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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4 <오프라인 Offline> Peter Monsaert (2012)
Film2013.11.14 04:32



<Offline>


예전에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다가 피식 웃었던적이 있다. 포카리스웨트의 자몽농축과즙이 이스라엘산이었기때문이다.

이온음료를 즐기는것은 아니었지만 매번 그 음료를 마실때마다 '아 내가 지금 이스라엘산 자몽을 먹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밍숭맹숭 비누맛같은 음료수를 들이키며 지구 반대편의 물 귀한 나라를 떠올리는것이 항상 있는 일은 아니다.

벨기에산 씨쉘 (sea shell) 초콜릿을 먹을때도 비슷한 기분이 든다.

내가 해마모양 초콜릿을 집을때마다 '아 네가 벨기에에서 자랐다는 그 해마구나' 라는 생각은 물론 하지 않을거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무시하기란 쉽지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물건이나 음식의 국적을 따지는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집과 직장만 왔다갔다하면서도 알게모르게 지구촌 구석구석의 방문객과 조우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내가 모르는 알파벳이 조합된 언어들과 내가 맡아본 적 없는 날씨의 냄새가 흘러나오는듯한 새로운 영화를 접할때도 비슷하다.

꼭 다시 찾아서 보고 싶은 터키영화 <우작 Uzak> 이나 <쓰리시즌 Three season> 같은 베트남 영화를 봤을때의 느낌.

우연히 발견해서 아무생각없이 내용도 모르고 그냥 봤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라의 영화일때 받는 느낌은 신선하다.

심지어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무슨 나라 영화일까를 생각해야하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난 어제 우연히 본 벨기에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이리도 주섬주섬 장황하게 이스라엘 자몽 생각을 하고 있는것.

 


몇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나온 주인공 루디 (Wim willaert). 

무슨 죄를 지어서 감옥 생활을 했는지 구체적인 정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미루어보건데 술에 취한상태에서 실수로 불을 내서 어린딸이 죽었고 가족과도 멀어지게 된것 같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떠나가려는 혹은 도착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유의 음울함을 가지고 있다.

나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기대감에 들떠있겠지만 그만큼의 불안함도 가지고 있기에 겉으로 내색하기 쉽지 않고

누군가에게 마냥 기분 좋은 손님이 되기에는 그들 사이의 호흡을 방해하는 망가진 횡경막같은 '빈 시간'이 존재한다.

이런 색채의 영화들이 좋다. 

<우작>은 찬란한 금색이 되려다 실패한 탁한 고동색이었고 <만추>의 애나가 도착한 시애틀은 은색이 되지 못한 회색이었다.

<파리 5구의 여인>에서 에단 호크가 내린 파리는 파랑도 초록도 아닌 녹이슨 에메랄드 빛깔이었고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가 홀로 걷는 뉴욕은 흑백필름이 아니었어도 영락없는 회색이었을거다.

태양의 따사로움을 애써 지운 흔적이 역력한 이런 영화들. 

주인공들은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그는 그가 그토록 잊고 싶어하는 과거의 '그'일때가 많다. 

<쇼생크 탈출>에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브룩스 할아버지(제임스 휘트모어)는 제크라는 이름의 새를 키운다.

브룩스가 갇힌 감옥속의 또 다른 감옥인 그의 자켓 안주머니 속에서 애벌레를 먹고 자라나는 그의 새. 

루디가 들고있는 새장속의 저 새가 그가 감옥에서 키운 그의 제크인지는 모르겠다.

루디는 날아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늘상 텁텁하다. 



벨기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런 색감은 한없이 침울했던 암스테르담의 10월과 많이 닮았다.

루디는 전직 세탁기 수리공이었나보다. 

직업소개소를 찾아가서도 자신의 전직만 상기시킬뿐 담당직원이 소개해주는 직업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결국에는 광고물을 싣고 도시를 도는 광고차량을 운전하게는 되지만 그 전광판에도 세탁기 수리 전단지만 잔뜩 붙일뿐이다.

직업소개소 직원 입장에서는 루디, 지금 찬 감자 더운 감자 가릴때입니까? 라고 물어볼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가 잘 할 수 있는것 혹은 하고 싶은것을 하려는 것은 루디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것이다.

단지 이들이 바뀐 현실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라는것. 그것이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것일뿐. 

