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2013.02.24 03:35

 

매번 여행을 가기 전에 결론이 뻔한 고민에 휩싸인다.

'카메라를 챙겨야 할까?'

나는 조금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여행이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행예산과 각종 기회비용을 따지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여행을 하게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서 픽업을 나오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시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으니  

보통 제발로 숙소를 찾아다니거나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닐때가 많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면 추가비용을 내야하니 기차시간까지 짐을 지닌채로 남은 시간 도시를 둘러본다거나 하니

여행동안 짐과 함께 하는 시간은 택시 할증처럼 늘어난다.

그렇다고 다리미며 클럽용 구두까지 챙겨넣어 마치 등에 냉장고를 업은듯한 모습으로 여행하던 유럽아이들처럼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 같은 물품은 항상 귀찮은 존재이다.

충전을 하려면 충전기를 넣어야하고 충전 못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보조배터리도 두세개씩 넣어야하고

찍은 사진을 저장해야하니 컴퓨터도 챙겨야 한다. 컴퓨터에도 플러그를 챙겨야 하는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눈이 네개니깐 카메라도 각자 하나씩 챙겨야한다. 이런식으로 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온전히 내 기억과 망막에 새겨지는 풍경들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도 항상 갈등한다. 기록에 대한 집착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얻는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과거의 한순간을 추억할 수 있고 그 추억으로 더 많은것을 꿈꿀 자유를 보장받는다면

사진을 찍는것은 어쩌면 기억을 위한 만기 없는 보험에 가입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춰보는 사진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봇따리의 기억들에 결국 그 고민은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가지는 프란시스가 광장에 앉아서 엽서를 대신 써주는 장면이 있다.

'종소리가 이미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딩동하는 종소리가 아닌 딩댕동하는 소리로' 

다행히 난 나를 잠시 내려둔 버스로 돌아가야 할 상황도 아니었고 다음 여행지로 급하게 떠나야 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코르토나의 사진들을 보니 이런 사진들은 마치 울려퍼진 종소리처럼 큰 여운을 준다.

이탈리아어로 '종'을 의미한다는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는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곡인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던 파가니니의 바이얼린 연주곡을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의한 연습곡으로 만든 피아노 곡이다.

그 피아노곡에는 '초절기교'라는 듣기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수식이 또 붙는다.

요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부르는 그런 노래들이 있더라.

또 저노래야! 싶지만 자신의 최절정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고 믿고 선보이는 그런 노래들처럼

피아니스트들도 경쟁적으로 연주하는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것 같은데 

예를 들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나 헝가리안 랩소디, 쇼팽의 즉흥 환상곡 같은 곡들이 그렇다.

실제 리스트가 연주한 라캄파넬라를 들을 방법이 없으니 누가 더 정확하게 더 완벽하게 그 곡을 연주하는지

그리고 어떤방식으로 더 완벽한 연주를 평가하는지는 잘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인 윤디리의 연주가 제일 좋다. 

근데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정말 '초절기교'보다 더 超!超!超!한 초절기교란것을 느끼게 된다.

나도 악보를 복사한적이 있는데 연주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음표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를 보기 위했던것.

근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큰 종들이 리스트의 곡처럼 명민하고 옥구슬같은 종소리를 내지는 않을것이다.

실제 라 캄파넬라의 캄파넬라는 이런 큰 종이 아닌 작은 종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우리나라말에서 해-햇님,돌-돌맹이,꼬마-꼬맹이하는것처럼

리투아니아어도 그렇고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의 명사들은 작고 예쁜 느낌을 주는 소형명사들을 가지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campana 라는 종도 campanella 라는 축소명사를 가지고 있는것.

 

 

호스텔 창문 밖으로 종이 보인다.

코르토나의 아침은 아마도 저 종소리와 저 나무위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로 맞이하게 될것 같았다.

옛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개조해서 만든것 같았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이런거는 정말 그때그때 호스텔 직원한테 물어봐야하는데 깜빡했다.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는 봄에 피는 꽃같고 올리브 꽃이 피기에도 이미 늦은것 같은데

 

 

창문에 비친 모습.

아쉽게도 종소리는 기억이 안난다.

 

 

호스텔을 나와서 걷다 마주친 또 다른 캄파넬라.

천사들의 합창의 페르민 할아버지가 뛰쳐나와 종을 울릴것 같은 기분이다.

얘들아 서둘러 이제 밥먹으러 갈 시간이라구.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3.02.24 00:08

 

코르토나로 가는 길. La strada per cortona.

