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0.20 리투아니아어 20_휴가 Atostogos (1)
  2. 2016.03.19 [Frances Ha] Noah Baumbach (2013)
  3. 2014.07.27 <Mala noche> Gus Van Sant (1986)
  4. 2012.07.16 Vilnius 08_한 여름밤의 꿈 (3)
Lithuanian Language2016.10.20 08:00



 영원히 휴가중이고 싶다. 나는 그것이 어떤 행위라기보다는 감정을 지닌 하나의 상태이길 원한다.  우리의 마음이 휴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면 좋겠다. 

(휴가를 일컫는 단어는 Atostoga 이지만 일반적으로 복수형인 Atostogos(아토스토고스) 를 사용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6.03.19 08:16


올리비아 아사야스의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목록  (올리비아 아사야스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을 통해 알게 된 영화.  2013년 영화인데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무엇보다도 흑백과 핑크가 절묘하게 조화된 음악적인 영화 포스터가 Smith 의 베스트 앨범 자켓을 떠올리게 했다. (포스터 속의 프랜시스가 지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춤을 추고 있는것이었음) 오아시스가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스미스와 스톤 로지즈를 언급한 적이 있기에 수집하기 시작했던 스미스의 앨범들. 이 뜬금없는 흑백 영화가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나로 하여금 어떤 회상에 젖게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예감, 어쩌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추억도 아낌없이 녹아 있을것 같은 느낌. 요즘이 배경인 영화인데 굳이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목에 등장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 영화라면 여주인공은 아주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닐까. 



뉴욕 브룩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집을 빌려서 살아가는 무용수 프랜시스. 함께 살자는 남자 친구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녀가 택한것은 그녀들 스스로도 섹스만 없을 뿐 레즈비언 커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짝 친구 소피와의 생활이다. 하지만 믿었던 소피는 꿈꾸던 동네에서 (당연히 방세가 비싼) 살 기회가 생겼다며 프란시스를 남겨두고 미련없이 떠난다. 소피는 아마도 더 비싼 집값을 분담할 능력이 되는 룸메이트를 구한것일거다. 혼자서 집세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란시스는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남자들이 살고 있는 집의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가고 방세를 내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의 무용 공연이 절실하지만 공연에 설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 받는다. 무용수로서의 일 대신 행정 업무를 보며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하고 무용단을 나와 이런 저런 파트 타임을 뛰며 돈을 모으는 프랜시스. 한 저녁 모임에서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 취한 프랜시스는 즉흥적인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적자와 더 깊은 공허함에 빠진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케잌 부스러기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프랜시스에게 소피가 전화를 걸어오고 남자 친구의 일 문제로 도쿄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더욱 상실감에 빠진다.



