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6.12.05 23:35



참으로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  자주타는 비행기는 아니지만 비행기에 앉으면 역시 영화 목록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된다. 제작 발표가 나왔을때부터 보고싶다 생각했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온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이 한눈에 들어왔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http://ashland.tistory.com/170)이나 <와일드> 같은 영화로 알려지긴 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얼떨결에 접하고 푹 빠졌었던  <카페 드 플로르>(http://ashland.tistory.com/133)의 감성으로 남아있는 감독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두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가 함께 나와서 그들의 음울하고 매혹적이었던 어떤 영화들, 나이트크롤러나 에너미(http://ashland.tistory.com/186), 25그램 같은 영화들도 연달아 떠올랐다. 그 영화 속 그들의 표정을 끌어낸다면 난 이 영화도 좋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맨 뒷자석에 앉았던 탓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영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취침모드로 한 톤 낮아진 조명아래에서 승무원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가 만지고 놀던 기내 제공 이어폰의 스펀지가 떨어져나가서 신경질적인 발성이 귀를 괴롭히긴했지만 한쪽이 망가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때만큼의 불편은 느껴지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지 않겠냐는 물음에 그러겠다고 하고 기내식으로 나온 치즈와 빵을 잘랐다. 10시간 가량되는 비행동안 나는 이 영화를 띄엄띄엄 그리고 고집스럽게 세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한편의 영화를 매끄럽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그런 상황에 모종의 쾌감을 느끼며 그래도 보고말거야 라는 오기와 함께.  와인은 엎질러질것이 무서워 여유롭게 마실 수 없었고 잘라놓은 치즈와 빵은 얼마지나지 않아 작은컵에 섞어 담았야했지만 여행을 하고 있다는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는 모든게 충분했다.  그야말로 하늘에 붕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어떤 영화들에는 그런 장면이 있다. 깜깜한 하늘속 비행기에 주인공이 앉아 있는데 마치 그 자리만 구멍을 낸것 같은 효과를 써서 모니터가 뿜어내는 빛으로 주인공 얼굴만 환하게 비춰주는.  소리없이 영상만 봐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진공상태에서 유영하는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피사체들이 내 주위를 느리게 감싸 돌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애써 감정을 전달하려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사 자체를 듣지 못해도 영상만으로 가슴에 묻어나는 감동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배우들의 눈빛과 적당한 여백과 침묵.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해주는 전체적인 색감 같은것들.  정말 좋은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아마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아름다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다시 대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때엔 마치 정말 알고싶었던 누군가의 심정을 전해 듣는것 같아 또 뭉클했다.  




 Demoliton_Jean marc vallee_2015


망가진 자판기는 초코바를 토해 내지 않고 망가진 냉장고 속에는 물이 흐른다. 기계는 고장이 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불편을 주지만 무시하려고 하면 흐르는 물 아래에는 접시를 받쳐놓으면 되고 돈을 삼킨 자판기는 운이 없다 생각하고 뻥차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영원히 방치될 수도 있고 수리를 하려는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삐걱대는 감정도 무시할 수 있다.  타성에 젖은 사랑의 감정은 완전무결하게 보여지는 직업이나 집같은 물질적인 배경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얼마간은 유지가 된다.  돈을 줄테니 집 부수는것을 도와줄 수 있게 해달라던 깔끔한 양복 차림의 제이크 질렌할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영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어떤 물건이나 감정을 한켠에 두고  모자름 없는 어떤 완벽한 상태를 도리어 파괴하는 과정을 통해 부서져 내려앉은 감정을 재복원하려는 그의 변화를 예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나 물체에 관해 차곡차곡 싸여 성처럼 거대해진 우리의 감정이 망가진 물건을 해체해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는것처럼 어떤 파괴과 분해를 거쳐서 조사되고 이해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끝을 향해 치닫는 감정들의 아주 미세한 성분까지 알아내어 그것에 대처하는 일목요연한 처방전을 받을 수 있다면 삶은 조금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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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4.04.07 23:30



<Dallas Buyers Club>


일년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 극장이지만 영화 상영전에 기대작의 트레일러라도 나오면 눈과귀를 막는다.

많은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정작 모든것을 보여주는 트레일러. 

파마머리의 꼬마 아이가 피자를 집어먹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폭풍의 속도로 핥아 먹는 <내 사랑 컬리수>나

줄리아 로버츠가 거품이 가득한 욕조로 빨려 들어가는 <귀여운 여인>의 트레일러를 보고

'이 영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 라고 느끼게 하던 90년대의 티비 영화 광고들이 떠오른다. 

