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stage2018.01.08 08:00


벌써 20년이 흘렀다. 종로 연강홀에서 열린 난장 영화제에서 보았던 두 편의 영화. 짐 자무쉬의 데드맨과 페도로 알모도바르의 키카. 나로썬 동숭 아트홀의 개관작이었던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한을 나름 풀어줬던 날. 하지만 그때는 흑백 영상과 조니 뎁의 표정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음악에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했다는 닐 영의 기타 연주도 나중에 오아시스가 리메이크한 닐 영의 노래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좀 주의깊게 듣게 되었는데 선물 받을 USB 턴테이블을 기다리며 처음 장만했던 LP는 결국 데드맨의 사운드 트랙. 바깥이 유난히 조용한 날, 기차 소리가 듣고 싶은 날, 인디언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 꺼내 듣는다. 



추억속의 영화의 장면들이 있어서 유튜브까지 안가고 내가 보려고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어서 



닐 영에게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부탁 하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에 대한 짐 자무쉬의 인터뷰. 예전에 유투브에 스튜디오에서 닐 영이 기타 연주하는 클립도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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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6.03.19 08:16


올리비아 아사야스의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목록  (올리비아 아사야스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을 통해 알게 된 영화.  2013년 영화인데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무엇보다도 흑백과 핑크가 절묘하게 조화된 음악적인 영화 포스터가 Smith 의 베스트 앨범 자켓을 떠올리게 했다. (포스터 속의 프랜시스가 지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춤을 추고 있는것이었음) 오아시스가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스미스와 스톤 로지즈를 언급한 적이 있기에 수집하기 시작했던 스미스의 앨범들. 이 뜬금없는 흑백 영화가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나로 하여금 어떤 회상에 젖게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예감, 어쩌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추억도 아낌없이 녹아 있을것 같은 느낌. 요즘이 배경인 영화인데 굳이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목에 등장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 영화라면 여주인공은 아주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닐까. 



뉴욕 브룩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집을 빌려서 살아가는 무용수 프랜시스. 함께 살자는 남자 친구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녀가 택한것은 그녀들 스스로도 섹스만 없을 뿐 레즈비언 커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짝 친구 소피와의 생활이다. 하지만 믿었던 소피는 꿈꾸던 동네에서 (당연히 방세가 비싼) 살 기회가 생겼다며 프란시스를 남겨두고 미련없이 떠난다. 소피는 아마도 더 비싼 집값을 분담할 능력이 되는 룸메이트를 구한것일거다. 혼자서 집세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란시스는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남자들이 살고 있는 집의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가고 방세를 내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의 무용 공연이 절실하지만 공연에 설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 받는다. 무용수로서의 일 대신 행정 업무를 보며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하고 무용단을 나와 이런 저런 파트 타임을 뛰며 돈을 모으는 프랜시스. 한 저녁 모임에서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 취한 프랜시스는 즉흥적인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적자와 더 깊은 공허함에 빠진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케잌 부스러기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프랜시스에게 소피가 전화를 걸어오고 남자 친구의 일 문제로 도쿄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더욱 상실감에 빠진다.