La strada는 아시다시피 펠리니의 영화 '길'의 원제에서 얍삽 인용하였고

문장을 넣고 검색 해본 결과 코르토나'로' 가기 위한 전치사는 per 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

strada 가 고속도로나 길처럼 특정 방향을 가리켜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동적이고 광활한 느낌을 준다면

우리가 두시간여에 걸쳐 밟고 올라온 콘크리트 언덕은 분명 strada 였던것 같다.

 그리고 코르토나 입성을 목전에 둔 우리를 초로에 접어든 성당으로, 끈적한 압착 올리브 향으로 가득한 식당으로,

피아자의 벼룩시장으로 인도해 줄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via.

이탈리아어에는 독특한 생동감과 운율이 있고 적당한 강약을 넣어 발음해보면 노래를 부르는것 같다.

제목마다 적당한 이탈리아어 제목을 붙이고 싶어서 부정확성을 무릎쓰고 구글 이탈리아에 입력해 구글 번역기를 돌려본다. 

저 게이트를 통과해서 코르토나의 중심 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목은 Via Guelfa

 우리가 걸었던 수많은 코르토나의 길,Via di Cortona!

 

 

터널을 통과해 반대방향에서 바라 본 모습.

해바라기로 가득한 투스카니를 보려면 7월경이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데

10월에 접어드는 이맘때에도 해바라기 풍년이다.

기념품 상점 가판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해바라기 마그넷과 상점 입구를 치장하고 있는 해바라기들.

아, 7월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느끼는 여행자들의 머릿속도 노란 해바라기로 가득 할 것.

 

 

옛것을 남겨두는 데에는 용기와 자존심이 필요하다.

미켈란젤로의 매끈한 다비드상이나 피렌체 두오모의 생명력을 '보존'이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칠이 벗겨진 잿빝 목조문과 녹슨 끌로 뚝뚝 쳐서 투박하게 남겨진듯한 콘크리트벽에서는

오히려 자존감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사재를 털어져 만든 소박한 생활 박물관 한켠에 놓여진 듯 고독한 에트루리아인의 문.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아닌것 같다.

그러니깐 뻬쩨르부르그행 기차의 이층칸에 힙겹게 자신의 몸을 꼬깃꼬깃 접어 눕던

그 육중한 러시아인은 절대 앉을 수 없는 식당이다.

 

 

코르토나행 기차표에 찍힌 시간을 보니 얼추 오후 3시정도에 코르토나에 도착했고

두시간정도를 걸어서 올라온 구시가지에서 숙소를 찾아 헤맸다.

오후 5시정도. 해지기전에 빨리 짐을 내려놓고 해 질 무렵에는 식당에 앉아서 한가롭게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굳이 사람들 북적이는 식당에 앉아있지 않아도 가져간 보온병에 차를 끓여 아무데나 걸터앉으면

이미 마음속에서 예약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자리 벽은 분명 새롭게 바른것 같은데 창이나 문주위를 이렇게 그대로 남겨놓는것은 건축법에 따른 그런건가.

구시가지 보존 건축법 같은게 있어서 리모델링은 허가하나 이렇게 옛 흔적은 조금씩 남겨둬야 한다거나 그런거.

이 견고한 쇠창살은 안으로 보이는 창문보다 더 오래된 놈같다.

도둑하나 없을듯 평화로운 이곳에 치안때문에 급하게 설치한 21세기의 쇠창살이라기보다는

기술력이 뛰어났고 나름 야만적이었다는 에트루리안인들이 이곳에 이민족을 가둬놓고

끌과 망치로 청동조각을 두드리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르티니가 프란시스에게 선물한 성 로렌초 상 같은 그런거.

창살과 절묘한 대구를 이루는 창 옆의 저 배기구와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작은 화분들은 또 어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오랫동안 햇살을 머금을 수 있는 지붕 아래의 방.

건물 측벽의 저런 뜬금없는 레고블럭식 창문들은 이곳 리투아니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집과 집이 마주보고 길을 형성한다기보다는 건물위에 건물이 지어져 비스듬한 경사를 형성하는 이런 지형에서

일반 사람들이 조망권때문에 다툴일은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철거지역으로 분류되어 두더지잡듯 파헤쳐져 사라져가는 달동네의 건축적 가치를 무시한 결과,

편평히 고른 부지위의 아파트 입주자들이 뒤늦게 조망권 분쟁을 겪는것은 현대 도시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걸어와서 뒤를 돌아본 걸까 저 끝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걸까.

 

2010. 9월. 코르토나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3.02.22 10:06

 

이탈리아 여행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피사(pisa)와 루카(lucca)까지는 피렌체(firenze)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피렌체를 떠나 아레쪼(arezzo)와 코르토나를 방문했지만 결국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베네치아행 기차를 탔었던듯 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고 하지만

에트루리아인이 기반을 두었던 중부 이탈리아에서 그러니깐 투스카니의 모든길은 피렌체로 통하는듯 했다.

