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s Diary2015.09.28 17:14


안녕. 나야 나. 우린 서로 한번도 눈을 마주친 적은 없으니 언젠가 길에서 만나게되면 단번에 알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내가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80일간을 387개의 너와 꼬박 붙어 있었다구. 운이 좋으면 언젠가는 우리 눈을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몰라. 아 어쩌면 너를 만져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그때까지 이상한 향수나 어울리지 않는 엄마 립스틱같은거 바르지 말고 똑같은 모습으로 꼭 나를 기다려줄래? 그땐 내가 말을 걸더라도 절대 놀라서 도망가면 안돼.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8 19:00



10여년을 사는 강아지 인생에서의 1년이 우리의 7년과 같다고 했나? 그렇다면 아직 80일이 채 안된 나의 인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산책을 나섰던 그 날이 내 인생에서 의미하는바가 얼마나 큰지는 말을 해 무엇할까. 그것은 최초로 지구궤도를 돈 유리 가가린이나 스푸트니크호를 타고 사라진 강아지 라이카가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만큼 내 인생에서 의미심장하다구. 7월의 중순,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콧구멍만 간신히 내밀고 밖으로 밖으로 행진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난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려. 사실 그날의 풍경, 그날의 소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잠이 든채로 집을 나섰고 그대로 잠이 든채로 집으로 돌아왔으니깐. 그렇게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것이 처음으로 그렇게나 서둘러서 나와 함께 집을 나서고 싶어했던 엄마 아빠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지. 하지만 다시 7월이 되어 또 바깥을 나가게 된다면 아마 나는 그날의 냄새를 기억할거야. 엄마 아빠가 나를 세워두고 냠냠거리던 케밥 냄새도, 아빠와 나를 바깥에 세워두고 마트에 간 엄마가 사와서 내 발끝에 얹어놓았던 생선필레의 비린내도, 그리고 간간이 덜컹거리던 유모차속에 풍기던 가죽 냄새도 말이야. 그날 나는 엄마 아빠에게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었을까. 엄마 아빠도 그 냄새를 기억할까?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6 05:33



아침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린 어느 날. 창밖을 응시하는 엄마를 한참을 바라보다 나도 생각에 잠겼다.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혹은 아기용 식탁 의자에 앉아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하루 온 종일 내가 누워있는 까닭에 엄마 품에 안겨 편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 보지만 엄마가 내려다 보지 않으면 사실상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란 불가능해. 그런 내 맘을 아는건지 엄마는 가끔씩 내 머리를 조심스레 받쳐 가슴에 안아 거울로 향한다. 그럴때 엄마의 품은 얼마나 따뜻한지. 고개를 가누는게 이렇게 힘들지만 않다면 조금더 매달려 있을 수 있을텐데. 아 엄마 제발 조금만 더 나를 자주 그렇게 세워서 안아주면 안되는지. 그 짧은 순간 엄마도 내 따스함을 느끼는지 여느때보다 나를 더 가슴 가까이 끌어 당기고는 내 머리에 얼굴을 살며시 비빈다. 마가 기저귀를 갈아줄때나 밥을 줄때, 옷을 갈아 입혀 줄때에도 난 역시 엄마를 올려다 본다. 나를 한참동안 내려보는 엄마는 가끔 목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온 머리카락이 내 얼굴로 쏟아지도록 고개를 오랫동안 푹 숙이고는 목 언저리를 주무르기도 한다. 엄마가 내 조그만 손바닥과 발바닥을 두번째 손가락으로 기분 좋게 매만져 주는것처럼 나도 엄마의 몸중에 그나마 가장 작은 그 손가락이라도 시원하게 만져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처럼 그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엄마 품에서 잠이 들어갈때에 내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거나 책장을 넘기는 엄마를 엄마 몰래 뚫어지게 바라 볼 수 있다. 그때 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내가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상상해오던 엄마의 모습, 그 암흑 속에서 내 귀 언저리에 울려 퍼지던 그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그녀를 내가 지금 올려다 보고 있다니말이야. 모든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그렇게 엄마를 멍하니 바라보다 나도 몰래 꿈틀해서 엄마가 급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 날, 미쳐 눈을 감지 못하고 너무 부끄러워 재빠르게 눈빛을 돌려버렸던 그날...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5 03:28