극장가서 돈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트레일러는 분명 마트 시식 코너 같은 유익한 존재이지만

실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하는 트레일러의 특성상 속았다고 느끼는 관객이 존재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마지막 장면을 캡쳐해놓고 갑자기 트레일러 얘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아주 대충이라도 알고 보지 않은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

심지어 영화 포스터 속에서 고층 빌딩과 캐딜락을 배경으로 마치 원정 도박군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우보이를 보고

 제목과 연관지어 상상해 본 줄거리도 내 허접하고 에프엠적인 상상력만 다시 한번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사실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결정적인 계기는 <카페 드 플로르>의 감독인 장 마크 발레 때문이었는데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영화 음악은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가능했기 때문.

하지만 의외로 한 트랙의 영화 음악도 전혀 뇌리에 남지는 않았으며 이 영화는 드라마틱한 실존 인물과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에 전적으로 의존한 영화였으니 두 남자 배우가 동시에 오스카를 수상한것도 납득할 만한 결과이다. 

흡사 코주부 안경을 쓰고 말린 북어처럼 홀쭉하게 서있는 매튜 매커너히와 화장기도 초능력도 없는 엘렉트라, 제니퍼 가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수식에 걸맞는 면역력 제로의 푸른 눈, 자레드 레토를 예상치 않게 한자리에서 만났다.

매튜 매커너히는 '이 시나리오를 보자 마자 이 영화를 놓친다면 내 인생 최대 실수이다 라고 생각했죠' 라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감독은 '주인공인 론 역을 보자마자 매튜를 떠올리고 당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죠' 라고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배역은 정말 많은 배우들을 거쳐 매튜 매커너히가 최종적으로 낚아 채서 자기 돈을 쏟아 부으면서 까지 연기한 배역일지도.

호색한과 매력남의 이미지에 지쳐 언제부터인가 점차적으로 탈 매튜화에 발동을 걸기 시작한 그가 

이 배역이야 말로 구릿빛 피부에서 완전 변태하여 HD 티비 광고에나 나올법한 컬러풀한 나비가 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며

덥썩 문 것이다 라고 나 혼자 또 신나게 상상해 보았다.

한편 자레드 레토의 푸른 눈은 너무 강렬해서 그의 시간은 <Requiem for a dream> 과 이 영화 사이에서 멈춘 듯이 보였다.

무려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몹쓸 게이 분장에도 그는 전혀 늙지 않은듯이 보였다.

그는 마치 '난 이미 이 쓰레기 같은 모든것에 익숙해. 하지만 네가 가진 희망을 방해하진 않을게' 

라고 말하는듯 허무하고도 자포자기한 결백한 눈빛으로 론(매튜 매커너히) 옆에 머문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기 이전의 론의 삶은 소모적이고 자기 파괴적이기 그지 없는데

삶에 대한 진지한 동경없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 온 하루 하루가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동경의 여지 자체를 앗아 갔다는 사실에서 론은 절망스러웠을거다.

그런 론의 복잡한 심정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가 과거의 장면 장면을 떠올릴때 잘 드러나는데

론이 놀기만 하는 한량도 아니고 직업도 있고 취미도 있지만 단지 그 취미들이 원초적이고 극단적이라는것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면서 그런 원초적이고 극단적인것들이 이상적 삶을 배반하는 요소라는것을 인지하는것이 쉽지 만은 않다.

우리가 삶속에서 동경하는것과 혐오하는것의 간극은 정말 한끝 차이인데

대부분은 둘 모두를 동시에 인지하지 못한채 한가지의 가치에 의존해서 살아가는것.

그렇게 해서 인생의 한 축이 겉잡을 수 없이 기울어 졌을때 비로소 후회하며 아슬아슬 다른 한 쪽을 향해 기어가는것이다.

사실 론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고 허가 받지 않은 에이즈 치료약들을 배급하기 시작한것은 

론 자신의 살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것이지만 로데오로 도박을 일삼던 그의 승부사로서의 천성이 반영된것이다.

나는 그가 과거의 행위를 뼈져리게 후회하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을 구제했다기보다는 

그 안의 긍정적인 부분이 그를 능동적으로 만들었고 그의 삶을 어느 정도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것. 이번이 아닌 다음이 없다는 것에서 

론은 인생이 로데오처럼 승부를 띄우고 떨어지면 다시 오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황소 위에서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 있는 그 몇초라는 찰나의 순간을 

타인의 몸을 빌려 승부수를 띄우던 도박사였던 그가 몸소 그 녹록치 않은 삶을 정복하려 투쟁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6.10 07:18

 

 

<카페 드 플로르>

 

지난번에 <파리 5구의 여인>을 보고 바네사 파라디가 떠올랐더랬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조니뎁이 아니고선 독자적으로 잘 거론되지 않는 배우.

그녀를 볼때마다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조니뎁이 별로 멋있지도 않고 그가 케케묵은 매력으로 수년간 어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니뎁과 그토록 오랫동안 짝으로 지냈었던데에는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것과 

심지어 '그렇게 앞니 사이가 벌어져서도 조니뎁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니'라고 더더욱 못난 생각을 하게 되는것.

