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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10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장 마크 발레 (2011)
Film2013.06.10 07:18

 

 

<카페 드 플로르>

 

지난번에 <파리 5구의 여인>을 보고 바네사 파라디가 떠올랐더랬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조니뎁이 아니고선 독자적으로 잘 거론되지 않는 배우.

그녀를 볼때마다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조니뎁이 별로 멋있지도 않고 그가 케케묵은 매력으로 수년간 어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니뎁과 그토록 오랫동안 짝으로 지냈었던데에는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것과 

심지어 '그렇게 앞니 사이가 벌어져서도 조니뎁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니'라고 더더욱 못난 생각을 하게 되는것.

그러니 앞니가 빠진 여자는 예쁘지도 않고 그런 여자는 멋진 남자와 살 수 없다는 외모지상주의에 근거한 몹쓸 편견에

조니뎁이 멋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은 그가 사랑한 여자는 뭔가 특별할것이라고 생각하니

결과적으로는 조니뎁을 매력남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제목때문에 고른 이 영화 <카페 드 플로르>.

아이를 안고 있는 흑백 포스터를 보고 안젤리나 졸리의 <체인질링>같은 모성애를 다룬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보봐르와 샤르트르등등등의 지성들이 들락거렸던 파리의 카페, 카페 드 플로르에서 벌어지는 일일수도 있겠다고

누구나 할 법 한 뻔한 상상을 하고 숨을 가다듬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1969년. 파리에서 다우증후군 아들 로렌(Marn gerrier) 을 기르며 살아가는 재클린(Vanessa paradis).

주변사람들의 편견과 다운증후군 환자에 대한 의학적인 통계에 맞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그녀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이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이동하는 일상.

하교시간에 맞춰 일을 놓고 부랴부랴 학교로 가서 다시 아들을 만날때까지 그녀는 온통 아들 생각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 시대에 홀로 자식을 기른다는것. 게다가 그 아이가 정상아동이 아닐때.

남편 마저 포기한 자식을 혼자서 감당해야한다는 현실에 직면했을때 여자의 마음은 절망스러웠을거다.

 

 

성당에서 아들이 가지고 싶다며 탐내던 양초에 손대지 못하게 하면서도 결국 몰래 챙겨서 아들의 생일 케잌에 올려놓는 재클린.

책에 명시된 다운증후군 환자의 평균 수명은 언제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옭죄는 숫자가 되고

매번 아들의 생일이 돌아올때마다 재클린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에 사로 잡힌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mattew herbert 의 cafe de flore.

 빅밴드 버전과 클럽믹스된 버전이 4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번갈아서 연주된다.

빅밴드 버전은 로렌이 지각한 무용수업시간에 반주로 처음 등장해서

로렌이 집에서 재클린에게 계속 틀어달라고 조르는 노래.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40년후 캐나다 몬트리올로 바뀌면서 음악은 클럽 버전으로 바뀌는데

클라이막스인 서정적인 아코디온 연주 부분은 바뀌지않고 그대로 사용된다.

 

 

영화초반에는 4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래저래 연결지으며 쉽게 줄거리의 감을 잡지 못했다.

 반복해서 연주되는 음악들과 섬뜩하리 만치 모호하게 편집되는 과거와 현재

세가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속에서 인물들이 사진과 음악을 통해 교묘하게 한곳에 공존한다는것을

영화를 두번째 다시 돌려 봤을때야 어느정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음악. 그를 기억하는 음악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때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시간에 관한 음악들.

이 영화는 특정 음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공유했던 시간과 사랑에 관해서

 하나의 공통된 음악에 관련된 같지만 다른 우리들의 기억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낙엽이 떨어진 을씨년한 도시. 재클린과 로렌이 손을 잡고 걷는 안개낀 옛 파리의 아침.

재클린이 그네를 타면서 로렌에게 자주 불러주는 노래.하늘로.하늘로.

마치 다음 세상에서는 파리가 아닌 바다 건너 캐나다에서 살게 될 로렌의 미래를 암시라도 하듯

창밖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장면 다음으로는 항상 절묘하게 40년 후의 몬트리올이 비춰진다.

 

 

음악을 사랑했고 결국 음악없이는 살 수 없는 디제이의 삶을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앙뜨완.

 십대때 만난 캐롤(Helene florent)과 결혼을 해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미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되고만 남자.

영화속에서는 앙뜨완과 로즈(evelyn brochu)의 섹스장면이나 로즈의 섹스어필한 모습을 너무 부각시켜서

젊고 매력적인 여자에 빠져서 가족을 내팽개친 40살 남자처럼 앙뜨완을 묘사해버린 감이 없지 않아서 아쉽다.

그게 아니면 음악을 들을때 우리가 낭만적이고 진실하다고 믿는 순간을 반대로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표현하려했는지도.

앙뜨완과 캐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도 십대의 풋풋함보다는

그들이 들었던 음악처럼 자유분방하고 아슬아슬하게 묘사되었으니깐.