마냥 부러워 할 수 만은 없는 프랜시스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짤막하게 나열되는 소피와 프랜시스의 일상들은 여유롭고 경쾌하기 그지없다. 공원에서 탭 댄스를 추고 모은 돈을 버스킹하는 밴드에게 넘겨주고 줄행랑치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책의 인상적인 구절을 읊어 준다거나, 좁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고 창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대화를 주고 받고 계단에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는 특별할것 없지만 걱정과 근심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을 곳도 없어 보이는 자의 일상.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을것 같은 영원할것만 같은 우정이 있고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일상 뒤에 따라오는것도 역시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남자 친구와의 문제일자리 그리고 돈에 관한 것들그리고 잠들기 전 그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 그러한 질척한 고충을 맞닥뜨린 자들의 전형적인 미래 일기이다. '프랜시스 넌 정말 유명한 현대 무용가가 될거야난 너에 관한 엄청난 책을 출판할거고 우리는 파리의 비싼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낼거고 정말 멋진 연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아이는 가지지 않을거야'.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똑같이 절망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를 여행하며 무엇을 먹는지가 우리가 낭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지 오래이다. '저거 임스체어 아니야??' 프랜시스가 새로 살기 시작한 아파트에 방문해서 방 구석구석을 훑어 본 후 소피가 내뱉는 첫 대사이다. '난 일자리도 필요없고 차도 필요없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는 요즘 세상에 없다. 낭만의 정의는 바뀐지 오래이고 젊음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그래서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소피와 프랜시스이지만 소피는 결국 프랜시스를 남겨두고 떠난다. 심지어 커피물 끓일 주전자 마저 가지고 떠나버린 소피,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프랜시스는 급한대로 냄비에 커피물을 끓이다 손을 데이고 소피에게 전화를 걸어 주전자를 내놓으라고 욕설을 퍼붓지만 다음 장면은 세금 환급에 관한 편지를 받고 천진하게 기뻐 날 뛰는 프랜시스의 모습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집인데 정작 자신이 설 조그마한 자리, 방 하나 찾기가 마땅치 않음에 조급해지고 절망하는 프랜시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를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프랑스 흑백 영화도 마음 편하게 보고 싶겠지만 모든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며 중국 음식을 먹는 프랜시스는 체할 것 만 같아 보인다. 낭만의 도시 파리를 여행 하고 있지만 시간을 떼우려고 케잌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 프랜시스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가진것 없는 세대에게 더 이상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현실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것이라 다독이며 감내하던 여유도 삼켜버린지 오래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이 인생에 뜻하지 않은 기회와 우연과 운명을 제공할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것은 더 큰 절망, 현실은 더 날것이 되어 소화되지 못하고 배탈을 일으킨다. 



매사에 즐거워보이고 장난끼 넘치는 긍정적인 프랜시스이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 레프와 벤지 사이에서도 박탈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교감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헬맷을 들고 유유자적 집을 나서는 레프를 보며 벤지와 프랜시스가 나누는 대화는 이렇다. '레프는 오토바이도 있고 심지어 차도 있어.' '좋겠다. 난 심지어 이 집을 나설 다리도 없는데.'  재치 넘치는 대사, 과장된 몸짓과 디테일한 연기들이 흑백 필름속에서 빛이 난다. 흑백 필름속의 트렌디하고 풍족한 뉴욕을 보며 이 영화가 마치 아무렇게나 찍은 컬러 사진을 수십가지의 필터를 통해 흑백으로도 로모 카메라로도 손쉽게 변환 시킬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은 기우였다. 내가 언젠가 동경했고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어떤 흑백 영화속의 삶의 원형들을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다.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나쁜 피>,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 구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 (말라노체 리뷰 보럭가기)그리고 누벨바그 하면 항상 거론되는 어떤 프랑스 고전 영화들. 이 영화 <프랜시스 하>를 보려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보면 좋을것 같은 영화들이다. 왜 굳이 흑백으로 촬영했을까 라는 물음표로 시작된 내 기대감도 아낌없이 충족됐다. 만든이들의 추억과 그들의 옛 영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속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2013년의 젊음들은 흉내내기 힘든 삶의 애티튜드. 무원칙이라는 원칙속에서 자유로웠던 인물들. 영화는 한편으로는 2013년의 좌절한 프랜시스가 꾸는 흑백의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30년전의 흑백 영화속에서 사랑에 고통받지만 지독히도 냉소적이었으며 대책없이 허무했고 별다른 삶의 모토없이 (혹은 그런척하며) 하루라는 최소한의 삶에 조차도 얽매이지 않으려 애썼던 많은 인물들이 프랜시스에게 레프에게 벤지에게 소피에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 갑자기 흘러 나오는 음악. 1월에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이다. 정말 가슴이 펑하고 터지는 장면이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노래인데도 그 인트로는 뭉클하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퇴폐적인 목소리와 감성, 시대를 앞서갔다라는 구태의연한 수식도 아깝지 않은 뮤지션이다. 프랜시스의 달리기 장면 그 자체가 짜릿했는지는는 모르겠다. 단지 같은 음악에 맞춰서 담배를 꼬나 물고 어둡고 조야한 밤거리를 미친듯이 뛰던 30년전 영화 <나쁜 피>의 드니 라방이 떠올랐을때 가슴이 턱하고 막혔던것이다.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고 상기된 표정으로 뉴욕 한복판을 달리고 또 달리는 프랜시스의 이 장면은 분명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향한 오마쥬이다. 줄리엣 비노쉬를 향한 가슴속의 벅차 오르는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신 나간듯 달리던 드니 라방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울에 잠겨 있는 안나가 있는곳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랑이 이토록 별안간 갑자기 시작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는것을 믿느냐고.' 우리가 늘상 꿈꾸는 감정을 그토록 솔직하고 순수하고 비현실적으로 담아내던 그들. 그래서 낭만적이다. 긴 달리기 끝에 프랜시스는 새롭게 둥지를 튼 벤지와 레프의 집에 골인한다. 프랜시스의 표정은 가까스로 다시 발 붙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득하다. 결국은 그 안도감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절망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절망의 원인이 확실할때.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을때. 프랜시스가 느끼는 좌절은 한편으로는 드니 라방의 그것보다는 정당하고 명백해보인다. 팍팍한 현실. 이유있는 좌절. 하지만 모든것이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 우울일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곳에 낭만이 설 자리는 없다.