그러니 앞니가 빠진 여자는 예쁘지도 않고 그런 여자는 멋진 남자와 살 수 없다는 외모지상주의에 근거한 몹쓸 편견에

조니뎁이 멋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은 그가 사랑한 여자는 뭔가 특별할것이라고 생각하니

결과적으로는 조니뎁을 매력남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제목때문에 고른 이 영화 <카페 드 플로르>.

아이를 안고 있는 흑백 포스터를 보고 안젤리나 졸리의 <체인질링>같은 모성애를 다룬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보봐르와 샤르트르등등등의 지성들이 들락거렸던 파리의 카페, 카페 드 플로르에서 벌어지는 일일수도 있겠다고

누구나 할 법 한 뻔한 상상을 하고 숨을 가다듬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1969년. 파리에서 다우증후군 아들 로렌(Marn gerrier) 을 기르며 살아가는 재클린(Vanessa paradis).

주변사람들의 편견과 다운증후군 환자에 대한 의학적인 통계에 맞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그녀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이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이동하는 일상.

하교시간에 맞춰 일을 놓고 부랴부랴 학교로 가서 다시 아들을 만날때까지 그녀는 온통 아들 생각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 시대에 홀로 자식을 기른다는것. 게다가 그 아이가 정상아동이 아닐때.

남편 마저 포기한 자식을 혼자서 감당해야한다는 현실에 직면했을때 여자의 마음은 절망스러웠을거다.

 

 

성당에서 아들이 가지고 싶다며 탐내던 양초에 손대지 못하게 하면서도 결국 몰래 챙겨서 아들의 생일 케잌에 올려놓는 재클린.

책에 명시된 다운증후군 환자의 평균 수명은 언제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옭죄는 숫자가 되고

매번 아들의 생일이 돌아올때마다 재클린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에 사로 잡힌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mattew herbert 의 cafe de flore.

 빅밴드 버전과 클럽믹스된 버전이 4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번갈아서 연주된다.

빅밴드 버전은 로렌이 지각한 무용수업시간에 반주로 처음 등장해서

로렌이 집에서 재클린에게 계속 틀어달라고 조르는 노래.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40년후 캐나다 몬트리올로 바뀌면서 음악은 클럽 버전으로 바뀌는데

클라이막스인 서정적인 아코디온 연주 부분은 바뀌지않고 그대로 사용된다.

 

 

영화초반에는 4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래저래 연결지으며 쉽게 줄거리의 감을 잡지 못했다.

 반복해서 연주되는 음악들과 섬뜩하리 만치 모호하게 편집되는 과거와 현재

세가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속에서 인물들이 사진과 음악을 통해 교묘하게 한곳에 공존한다는것을

영화를 두번째 다시 돌려 봤을때야 어느정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음악. 그를 기억하는 음악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때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시간에 관한 음악들.

이 영화는 특정 음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공유했던 시간과 사랑에 관해서

 하나의 공통된 음악에 관련된 같지만 다른 우리들의 기억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낙엽이 떨어진 을씨년한 도시. 재클린과 로렌이 손을 잡고 걷는 안개낀 옛 파리의 아침.

재클린이 그네를 타면서 로렌에게 자주 불러주는 노래.하늘로.하늘로.

마치 다음 세상에서는 파리가 아닌 바다 건너 캐나다에서 살게 될 로렌의 미래를 암시라도 하듯

창밖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장면 다음으로는 항상 절묘하게 40년 후의 몬트리올이 비춰진다.

 

 

음악을 사랑했고 결국 음악없이는 살 수 없는 디제이의 삶을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앙뜨완.

 십대때 만난 캐롤(Helene florent)과 결혼을 해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미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되고만 남자.

영화속에서는 앙뜨완과 로즈(evelyn brochu)의 섹스장면이나 로즈의 섹스어필한 모습을 너무 부각시켜서

젊고 매력적인 여자에 빠져서 가족을 내팽개친 40살 남자처럼 앙뜨완을 묘사해버린 감이 없지 않아서 아쉽다.

그게 아니면 음악을 들을때 우리가 낭만적이고 진실하다고 믿는 순간을 반대로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표현하려했는지도.

앙뜨완과 캐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도 십대의 풋풋함보다는

그들이 들었던 음악처럼 자유분방하고 아슬아슬하게 묘사되었으니깐.

어쨌든 영화는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믿는 영원한 사랑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으니

앙뜨완의 새로운 사랑을 그가 느끼는대로 진실한것으로 믿어주는 수 밖에 없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도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쩌면 함께 있는 그 시간의 절반도 넘는 시간을

같은 음악을 들으며 교감해온 캐롤과 앙뜨완.

