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2017.08.01 09:00




인생 부대찌개를 마주하고 있자니 인생 파스타가 떠올랐다.  코르토나는 다이앤 레인이 출연한 <투스카니의 태양> 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도시이다. 피렌체를 떠나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되었던 아레쪼에 잠깐 내려 짧은 기차를 타고 도착했던 에트루리아인의 도시. 오랜 걸음으로 도보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은 산악도로를 위험스레 거꾸로 걸어서 닿았던 그곳.  역에서 내려 한참 걸어 올라간 코르토나는 '너는 여행객이다' 라는 명제를 여실히 증명해보이는 풍경들을 품고 있었다. 영화속에서 프랜시스가 잠깐 관광버스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코르토나의 느낌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자체로 좋았다. 9월의 코르토나에서 프랜시스의 눈을 가득 점령하고 지나치던 해바라기 들판은 볼 수 없었지만 골목 어귀의 기념품 가게 문에 붙어 있는 해바라기 모양의 마그넷만으로도 난 이미 그곳에 닿아있다는 타협이 가능했다. 영화속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의 분수대씬을 재현했던 그 분수대에는 물한방울 남아있지 않았지만 바짝마른 분수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상기시킬 부서지는 물방울을 상상하는것으로 그것과도 타협했다. 시간이 늦은 줄도 모르고 걸어다니다 문닫기전 가까스로 들어간 식당은 어두운 조명아래 텔레비젼이 대롱대롱 매달린  관광지 코르토나에서도 관광객들에게 외면당한듯한 외로운 자태의 레스토랑이었다. 전체적인 음식명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트러플이 들어갔다는 리조토를 시켰다. 그라파라는 단어는 깡그리 무시한채. 그리고 오랜시간후에 텅 빈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것은 그라파라는 술에 잔뜩 끓여진 술냄새나는 밥이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왜 이런맛이 나죠? 남자 직원은 웃으면서 주방으로 돌아가 술병을 들고 나왔다. 이것이 그라파입니다. 그라파. 분명히 너가 시킨거에요. 그 후로 남은 기간동안 난 이탈리아의 모든곳에서 그라파를 보았다. 리몬첼리도 와인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작은 상점을 기웃거려도 바를 지나쳐도 그 술만 눈에 들어왔다. 몇숟갈을 채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왔다.  




난 너무나 배가 고팠지만 날 위해 음식을 만들어줄 식당은 얼마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텅빈 식당속에 대니 드 비토와 비슷한 풍채를 한 폴 소르비노보다는 백배는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아저씨가 무료한 표정으로 티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유일하게 요리 해줄 수 있다고 한 파스타 한 접시를 대접받았다. 단연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파스타였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만들어보려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파스타. 코르토나의 그 식당에 그 시간에만 가야 맛 볼 수 있을것 같은 파스타.  





파스타 한 접시만 시켰는데 브루스케타까지 한 접시 가져다 줬다. 배가 고팠음에도 그 브루스케타는 맛이 없었다.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았던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배가 고팠다면 술에 절여진 리조토도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브루스케타에서는 사실 비린내가 진동했다.  빵의 절반도 넘는 면적이 기름에 푹 적셔져있었고 앤초비 타페나데가 무심하게 발라져있었다. 하지만 파스타는 너무나 맛있었다.  모든것이 파스타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진부한 클리셰였다. 어쩌면 이 파스타 그 자체가 코르토나의 가장 명백한 클리셰였는지도 모른다. 




맛있었다. 한 손에 접시를 들고 티비에 시선을 꽂은채 주방에서 나오던 대니 드 비토 아저씨.  티비에 연결된 줄을 턱에 매달고 있는것 같았다. 접시를 넘겨주고 마치 스무번은 족히 봤을것 같은 보고 또 봐도 재밌는 드라마를 놓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으셨다.  나는 선택받은것이 분명해. 






그리고 인생 올리브 오일.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5.09.11 00:00



(Cortona_2010)


근무중인 아저씨에게 망중한이라니. 좁디 좁았지만 없는게 없었던 학교 앞 문방구처럼 작은 펜틴 샴푸부터 줄줄이 매달린 감자칩, 잘게 썰린 싸구려 하몽까지 없는게 없었던 코르토나의 작은 슈퍼. 우리를 포함한 몇몇의 관광객들은 낯선 도시가 내뿜는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 이리 저리 어깨를 부딪히며 주인없는 상점을 두리번 거렸다. 코르토나의 첫 날, 홍차 한 솥을 끓여 보온병에 담고 동네 산책을 나간 우리에게 필요했던것은 차와 함께 먹을 돌돌말린 케잌이나 달짝지근한 크래커 따위. 왜 아무도 계산을 해주지 않는거지 조급해했던것이 미안해질만큼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는 천천히 돌아오던 그 이탈리아인. 내가 발견한 롤케익만큼 그의 끽연도 달달하고 풍성했기를.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3.02.24 03:35

 

매번 여행을 가기 전에 결론이 뻔한 고민에 휩싸인다.