레프가 쓰고 있는 페도라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 폴 벨몽도가 쓰고 있는것과 너무 비슷하고, 그의 전체적인 외모는 <천국보다 낯선>속의 에디와 윌리의 겉모습을 섞어 놓은듯 하다. 물론 그는 무늬만 보헤미안스럽지 선배들의 애티튜드와 감성을 전혀 물려 받지 못했다. 그의 아름답고 모던한 아파트속의 (하지만 역시 임대료를 내야하는) 벽속에 걸린 추억돋는 액자속 사진들은 그의 가족 사진도 아니고 여자들을 데려오면 으례 내 방 구경 시켜줄까 하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가는 그렇다고 여피도 아닌 시쳇말로 그냥 있어 보이는 인물이다. 프랜시스는 소피의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도쿄 생활을 엿보고 모르긴해도 그로 인해 더 조급해진다. 함께 미래일기를 쓰던 친구인데 누구는 지구 반대편의 삶을 만끽하고 누구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컴퓨터실에서 행복 돋는 친구 블로그나 클릭하고 있고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피는 하지만 도쿄 생활의 불만을 토로한다. 프랜시스는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은 소피의 모습에 다시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너 블로그에서는 행복해보이던데 왜'. 왜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환호 할 수 없는걸까. 왜 있어보이는 삶에 집착할까. 전보다 더 많은것을 가졌음에도 왜 없어보이는것에 불안해할까.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랜시스는 결국 벤지와 레프와 함께 살고 있던 아늑한 집을 떠나서 도미토리에서 지내게 된다. 깔끔하기 그지 없는 장소이다. '난 돈이 없어서 직장에서 짤려서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요즘 같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도미토리에 묶는 불쌍한 세대' 라고 불행한 단어와 문장으로 목조르기에는 탤런트도 있고 건강한 신체를 지닌 아직도 낭만이 가능한 삶 아닌가. 이것은 내가 밀린 임대료 때문에 밥을 굶어 본 적이 없기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까?  이전의 가난과 불행이 절대적이었다면 요즈음의 그것은 내 삶을 나보다 더 나은 타인의 삶 (이란것이 있다고 세뇌하는 사회속의)과 비교하는데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의 수준도 상향 조정되었으니깐. 옛날 영화였으면 프란시스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트레인 스포팅>에서 나오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더러운 화장실의 변기만도 못한 변기가 놓인 도미토리의 화장실에서 이를 닦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 호스텔 도미토리를 사용했을때 이렇게 잠들기 전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공동 샤워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수많은 침대가 놓인 침실로 돌아가야 할때가 있었다. 땀 냄새 풍기며 코고는 남자 아이들,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여행자들, 새벽에 들이닥쳐 소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푸는 여행자들. 모든것이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돈이 많으면 조식이 나오는 깔끔한 호텔에서 지내며 가이드가 붙어 있는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왜 굳이 '돈이 없어서'  라는 조건을 붙여서 내 소중한 삶의 낭만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걸까.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프랜시스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밝고 꿋꿋했다는것. 비록 기대했던 우정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재능있는 발레리나 대신 안무가의 길을 택하면서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룸메이트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꼼꼼하게 우체통에 꽂을 이름을 적는다. 비록 글씨 크기를 조절을 못해서 이름의 절반은 접어야 했지만 그녀 자신의 인생과의 사랑을 시작한 그녀. 지금부터 시작되는 프랜시스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그녀가 내가 동경했던 영화 주인공들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5.03.19 00:23