그가 사진속에서 발견하는 과거의 매순간, 모든 음악의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캐롤.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미워조차 하지 않는 누군가의 텅빈 눈빛을 마주하는것과

그런 텅빈 눈빛으로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서로를 소울메이트처럼 여기며 절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 여기던 그들 모두에게 절망스러운 상황일거다.

사랑에 빠진 모두가 매번 영원을 꿈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런 영원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리는것이니깐.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모두 고귀하다고 믿어야 할까.

 

 

로렌과 베로니카가 처음 만났을때.

앙뜨완과 캐롤이 처음 만났을때.

그리고 앙뜨완과 로즈가 처음 만났을때가 교차로 편집되면서

sigur ros의 Svefn-G-Englar가 몽환적으로 흐른다.

시규어 로스는 한국에서 얼마전에 내한공연도 했던데 처음에 이들의 음악을 들었을때를 생각하면

몹시 슬프고 가슴 아픈 이 음악은 오히려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몽골리안들이 출연하는 비디오 클립도 그랬고 뭔가 슬픔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꾸 들으면서 빠지면서도 왠지모를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려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 <바닐라 스카이>도 그렇고 음악을 통해서 뭔가를 전달하려는 영화들은 확실히 이런 음악을 잘 사용하는것 같다.

옷감에도 물감이 잘 스며들고 잘 지워지지 않는 옷감이 있듯이

음악도 더 많은 이들의 추억을 깊게 빨아들이는 음악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앙뜨완과 캐롤의 딸 줄리엣이 바람난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수단도 결국은 음악이다.

핑크 플로이드와 시규어 로스의 음악과 함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음악이자

앙뜨완과 캐롤이 함께 보낸 십대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을 큐어의 많은 음악들.

줄리엣은 앙뜨완에게 캐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음악으로 의도적으로 큐어의 음악을 자주 튼다.

 내가 오아시스를 좋아하면서부터 찾아들었던,

쉽게 말해 오아시스가 영감을 얻었던 그 윗세대의 음악들도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짙은 화장에 반항적인 모습으로 앙뜨완과 캐롤이 찍은 옛 사진들속의 smith 음반이나 cure의 faith.

이런 좋은 음악들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이런 영화들이 너무 좋다.

이를테면 카메론 크로우나 왕가위 같은 감독들의 영화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면 아마 캐롤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일거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이런 영화를 보니 본능적으로 캐롤의 입장에서 사랑의 의미를 묻게 된다.

배우자의 외도를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대역죄에 동일시하며 보란듯이 외도를 하거나

복수의 칼을 갈거나 용서를 하더라도 병으로 장렬하게 죽어가면서 결말을 맺는 요즘 드라마속의 사랑과 이별의 모습과

자신과 이별한 남편을 용서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캐롤의 모습.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진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힘들겠지만 결국은 놓아줘야하지 않을까.

 약간의 몽유병 증세를 보이면서 밤마다 악몽을 꾸는 캐롤.

반복되는 꿈의 의미가 궁금해져서 심령술사를 찾아가는 캐롤은

자신과 앙뜨완이 전생에 모자지간이었고 전생에 그녀가 운전하는 차뒷자석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앙뜨완과 로즈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전생에서 비극적으로 끝난 모든 세 사람의 인생을 동정하는 캐롤은 

자신과 앙뜨완의 관계과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모자간의 운명으로 정해진거라면

현생에서는 앙뜨완과 로즈의 사랑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앙뜨완을 사랑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한다.

 

 

그러니깐 한마디로 앙뜨완과 캐롤이 십대시절에 찍은 이 사진뒤로 보이는 액자속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은

1969년 재클린과 로렌이 센느강을 흐르는 유람선속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을

앙뜨완의 부모가 앙뜨완을 낳기전에 찍은 사진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준다.

서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베로니카와 로렌을 보면서 재클린은 앞으로 로렌과 살아가야할 시간들에 대해 절망하면서

차를 몰고가다 자살을 했고 부셔진 cafe de flore 의 음반처럼 결국 베로니카와 로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모두가 다시 태어난 현생에서 결국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으로 귀결되어 진다.

앙뜨완의 십대시절을 연기했던 이 배우는 크레딧을 보다가 장 마크 발레 감독이랑 성이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 아들이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전에 보이는 '재클린 샤렛 발레에게 바친다' 라는 글귀도 아마도 감독의 실제 어머니를 위한것 같고.

왠지 영화도 감독의 자신의 얘기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주는데 알 수 없는 일.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줄리엣이 트는 음악

sophie hunger 의 le vent nous portera.

원곡은 프랑스 그룹인 noir desir의 곡인데 이 영화에는 원곡보다 이 버전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noir desir 라는 그룹은 십년도 더 전에 그룹리더가 영화배우인 여자친구 말다툼끝에 여자친구가 죽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였다는것을 오늘 알게되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