'카메라를 챙겨야 할까?'

나는 조금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여행이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행예산과 각종 기회비용을 따지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여행을 하게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서 픽업을 나오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시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으니  

보통 제발로 숙소를 찾아다니거나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닐때가 많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면 추가비용을 내야하니 기차시간까지 짐을 지닌채로 남은 시간 도시를 둘러본다거나 하니

여행동안 짐과 함께 하는 시간은 택시 할증처럼 늘어난다.

그렇다고 다리미며 클럽용 구두까지 챙겨넣어 마치 등에 냉장고를 업은듯한 모습으로 여행하던 유럽아이들처럼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 같은 물품은 항상 귀찮은 존재이다.

충전을 하려면 충전기를 넣어야하고 충전 못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보조배터리도 두세개씩 넣어야하고

찍은 사진을 저장해야하니 컴퓨터도 챙겨야 한다. 컴퓨터에도 플러그를 챙겨야 하는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눈이 네개니깐 카메라도 각자 하나씩 챙겨야한다. 이런식으로 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온전히 내 기억과 망막에 새겨지는 풍경들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도 항상 갈등한다. 기록에 대한 집착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얻는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과거의 한순간을 추억할 수 있고 그 추억으로 더 많은것을 꿈꿀 자유를 보장받는다면

사진을 찍는것은 어쩌면 기억을 위한 만기 없는 보험에 가입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춰보는 사진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봇따리의 기억들에 결국 그 고민은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가지는 프란시스가 광장에 앉아서 엽서를 대신 써주는 장면이 있다.

'종소리가 이미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딩동하는 종소리가 아닌 딩댕동하는 소리로' 

다행히 난 나를 잠시 내려둔 버스로 돌아가야 할 상황도 아니었고 다음 여행지로 급하게 떠나야 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코르토나의 사진들을 보니 이런 사진들은 마치 울려퍼진 종소리처럼 큰 여운을 준다.

이탈리아어로 '종'을 의미한다는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는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곡인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던 파가니니의 바이얼린 연주곡을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의한 연습곡으로 만든 피아노 곡이다.

그 피아노곡에는 '초절기교'라는 듣기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수식이 또 붙는다.

요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부르는 그런 노래들이 있더라.

또 저노래야! 싶지만 자신의 최절정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고 믿고 선보이는 그런 노래들처럼

피아니스트들도 경쟁적으로 연주하는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것 같은데 

예를 들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나 헝가리안 랩소디, 쇼팽의 즉흥 환상곡 같은 곡들이 그렇다.

실제 리스트가 연주한 라캄파넬라를 들을 방법이 없으니 누가 더 정확하게 더 완벽하게 그 곡을 연주하는지

그리고 어떤방식으로 더 완벽한 연주를 평가하는지는 잘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인 윤디리의 연주가 제일 좋다. 

근데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정말 '초절기교'보다 더 超!超!超!한 초절기교란것을 느끼게 된다.

나도 악보를 복사한적이 있는데 연주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음표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를 보기 위했던것.

근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큰 종들이 리스트의 곡처럼 명민하고 옥구슬같은 종소리를 내지는 않을것이다.

실제 라 캄파넬라의 캄파넬라는 이런 큰 종이 아닌 작은 종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우리나라말에서 해-햇님,돌-돌맹이,꼬마-꼬맹이하는것처럼

리투아니아어도 그렇고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의 명사들은 작고 예쁜 느낌을 주는 소형명사들을 가지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campana 라는 종도 campanella 라는 축소명사를 가지고 있는것.

 

 

호스텔 창문 밖으로 종이 보인다.

코르토나의 아침은 아마도 저 종소리와 저 나무위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로 맞이하게 될것 같았다.

옛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개조해서 만든것 같았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이런거는 정말 그때그때 호스텔 직원한테 물어봐야하는데 깜빡했다.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는 봄에 피는 꽃같고 올리브 꽃이 피기에도 이미 늦은것 같은데

 

 

창문에 비친 모습.

아쉽게도 종소리는 기억이 안난다.

 

 

호스텔을 나와서 걷다 마주친 또 다른 캄파넬라.

천사들의 합창의 페르민 할아버지가 뛰쳐나와 종을 울릴것 같은 기분이다.

