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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31 <히든 Caché> Michael Haneke (2005)
Film2014.01.31 07:52


<Caché>


<퍼니게임>을 고등학생때 친구랑 비디오를 빌려서 같이 봤는데. 

뭐지? 저 달걀 빌리러 다니는 남자애들 정말 웃기다 이러면서 그 '묻지마 폭력'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더랬다.

이런 참신한 소재들을 기다렸다는듯이 리메이크하는 헐리우드 덕분에 

유럽이든 아시아든 재능있는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어떤식의 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하는지 구경 할 기회를 얻지만

 리메이크작을 기다리는 원작자의 마음은 어떨까. 더 멋진 작품이 나올까 초조할까.

예술가들은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더 나은 창작물이 탄생하기를 고무되서 응원할까. 

영화를 보는 나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발 더 재밌어라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이 명불허전의 원작으로 남길 기대한다.

그런데 독어가 주었던 투박함과 생경함이 결여된 나오미 왓츠와 팀 로스가 출연한 헐리우드 판 <퍼니게임>도 

헐리우드로 간 <올드보이>와 <밀레니엄>도 대부분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말랑말랑한 체험판 정도로 남는다.

<퍼니게임>을 정말 인상 깊게 본 나는 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영화속에서 달걀을 훔치던 영 보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

가령 독일 영화의 뉴 제너레이션 따위에 속하는 재기발랄한 젊은 감독일거라 생각했는데 

예를 들어서 마티유 카소비츠가 갑자기 등장해서 <증오>를 만들었을때처럼.

그런데 필모그래피를 보니 알 파치노와 친구를 먹고도 남는 잔뼈 굵은 할아버지 감독이네.

<퍼니게임>이 리메이크 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미하엘 하네케는 무려 4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이 영화 저 영화 다 미뤄버리고 우연히 걸려든 영화 Caché.

차례대로 찾아서 봐야겠다. 어쩌면 <퍼니게임>은 돌연변이 같은 작품일지도.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은 내 뒤통수를 때릴지도.

나는 순전히 내 만족을 위해서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기지만 내가 모든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좀 더 깊은 지식을 가졌다면 

개인적인 감상과 추억으로 가득 찬 글이 아닌 유용하고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울때가 많다.

특히 영화들이 약간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 아쉬움은 배가 된다. 



파리의 중산층 지식인 부부 조르쥬와 안느는 얼마전부터 수신인 불명의 비디오 테잎을 배달받는다.

골목길에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들의 주택을 비춘 영상이 담긴 테잎이라던가

조르쥬가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이 등장하고 피를 토하고 있는 아이가 그려진 엽서도 배달된다.

불안한 조르쥬와 안느는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해보지만 수사를 청탁하기엔 눈에 띄는 범죄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주인공들이 피해자인 영화에 익숙한 우리는 조르쥬와 안느를 누군가에게 해코지 당하는 선량한 파리 시민으로 가정하고

조르쥬의 입장이 되어 조르쥬와 함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친구들에게 공개하고 도움을 청하려는 아내 안느 (줄리엣 비노쉬)와는 달리

조르쥬 (다니엘 오떼이유) 는 뭔가를 알면서도 숨기는 듯한 

오히려 '내가 이 자식을 반드시 찾아내서 본떼를 보여주겠다' 는 보복심 가득한 얼굴로 

테잎의 발신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테잎 속에 등장한 파리의 거리 이름을 알아내서 그 동네를 찾아가는 조르쥬.

조르쥬가 사는 한적한 동네보다 인구 밀도가 몇배는 더 되보이는 파리 외곽의 느낌을 풍긴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벼룩 시장을 찾아서 파리 18구 근처 외곽의 St.ouen 이라는 지역에 간적이 있다. 상투앵이라고 읽나?

아프리카식 매운 양념을 묻힌 통닭이 돌아가고 통닭에서 떨어지는 붉은 기름으로 감자를 익히던 아프리카 이민자의 식당.

조르쥬가 앉아 있는 저런 비슷한 가게에서 음료수도 한병 사먹었다. 

시장 초입에는 아프리카의 목각탈들이 가득했고 자메이카 이민자가 향에 불을 붙이고 와서 맡아 보라며 손을 흔들었다. 

하루종일 시장 바닥을 돌고 돌아 시장이 시작된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뒤를 봤을때 

매연으로 가득 찬 어두운 굴다리 아래에 밀집해 있는 이민자들과 그 옆을 무심한 듯 지루하게 지키고 서있는 경찰차가 보였다.

팔고 있는 물건은 중구난방이다. 씨리얼 키도 없는 게임 타이틀들과 금이간 접시. 비디오 테잎과 타월들.

그들은 판매 보다는 물물 교환이 목적인 혹은 그런것이라도 팔아서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하는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파리는 도시 계획이라는  정성스러운 빗자루 질로 자신의 외관을 꾸며 모두에게 낭만을 심어 주는데 성공했지만

그냥 계속 그 먼지들을 바깥쪽으로만 쓸어낼 뿐 쓸어낸 쓰레기들을 쓰레받이에 담는 방법은 까먹은 듯 보였다.

그게 무릇 대도시의 본질이고 속성이지만 이들 모두는 평화롭게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는걸까?