가끔 기웃거리는 아이스크림 코너. 리투아니아에는 한국만큼 과즙을 사용한 맛있는 빙과류가 적어서 새 하드를 보면 한번쯤은 먹어 본다.  그런데 어제 사먹은 이 라즈베리맛 하드는 영화 속 아담과 이브가 먹던 오 마이너스 혈액형 하드와 정말 너무 닮지 않았는가. 모로코의 탕헤르에 머물던 이브(틸다 스윈튼)와 디트로이트에 사는 아담(톰 히들스턴)이 오랜만에 만나 온갖 악기들로 가득찬 지저분하고도 로맨틱한 아담의 거실 소파에 앉아 나눠먹는 O형 피 맛 하드말이다. 이렇게 단순히 과일맛 하드를 먹으며 떠올릴 영화가 있다는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걸어놓고 작년에 본 영화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담의 디트로이트와 이브의 탕헤르. 언젠가 가볼 수 있을까? 골목골목을 누비는 많은 여행자들덕에 아프리카 특유의 햇살과 그 태양 아래의 각양각색의 건물 외벽들. 그 건물들과 자갈길이 만들어낸 꼬불꼬불한 골목사이를 거니는 사람들과 그들의 무지개빛 옷차림에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최소한의 조명에 기대어 있는 밤의 아프리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내 스스로 여행하지 않는다면, 여행을 하더라도 마음 급한 여행자의 카메라로는 쉽게 담기 힘든 밤의 풍경. 저녁 무렵 가까스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숙소를 나왔을때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길을 걸을때의 그 기분. 그런 기분을 이브도 공감할 수 있을까? 다시 와보지 못 할 장소라는 생각에 골목의 자갈조차 가슴에 품고싶은 그 느낌말이다.  영원한 시간을 보장받은 뱀파이어의 삶은 진정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일까. 삶을 통해 느끼는 희열과 아름다움은 역설적이게도 한정된 시간과 제약된 장소에서 오는 소중함에 기반할때가 많다.  그토록 돈과 시간에서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우리들이지만 알고보면 좌절과 갈망 사이의 좁다란 틈을 메우고 있는  잘디 잔 기쁨의 언저리를 디딛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지속하려는 노력으로 살고 있는것이다. 훨씬 짧고 역동적인 우리의 일생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추억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기록의 수단은 다양해지고 제때 소화해내지 못하는 책과 음악과 영화 그리고 장소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영화속에서 묘사하는 뱀파이어의 삶은 대부분의 우리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삶과는 달리 적적하고 폐쇄적일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항상 그렇게 일분일초에 충실하고 간절하기만 한것도 아니다. 우리가 멍한 눈, 축 늘어진 어깨로 흘려보내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어진 수명에서 백분율로 따져본다면  그 명상을 가장한 게으름과 탐닉으로 둔갑한 허무의 시간은 뱀파이어들이 여가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단지 사회에서 학습되어진 우리의 양심이 그러한 시간들을 고귀하게 여기길 허락치 않는것일뿐.  








몹시 다른 이브와 아담.  마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차가운 밀라노와 따스한 피렌체의 아오이와 준세이처럼 탕헤르와 디트로이트도 그들의 다른 온도를 표현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처럼 보인다.  아담은 이브보다 기록과 창작에 능숙하며 옛것에 심취하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명성을 대단치 여기지 않는다. 새것을 동경할 수 있고 누군가의 창작물에 매료될 수 있는 이브는 냉소적인 아담에 비해 한없이 따뜻하다. 그들이 오랜기간 함께 일 수 있었던 것. 그들의 감정이 적정 체온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브가 자신의 트렁크에 각종 언어로 쓰여진 동서고금을 가득 채워 담으며 여행을 준비하는동안  아담은 오래된 기타를 수집하고 음악을 만들며 변질된 세상에 허무함을 느낀다.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의 여러 현상들에 지닌 서로 다른 방식의 애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니깐 좋은 의미에서 가끔 짐 자무쉬가 딜레탕트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늘어놓는 수많은 작가들과 위인들 그리고 이미지들.  그들의 많은 작품들과 세상에 미친 영향 따위를 이해하고 영화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감독의 방대한 지식이 부럽다가도  어쩌면 자무쉬 자신도 내가 자무쉬를 안다고 착각하고 좋아하며 만족하듯 

