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2016.04.28 05:55



(Paris_2013)



나는 일하는 도중에 나와서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뒷문의 후미진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쫓기듯 담배를 피우고 땅바닥에 멋없이 비벼끄는 사람들보다는 곧 돌아가야 할 일터를 등지고 먼곳을 응시하고 서서는 난 지금 쉬는중이요. 알았소? 라고 말하고 있는듯한 당당함이 좋다. 그들 대부분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거나 키친 클로스따위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고 있었다. 가게 안은 그로 인해 텅 비어 있다. 대신 주문을 받아줄 수 있는 동료가 있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여유로워 보였다.  배가 고프오? 나는 담배가 고프오.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우리의 욕망은 충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허기짐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거대한 운석을 그저 넋놓고 바라보는 버려진 위성의 파편처럼 느껴졌다. 몽마르뜨는 나에게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뭐랄까. 가을 설악산의 가파른 산자락에서 무수한 등산객들을 뚫고 시내보다 두배는 비싼 두부김치나 감자전따위를 파는 식당들을 지나 흔들바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몽마르뜨의 곳곳이 붉은 풍차에 감염된듯 붉었고 그곳은 과도한 흥분 상태였다. 그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일상도 어제와 같은 오늘일 그들에게 어떤 순간은 오히려 정지된듯 보였다. 




코르토나의 담배 피웠던 아저씨_http://www.ashland11.com/257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6.04.27 05:46


  

(Paris_2013)



 파리의 어디쯤이었을까.  아마도 머물던 집을 나와서 센강 주변으로 이동할때 지나치던 길목중 하나였을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머물던곳은 파리 5구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는데 세탁소와 헌책방이 있는 평범하고 한적한 동네 어귀를 돌아 얼마간 걷다보면 당혹스러울만치 뜬금없었던 매우 커다란 이슬람 사원 (Mosquee de Paris) 이 나타났다. 그 사원은 우리가 여전히 길을 잃지 않고 노트르담 사원 (Cathedrale de Notre Dame de Paris) 이 있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그렇게 서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골목의 초입부터 항상 북적북적되던 무프타르 거리 (Rue Mouffetard) 가 나왔다. 길게 늘어진 오르막길 양옆으로 간판에 그리스 국기가 그려진 아주 맛있는 크레페 가게와 작은 서점, 아이스크림 가게와 중국 반찬 가게가 있었다. (이 시장통 골목에 수없이 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었지만 내가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곳에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리의 왼편의 샛길들로 방향을 틀면 판테온 (Place du Pantheon) 과 파리 6구를 향하는 룩셈부르그 정원 (Jardin du Luxembourg) 이 나왔고 한눈팔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한다면 센강에 이르렀다. 아마 지도에 동그라미쳐진 그 목적지들중  한군데를 향하던 중 어느 거리에서 이 카페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약간의 내리 막길로 보아하니 센강이 자리잡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던것도 같다. 몇초간 멈춰서서 건너편 카페를 쳐다보았다. 길을 건너 고개를 끼워넣고 두리번거릴 수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이 거리를 지나가다 이 카페를 마주치는 사람들중 몇이 퍼시 애들론의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바그다드가 도시 이름이라는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어쩌면 중동 레스토랑 일지도 몰랐다.  제라르 드 파르디유같이 생긴 프랑스 남자가 직업 소개소를 통해 식당으로 찾아온 아랍 남자가(라고 하기에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아랍 이민자들이 넘쳐났지만) 바그다드 출신인것에 영감을 얻어 우연의 일치를 남발하며 식당이름을 그냥 이렇게 지어버린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글을 끄적이는 지금은 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파리의 바그다드 카페에서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흔적을 찾아 연결지어보려 노력하지만 이 카페를 실제로 지나치던 그 몇분간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뭔가 프랑스적인 느낌을 감지하려 골몰했던게 기억난다. 바그다드 카페에 도착하는 쟈스민은 독일인이었고  브랜다의 아들이 주구창창 연주하던 피아노곡은 드뷔시나 사티에의 것이 아닌 독일인 바흐의 평균율이었다. 항상 의기소침했던 데비가 읽던 소설은 루이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 죽다였다. 잭 팔란스가 그리던 그림들은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이었다. 아 어쩌면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마음에 들었던 데비가 그나마 가장 파리스러운 인물이었을까. 새침했고 시크했던 힘겹게 보호해온 자신의 고독을 고이고이 간직하려 분주한 카페를 도망치듯 떠나던 데비 말이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뷰_http://www.ashland11.com/138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5.08.15 19:15