마냥 부러워 할 수 만은 없는 프랜시스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짤막하게 나열되는 소피와 프랜시스의 일상들은 여유롭고 경쾌하기 그지없다. 공원에서 탭 댄스를 추고 모은 돈을 버스킹하는 밴드에게 넘겨주고 줄행랑치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책의 인상적인 구절을 읊어 준다거나, 좁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고 창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대화를 주고 받고 계단에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는 특별할것 없지만 걱정과 근심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을 곳도 없어 보이는 자의 일상.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을것 같은 영원할것만 같은 우정이 있고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일상 뒤에 따라오는것도 역시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남자 친구와의 문제일자리 그리고 돈에 관한 것들그리고 잠들기 전 그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 그러한 질척한 고충을 맞닥뜨린 자들의 전형적인 미래 일기이다. '프랜시스 넌 정말 유명한 현대 무용가가 될거야난 너에 관한 엄청난 책을 출판할거고 우리는 파리의 비싼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낼거고 정말 멋진 연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아이는 가지지 않을거야'.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똑같이 절망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를 여행하며 무엇을 먹는지가 우리가 낭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지 오래이다. '저거 임스체어 아니야??' 프랜시스가 새로 살기 시작한 아파트에 방문해서 방 구석구석을 훑어 본 후 소피가 내뱉는 첫 대사이다. '난 일자리도 필요없고 차도 필요없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는 요즘 세상에 없다. 낭만의 정의는 바뀐지 오래이고 젊음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그래서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소피와 프랜시스이지만 소피는 결국 프랜시스를 남겨두고 떠난다. 심지어 커피물 끓일 주전자 마저 가지고 떠나버린 소피,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프랜시스는 급한대로 냄비에 커피물을 끓이다 손을 데이고 소피에게 전화를 걸어 주전자를 내놓으라고 욕설을 퍼붓지만 다음 장면은 세금 환급에 관한 편지를 받고 천진하게 기뻐 날 뛰는 프랜시스의 모습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집인데 정작 자신이 설 조그마한 자리, 방 하나 찾기가 마땅치 않음에 조급해지고 절망하는 프랜시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를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프랑스 흑백 영화도 마음 편하게 보고 싶겠지만 모든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며 중국 음식을 먹는 프랜시스는 체할 것 만 같아 보인다. 낭만의 도시 파리를 여행 하고 있지만 시간을 떼우려고 케잌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 프랜시스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가진것 없는 세대에게 더 이상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현실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것이라 다독이며 감내하던 여유도 삼켜버린지 오래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이 인생에 뜻하지 않은 기회와 우연과 운명을 제공할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것은 더 큰 절망, 현실은 더 날것이 되어 소화되지 못하고 배탈을 일으킨다. 



매사에 즐거워보이고 장난끼 넘치는 긍정적인 프랜시스이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 레프와 벤지 사이에서도 박탈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교감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헬맷을 들고 유유자적 집을 나서는 레프를 보며 벤지와 프랜시스가 나누는 대화는 이렇다. '레프는 오토바이도 있고 심지어 차도 있어.' '좋겠다. 난 심지어 이 집을 나설 다리도 없는데.'  재치 넘치는 대사, 과장된 몸짓과 디테일한 연기들이 흑백 필름속에서 빛이 난다. 흑백 필름속의 트렌디하고 풍족한 뉴욕을 보며 이 영화가 마치 아무렇게나 찍은 컬러 사진을 수십가지의 필터를 통해 흑백으로도 로모 카메라로도 손쉽게 변환 시킬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은 기우였다. 내가 언젠가 동경했고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어떤 흑백 영화속의 삶의 원형들을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다.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나쁜 피>,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 구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 (말라노체 리뷰 보럭가기)그리고 누벨바그 하면 항상 거론되는 어떤 프랑스 고전 영화들. 이 영화 <프랜시스 하>를 보려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보면 좋을것 같은 영화들이다. 왜 굳이 흑백으로 촬영했을까 라는 물음표로 시작된 내 기대감도 아낌없이 충족됐다. 만든이들의 추억과 그들의 옛 영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속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2013년의 젊음들은 흉내내기 힘든 삶의 애티튜드. 무원칙이라는 원칙속에서 자유로웠던 인물들. 영화는 한편으로는 2013년의 좌절한 프랜시스가 꾸는 흑백의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30년전의 흑백 영화속에서 사랑에 고통받지만 지독히도 냉소적이었으며 대책없이 허무했고 별다른 삶의 모토없이 (혹은 그런척하며) 하루라는 최소한의 삶에 조차도 얽매이지 않으려 애썼던 많은 인물들이 프랜시스에게 레프에게 벤지에게 소피에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 갑자기 흘러 나오는 음악. 1월에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이다. 정말 가슴이 펑하고 터지는 장면이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노래인데도 그 인트로는 뭉클하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퇴폐적인 목소리와 감성, 시대를 앞서갔다라는 구태의연한 수식도 아깝지 않은 뮤지션이다. 프랜시스의 달리기 장면 그 자체가 짜릿했는지는는 모르겠다. 단지 같은 음악에 맞춰서 담배를 꼬나 물고 어둡고 조야한 밤거리를 미친듯이 뛰던 30년전 영화 <나쁜 피>의 드니 라방이 떠올랐을때 가슴이 턱하고 막혔던것이다.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고 상기된 표정으로 뉴욕 한복판을 달리고 또 달리는 프랜시스의 이 장면은 분명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향한 오마쥬이다. 줄리엣 비노쉬를 향한 가슴속의 벅차 오르는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신 나간듯 달리던 드니 라방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울에 잠겨 있는 안나가 있는곳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랑이 이토록 별안간 갑자기 시작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는것을 믿느냐고.' 우리가 늘상 꿈꾸는 감정을 그토록 솔직하고 순수하고 비현실적으로 담아내던 그들. 그래서 낭만적이다. 긴 달리기 끝에 프랜시스는 새롭게 둥지를 튼 벤지와 레프의 집에 골인한다. 프랜시스의 표정은 가까스로 다시 발 붙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득하다. 결국은 그 안도감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절망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절망의 원인이 확실할때.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을때. 프랜시스가 느끼는 좌절은 한편으로는 드니 라방의 그것보다는 정당하고 명백해보인다. 팍팍한 현실. 이유있는 좌절. 하지만 모든것이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 우울일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곳에 낭만이 설 자리는 없다.