그들을 어떤 의미에서 그저 선망하고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6.24 23:37

 

 

<열혈남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뉴욕에 머물던 에바가 숙모가 사는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장면이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보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미 그녀가 익숙해지고 그리워하게 된것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데 

바로 체스터필드 한 보루를 트렁크에 집어넣으면서 '이 담배, 딴 도시에 가도 있을까?'라고 윌리에게 묻는 장면이다.

낯선 곳으로 떠날때 우리는 늘 우리가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르는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갑자기 그 음악이 듣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씨디를 굽고

'그래도 머리맡에 놓고 두고두고 읽을 책 한권쯤은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헌책방을 향하고

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계산해보고는 삼분카레 세네봉지를 구겨넣는다.

갑자기 보고싶어졌는데 아무곳에서도 다운을 받을 수 없다거나 아마존에서는 몇십달러나 내야 주문이 가능하면 어쩌지? 

 서울을 떠나기전 부랴부랴 주문한 왕가위 영화들은 나에겐 에바의 체스터필드와 비슷한 의미였던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열혈남아>로 번안이 되었지만 영어제목은 As tears go by,  원제의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왕각가문>.

왕각가문이란 제목도 광동어로 발음하면 왕각은 '몽콕'으로 침샤추이와 같은 홍콩의 번화가 이름이고

가문은 외국어 발음과 비슷한 병음을 끼워맞추는 중국어의 특성상 '카먼', 고유명사로 '카르멘'을 뜻한다.

사실 엉뚱한것은 원제가 아니라 한국어 번안 제목인 <열혈남아>이지만 <지존무상>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액션영화가

유행하던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몽콕의 카르멘>이라는 원제가 더 뜬금없는 제목이었을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인구밀도의 도시 홍콩을 다시 작은 성냥갑속에 구겨넣은듯한 몽콕의 거리.

빽빽하게 들어찬 상가와 현란하게 깜빡이는 네온싸인만큼이나 번잡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인파들.

그들모두 어느정도는 좁고 숨막히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구역을 확보하려 신경과민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갖 범죄조직이 도시의 뼛속깊이 침투해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첨밀밀>에서처럼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인들과 

<중경삼림>에서의 가난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로 가득한 이 좁은 도시에서

유덕화와 장학우 그리고 장만옥이 연기하는 젊은이들도 결코 이곳에 쉽게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긴 마찬가지.

몽콕의 카르멘. 왕가위는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담배공장에서 담배를 마는 떠돌이 집시여인 카르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일까? 

 

 

장만옥이 살고 있는 란터우섬은 홍콩의 서쪽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한다.

병 치료차 사촌오빠인 유덕화가 살고있는 홍콩에 잠시 머물지만 그의 불안정한 일상만 잔뜩 구경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잠자고 있는 유덕화가 숙모의 전화를 받을때 짐가방과 함께 배위에 서있는 장만옥을 잠시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에바가 트랜지스터를 들고 걷기 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장면과 흐름상 크게 다르지 않다.

80년대 뉴욕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 절제적으로 그려낸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과

80년대말 홍콩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선배 감독에게서 받은 영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왕가위.  

"Loving movie is enough to make a good movie"

좋은말들은 항상 당연한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들의 적합한 예가 되려면 그 loving의 정도는 상상 이상의 것이어야할거다.

타란티노가 자기자신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수도 있고 왕가위나 류승완같은 감독들도 동의할 만한 말.

    

 

윌리는 경마나 카드놀이로 소일하며 공장으로 일하러가는 노동자를 보고는 힘들거라고 동정하는 백수 이민자일뿐이고

유덕화는 사촌동생한테 밥사먹으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한때는 잘나갔던 현직 폭력배.

