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허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7.20 <Prince Avalanche> David Gordon Green (2013)
  2. 2014.04.11 <트와이스 본 Twice born> Sergio Castellitto (2012)
Film2014.07.20 19:08


요새 본 영화들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고 아니면 그런 영화들만 글로 남겨 기억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Joe>,<Scenic route> 그리고 이 영화까지. 도시가 아닌 자연속에서 우리의 원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화재로 손실된 숲이나 사막같은 고립된 환경에서 너무 다른 두 남자가 이끌어 가는 영화.

잔뜩 대립각을 세우다가 점차 타협하지만 저 멀리 소실점처럼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시닉 루트의 두 남자.

서로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으로 평행선을 그리다 어느 순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프린스의 이 두 남자.

모든것을 다 줄것만같은 어떤 모습이든 다 품어줄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모든것을 앗아갈 수 있는 냉혹한 자연속에서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할퀴고 상처주는 인간들의 이야기말이다.

탈사회를 외치며 알래스카에서 쓸쓸히 죽어가던 <In to the wild>의 허무남이자 자연남 에밀 허쉬가 

'혼자인것과 외로움을 느끼는것은 다른것'이라는 앨빈(Paul rudd)의 설교를 들어야 할 만큼 고독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자

텐트속에서 자위를 하고 여자와 잘 수 없어 안달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것은 재밌다.

여러 영화에서 매번 결국 비주류로 아웃사이더 느낌으로 남겠다 싶었던 에밀허쉬가 

통속적이고 솔직단순한 캐릭터를 연기했던것 그리고 어울렸단것이 매우 절묘하고 흥미로운 캐스팅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중의 대부분이 인간은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만

혼자 남겨졌을때 그리고 그것이 자발적 선택에 의한것일때 고립된 상태에서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해 궁금해하는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을 꿈꾼다. 금새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닫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독을 지향한다. 

단지 그것에서 실패를 맛 본 사람들이 정립한 혼자=외로움이라는 공식을 별다른 비판없이 수용한다는것이 문제이다.

적절한 노동이 곁들여진 숲속의 삶에서 만족을 느끼고 혼자 버티는 삶에 능수능란한 앨빈과

숲속의 생활에 금새 싫증을 느끼고 어른 앨빈의 설교를 고리타분하다 여기는 랜스.

그런 앨빈과 랜스가 만나는 '어른' 트럭 운전수 할아버지와 불타버린 숲에서 방황하는 할머니.

이 영화는 4명의 인명을 앗아간 텍사스에서 일어난 원인 불명의 산불 사건이라는 팩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산불의 시초가 앨빈과 랜스의 캠핑이라는 가정에서 영화를 풀어가는걸까 생각하며 앨빈이 생선을 굽는 장면에서 조마조마했고

앨빈이 불타버린 집에서 마임 연기를 할때는 앨빈 역시 산불의 피해자인것은 아닐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분명히 실존인물이 아니며 심지어 네명의 인물이 식스센스처럼 이미 죽은 인물인걸까 상상했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쫓고 고통받는 사랑이나 물질의 실제와 허상에 대해 얘기하려는것은 아닐까.

연인에게서 이별통보를 받는 앨빈과 불탄 집에서 조종사 자격증을 찾는 할머니. 

목재를 자르고 도로표시를 그리며 살아남은 숲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 살아남은 나뭇기둥과 살아남은 사람들.

앨빈의 말처럼 '우리가 늘상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경험한 사람은 극히 소수인 그런것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가 죽을때까지 평생 얘기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들 혹은 언젠가는 마주치게 될 신기루.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4.04.11 03:35



<Twice born>


최근에 부각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은 근접국인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나에게  

90년대 구소련 국가들의 독립이 정말 아주 최근의 일이었음을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자유가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느냐에 대한 감흥이 컸다기보다는 

어물쩍 엉거주춤하다가는 겉보기에 멀쩡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도 

피지배자의 입장에 놓여 불이익을 당하고 억압받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가까웠다.

영화 속의 보스니아 내전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최근 경험했던 그런 감정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훨씬 더 금세 잊혀진다. 

중학교 시절 내가 호출기 음성 사서함에 너바나의 음악을 지우고 저장하기를 반복하던 그때

 커트 코베인의 포스터가 붙여진 아스카(사뎃 악소이)의 방은 폭탄에 휘청 거린다. 

하나의 세상에서 같은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렇게 다르다.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마주한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의 모습은 상반적이다.

춥고 헐벗은 사라예보와는 대조적으로 젬마(페넬로페 크루즈)가 돌아온 로마는 따스하고 평온하다. 

이 영화를 보고 페넬로페 크루즈가 많이 좋아졌는데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 것 같다.

영어가 모국어인 배우는 에밀 허쉬나 제인 버킨뿐이었는데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자국어의 액센트가 섞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때 드러나는 이질감과 낯설음은

오히려 전쟁통에 사라예보에 모인 등장인물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었다.  



자유로운 사진가인 디에고는 사랑을 찾아 로마로 오지만 돈벌이를 위해 광고 사진을 찍으며 염증을 느낀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젬마는 피해의식을 느끼며 디에고를 불신하고 조금씩 변해간다.

음악이 하고 싶은 아스카는 돈을 벌어 런던으로 갈 꿈을 가지고 있고 낯선 이방인들의 대리모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젬마와 디에고의 시인 친구 고히카는 아스카와 디에고가 자려고 할때 젬마를 유혹한다.

디에고는 아스카가 가진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닌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데려가려는 젬마를 저지하지 않는다.

젬마는 그 아이가 디에고의 아이라고 믿고 키운다. 

젬마는 오랜 세월이 흘러 고히코의 초청으로 아들과 함께 사라예보로 돌아오고 아스카와 조우하고

젬마는 이 여행이 자신의 아들을 되찾으려는 아스카가 계획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분노한다.

젬마는 디에고의 아이라고 여기며 아들을 키웠지만 디에고의 흔적을 아스카에게서 발견하는데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아들이 디에고의 아이가 아니란것을 알고는 안도한다.

오랜만에 슬픈 영화를 보고 심지어 울기까지 하며 카타르시스라나 뭐 그런 것을 느꼈다고 말해야겠지만 사실은 몹시 찝찝하다. 

이 영화를 전쟁중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 같다. 

전쟁의 본질과 개개인의 욕망과 이상이 충돌해서 생기는 슬픔의 본질은 같다.

모든 등장인물들을 동정했지만 모두가 조금씩은 이기적이다. 그게 인간이고 전쟁은 그래서 일어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