레프가 쓰고 있는 페도라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 폴 벨몽도가 쓰고 있는것과 너무 비슷하고, 그의 전체적인 외모는 <천국보다 낯선>속의 에디와 윌리의 겉모습을 섞어 놓은듯 하다. 물론 그는 무늬만 보헤미안스럽지 선배들의 애티튜드와 감성을 전혀 물려 받지 못했다. 그의 아름답고 모던한 아파트속의 (하지만 역시 임대료를 내야하는) 벽속에 걸린 추억돋는 액자속 사진들은 그의 가족 사진도 아니고 여자들을 데려오면 으례 내 방 구경 시켜줄까 하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가는 그렇다고 여피도 아닌 시쳇말로 그냥 있어 보이는 인물이다. 프랜시스는 소피의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도쿄 생활을 엿보고 모르긴해도 그로 인해 더 조급해진다. 함께 미래일기를 쓰던 친구인데 누구는 지구 반대편의 삶을 만끽하고 누구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컴퓨터실에서 행복 돋는 친구 블로그나 클릭하고 있고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피는 하지만 도쿄 생활의 불만을 토로한다. 프랜시스는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은 소피의 모습에 다시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너 블로그에서는 행복해보이던데 왜'. 왜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환호 할 수 없는걸까. 왜 있어보이는 삶에 집착할까. 전보다 더 많은것을 가졌음에도 왜 없어보이는것에 불안해할까.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랜시스는 결국 벤지와 레프와 함께 살고 있던 아늑한 집을 떠나서 도미토리에서 지내게 된다. 깔끔하기 그지 없는 장소이다. '난 돈이 없어서 직장에서 짤려서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요즘 같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도미토리에 묶는 불쌍한 세대' 라고 불행한 단어와 문장으로 목조르기에는 탤런트도 있고 건강한 신체를 지닌 아직도 낭만이 가능한 삶 아닌가. 이것은 내가 밀린 임대료 때문에 밥을 굶어 본 적이 없기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까?  이전의 가난과 불행이 절대적이었다면 요즈음의 그것은 내 삶을 나보다 더 나은 타인의 삶 (이란것이 있다고 세뇌하는 사회속의)과 비교하는데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의 수준도 상향 조정되었으니깐. 옛날 영화였으면 프란시스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트레인 스포팅>에서 나오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더러운 화장실의 변기만도 못한 변기가 놓인 도미토리의 화장실에서 이를 닦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 호스텔 도미토리를 사용했을때 이렇게 잠들기 전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공동 샤워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수많은 침대가 놓인 침실로 돌아가야 할때가 있었다. 땀 냄새 풍기며 코고는 남자 아이들,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여행자들, 새벽에 들이닥쳐 소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푸는 여행자들. 모든것이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돈이 많으면 조식이 나오는 깔끔한 호텔에서 지내며 가이드가 붙어 있는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왜 굳이 '돈이 없어서'  라는 조건을 붙여서 내 소중한 삶의 낭만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걸까.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프랜시스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밝고 꿋꿋했다는것. 비록 기대했던 우정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재능있는 발레리나 대신 안무가의 길을 택하면서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룸메이트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꼼꼼하게 우체통에 꽂을 이름을 적는다. 비록 글씨 크기를 조절을 못해서 이름의 절반은 접어야 했지만 그녀 자신의 인생과의 사랑을 시작한 그녀. 지금부터 시작되는 프랜시스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그녀가 내가 동경했던 영화 주인공들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4.07.27 11:07