얘들아 서둘러 이제 밥먹으러 갈 시간이라구.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3.02.24 00:08

 

코르토나로 가는 길. La strada per cortona.

La strada는 아시다시피 펠리니의 영화 '길'의 원제에서 얍삽 인용하였고

문장을 넣고 검색 해본 결과 코르토나'로' 가기 위한 전치사는 per 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

strada 가 고속도로나 길처럼 특정 방향을 가리켜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동적이고 광활한 느낌을 준다면

우리가 두시간여에 걸쳐 밟고 올라온 콘크리트 언덕은 분명 strada 였던것 같다.

 그리고 코르토나 입성을 목전에 둔 우리를 초로에 접어든 성당으로, 끈적한 압착 올리브 향으로 가득한 식당으로,

피아자의 벼룩시장으로 인도해 줄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via.

이탈리아어에는 독특한 생동감과 운율이 있고 적당한 강약을 넣어 발음해보면 노래를 부르는것 같다.

제목마다 적당한 이탈리아어 제목을 붙이고 싶어서 부정확성을 무릎쓰고 구글 이탈리아에 입력해 구글 번역기를 돌려본다. 

저 게이트를 통과해서 코르토나의 중심 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목은 Via Guelfa

 우리가 걸었던 수많은 코르토나의 길,Via di Cortona!

 

 

터널을 통과해 반대방향에서 바라 본 모습.

해바라기로 가득한 투스카니를 보려면 7월경이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데

10월에 접어드는 이맘때에도 해바라기 풍년이다.

기념품 상점 가판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해바라기 마그넷과 상점 입구를 치장하고 있는 해바라기들.

아, 7월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느끼는 여행자들의 머릿속도 노란 해바라기로 가득 할 것.

 

 

옛것을 남겨두는 데에는 용기와 자존심이 필요하다.

미켈란젤로의 매끈한 다비드상이나 피렌체 두오모의 생명력을 '보존'이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칠이 벗겨진 잿빝 목조문과 녹슨 끌로 뚝뚝 쳐서 투박하게 남겨진듯한 콘크리트벽에서는

오히려 자존감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사재를 털어져 만든 소박한 생활 박물관 한켠에 놓여진 듯 고독한 에트루리아인의 문.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아닌것 같다.

그러니깐 뻬쩨르부르그행 기차의 이층칸에 힙겹게 자신의 몸을 꼬깃꼬깃 접어 눕던

그 육중한 러시아인은 절대 앉을 수 없는 식당이다.

 

 

코르토나행 기차표에 찍힌 시간을 보니 얼추 오후 3시정도에 코르토나에 도착했고

두시간정도를 걸어서 올라온 구시가지에서 숙소를 찾아 헤맸다.

오후 5시정도. 해지기전에 빨리 짐을 내려놓고 해 질 무렵에는 식당에 앉아서 한가롭게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굳이 사람들 북적이는 식당에 앉아있지 않아도 가져간 보온병에 차를 끓여 아무데나 걸터앉으면

이미 마음속에서 예약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자리 벽은 분명 새롭게 바른것 같은데 창이나 문주위를 이렇게 그대로 남겨놓는것은 건축법에 따른 그런건가.

구시가지 보존 건축법 같은게 있어서 리모델링은 허가하나 이렇게 옛 흔적은 조금씩 남겨둬야 한다거나 그런거.

이 견고한 쇠창살은 안으로 보이는 창문보다 더 오래된 놈같다.

도둑하나 없을듯 평화로운 이곳에 치안때문에 급하게 설치한 21세기의 쇠창살이라기보다는

기술력이 뛰어났고 나름 야만적이었다는 에트루리안인들이 이곳에 이민족을 가둬놓고

끌과 망치로 청동조각을 두드리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르티니가 프란시스에게 선물한 성 로렌초 상 같은 그런거.

창살과 절묘한 대구를 이루는 창 옆의 저 배기구와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작은 화분들은 또 어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오랫동안 햇살을 머금을 수 있는 지붕 아래의 방.

건물 측벽의 저런 뜬금없는 레고블럭식 창문들은 이곳 리투아니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집과 집이 마주보고 길을 형성한다기보다는 건물위에 건물이 지어져 비스듬한 경사를 형성하는 이런 지형에서

일반 사람들이 조망권때문에 다툴일은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철거지역으로 분류되어 두더지잡듯 파헤쳐져 사라져가는 달동네의 건축적 가치를 무시한 결과,

편평히 고른 부지위의 아파트 입주자들이 뒤늦게 조망권 분쟁을 겪는것은 현대 도시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걸어와서 뒤를 돌아본 걸까 저 끝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걸까.

 

2010. 9월. 코르토나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