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3.06.24 <열혈남아 As tears go by> 왕가위 (1987)
  2. 2013.01.10 <도쿄 스토리 > 오즈 야스지로 (1953)
Film2013.06.24 23:37

 

 

<열혈남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뉴욕에 머물던 에바가 숙모가 사는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장면이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보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미 그녀가 익숙해지고 그리워하게 된것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데 

바로 체스터필드 한 보루를 트렁크에 집어넣으면서 '이 담배, 딴 도시에 가도 있을까?'라고 윌리에게 묻는 장면이다.

낯선 곳으로 떠날때 우리는 늘 우리가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르는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갑자기 그 음악이 듣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씨디를 굽고

'그래도 머리맡에 놓고 두고두고 읽을 책 한권쯤은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헌책방을 향하고

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계산해보고는 삼분카레 세네봉지를 구겨넣는다.

갑자기 보고싶어졌는데 아무곳에서도 다운을 받을 수 없다거나 아마존에서는 몇십달러나 내야 주문이 가능하면 어쩌지? 

 서울을 떠나기전 부랴부랴 주문한 왕가위 영화들은 나에겐 에바의 체스터필드와 비슷한 의미였던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열혈남아>로 번안이 되었지만 영어제목은 As tears go by,  원제의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왕각가문>.

왕각가문이란 제목도 광동어로 발음하면 왕각은 '몽콕'으로 침샤추이와 같은 홍콩의 번화가 이름이고

가문은 외국어 발음과 비슷한 병음을 끼워맞추는 중국어의 특성상 '카먼', 고유명사로 '카르멘'을 뜻한다.

사실 엉뚱한것은 원제가 아니라 한국어 번안 제목인 <열혈남아>이지만 <지존무상>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액션영화가

유행하던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몽콕의 카르멘>이라는 원제가 더 뜬금없는 제목이었을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인구밀도의 도시 홍콩을 다시 작은 성냥갑속에 구겨넣은듯한 몽콕의 거리.

빽빽하게 들어찬 상가와 현란하게 깜빡이는 네온싸인만큼이나 번잡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인파들.

그들모두 어느정도는 좁고 숨막히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구역을 확보하려 신경과민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갖 범죄조직이 도시의 뼛속깊이 침투해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첨밀밀>에서처럼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인들과 

<중경삼림>에서의 가난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로 가득한 이 좁은 도시에서

유덕화와 장학우 그리고 장만옥이 연기하는 젊은이들도 결코 이곳에 쉽게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긴 마찬가지.

몽콕의 카르멘. 왕가위는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담배공장에서 담배를 마는 떠돌이 집시여인 카르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일까? 

 

 

장만옥이 살고 있는 란터우섬은 홍콩의 서쪽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한다.

병 치료차 사촌오빠인 유덕화가 살고있는 홍콩에 잠시 머물지만 그의 불안정한 일상만 잔뜩 구경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잠자고 있는 유덕화가 숙모의 전화를 받을때 짐가방과 함께 배위에 서있는 장만옥을 잠시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에바가 트랜지스터를 들고 걷기 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장면과 흐름상 크게 다르지 않다.

80년대 뉴욕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 절제적으로 그려낸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과

80년대말 홍콩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선배 감독에게서 받은 영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왕가위.  

"Loving movie is enough to make a good movie"

좋은말들은 항상 당연한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들의 적합한 예가 되려면 그 loving의 정도는 상상 이상의 것이어야할거다.

타란티노가 자기자신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수도 있고 왕가위나 류승완같은 감독들도 동의할 만한 말.

    

 

윌리는 경마나 카드놀이로 소일하며 공장으로 일하러가는 노동자를 보고는 힘들거라고 동정하는 백수 이민자일뿐이고

유덕화는 사촌동생한테 밥사먹으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한때는 잘나갔던 현직 폭력배.

유덕화가 사는 아파트도 윌리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보다 두배는 넓어 보인다.

