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4.02 <우리 선희> 홍상수 (2013)
  2. 2013.01.06 <생활의 발견> 홍상수 (2002)
Film2015.04.02 02:43




<우리 선희>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영화의 배경이 수원이란다. 

매번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도 만들었는지도 모른채 마치 비디오 가게에 열편씩 나열된 신작 비디오를 발견할때처럼

습관처럼 보아오던 그의 영화인데 영화의 배경 덕택에 처음으로 기대란걸 하고 기다리게 됐다.  

 수원에 세번을 갔는데 간 목적은 화성이 전부였다. 수원의 시내버스까지 갈아타야 했었는데 그 울렁이는 기분도 추억이 됐다.

고궁 촬영을 즐기는 감독이니 수원에 가서 수원 화성을 지나치진 않겠지? 

게다가 새로운 영화에 <우리 선희>에서 인상 깊었던 정재영이 나온다니 더더욱 기다린다.

정재영한텐 미안하지만 이 배우는 천만배우 이런거 안되고 그냥 뭔가 이런 귀여운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 자신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지 못해 기분 나빠 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얘는 이번에도 못 탔네', '다음번엔 정말 주연상을 탈 만한 배역을 꿰어찼군' 이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

과연 그 본인도 그런 아쉬움과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칼을 갈고 있을까. 왠지 전혀 그럴것 같지 않다.

정재영 같은 배우도 조연에서 주연으로 자리매김한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을 보며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까? 그럴것 같지 않다.

그가 언젠가 남우 주연상을 타고 최고의 흥행배우가 되면 그도 토크쇼에 나와 

유명한데 별다른 히트작 없었던 배우 생활에 대해 자기연민의 어조로 허심탄회 털어 놓을까. 그러지 않길 빈다. 

힘들었던 시간과 서러웠던 순간을 말하며 폭풍 눈물을 흘리고 간신히 얻은 유명세에 구설수에 올라 침체기를 겪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구설수도 웃음의 재료로 써먹는 방송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그런 스타의 삶보다는

잘되는 영화 멋있는 배역만 고르는 톱스타 보다는. 일은 취미처럼 취미는 일처럼 하는 배우의 삶이 멋있는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제프 브리지스, 잭 블랙 같은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난 <내 깡패같은 애인>의 정유미가 가장 좋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연애의 발견>의 정유미를 가장 기억할거다.

엉겁결에 로코퀸이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도 있는 배우가 되어버린 정유미이지만 

드라마에서 호응을 얻은 캐릭터도 어쩌면 홍상수의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말랑말랑한 온라인 버전에 가까워보인다.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다보면 반사적으로 이전 영화들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을 끌여들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옥희의 영화>나 <첩첩산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만

전작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떠올려보면 영화의 제목이 <누군의 여자도 아닌 선희>였었어도 어울렸겠다 싶다.

대명사라는 품사 자체가 매우 상대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를 함유한다고 생각해볼때

우리가 늘상 '우리'라는 테두리에 가두고 소유하고 의미를 쏟아 붓는 대상들이 사실은

누구도 자기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매우 포괄적이고도 불분명한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선희를 통해 알게되다니.

그리고 선희라는 그 대상 자체도 누구의 소유이려고도 하지 않는 뜨뜨미지근한 자세를 취했을때의 화학작용이란.

그것은 플라스크속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격렬한 화학반응이라기 보다는 

그냥 서서히 산화하여 녹슬어가다가 결국 부식되어가는 습관적이고도 뻔한 인간관계와 비슷해보인다. 

대문짝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치킨집 스티커는 그렇고 그런 뻔함이지만 그 뻔함도 로망이 되고 기다림이 된다.

불분명한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서 한방의 동사를 끄집어 내지 못해 오락가락하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요? 음악을 틀을 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술집 주인 예지원은 또 어떤가.

웃음을 머금은채 손님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가장 관대한 관찰자이지만 

그도 언젠가는 그 미적지근한 화학작용의 주체였단걸 누군가는 눈치챘을거다.  

예지원의 얼굴에 누구의 친구도 아닌 <북촌방향>의 술집 여주인 김보경이 오버랩되는것이 억지는 아닐터.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타인으로도 남고 싶지 않은 어설픈 관계.

한때 일방적인 구애도 있었고 격렬이 사랑했으며 처참하게 싸워 남이 된 순간들도 있었을지 모를 관계이지만

이들 영화에서는 늘상 그런 뜨겁고 인간적인 인간관계 대신

데워먹을까 볶아 먹을까 아니면 라면 국물에 말아먹을까 고민하게 되는 식어버린 찬밥 같은 인간관계만 즐비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 하나 없고 시작하지 못해 애 태우는 사람도 없이 리사이클되는 감정들.

어쩌면 쉽게 변할것 같지 않은 감독의 영화 스타일.

이십년동안 보아온 그의 영화들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게 될 이십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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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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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1.06 08:54

 

 

<생활의 발견>

 

무릎팍도사에 김상경이 출연했다.

김상경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편을 떠올려보면 토크쇼 출연이 그렇게 뜬금없는것 같진 않다.

단지 <생활의 발견>속의 김상경은 속된말로 찌질했어도 수다스럽진 않았는데.

김상경의 입담에서 박중훈의 위트를 기대했던것이 사뭇 민망해졌다.

