져 있을거라고.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10.01 23:37



오늘도 엄마는 이렇게나 예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듯한 얼굴을 하고서.

그리고선 언제나처럼 나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나도 엄마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라고 몹시 대답해주고 싶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