에바는 윌리와 한방에 누워서 날이 새도록 어색하게 티비를 봐야했지만

장만옥은 최소한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낯선곳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유덕화가 자는 동안 유덕화의 전화를 받는 설정도

 

 

티비디너까지는 아니어도 장만옥이 지어 준 맛있는 밥을 먹는 장면도 <천국보다 낯선>에 대한 철저한 오마쥬인걸까.

 

 

게다가 이 장면은 짐 자무쉬의 데뷔작인 <영원한 휴가>에서 밤새고 방황하다 돌아온 앨리를

여자친구가 침대 매트리스만 달랑 놓여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면과 비슷하다.

사실 이후의 왕가위 영화에서는 이 정도로 절제된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비정전>이나 <중경삼림>같은곳에 등장하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방도 정말 산만하기 그지없었으니깐.

집도 직업도 세금 내기도 싫다는 앨리처럼 유덕화도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책임져야하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낙태한 여자친구에게 '내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하고 미련없이 사라져줄 뿐. 

 

 

정은임이 진행하던 FM 영화 음악에서 장만옥을 이렇게 표현한적이 있다.

마치 달을 씻어서 쟁반에 얹어 놓은 듯한 얼굴이라고.

25년전의 장만옥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표현이 얼마나 적합했는지 싶다.

 

 

성한 유리컵이 하나도 없다며 유리컵을 잔뜩 사놓고 떠나는 장만옥.

'한꺼번에 다 깨버릴까봐 일부는 숨겨놓았으니 못찾을때 전화하면 어디있는지 알려줄게요'

열혈남아 이후로 왕가위의 영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들 하지만 왕가위식의 감각적인 대사는 이때부터 어김없이 등장했다.

작고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서 인물간의 감정을 교감시키려는 시도.

한 공간에서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허용된 순간을 누리는데 서투른 이들은

자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 한두개쯤은 슬며시 남겨두고 떠난다.

 

 

사실 홍콩 면적이 그렇게 넓은것도 아니고 구룡에서 란터우섬까지 거리가 먼것도 아닐텐데

영화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느끼는 거리감은 거대해 보인다.

더이상 날지 못하고 어항속에 떠있는 모형비행기나 젖어버린 비행기 티켓처럼

실제로 가까운곳에 있지만 서로간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

그리고 왕가위는 그 거리감을 마치 숙명인듯 표현해내는데 소질이 있다. 

 

 

광동어 번안곡이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Take my breath away가 흘러 나오고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 사운드 충만한 음악들은 탑건이나 플래쉬 댄스 같은 80년대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에 사용되는 적합한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다음에는 이명세의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가진 비슷한 정서같은것이 있으니깐.

 

 

유덕화가 장만옥이 있는 란터우로 한걸음에 달려가 공중전화박스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과 채시라의 철조망 키스만큼이나 애절한데 네명의 배우들이 조금씩 서로를 닮은것도 같다.

사실 장만옥이 초반에 마스크를 끼고 마른기침을 하며 등장할때는 불치병에 걸린 사촌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깡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신파인가 해서 좀 긴장을 했지만

따지고보면 근친상간인데 먼 친척이라고만 나올뿐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도 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이 짧은 시간 공유하는 그 감정과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뿐이다.

 

 

어릴때는 홍콩의 액션영화가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성우들의 목소리톤때문에 영화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였으니깐.

   강시 영화에 나오는 유한도사 목소리나 부하를 위해 목숨을 잃는 두목의 목소리, 나쁜 악당의 목소리는

전부 정형화되어서는 홍콩 영화 특유의 배경음악과 함께 섞여서 촌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합회나 흑사회같은 범죄조직들이 홍콩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주먹세계에서의 의리나 정의를 미화하기위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던 액션 영화들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왕가위도 자신의 데뷔작에서 어느정도의 비장한 액션씬은 보여줘야했지만

조직간의 세력다툼이나 배반, 하극상의 거창한 액션은 아니었고 

남의 비위나 건드리면서 대책없이 일을 벌이고 다니는 고향 동생 장학우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우리 형'의 액션정도.