요새 크라이테리언 수집에 대한 생각을 가끔한다. 

발매되는 모든 작품을 가리지 않고 구입하는 열혈 수집광은 절대 될 수도 없거니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본 영화를 중심으로 좋은 영화를 모으는것을 고려해보니 그것도 꽤 많은 지출이 필요할것 같아서 세분화시킨 구입 기준은 

흑백영화 타이틀만 모으거나 감독의 데뷔작만 구입하는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우연히 가지게 된 몇 안되는 타이틀이 전부 흑백이라서 동일성을 부여하고 싶은건지도.

그리고 아무장면에서 멈춰도 항상 포토제닉한 정적인 영상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70년대 이전 타이틀이 절대적으로 많은것을 생각하면 타이틀 절반이 흑백영화일지도 모르니 만만치 않은 수집조건일듯. 



<Mala noche>와 <아이다호>.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에서 발매된 구스 반 산트의 영화 두편이다.

구입한것은 아니지만 흑백영화이자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이 몹시 땡긴다. 

 구스 반 산트의 많은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낭만은 사실 시각적인 이유가 물론 크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나  <아이다호>. 최근의 <레스트리스>까지.

프레임의 한 귀퉁이에서 세상의 막다른 길에 몰린것같은 인물들에게서 뿜어져나오던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 

 일을 끝낸 후 아파트로 돌아와 아침을 맞이하며 그들이 묵묵히 끓이던 커피.

왠지 그 시대의 모든 이들이 그런 모자르고 절제된 낭만속에 살았을거라 착각하게 만드는 정제된 시퀀스들. 

나의 얘기와는 너무 동떨어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들것만 같은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생.

나는 줄곧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꼈지만 항상 객관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을 동경했더랬다.

편견을 버리고 말을 걸면 날 밀어내지 않을것 같은 이해를 구하지도 현실을 부정하지도 숨기려고 하지도 않던 주인공들.

그 모든 주인공들의 원형은 아마도 구스 반 산트의 장편 데뷔작인 <Mala noche>의 월트였던것 같다.

흑백영화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김없이 비슷한 시기에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짐자무쉬와 레오 까락스가 동시에 떠오른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월트도 밤새 거리를 걷다가 새벽이 되어야 돌아오던 <영원한 휴가>의 앨리도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에서 어두운 파리를 배회하던 드니 라방도.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그들을 에워싼 고독은 지금 시대에서는 절대 구현해 낼 수 없는 특유의 우울함이었던것 같다.



마치 도화지를 잘라 만든 누군가의 핀홀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듯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사사로운 이야기.

화면속에 자리잡은 최소한의 피사체들과 하나의 인물을 위해 극도로 절제된 빛.

화면을 사이에 두고 주인공과 오롯이 마주앉아 있는듯한 느낌. 