김상경 스스로는 자기가 정우성과 송강호의 중간 지점에 있는 배우같지 않냐고 되물었는데

물론 도사들은 그 중간에 이병헌이 있지 않나요 하고 받아쳤지만. 하하하.

김상경은 자신이 가진 평범하고 생활 밀착적인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던것 같다.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거나 살인을 할 만한 극적인 캐릭터가 사실 그에겐 없다.

송강호는 정우성보다 분명 못생겼지만 <뱐칙왕>의 무능력한 회사원을 연기해도 그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김상경은 검사에 의사까지 엘리트를 연기해도 그냥 그런 좋은 직업을 가진 평범한 남자 같다.

아마도 <생활의 발견> 출연후에 결정적으로 그런 캐릭터가 생겨난것 같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도 분명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것은 아니다.

홍상수의 영화가 모든 배우들의 로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배우들에게 궁금한 감독인것은 분명한 사실같다.

배우들은 왜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하는것일까.

이미 연기했던 배우들이 그의 독창성과 실험성을 칭찬해서?

찍기만 하면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는것이 분명하니깐?

그의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배우들은 촬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감독은 그 배우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얻고

자신의 모습을 일부 그들에게 투영하면서 보편성을 추출해내고 관객의 공감을 얻어낸다.

하나의 영화에서 다음 영화를 예고하는 동시에 그 이전의 또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게끔 하는 그의 영화는

어찌보면 단 한번의 결말도 없이 지금도 계속해서 방영되는 무슨 연말 연속극 비슷한것 같다.

배우들은 두세편의 터울을 두고 바뀐다.

마치 하나의 자아에 사형선고를 내리듯 첫번째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결국은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모두 공통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고만고만한 등장인물들 사이에도 성숙의 정도에 따른 차이가 분명 있다.

마치 유충과 성충, 그들이 벗어놓고 떠나는 빈 껍데기 사이의 차이만큼 말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몇개의 굵직한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로드무비이다.

근데 그 로드무비는 마치 기록영화같다.

대개 영화를 찍거나 연기를 하는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작업을 끝냈거나 또 다른 작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여행을 계획한다.

마치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을 따라 이동하는 낚시꾼들처럼, 어쩌면 등장인물 자신이 교미기에 처한 물고기들 인지도 모른다.

 갈등이나 전개 결말같은 극적인 요소가 결핍된 이 영화들은 연말 연속극이라기 보다는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같은 프로그램이나 <마이크로 코스모스>같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라는 거대한 곤충을 통해서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것은 혹시 배설의 미학이 아닐까.

 

 

이런 장면은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컷처럼 소주컷으로 불러도 문제가 없을것 같다.

의도된 만남과 술자리속에서 고기에 양파에 고추장에 이것저것 얹어져 입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상추쌈은

마치 배설직전의 의식같다.

게임에 질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는것처럼.

 

 

그의 영화에서 달콤한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조그만 체구에 초록색니트를 매끈하게 빼입은 선영의 모습은 혹시? 하는 기대를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혹시는 귀까지 빨개져서 호텔에서 카드에 서명을 하는 유부녀의 모습을 통해 역시로 바뀌지만.

유부녀의 잠자리 상대가 되었다는 열등감과 춘천에서 딴 여자와 놀아나는 그 유부녀의 교수남편에 대한 열등감까지 합해져서

경수의 집착은 극에 달하고 그 집착은 치밀하다 못해 찌질하다.

마치 달밤에 체조하듯 대낮에 술에취해서는 감까지 첨부해서 선영의 남편에게 협박편지를 쓰는것.

여주인공들이 남기는 유치한 편지들이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명숙의 말도 또 다른 집착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괴물은 되지 말자고 말하며 쾌감을 느끼는 속물들.

그럼에도 경수는 선영과의 관계에 있어서 잠자리 이상의 어느정도의 의미부여를 원했던것 같다.

선영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학창시절과 그가 기억났다고 말했으나 실제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그의 기억속의 선영에

감상적으로 집착한다.

 

 

 

경수의 선배가 청평사로 가는 배속에서 들려주는 회전문에 얽힌 설화는 사실 좀 웃기다.

당태종의 딸을 짝사랑한 남자를 당태종이 죽였는데 그 남자가 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을 꽁꽁 감쌌단다.

도사가 그 뱀을 떨쳐버리려면 조선의 청평사로 가라고 해서 청평사로 오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쳐서 뱀이 놀라서 도망가는데 그때 뱀이 돌아간문이 회전문이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도 'turning gate'이다.

보통 설화들은 애절하다못해 가슴 아프지만 뱀으로 까지 환생한 짝사랑남도 그렇고

그 뱀을 떨쳐버리려고 청평사까지 오는 공주도 웃기다.

웃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는 순간의 연속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들이 결혼 전에 그러듯 경수는 선영을 끌고 보살의 집으로 들어간다.

보살은 굳이 점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선영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구실을 찾아보려는 경수의 의도가 눈물겹다,

마치 공주의 몸을 칭칭감고 떨어질줄 모르는 그 뱀처럼.

결국 경수는 보살에게 좋은 소리 못듣고 선영과의 관계의 어떤 당위성도 부여받지 못한다.

지갑을 가지러 간 선영은 돌아오지 않고 갑자기 천둥번개까지 치기시작한다.

그리고 선영의 집앞에서 경수는 씁쓸히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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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