유덕화가 사는 아파트도 윌리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보다 두배는 넓어 보인다.

에바는 윌리와 한방에 누워서 날이 새도록 어색하게 티비를 봐야했지만

장만옥은 최소한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낯선곳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유덕화가 자는 동안 유덕화의 전화를 받는 설정도

 

 

티비디너까지는 아니어도 장만옥이 지어 준 맛있는 밥을 먹는 장면도 <천국보다 낯선>에 대한 철저한 오마쥬인걸까.

 

 

게다가 이 장면은 짐 자무쉬의 데뷔작인 <영원한 휴가>에서 밤새고 방황하다 돌아온 앨리를

여자친구가 침대 매트리스만 달랑 놓여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면과 비슷하다.

사실 이후의 왕가위 영화에서는 이 정도로 절제된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비정전>이나 <중경삼림>같은곳에 등장하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방도 정말 산만하기 그지없었으니깐.

집도 직업도 세금 내기도 싫다는 앨리처럼 유덕화도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책임져야하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낙태한 여자친구에게 '내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하고 미련없이 사라져줄 뿐. 

 

 

정은임이 진행하던 FM 영화 음악에서 장만옥을 이렇게 표현한적이 있다.

마치 달을 씻어서 쟁반에 얹어 놓은 듯한 얼굴이라고.

25년전의 장만옥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표현이 얼마나 적합했는지 싶다.

 

 

성한 유리컵이 하나도 없다며 유리컵을 잔뜩 사놓고 떠나는 장만옥.

'한꺼번에 다 깨버릴까봐 일부는 숨겨놓았으니 못찾을때 전화하면 어디있는지 알려줄게요'

열혈남아 이후로 왕가위의 영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들 하지만 왕가위식의 감각적인 대사는 이때부터 어김없이 등장했다.

작고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서 인물간의 감정을 교감시키려는 시도.

한 공간에서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허용된 순간을 누리는데 서투른 이들은

자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 한두개쯤은 슬며시 남겨두고 떠난다.

 

 

사실 홍콩 면적이 그렇게 넓은것도 아니고 구룡에서 란터우섬까지 거리가 먼것도 아닐텐데

영화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느끼는 거리감은 거대해 보인다.

더이상 날지 못하고 어항속에 떠있는 모형비행기나 젖어버린 비행기 티켓처럼

실제로 가까운곳에 있지만 서로간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

그리고 왕가위는 그 거리감을 마치 숙명인듯 표현해내는데 소질이 있다. 

 

 

광동어 번안곡이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Take my breath away가 흘러 나오고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 사운드 충만한 음악들은 탑건이나 플래쉬 댄스 같은 80년대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에 사용되는 적합한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다음에는 이명세의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가진 비슷한 정서같은것이 있으니깐.

 

 

유덕화가 장만옥이 있는 란터우로 한걸음에 달려가 공중전화박스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과 채시라의 철조망 키스만큼이나 애절한데 네명의 배우들이 조금씩 서로를 닮은것도 같다.

사실 장만옥이 초반에 마스크를 끼고 마른기침을 하며 등장할때는 불치병에 걸린 사촌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깡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신파인가 해서 좀 긴장을 했지만

따지고보면 근친상간인데 먼 친척이라고만 나올뿐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도 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이 짧은 시간 공유하는 그 감정과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뿐이다.

 

 

어릴때는 홍콩의 액션영화가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성우들의 목소리톤때문에 영화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였으니깐.

   강시 영화에 나오는 유한도사 목소리나 부하를 위해 목숨을 잃는 두목의 목소리, 나쁜 악당의 목소리는

전부 정형화되어서는 홍콩 영화 특유의 배경음악과 함께 섞여서 촌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합회나 흑사회같은 범죄조직들이 홍콩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주먹세계에서의 의리나 정의를 미화하기위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던 액션 영화들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왕가위도 자신의 데뷔작에서 어느정도의 비장한 액션씬은 보여줘야했지만

조직간의 세력다툼이나 배반, 하극상의 거창한 액션은 아니었고 

남의 비위나 건드리면서 대책없이 일을 벌이고 다니는 고향 동생 장학우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우리 형'의 액션정도.