투스카니(tuscany)는 이탈리아어 토스카나(toscana)의 영어명칭이고 피렌체도 영어명칭은 플로렌스(florence)인데

토스카나는 무슨 가죽의류명칭 느낌이 살짝들고 플로렌스는 왠지 프랑스 지명같은데 아마 프로방스때문인가?

영어로 투스카니 발음을 들으면 항상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산드라 오가 외치던 그 '터스까니'가 떠오른다.

다이앤레인이 여행 제안을 뿌리치자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투스카니라고 투스카니, 이를리 (ltaly)!'하는 그 장면.

 

 

빌니우스-밀라노 왕복티켓. 그리고 단 2주라는 시간.

그래서 로마나 시칠리아처럼 멀찌감치 떨어진 남부 이탈리아는 아예 루트에 집어 넣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로마 3주일, 나폴리 2주일 이런식으로 계획을 세워서 나중에 오는게 나아보인다.

기차를 타고 이삼십분만 달리면 같은 듯 전혀 다른 도시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탈리아.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맥락에서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도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유독 이 세나라에 미련을 못버리는게 아닐까.

왠지 여기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고 저기도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은 수십개의 부스로 가득찬 박람회같은 나라.

파리와 로마 바르셀로나에 대한 로망은 이미 한 나라에 대한 로망과 다를바없이 커버렸고

그외의 작은 소도시들을 둘러보는 재미는 파리에서 얻는 감흥과는 또 다른 종류일것이다.

 

 

페루자,몬테풀치아노,산 지미냐노,시에나,볼테라... 

베네치아에 대한 '의무감'같은게 없었더라면 피렌체 주위의 더 많은 소도시들을 둘러 볼 수 있었을것을.

처음으로 운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렌트한다면 기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투스카니의 풍경을 즐겨가며 짧게라도 이 소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을텐데.

 

 

이 풍경들은 모두 코르토나의 풍경이다.

코르토나에 가기위해 피렌체를 떠나 아레쪼행 기차에 올랐다.

아레쪼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된 소도시인데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 그다지 감동받지 못해서

아레쪼 자체에도 별다른 매력을 못느꼈다.

아레쪼에 내려서 코르토나행 기차표를 사고 출발시간까지 잠시 여행하는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한번 보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것 같다고 또 최면을 걸어보고.

 

 

아레쪼(arezzo)에서 20분정도 기차를 타면 카무치아-코르토나(camucia-cortona)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역에 내려서 바로 코르토나에 입성할 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에트루리아인과 로마인, 이탈리아의 그리스인에 대한 특성을 적은 부분이 있다.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방어에 여의치 않은 장소에 도시를 건설한 로마인의 개방성이 작용했고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그리스인은 통상에는 능숙했지만 적의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에트루리아인은 방어에 완벽한 언덕에 도시를 세우길 좋아했고 그래서 발전가능성이 미약했기때문에

그 당시의 도시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소도시로 남아있다는것이 그녀의 의견.

"열차역에 내려도 금방 시내로 적어도 구시가지로 나갈 수는 없다. 버스를 타고 능선을 따라 언덕마루까지 올라가야만

겨우 시가지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이 도시들이다." -로마인 이야기 1권-

 

 

하물며 우리는 쏜살같이 역을 뛰쳐나와서는 멋도모르고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에트루리아인이 견고하게 쌓아올려 건설한 이 도시를 두발로 걸어 오르며 그저 웃었다.

사실 버스가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있었더라도 탈 생각은 하지 않았을거다.

 

 

론니플래닛에서 친절하게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인용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기초 이탈리아어 분량보다 적은 4페이지 분량이 할애된 코르토나편에 그나마 구시가지 지도가 첨부된것이 기적이었다.

지도 아래쪽에 화살표로 카무치아- 코르토나역 4.5킬로미터라는 표시를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거리를 봤었더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4.5킬로가 쉬엄쉬엄 걷기에 먼거리는 절대 아니기때문이다.

 

 

다르질링에서 이틀동안 해발 3700미터까지 올라가는 트렉킹을 했지만

넓직한 길에 거의 경사가 지지 않은데다가 천천히 올라갔기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었다.

늦게나마 에트루리아인의 건설철학을 알게되서 지금이야 아 그랬구나 하지만 그때는 정말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왠만한 성당의 돔은 그냥 양파,

 단어의 뉘앙스를 고려해서 상대적인 차이를 묘사하자면 심지어 '다마네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곳들이 많았지만

신에 대한 경배와 믿음을 두오모의 크기따위로 판단 할 수는 없는것이고

게다가 이 높은 언덕위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오모는 피렌체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중력으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있는듯 했다.