어쨌든 영화는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믿는 영원한 사랑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으니

앙뜨완의 새로운 사랑을 그가 느끼는대로 진실한것으로 믿어주는 수 밖에 없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도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쩌면 함께 있는 그 시간의 절반도 넘는 시간을

같은 음악을 들으며 교감해온 캐롤과 앙뜨완.

그가 사진속에서 발견하는 과거의 매순간, 모든 음악의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캐롤.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미워조차 하지 않는 누군가의 텅빈 눈빛을 마주하는것과

그런 텅빈 눈빛으로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서로를 소울메이트처럼 여기며 절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 여기던 그들 모두에게 절망스러운 상황일거다.

사랑에 빠진 모두가 매번 영원을 꿈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런 영원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리는것이니깐.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모두 고귀하다고 믿어야 할까.

 

 

로렌과 베로니카가 처음 만났을때.

앙뜨완과 캐롤이 처음 만났을때.

그리고 앙뜨완과 로즈가 처음 만났을때가 교차로 편집되면서

sigur ros의 Svefn-G-Englar가 몽환적으로 흐른다.

시규어 로스는 한국에서 얼마전에 내한공연도 했던데 처음에 이들의 음악을 들었을때를 생각하면

몹시 슬프고 가슴 아픈 이 음악은 오히려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몽골리안들이 출연하는 비디오 클립도 그랬고 뭔가 슬픔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꾸 들으면서 빠지면서도 왠지모를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려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 <바닐라 스카이>도 그렇고 음악을 통해서 뭔가를 전달하려는 영화들은 확실히 이런 음악을 잘 사용하는것 같다.

옷감에도 물감이 잘 스며들고 잘 지워지지 않는 옷감이 있듯이

음악도 더 많은 이들의 추억을 깊게 빨아들이는 음악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앙뜨완과 캐롤의 딸 줄리엣이 바람난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수단도 결국은 음악이다.

핑크 플로이드와 시규어 로스의 음악과 함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음악이자

앙뜨완과 캐롤이 함께 보낸 십대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을 큐어의 많은 음악들.

줄리엣은 앙뜨완에게 캐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음악으로 의도적으로 큐어의 음악을 자주 튼다.

 내가 오아시스를 좋아하면서부터 찾아들었던,

쉽게 말해 오아시스가 영감을 얻었던 그 윗세대의 음악들도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짙은 화장에 반항적인 모습으로 앙뜨완과 캐롤이 찍은 옛 사진들속의 smith 음반이나 cure의 faith.

이런 좋은 음악들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이런 영화들이 너무 좋다.

이를테면 카메론 크로우나 왕가위 같은 감독들의 영화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면 아마 캐롤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일거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이런 영화를 보니 본능적으로 캐롤의 입장에서 사랑의 의미를 묻게 된다.

배우자의 외도를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대역죄에 동일시하며 보란듯이 외도를 하거나

복수의 칼을 갈거나 용서를 하더라도 병으로 장렬하게 죽어가면서 결말을 맺는 요즘 드라마속의 사랑과 이별의 모습과

자신과 이별한 남편을 용서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캐롤의 모습.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진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힘들겠지만 결국은 놓아줘야하지 않을까.

 약간의 몽유병 증세를 보이면서 밤마다 악몽을 꾸는 캐롤.

반복되는 꿈의 의미가 궁금해져서 심령술사를 찾아가는 캐롤은

자신과 앙뜨완이 전생에 모자지간이었고 전생에 그녀가 운전하는 차뒷자석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앙뜨완과 로즈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전생에서 비극적으로 끝난 모든 세 사람의 인생을 동정하는 캐롤은 

자신과 앙뜨완의 관계과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모자간의 운명으로 정해진거라면

현생에서는 앙뜨완과 로즈의 사랑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앙뜨완을 사랑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한다.

 

 

그러니깐 한마디로 앙뜨완과 캐롤이 십대시절에 찍은 이 사진뒤로 보이는 액자속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은

1969년 재클린과 로렌이 센느강을 흐르는 유람선속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을

앙뜨완의 부모가 앙뜨완을 낳기전에 찍은 사진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준다.

서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베로니카와 로렌을 보면서 재클린은 앞으로 로렌과 살아가야할 시간들에 대해 절망하면서

차를 몰고가다 자살을 했고 부셔진 cafe de flore 의 음반처럼 결국 베로니카와 로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모두가 다시 태어난 현생에서 결국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으로 귀결되어 진다.

앙뜨완의 십대시절을 연기했던 이 배우는 크레딧을 보다가 장 마크 발레 감독이랑 성이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 아들이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전에 보이는 '재클린 샤렛 발레에게 바친다' 라는 글귀도 아마도 감독의 실제 어머니를 위한것 같고.

왠지 영화도 감독의 자신의 얘기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주는데 알 수 없는 일.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줄리엣이 트는 음악

sophie hunger 의 le vent nous portera.

원곡은 프랑스 그룹인 noir desir의 곡인데 이 영화에는 원곡보다 이 버전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noir desir 라는 그룹은 십년도 더 전에 그룹리더가 영화배우인 여자친구 말다툼끝에 여자친구가 죽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였다는것을 오늘 알게되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