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s Diary2015.10.01 23:37



오늘도 엄마는 이렇게나 예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듯한 얼굴을 하고서.

그리고선 언제나처럼 나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나도 엄마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라고 몹시 대답해주고 싶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22 06:27



새벽에 깨서 우는 나를 안고 늘 그렇듯이 소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는 엄마. 밖에서 스며드는 빛줄기를 세어보며 평소처럼 대충 몇시인지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씩 바깥 날씨는 쌀쌀해지고 아직 난방이 시작되지 않은 집에는 밤이 되면 제법 찬기가 돈다. 사실 내가 우는 이유는 밤새 겨우겨우 따뜻하게 데워놓은 이불속을 빠져 나가야 하기 때문이지만 곧 이불보다 따스한 엄마 품에 안긴다는것을 위안삼곤 한다. 하지만 그 달콤함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나는 밥을 먹는지 잠을 자는지 알 수 없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빠져들곤 하지. 엄마처럼 큰 사람은 춥지 않을까? 이럴땐 내가 엄마보다 조그매서 엄마를 안아줄 수 없는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하지만 아주 작은 내 발바닥이 엄마의 손에 가득 감싸져서 엄마를 위한 발바닥 난로가 되는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어젯밤엔 엄마가 졸면서도 열심히 밥을 먹는 나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엄마는 왜 웃었을까. 엄마는 혹시 졸다가 무슨 재밌는 꿈이라도 꾼것일까? 그리고선 엄마는 아침이 되자 지금까지 불러 준 적 없는 새로운 노래 한곡을 나에게 불러 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나는 엄마와 함께 몇번이나 더 이 밤의 정거장에 내릴 수 있을까. 푹신한 소파 하나와 승객은 엄마와 나뿐인 반짝거리는 이 정거장.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엄마에겐 그것이 몇번이든 아무래도 좋아보였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5 03:28



오늘은 토요일. 매일 정해진 시간이면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아빠가 이상하게도 아무데도 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상한 날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요일이며 오늘 엄마의 계획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얘기해주는데 그도 그럴것이 나도 주중 아침에는 별로 잠이 안오고 왠지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할것같은 기분에 똘망똘망해진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나도 주중에 자지 못한 잠을 자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누워서 잠만자고 오줌만 싼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엄연히 주말을 기다리는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아기 사람이니깐. 주말 아침이면 엄마는 뭘하는지 주중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다. 엄마가 정확히 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침대에 누워서 엄마가 돌아다니며 삐걱삐걱 내는 마룻바닥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요새들어 엄마 아빠가 내 머리에 쉽게 들어가지 않는 옷들을 낑낑 거리며 쑤셔 넣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줌이라도 싸면 옷이 더 작아져서 가끔 불편한데 신기하게도 옷마다 조금씩 냄새가 다르고 촉감도 다르니 그 재미에 한동안은 참고 가만히 있지만 더이상 안되겠다 싶을땐 온몸을 비틀거리며 구조를 요청한다. 엄마 아빠는 작아지는 옷들이 아까운가 보다. 알고보면 전부 이모의 아기들이 물려준 옷들인데 안입는옷 봉지속으로 들어가기전에 아마 한번씩이라도 입혀 보려는 심산이다. 래, 아마 나에게 입혀질 그 옷들을 보며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니깐 좀 불편해도 참아줘야겠다. 그나저나 좀 더 컸을때 내가 입을 옷들은 사놓았는지 걱정이다. 사실 나도 그다지 빨리 자라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있으면 나는 나의 메르세데스보다 커져서 누울 엄두도 못낼테고 내가 무겁다고 엄마 아빠가 날 덜 안아줄지도 모르며 내 미소에도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진다는것은 편하면서도 슬픈일이다. 나에게 더이상 베이비 오일의 캐모마일향이 새롭지 않은것처럼 가끔씩 내 입속에 코를 박고 싱글벙글거리는 엄마이지만 조금 있으면 내 입속의 그 코리앤더 냄새에도 엄마는 익숙해지겠지. 좀 천천히 자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밥 먹기 싫다고 엄마 가슴에서 고개를 돌려버릴까. 엄마가 배를 만질때면 숨을 들이마셔 배가 안 나온척 해볼까. 배가 고파도 안 고픈적 밤새도록 자는척을 해볼까. 그럼 엄마는 내가 드디어 밤에 안깨고 자는 법을 터득했다 기특해 하겠지? 흠..자라지 않고 아이로 남는 방법은 정말 없는걸까. 하긴 내가 자라지 않으면 그런대로 엄마 아빠는 또 걱정을 하겠지. 어른들은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만들어 놓고는 마치 대단한 해결책을 알아냈다고 환호하고 또 다른 걱정에 빠지는 이상한 사람들이니깐. 그나저나 간간이 침대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저녁 늦게까지 환한 파랑색이곤 했는데 요즘들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하늘은 이미 까까매져있다. 뭔가 대단한 놈이 나타나려 꿈틀거리는 느낌이야. 나에게서 파란 하늘을 빼앗아가지 말아줘. 


Posted by 영원한 휴가
Boy's Diary2015.09.10 04:25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유일한 의사 소통 수단이 울음이라는 말은 얼마나 진부한지. '아이가 운다는것은 배가 고프거나 춥거나 덥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거나 배가 아프다는 소리입니다' 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지만. 원시적으로 보이는 아이의 울음에 오히려 그 이상의 것, 그 이상의 다채로운 감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른인 나를 넘어선 완벽한 인격체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보내는 이 시간들이 아이가 많이 울지는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에 관한 질문만으로 상투화되어 흘러가는것은 너무 아쉽다.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일은 어때, 아직 거기서 일해? 지루하지 않니? 휴가는? 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만을 이끌어갈때 느끼는 지루함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누군가에게 아주 색다르고 독특한 질문을 건넬 수 있을것 같진 않지만 최소한 미래의 내가 누군가와 나눌 대화가 육아의 고충만으로 채워지지 않길 바랄뿐.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고 단어를 내뱉기 시작하고 나와 대화를 시작할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아이의 눈과 몸짓을 들여다보며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아이의 입장이 되어 하지만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나의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대화는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의사표현을 시작하게 되면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될지 모를, 지금 이 순간만의 즐거움과 행복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세상의 조각들을 내 멋대로 내 아이의 머릿속에 연결지어 만들어 내는 대화들. 아이가 훨씬 많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때도 세상의 모든 가치들을 마주하고 스스럼없이 거침없이 상상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진만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엇으로도 붙들어 놓을 수 없는, 지나가는 이 시간들이 아쉬워 아이의 시점에서 나의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