하지만 장학우와 함께 죽음직전의 상황에 몰려서는 우는 장학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장면은

설마 <살인의추억>에서의 '밥은 먹고 다니냐'같은 애드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사고 치고 다니는 동생은 '점쟁이 말로는 서른이 되면 운이 트인데'라고 하지만

14살에 청부살인으로 처음 돈을 만졌다는 형에게 인간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보다 가벼운것.

'정신차려. 너가 서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초크묻인 손가락으로 당구공을 밀어내듯 그냥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는걸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단정짓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한 평생도 아니고 한 시간만이라도 영웅으로 살고싶다며 절절하게 얘기하는 동생을 더이상 한심하듯 쳐다보지 못하는 형.

몽콕을 떠나 란터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유덕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순응한다.

행동의 본질은 그렇다.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닌 이겨낼 수 없는 슬픔에 맞물려서 흘러가는 인생.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1.10 05:40

 

 

<도쿄 스토리>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는 머리를 감았다. 갑자기 금새 졸음이 밀려올까봐 커피도 끓였다.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해의 운명이 결정된다고들 하는데 연말에 거의 잠을 자지 않아서일까 왠만큼 늦은시각이 아니어서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년에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를 보고서는 (물론 전혀 다른 만추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진지하게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가지고 있던 영화 말고 얼마전에 <안녕하세요>와 <도쿄 스토리>를 찾아 보는데 성공했다. <도쿄 스토리>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란것을 알기 전에 난 이 영화를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가 경마장에 함께 가기위해 윌리의 집에 오는 장면이 있는데 에디는 윌리의 사촌동생 에바에게 호감을 느끼고 에바를 함께 데려가길 원하지만 놀러온 사촌이 귀찮기만한 윌리는 거절한다. 그때 그날 출전하는 경주마에 대한 정보를 에디가 읽어주는데 그때 등장하는 경주마 중 하나가 '도쿄 스토리'이다. <천국보다 낯선>을 워낙 여러번 봤기도했었지만 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대화가 주를 이루는 그 영화에서 '도쿄 스토리'라는 이름의 경주마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그때는 짐자무쉬도 일본을 동경하는 서양인의 정서를 이런식으로 표현하는구나 지레 짐작했었지 그것이 어느 일본 감독의 영향을 받아서일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다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역시 담담하게 한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다. 자신의 여러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던 소재들을 한데 모아놓은듯한 느낌도 준다. 결혼하지 않은 딸, 말썽피우는 아이들, 얄밉게 구는 딸, 자식에 대한 애환을 얘기하는 노년의 남자들 등등. 정말 이것이 영화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다 싶은 일들을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갈등없이도 심지어는 미묘한 긴장감까지 주며 두시간 넘게 끌어갈 수 있는것, 그 '아무것도 아닌것'같은 일들에 대해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것은 오즈 야스지로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출가하지 않은 막내딸과 함께 오노미치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방문할 생각에 들떠있다.

장남에게서 초등학생 손자가 있지만 도쿄에는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가보다. 큰 아들과 큰 딸, 둘째 아들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둘째 며느리가 도쿄에 산다. 자식들 대부분이 대도시에 자리 잡은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노부부 자신도 자랑스러워한다.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열심히 에어쿠션을 찾는다. 도쿄까지 가려면 장거리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여행준비하는 부인 옆에서 무심한듯 앉아서 책을 읽는 남편도 설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싱크대부터 탁자까지는 세발자국, 현관부터 마루까지는 몇발자국이라고 동선을 계산하듯 지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 절제된 동작들은 흑백영화라는 틀속에서 더욱 최소화되고 정적으로 변한다. 카메라는 마치 게으름을 피우듯 고정되어있고 그런 제한된 프레임속에서 배우들은 그냥 조금씩 꿈틀거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거리와 간판, 도시와 산들이 정물화가 되어 나타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의 아버지를 연기한 류 치슈는 다른 영화에서보다 훨씬 덜 가부장적인 모습이다. 조금은 뭉그러져서 동글동글해진 아버지들의 모습이랄까.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것 같아 마음 졸이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머물곳을 찾다 아내와 헤어져서 친구들을 만나지만 술에 취한 친구까지 데리고 인사불성이 되서 찾아오는곳은 다름 아닌 딸의 집이다.  미용실 의자에 고꾸라져서 딸이 중절모로 그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우리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했다.