파리는 한마디로 에펠탑으로 과잉된 도시이다. '에펠탑 과잉이라니. 에펠탑에 감히 과잉이라는 어감의 명사를 붙이는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라고 에펠탑이 보이는 발코니를 낀 코딱지만한 주택을 30년만기 대출을 받아 가까스로 구입한 사람은 펄쩍뛰며 대꾸할지도 모르겠다. 노트르담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서 금빛 에펠탑 두개를 1유로에 샀다면 당신은 다음 날 루브르 근처에서 에펠탑 세개를 1유로에 파는 흑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센 강변에서 1유로에 은빛과 빨강빛이 섞인 에펠탑 네개를 발견했다면 이번엔 몽마르뜨의 후미진 메트로 역사 바깥에서 이보다 더 저렴한 에펠탑은 본 적 없을것 이라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다섯개의 에펠탑 열쇠고리를 짤랑거리는 또 다른 흑인을 만날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5.08.10 21:22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온 엽서를 보고 있자니 2년전의 짧은 파리 여행이 떠올라 회상에 젖었다. 아니면 이 즈음의 온도와 습도가 파리로 떠나던때의 날씨와 오버랩되어 무의식중에 사진첩의 파리 여행 폴더를 열게 만든것일까? 정말 딱 2년전 8월의 이맘때에 우린 파리에 있었구나. 휴가철이라 주택가 깊숙한곳의 식당들과 상점들은 문을 닫은곳이 많아 아쉬웠더랬다. 반대로 파리 중심가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어쩌면 일년내내 이방인으로 북적이는 파리에서 정작 소외되는것은 파리 시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 파리지앵들은 그토록 시크한것일지도. 프랑스 대통령 조르쥬 퐁피두의 이름이 붙여진 이 귀여운 건축물.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국인 리차드 로저스가 설계한 이 곳. 내가 좋아하는 짙은 에메랄드 빛깔을 띤 길고 둔탁한 파이프로 무장한, 마치 건물의 안과 겉을 뒤집어 놓은듯한 설계의 퐁피두 센터이다.

이 정도 무게감의 건축물이 아니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설치 미술의 포스를 내뿜고 있는 퐁피두 센터인데 그 어떤 보호장치나 제재도 없이 모두가 지나다니는 인도에 마치 지하철 역을 삐집고 나온 환기구와 같은 친근한 모습으로 위치해있었다. 더 신기했던것은 건물을 지지하는 이 철골 구조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그래피티나 심술궂은 낙서,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 따위 찾아 볼 수 없었다는것. 마치 자신들의 도시를 찾아 온 이방인들에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이 도시의 상징이지 라고 말하고 있는듯. 근처를 거니는 이들의 얼굴에 가득한 새침한 표정에서 훌륭한 건축물을 갖는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일인지 부러웠고 감동스러웠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내부의 전시물이나 소장품때문만이 아니라 그 건물 외관 자체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것은 그 건축물 자체에도 그리고 그것이 속한 도시에도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파리시가 외국 건축가들에게 맡긴 최초의 프로젝트. 건물이 설계된 1970년대에 사람들의 반응은 에펠탑에 대한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큰둥했다고 한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이 자신들의 고즈넉한 도시에 나타난 알록달록 생뚱맞은 파이프 덩이를 괴물처럼 여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그리고 20여년이 지나서 리차드 로저스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면서 퐁피두 센터는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만나야하는 파리 사람들은, 혹은 내가 20년전에 파리에 살다가 피씨통신 번개팅에 나갔더라면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와 '퐁피두 센터의 첫번째와 두번째 하얀 통풍구 사이에 서있을게' 라고 약속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외진 곳 혹은 몹시 개방된 장소에 위치한 여타 파리의 명소와 달리 파리 4구의 협소한 도심에 자리 잡은 이 건축물의 일상성. 지극히 미래지향적이고 전위적인 이 건축물이 의외의 일상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모든 크고 작은 집과 건물들이 심장처럼 지니고 있는 기술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솔직하고 친근한 색상으로 밖을 향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4.01.12 14:08