 

 

짧은 여행에 다행히 무거운 짐도 없어서 걷기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2차선도로위 간간히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우리 둘 그리고 키크고 깡마른 사이프러스들.

앞으로 디딛게 될 길을 마주하면서 수시로 이미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여정.

그 찰나의 순간에 과거는 미래에 겹치고 끝없는 데자뷰를 경험하게 된다.

 

 

사실 위험하다.

이런상황에서는 최소한 차가 질주하는 역방향으로 걸어야 안전하다.

최대한 돌담에 바짝붙어서 최대한 서로 말을 아끼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게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돌담에 바짝 붙어' 혹은 '차 온다 조심해' 뭐 이런 소리는 계속 하게 될거다.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는데 다르질링에서 히말라야 트렉킹을 하다보면

마을이 나올 무렵에 나무들위에 형형색색의 천들이 감긴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수기에 트렉킹을 했어서 다른 여행자들을 거의 못만나는 상황에서 다다르는 그런 장소는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그 장소를 지나 조금 걷다보면 쓸쓸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롯지들이 나타났고

차갑고 허한 속을 달래줄 따뜻한 티베탄 인스턴트 누들 같은것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첩첩산중을 통과하고나면 코르토나 전통 스파게티 같은것을 먹을 수 있는걸까?

 

 

9월말의 화창한 날씨.

무덥지도 춥지도 않은 최적의 날씨였지만 한바퀴 두바퀴씩 돌고돌아 조금씩 높아지니 쌀쌀함이 느껴졌다.

코르토나의 온도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서 다르질링의 히말라야를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더불어 칸첸중가에서 느끼는 감동과 햇살나무라는 만화영화 속 그 얕은 언덕위에서 세원이가 느꼈던 포근함은

부피만 다를뿐 비슷한 무게의 감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전에 눈앞에 버티고 있던 성당이 이제 조금씩 점이 되어간다.

 

 

여행을 조금더 일찍와서 해바라기나 양귀비가 만개한 모습을 보았다면

굳이 높은 언덕위에 도시를 지으려했던 에트루리아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언덕위에서 바라본 사이프러스와 낮은 구릉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펜트하우스를 동경하는 현대인처럼 춥니 덥니해도 옥탑방을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로맨티스트처럼

언덕위의 전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거라고 혼잣말로 시오노 나나미에게 반박해본다.

 

 

성당은 이만큼이나 멀어졌다.

이제는 거대한 중력대신 손가락으로 톡 쳐서 밀어내면 저 아래 기차역까지 데굴데굴 굴러갈듯 나약에 보인다.

저 아래에서 그리고 이 언덕위에서 오밀조밀 성당으로 모여드는 마을주민들을 상상한다.

 

 

'이곳은 더이상 코르토나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코르토나에 들어섰고 이제 저 멀리 트라시메노 호수(Lago di trasimeno)가 보인다.

 

 

발코니에 서있는 저 사람도 우리가 밟고 올라온 길을 걸어 자신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풍경이 되버린 자신을 모르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성당이 보인다.

왠지 이런 성당이 열개는 더 있을것 같다.

여행을 할때마다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트루먼 쇼>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느낌.

그냥 거대한 테마파크 혹은 세트장에 들어와서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장소를 헤매는 느낌.

그런 생각으로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것이고 나는 안전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코르토나.

 

 

 

 

 

Posted by 영원한 휴가
Italy2013.02.01 07:52

 

 

나이가 들면 정말 코르토나같은 도시에서 한적하게 살고싶다.

워낙에 경사가 심해서 그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이 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내 정서에 맞는 도시를 하나 꼽으라면 베네치아도 피렌체도 아닌 코르토나를 선택할것 같다.

코르토나의 밤길을 걸으면서 까치발을 들고 훔쳐보았던 어떤 부엌.

인테리어 자료나 영화 속 주방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카포트를 보고 있으면

왠지 사용하지 말고 깨끗하게 진열해놔야하는 장식품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사용을 하면서도 가끔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중적인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익숙한 창살사이 꽃무늬 커튼이 쳐진 실제 누군가의 부엌 한켠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카포트들을 보고있으니

이들도 수많은 부엌살림중의 하나일 뿐인데하며 아차 했다.

 

 

2인용 4인용 6인용쯤 되려나?

나에게도 언젠가 모카로 끓인 커피를 누군가에게 대접할 날이 올까?

<그린카드>의 조지처럼 내가 정말 맛있는 커피를 끓여줄게 하고 망설임없이 대접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손님이

우리집에도 빨리 놀러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