 


 

류 치슈의 큰 딸로 나오는 이 배우는 <안녕하세요>에서도 험담하기 좋아하고 친정 엄마조차  못마땅해하는 딸로 나왔었다. 남편이 장인장모를 위해 비싼 과자를 사와도 뭐하러 돈을 쓰냐고 면박을 주고 시내구경을 시켜줘야하는것 아니냐고 제안해도 오빠네가 알아서 할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되려 무안을 준다. 남자 형제사이에서 자란 딸들은 약간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것 같고 그들의 남편들 또한 약간은 우유부단하다. 노부부는 딸이 결혼을 하고 나더니 이상해졌다고 말하고 막내 딸은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유품 생각만 하는 언니가 못마땅하기만하다. 그래도 또 둘째며느리는 출가한 여자의 입장에서 첫째 시누이를 두둔한다. 류 치슈와 함께 오즈 야스지로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하라 세츠코가 둘째 며느리역을 맡았다. 첫째 며느리를 연기한 배우가 정숙한 고전적인 여성상을 몇차례 연기했다면 하라 세츠코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면서도 똑부러진 세련된 여성상을 연기했던것 같다. 

 

 


 영화 <만춘>에서 출가하지 않은 딸과 홀아버지를 연기했던 이 두배우는 남편과 사별한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연기한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등장인물로써 시부모와 죽은 남편의 형제들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준다. 의사가 된 든든한 장남과 미용실을 하는 천덕꾸러기같은 딸, 오사카에사는 얼굴보기 힘든 막내아들, 그 어떤 자식보다도 생각할 수록 안타깝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며느리이다. 노부부의 도쿄 여행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노리코(하라 세츠코)의 집에서 사진속의 죽은 아들을 맞닥뜨렸을때.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았다.


 

 


동네 의사인 큰 아들에게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도쿄 시내 구경은 둘째 며느리가 맡게된다. 이 장면에서도 여러모로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와 윌리, 에바가 에리호수를 방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에디와 윌리는 도박에서 번 돈을 들고 에바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떠나는데 그때 에바가 구경시켜주겠다고 데려가는곳이 바로 꽁꽁 언 에리호수이다.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을 찾는것은 무의미할 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것은 경이롭지 않은가. 섣부르게 흉내낸 스타일과 철학으로 보는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어떤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오노미치를 떠나 도쿄에 도착해 아타미에서 오사카 다시 오노미치로 돌아오는 노부부의 여행.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를 거쳐 홀연히 헝가리로 돌아가는 에바의 여행. 다 큰 조카를 어린애다루듯 하느라 티격태격하는 에바와 롯데고모. 느닷없이 찾아온 사촌 동생이 못마땅해서 괜히 까칠하게 구는 윌리와 이 모든 헝가리 이민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미국인 에디.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운 관계이기도 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이들은 때로는 푸념하고 속상해하지만 결국은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것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자식들과 함께있는것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는 노부부이야기일것만 같지만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이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삶을 사는것같아 속상하다. 장남의 집이 도쿄 시내에서 떨어진 교외라는것도 그냥 동네 이웃집 의사 선생님 같아 보여서도 실망한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면 그것으로 보상심리를 느끼는걸지도 모르겠다. 자식덕을 보려는게 아니라 단지 당신이 항상 자식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때문인것 같다. 일본인들의 실제 성격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속의 부모 자식의 관계는 왜 그리 어렵고 대면대면해보이는지.  그나마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줄때에나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하듯 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장례식을 계기로 이들은 도쿄가 아닌 오노미치에서 다시 한번 모인다. 큰 딸은 사실 엄마보다는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혹시 모르니깐 상복을 챙겨가야겠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임종앞에 눈물은 흘리지만 그게 설마 부모의 죽음을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식들이 부모 생각처럼 자라주길 바라는것은 부모의 욕심이고 자식들이 변해가는 이유는 도쿄에 사람이 많아서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부모의 모습은 씁쓸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스쳐지나쳤을 부모님의 수만가지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