달리고 걷고 멈춰있는 다양한 상태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일관적인 월트의 독백은  

화면을 보고 말하던 또 다른 흑백 영화속의 장 폴 벨몽도를 떠오르게 했다.



그러고보니 동숭아트홀에서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많이 상영했었단 생각이 든다.

개관작인 <천국보다 낯선>부터 두번째 상영작은 레오 까락스의 <소년,소녀를 만나다>였는데

그때 사은품으로 받은 포스터를 꽤나 오랫동안 책상 유리밑에 깔아놨던 기억이 난다.

구스 반 산트의 데뷔작도 동성애라는 소재가 아니었다면 흑백이라는 메리트를 달고 분명 상영될 수 있었을거다.

그것은 아마 80년대 초반 20대초중반을 살았던 당시 90년대 중반 삼사십대들의 향수였을지도.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2.07.16 07:45

 

 


7월 6일은 리투아니아의 국경일이다. 정식명칭은 karaliaus mindaugo karunavimo diena. 1253년 7월 6일은 리투아니아 공국을 세운 리투아니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국왕인 mindaugas 국왕의 즉위일이다.  국경일 명칭에 mindaugo 라고 쓰이는 이유는 이름이 소유격처럼 쓰이므로 Mindaugas 에서 Mindaugo 로 변형된 것. 사실 그러고보면 리투아니아에는 Mindaugas 민다우가스라는 이름이 정말 많다. 우리때만해도 학생이 그렇게 많았어도 사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것 같은데, 반면 리투아니아에는 이름이 거기서 거기인 대신  성을 외우기가 무척 힘들다. 친구들중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기때문에 보통은 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을 하다보면 전화상으로  내 이름을 알려줘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마다 애를 먹는다. 잘 알아듣기 힘든 명칭을 받아적게 할 때 리투아니아인들은 보통 사람이름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korea 라는 단어를 알려줘야 할 상황이라면, karolis  K, ona O. renata R. emilija E. agne A. 지금 적은 단어들은 전부 리투아니아 이름들이다.  이런식으로 아무 이름이나 알아들을 만한 이름을 예로 들어서 첫 철자를 적게 하는것이다. 물론 알파벳 명칭인 케이,오,알,이,에이 이런식으로 리투아니아 알파벳도 저마다의 명칭이 있지만, 알아듣기 힘든 명칭은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이름을 예로 들면 훨씬 받아적기가 쉬워진다. 금요일인 국경일을 맞이하여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의 연휴가 시작되었다. 코발트 색 페인트칠을 하고 친구의 친구가 불러내서 오후 10시반경에 집을 나섰다. 매년 여름 이맘때쯤 빌니우스의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뒷마당에서는 'kinas po zvaigzdemis'라는 부제를 걸고 영화를 상영한다. 직역하면 '별 아래에서의 영화'.  오픈씨어터이고 상영하는 영화도 주로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이다. 티켓가격은 10리타스, 대충 오천원이 안되고 공짜로 커피도 주고 원한다면 맥주도 사서 들어갈 수 있는것 같다. 달려드는 모기가 두렵지 않다면 잔디에 누울 수도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앉아 멀리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약간 늦어서 오프닝부터 보진 못했고 얼핏 난니 모레티라는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검색해보니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였다. 난니모레티가 <타인의 취향>을 만든 감독이었나. 



 

 




처음에 좀 놀랐다. 그냥 영화 볼래 해서 나온건데, 종교 영화였다면 나오지 않았을것 같다. 바티칸 얘기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근데 교황이 즉위식 당일에 울렁증을 일으키고 결론적으로는 즉위를 포기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우리가 금욕을 요구하고 성스럽길 요구하는 종교인들도 결국은 똑같은 사람일뿐. 감독 난니 모레티가 정신과 의사로 나온다.



 

 




하지가 지난지 3주가 다 되어가지만 오후 11시가 되어감에도 밝다. 리투아니아에 백야는 없지만 긴 여름 밤은 충분히 매력있다. 교황의 즉위식에 앞서 바티칸에 모여 교황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시민들이다.