파리를 떠나기 전전날. 월요일.

베르사유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으로 와인이며 도너츠며 사단 도시락까지 바리바리 싸서 집을 나섰지만 

Gare d'Austerlitz 역 RER 창구의 매우 친절한 직원이 '월요일엔 베르사유에 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단다' 라고 말해 주었다.

파리에서 고작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사유 였지만 파리 시내를 잰걸음으로 걷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그곳은 TGV 쯤은 타야 도착 할 수 있는,작은 숙녀 링이 앤드류스를 타고 뛰어 놀던 만화 속 영지처럼 아주 아득하게 느껴졌고

누군가의 염원이기도 한 베르사유라는 목적지에 마지막 날까지 다다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피로가 급습했다.

떠나는 날 당일 아침에 노트르담 성당을 오르는 대작전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모른채

크레페나 먹으면서 여유롭게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 하겠다는 계획이 이미 틀어져 버린데 실망했던 것이다. 

결국 베르사유는 다음 날 가기로 했고 역을 나와 센느 강변의 이탈리아 지구를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 최소한 반년간이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걸어서든 velib나 메트로 같은 교통 수단을 이용하든 파리 시내의 모든 지하철 역을 던젼으로 지정하고

역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나 서점 혹은 교회를 퀘스트로 해서 나만의 파리 지도를 만드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 미션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딱 그 정도의 기간만이라도 여유롭게 머물고 싶다.



여행 내내 서점이나 만화책 가게, 미니어쳐 게임샵 처럼 자잘한 피규어들이 파는 가게들이 눈에 띌때마다 들어가곤 했다.

봉준호의 팬도 아니고 설국열차를 보지도 않았고 별 흥미도 없는데 그 원작 만화책을 사야 한다는 뜬금없는 목적을 지니고 

서점에 들어설때마다 황급하게 에버노트를 열어서 발음할 수 없는 불어 만화 제목을 직원들 얼굴에 들이밀곤 했던 추억.

그리고 베르사유를 가지 못한 그날 판테온 Pantheon 과 룩셈부르크 정원 Jardin du Luxembourg 중간 쯤의 

만화책 가게에서 발견한 데어데블.

마블의 모든 슈퍼 히어로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데어데블은 내가 마블의 영웅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이다.

특히 비가 내릴때 그의 눈에 비치는 불완전하지만 완벽한 엘렉트라의 모습은 

기계 오작동으로 형체를 잃어가지만 쇠락해가는 알 파치노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버린 시몬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애틋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데어 데블의 얼굴에 멋있게 탱고를 추던 <여인의 향기>속의 맹인 장교 프랭크가 오버랩 되곤한다. 

어찌보면 참으로 불완전하고 빈틈 많은 영웅.

시각을 잃어서 다른 모든 감각이 발달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발달된 청각은 물을 채운 관속에서 귀를 담그고 자야 할 만큼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된다.

사랑하는 엘렉트라도 결국 지키지 못하는 영웅.

매번 곤경에 빠진 연인을 구해내고는 새로운 옷으로 재빠르게 갈아입고 나타나는 거짓말 같은 영웅이 아닌

아주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자신이 구하려 했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마는.

그래서 엘렉트라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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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