하지만 장학우와 함께 죽음직전의 상황에 몰려서는 우는 장학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장면은

설마 <살인의추억>에서의 '밥은 먹고 다니냐'같은 애드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사고 치고 다니는 동생은 '점쟁이 말로는 서른이 되면 운이 트인데'라고 하지만

14살에 청부살인으로 처음 돈을 만졌다는 형에게 인간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보다 가벼운것.

'정신차려. 너가 서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초크묻인 손가락으로 당구공을 밀어내듯 그냥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는걸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단정짓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한 평생도 아니고 한 시간만이라도 영웅으로 살고싶다며 절절하게 얘기하는 동생을 더이상 한심하듯 쳐다보지 못하는 형.

몽콕을 떠나 란터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유덕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순응한다.

행동의 본질은 그렇다.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닌 이겨낼 수 없는 슬픔에 맞물려서 흘러가는 인생.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1.10 05:40

 

 

<도쿄 스토리>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는 머리를 감았다. 갑자기 금새 졸음이 밀려올까봐 커피도 끓였다.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해의 운명이 결정된다고들 하는데 연말에 거의 잠을 자지 않아서일까 왠만큼 늦은시각이 아니어서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년에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를 보고서는 (물론 전혀 다른 만추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진지하게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가지고 있던 영화 말고 얼마전에 <안녕하세요>와 <도쿄 스토리>를 찾아 보는데 성공했다. <도쿄 스토리>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란것을 알기 전에 난 이 영화를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가 경마장에 함께 가기위해 윌리의 집에 오는 장면이 있는데 에디는 윌리의 사촌동생 에바에게 호감을 느끼고 에바를 함께 데려가길 원하지만 놀러온 사촌이 귀찮기만한 윌리는 거절한다. 그때 그날 출전하는 경주마에 대한 정보를 에디가 읽어주는데 그때 등장하는 경주마 중 하나가 '도쿄 스토리'이다. <천국보다 낯선>을 워낙 여러번 봤기도했었지만 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대화가 주를 이루는 그 영화에서 '도쿄 스토리'라는 이름의 경주마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그때는 짐자무쉬도 일본을 동경하는 서양인의 정서를 이런식으로 표현하는구나 지레 짐작했었지 그것이 어느 일본 감독의 영향을 받아서일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다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역시 담담하게 한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다. 자신의 여러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던 소재들을 한데 모아놓은듯한 느낌도 준다. 결혼하지 않은 딸, 말썽피우는 아이들, 얄밉게 구는 딸, 자식에 대한 애환을 얘기하는 노년의 남자들 등등. 정말 이것이 영화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다 싶은 일들을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갈등없이도 심지어는 미묘한 긴장감까지 주며 두시간 넘게 끌어갈 수 있는것, 그 '아무것도 아닌것'같은 일들에 대해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것은 오즈 야스지로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출가하지 않은 막내딸과 함께 오노미치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방문할 생각에 들떠있다.

장남에게서 초등학생 손자가 있지만 도쿄에는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가보다. 큰 아들과 큰 딸, 둘째 아들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둘째 며느리가 도쿄에 산다. 자식들 대부분이 대도시에 자리 잡은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노부부 자신도 자랑스러워한다.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열심히 에어쿠션을 찾는다. 도쿄까지 가려면 장거리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여행준비하는 부인 옆에서 무심한듯 앉아서 책을 읽는 남편도 설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싱크대부터 탁자까지는 세발자국, 현관부터 마루까지는 몇발자국이라고 동선을 계산하듯 지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 절제된 동작들은 흑백영화라는 틀속에서 더욱 최소화되고 정적으로 변한다. 카메라는 마치 게으름을 피우듯 고정되어있고 그런 제한된 프레임속에서 배우들은 그냥 조금씩 꿈틀거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거리와 간판, 도시와 산들이 정물화가 되어 나타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의 아버지를 연기한 류 치슈는 다른 영화에서보다 훨씬 덜 가부장적인 모습이다. 조금은 뭉그러져서 동글동글해진 아버지들의 모습이랄까.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것 같아 마음 졸이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머물곳을 찾다 아내와 헤어져서 친구들을 만나지만 술에 취한 친구까지 데리고 인사불성이 되서 찾아오는곳은 다름 아닌 딸의 집이다.  미용실 의자에 고꾸라져서 딸이 중절모로 그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우리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했다.