공중 세탁방에서 열리지 않는 세탁기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여자를 도와주게되고 

루디에게 호감을 느낀 여자는 고칠 세탁기도 없는 집으로 그를 초대한다.  

루디는 그녀에게 창고에서 썩히던 세탁기를 선물하고 세탁기는 그렇게 세상밖으로 나오지만  

루디는 세탁기처럼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안썼던 기계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 별탈없이 제 기능을 하는법.

사람이 기계처럼 언제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편리한 존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절대 변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그에게 필요한것은 단지 시간일지도 모른다.

루디가 굳이 세탁기가 아닌 냉장고나 텔레비젼 따위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들 중 누구도 타인을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세탁기는 빨래를 빨고 전자렌지가 음식만 데울 수 있는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로인해 누군가가 한없이 불행해진다고해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그냥 인정해야한다. 



출감한 그를 대하는 부인의 태도는 냉랭하기만하고 심지어 아내 카리나는 그가 딸을 만나는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루디가 딸에게 쓴 답장도 전해주지 않은것은 카리나가 루디에게 화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그것은 남아있는 또 다른 딸도 잃을지 모른다는 본능이었을거다.

딸이 성인 채팅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사실을 알고 이웃집 컴퓨터로 사이트에 등록하는 루디.

그리고 수감동료인 이웃 Rachid 의 이름으로 루디는 비키의 고객이 되고 대화를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라시드에게 호감을 느끼는 비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딸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가고 온라인상의 대화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느끼게 된다.



루디와 비키가 늦은 시각에 들른 이 텅빈 식당씬이 가장 마음에 든다. 

아직 운전을 해보진 않았지만 긴긴 밤운전 끝에 아무곳에도 서두르지 않으며 이런 식당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7년이라는 단절되었던 시간.

누군가의 딸이 될 수 있었던, 아빠가 될 수 있었던 그 과거의 시간은 무겁게 현실을 짓누른다.

그 잘못된 과거는 그냥 현실에서 온전하게 두발로 서있는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어렵게 딸과 밤늦게 밥먹을 기회를 얻은 루디, 딸에게 이런저런 사소한 바람을 얘기하는 루디에게 비키는 말한다.

'아빠는 아무것도 원할 수 없어'

'당신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어'같은 구태의연한 비난이 아닌 희망의 근본을 비틀어 버리는 비난.

우리가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원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우리는 상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줘야할까.

반대로 말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것에 감사해야할지도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원하는 대신 상대가 내가 원하는대로 뭔가를 하길 바라지는 말아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해 죽을때까지 투쟁한다.

승자는 없다. 지던가 혹은 투쟁하지 않던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리움이 인간을 살아나가게하는 고통스러운 원동력일때가 있다.

그리움을 이겨내게 하던 힘은 그 그리움의 댓가로 언젠가 함께할 수 있다는 물리적인 보장같은것이었는데

우리가 진정 행복하다고 느꼈을때를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행복의 댓가로 오히려 그리움을 망각한채 살아간다.

컴퓨터 모니터 건너편에 손만 뻗으면 닿을것 같은곳에서, 모바일 액정 말풍선속에 귀만 귀울이면 들릴것 같은곳에서

사람들은 대화하고 교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관계일지 모른다고 정의해버린다.

물리적 보증이 없는 그리움은 담보된 감정일 뿐이고 그 감정은 항상 평가절하된다. 

내가 더이상 발디딜 수 없는 입국이 금지된 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대한 내 그리움은 무의미한것일까.

그곳은 오히려 현실에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떤 이상이 존재하고 있는곳은 아닐까.



더이상 딸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루디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마저 대화를 끝낼 결심을 하고

카리나는 루디가 감옥에서 보내온 답장을 상자에서 꺼내 비키에게 연락을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라씨드는 어쩌면 온라인상에선 영원히 오프라인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실제 딸과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디와 딸의 관계가 그대로 끝난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는것인지는 우리의 상상에 달려있는것. 

영화 속에서 비키의 친구가 들려주는 머리잘린 바퀴벌레 이야기가 흥미롭다.

바퀴벌레는 머리가 잘린채로 9일이나 더 살 수 있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머리없는 바퀴벌레가 죽는 이유는 두통때문도 아니고 굶주림때문이란다.

불행의 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곳에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비난할때 미워할때 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때 정신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