쪼개진 두 개골 처럼 완전히 분리된 두 세계. 그것은 공존이나 관용이 아니라 그냥 묵인된 상처처럼 보였다.



책으로 가득한 조르쥬와 안느의 집도 그렇고 토론이 업이자 일상인 그들.

세상의 어떤 불편한 진실도 와인 마개가 열리고 와인잔이 돌아가면 전부 미화하고 합리화 할 수 있을것 같은 이들. 

자유 평등 박애를 울부짖었지만 그 혁명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들도 서슴치 않았던 때로는 이율 배반적인 국가. 

예를 들면 식민지 지배에서 그들이 보여준 이중성이나 모순 같은것. 

알제리 전쟁이 배경이었던 전쟁 영화 <outside the law> 를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 어를 하며 프랑스 인으로 살아가며 언젠가 프랑스를 위해 참전했지만 

식민지의 국민들과 프랑스가 본국으로 쓸어 온 이민자들이 필요에 따라 그저 그들의 도구로 남을 때의 모순.

카뮈의 소설에 등장하는 알제리의 도시들은 마치 아프리카의 또 다른 프랑스와 같고 

프랑스의 축구선수 지단이나 앙리도 결국은 프랑스의 식민지 출신인것을.

영화는 프랑스 현재의 기성 세대들이 숨기고 봉인한 어떤 불편한 진실을 

조르쥬 개인의 폭로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의 어떤 사건과 연결지어 피해자의 탈을 쓴 가해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조르쥬는 어릴 적 그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했던 알제리 이민자 부부의 아들 마지드를 찾아내고 

그 마지드가 그에게 협박 테잎을 보냈다고 확신한다.

마지드의 부모는 알제리 본국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인의 알제리 탄압에 항의하며 

프랑스 내의 알제리인들이 벌인 시위에 참여하다 죽은것.

어린 마지드를 강제로 태운 차가 시골을 떠나는 회상 장면이 나온다.

어릴 적 조르쥬와 마지드는 함께 자랐지만 마지드가 조르쥬의 모함으로 눈밖에 난 상태에서 

부모 마저 잃고 계속해서 그곳에서 함께 살 명분을 잃고 결국은 조르쥬의 집에서 쫓겨나게 된것. 

조르쥬는 그냥 그렇게 믿는것 같다. 마지드가 어려서 받은 상처를 세월이 흘러서 조르쥬에게 보복한것이라고.

그것은 어린 조르쥬의 죄책감이고 프랑스 사회의 컴플렉스 인지도 모른다. 

조르쥬의 끈질긴 추궁에 마지드는 결백을 주장하며 '넌 정말 변하지 않았구나' 라며 조르쥬 앞에서 목을 그어 자결한다. 

<퍼니게임>에서 설마 마지막 남은 엄마는 운좋게 살아 남겠지 기대하는 관객에게 보란듯이

밧줄로 묶인 엄마를 호수속에 처넣었던 미하엘 하네케는 이번에도 일말의 감상적 순간도 없이 마지드의 죽음을 보여준다.  

 누가 그 테잎을 보냈는지를 알아내는것이 처음부터 영화의 목적은 아닌것 같다.

조르쥬에게 보낸 또 다른 테잎속에는 마지드의 방에서 마지드와 조르쥬를 촬영 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조르쥬에게 스스로 본인의 모습을 감상하게 하면서 책임을 추궁하려는 의도 같다.

테잎을 보낸 것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센강에 산채 빠져 죽은 알제리인이었을지도.



혹시 이 포스터 속의 핏자국이 알제리 지도 모양이 아닐까 해서 유치한 추측이지만 혹시 해서 찾아봤으나 그것은 아닌걸로.

미하엘 하네케가 느닷없이 왜 프랑스와 알제리 문제를 영화로 만들었는지가 의아해서 알제리 프랑스를 검색해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2000년도 초반에 르몽드 지에서 알제리 전쟁때 고문당한 여성의 기사가 실리면서 

프랑스 정부가 쉬쉬 해오던 프랑스 내 알제리 핍박이 뜨거운 감자가 된것이었다.

그러니깐 영화 속 마지드 부모가 죽던 그날 실제로 숱한 알제리 인들이 죽었지만 그 사실은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던것이다.  

게다가 프랑스가 알제리의 사막에서 몇차례의 핵폭탄 실험까지 강행한 전적이 있다는 것 등등.  

그런 사실이 공개되고 난 후 실제로 프랑스에서 세대간의 갈등이 증폭됐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드가 죽고 그의 아들이 조르쥬의 직장을 찾아오자 조르쥬는 긴장한다.

정작 마지드의 아들은 그저 분명한 눈빛으로 조르쥬를 쳐다볼 뿐 분노에 차서 이성을 잃고 덤벼들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죄책감을 느낄 너의 얼굴을 보러 온것 뿐이라며 유유히 떠난다.

조르쥬와 안느는 오히려 자신들의 아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르쥬의 아들과 마지드의 아들이 학교에서 만나 웃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세대들이 이루지 못한 화합을 새로운 세대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일까?

그것은 어쩌면 알제리를 끌어안고 아프리카에서 경쟁국들을 견제하려는 프랑스의 꼼수일지도.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