오늘은 토요일. 매일 정해진 시간이면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아빠가 이상하게도 아무데도 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상한 날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요일이며 오늘 엄마의 계획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얘기해주는데 그도 그럴것이 나도 주중 아침에는 별로 잠이 안오고 왠지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할것같은 기분에 똘망똘망해진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나도 주중에 자지 못한 잠을 자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누워서 잠만자고 오줌만 싼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엄연히 주말을 기다리는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아기 사람이니깐. 주말 아침이면 엄마는 뭘하는지 주중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다. 엄마가 정확히 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침대에 누워서 엄마가 돌아다니며 삐걱삐걱 내는 마룻바닥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요새들어 엄마 아빠가 내 머리에 쉽게 들어가지 않는 옷들을 낑낑 거리며 쑤셔 넣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줌이라도 싸면 옷이 더 작아져서 가끔 불편한데 신기하게도 옷마다 조금씩 냄새가 다르고 촉감도 다르니 그 재미에 한동안은 참고 가만히 있지만 더이상 안되겠다 싶을땐 온몸을 비틀거리며 구조를 요청한다. 엄마 아빠는 작아지는 옷들이 아까운가 보다. 알고보면 전부 이모의 아기들이 물려준 옷들인데 안입는옷 봉지속으로 들어가기전에 아마 한번씩이라도 입혀 보려는 심산이다. 래, 아마 나에게 입혀질 그 옷들을 보며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니깐 좀 불편해도 참아줘야겠다. 그나저나 좀 더 컸을때 내가 입을 옷들은 사놓았는지 걱정이다. 사실 나도 그다지 빨리 자라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있으면 나는 나의 메르세데스보다 커져서 누울 엄두도 못낼테고 내가 무겁다고 엄마 아빠가 날 덜 안아줄지도 모르며 내 미소에도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진다는것은 편하면서도 슬픈일이다. 나에게 더이상 베이비 오일의 캐모마일향이 새롭지 않은것처럼 가끔씩 내 입속에 코를 박고 싱글벙글거리는 엄마이지만 조금 있으면 내 입속의 그 코리앤더 냄새에도 엄마는 익숙해지겠지. 좀 천천히 자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밥 먹기 싫다고 엄마 가슴에서 고개를 돌려버릴까. 엄마가 배를 만질때면 숨을 들이마셔 배가 안 나온척 해볼까. 배가 고파도 안 고픈적 밤새도록 자는척을 해볼까. 그럼 엄마는 내가 드디어 밤에 안깨고 자는 법을 터득했다 기특해 하겠지? 흠..자라지 않고 아이로 남는 방법은 정말 없는걸까. 하긴 내가 자라지 않으면 그런대로 엄마 아빠는 또 걱정을 하겠지. 어른들은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만들어 놓고는 마치 대단한 해결책을 알아냈다고 환호하고 또 다른 걱정에 빠지는 이상한 사람들이니깐. 그나저나 간간이 침대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저녁 늦게까지 환한 파랑색이곤 했는데 요즘들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하늘은 이미 까까매져있다. 뭔가 대단한 놈이 나타나려 꿈틀거리는 느낌이야. 나에게서 파란 하늘을 빼앗아가지 말아줘.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0 04:25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유일한 의사 소통 수단이 울음이라는 말은 얼마나 진부한지. '아이가 운다는것은 배가 고프거나 춥거나 덥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거나 배가 아프다는 소리입니다' 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지만. 원시적으로 보이는 아이의 울음에 오히려 그 이상의 것, 그 이상의 다채로운 감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른인 나를 넘어선 완벽한 인격체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보내는 이 시간들이 아이가 많이 울지는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에 관한 질문만으로 상투화되어 흘러가는것은 너무 아쉽다.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일은 어때, 아직 거기서 일해? 지루하지 않니? 휴가는? 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만을 이끌어갈때 느끼는 지루함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누군가에게 아주 색다르고 독특한 질문을 건넬 수 있을것 같진 않지만 최소한 미래의 내가 누군가와 나눌 대화가 육아의 고충만으로 채워지지 않길 바랄뿐.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고 단어를 내뱉기 시작하고 나와 대화를 시작할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아이의 눈과 몸짓을 들여다보며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아이의 입장이 되어 하지만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나의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대화는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의사표현을 시작하게 되면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될지 모를, 지금 이 순간만의 즐거움과 행복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세상의 조각들을 내 멋대로 내 아이의 머릿속에 연결지어 만들어 내는 대화들. 아이가 훨씬 많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때도 세상의 모든 가치들을 마주하고 스스럼없이 거침없이 상상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진만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도 붙들어 놓을 수 없는, 지나가는 이 시간들이 아쉬워 아이의 시점에서 나의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