 


 

류 치슈의 큰 딸로 나오는 이 배우는 <안녕하세요>에서도 험담하기 좋아하고 친정 엄마조차  못마땅해하는 딸로 나왔었다. 남편이 장인장모를 위해 비싼 과자를 사와도 뭐하러 돈을 쓰냐고 면박을 주고 시내구경을 시켜줘야하는것 아니냐고 제안해도 오빠네가 알아서 할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되려 무안을 준다. 남자 형제사이에서 자란 딸들은 약간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것 같고 그들의 남편들 또한 약간은 우유부단하다. 노부부는 딸이 결혼을 하고 나더니 이상해졌다고 말하고 막내 딸은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유품 생각만 하는 언니가 못마땅하기만하다. 그래도 또 둘째며느리는 출가한 여자의 입장에서 첫째 시누이를 두둔한다. 류 치슈와 함께 오즈 야스지로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하라 세츠코가 둘째 며느리역을 맡았다. 첫째 며느리를 연기한 배우가 정숙한 고전적인 여성상을 몇차례 연기했다면 하라 세츠코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면서도 똑부러진 세련된 여성상을 연기했던것 같다. 

 

 


 영화 <만춘>에서 출가하지 않은 딸과 홀아버지를 연기했던 이 두배우는 남편과 사별한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연기한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등장인물로써 시부모와 죽은 남편의 형제들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준다. 의사가 된 든든한 장남과 미용실을 하는 천덕꾸러기같은 딸, 오사카에사는 얼굴보기 힘든 막내아들, 그 어떤 자식보다도 생각할 수록 안타깝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며느리이다. 노부부의 도쿄 여행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노리코(하라 세츠코)의 집에서 사진속의 죽은 아들을 맞닥뜨렸을때.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았다.


 

 


동네 의사인 큰 아들에게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도쿄 시내 구경은 둘째 며느리가 맡게된다. 이 장면에서도 여러모로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와 윌리, 에바가 에리호수를 방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에디와 윌리는 도박에서 번 돈을 들고 에바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떠나는데 그때 에바가 구경시켜주겠다고 데려가는곳이 바로 꽁꽁 언 에리호수이다.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을 찾는것은 무의미할 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것은 경이롭지 않은가. 섣부르게 흉내낸 스타일과 철학으로 보는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어떤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오노미치를 떠나 도쿄에 도착해 아타미에서 오사카 다시 오노미치로 돌아오는 노부부의 여행.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를 거쳐 홀연히 헝가리로 돌아가는 에바의 여행. 다 큰 조카를 어린애다루듯 하느라 티격태격하는 에바와 롯데고모. 느닷없이 찾아온 사촌 동생이 못마땅해서 괜히 까칠하게 구는 윌리와 이 모든 헝가리 이민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미국인 에디.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운 관계이기도 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이들은 때로는 푸념하고 속상해하지만 결국은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것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자식들과 함께있는것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는 노부부이야기일것만 같지만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이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삶을 사는것같아 속상하다. 장남의 집이 도쿄 시내에서 떨어진 교외라는것도 그냥 동네 이웃집 의사 선생님 같아 보여서도 실망한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면 그것으로 보상심리를 느끼는걸지도 모르겠다. 자식덕을 보려는게 아니라 단지 당신이 항상 자식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때문인것 같다. 일본인들의 실제 성격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속의 부모 자식의 관계는 왜 그리 어렵고 대면대면해보이는지.  그나마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줄때에나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하듯 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장례식을 계기로 이들은 도쿄가 아닌 오노미치에서 다시 한번 모인다. 큰 딸은 사실 엄마보다는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혹시 모르니깐 상복을 챙겨가야겠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임종앞에 눈물은 흘리지만 그게 설마 부모의 죽음을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식들이 부모 생각처럼 자라주길 바라는것은 부모의 욕심이고 자식들이 변해가는 이유는 도쿄에 사람이 많아서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부모의 모습은 씁쓸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스쳐지나쳤을 부모님의 수만가지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