 

 



교황이 아니다. 교황은 발코니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울렁증을 일으키고 만다.



 

 



교황 아저씨.



 

 


영화 끝나고 간 곳. 보헤마라는 레스토랑인데 여름이라서 일시적으로 꾸며진 섬머테라스이다. 여기가 원래 도서관 앞뜰이다. 굉장히 조용하고 시끄럽게 술 마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나오기전에 스프를 먹었어서 우리는 배가 별로 안고팠지만 일행이 음식을 시켰다, 3가지 맛의 타뻬나드이다. 나는 샴페인 한잔 마셨다.



 

 



우워와 저 샐러드 너무 맛있어 보인다. 초콜렛 시럽같은 감촉의 드레싱.



 

 




새벽 두시반 쯤 되었다. 밤에 걷기에 딱 적당한 날씨이다.  덥지도 춥지도 부담스러운 바람이 안부는 그런 날씨.

페인트칠을 다 했다는 만족감.



 

 



한적한 데 큰 거리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트립'이라는 이름의 술집인데 20대초반 혹은 십대 후반 위주의 인테리어이다. 밖은 벌써 대낮이다. 오전 4시가 좀 넘은 시각. 저 전등이 예쁘다. 우리 친구의 친구가 테이블 축구하는 작은 클럽을 운영하는데 테이블 축구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그 축구 테이블이 놓여진 거래처들을 순회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클럽에서도 테이블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데나 널부러져 있는 아이들. 저런 푹신한 소파가 집에 있어도 좋겠다. 큰 모래자루 같은걸로 된 그런 소파들.

 



 



바나나와 초콜렛 시럽이 섞인 무슨 칵테일을 마셨다.



 

 



난 절대 싱크대밑에 커튼을 달고 싶지는 않다.


 

 



오후 10시 이후에 상점에서 주류판매가 금지되있으므로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술을 밖으로 가져나가는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이 클럽에는 문앞에서 사람이 지키고 서서 담배피우러 나가는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나가는것을 제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모래자루위에 앉아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그냥 막 지나다닌다. 널부터져서 자는 이들도 있고.



 

 



이곳은 오전 5시경에 찾아간 play 라는 클럽이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축구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거의 문을 닫는 분위기이다.

 



 



적당히 아름다운 램프.



 

 



지금 무엇을 가르키고 있냐면 아마 클럽 마떼라는 무알콜 카페인 음료이다.



 

 



이거.  맛있는 음료이다. 남미에서 주로 마시는 마떼라는 차인데 카페인이 있다.



 

 



우리집 부엌이 이런 분위기여도 난 좋을것 같다. 항상 마시자는 분위기로 가겠지만.




 

 



인테리어 블로그에 단골로 등장하는 빨간색 스멕 냉장고.  이런 클럽에 서있으니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천장색이 어두워도 좋은건 여기가 클럽이기 때문일까.



 

 



저 쇼파에 눕기 위해서는 취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의 아는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알바생이 자기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있다.




 

 



의자 올리고 청소하는 시간.



 

 



주변 주민들은 정말 별로겠다. 실내 흡연이 금지되어 있으니 담배를 피우려면 죄다 클럽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이 많으니 자기 말소리가 안들려서 더 큰 소리로 얘기하다보면 클럽 밖은 내부만큼이나 시끄러워진다.




 



 

어느덧 아침 7시가 넘었다. 별다른 계획도 없었는데 나름대로 유쾌한 적당한 장소들을 거쳐 좁은 빌니우스 이리저리에서 수다를 떨고 그래도 나름 또렷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의 앨리가 된 기분이다. '어디 갔다 왔어?' '어 밤새도록 걸어다녔어' '한 잠도 못잔 얼굴이 아닌데?' 그 대사가 머리를 스쳤던 날이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