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2015.09.12 05:21



진통이 시작되면 출산 후 남편과 함께 먹을 도시락을 정성스레 싸야지 항상 생각했었다. 

아니 꿈꿨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얼마나 행복할까. 그 밥은 얼마나 맛있을까. 

모든게 순조롭게 끝나고 셋이서 함께 먹는 그 밥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며.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냉장고에 있던 아스파라거스를 손질해서 리조토를 끓였다.

하지만 따끈한 리조토는 산후조리용으로 냉동실로 직행했고 우선은 계획했던 메뉴중 하나인 소세지 야채 볶음을 만들기 시작.

하지만 진통은 둘째치고 잠을 자지 못해 너무 졸렸다. 

그러다가 오후 4시쯤 병원에 가게 됐는데 결국은 그때까지 쏘야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밥솥에 밥도 있었고 김도 있었고 계란 후라이만 얹어서 가져갔어도 됐을텐데 돌이켜보니 역시 그럴 정신이 없었던걸까. 

아니면 점심을 먹고 배가 불렀었나.

집을 나오면서 허겁지겁 집어온 저 종이컵 위의 네덜란드 과자가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맛있는 과자였어서.

결과는 이러했다. 오후8 시쯤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에선 아무 음식도 주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음식을 주더라도 첫끼는 한국인들처럼 먹자는 생각으로 도시락 싸갈 생각을 했던건데

 너무 늦은 밤이어서인지 아예 식사가 제공되지 않았다.

방금 전 함께 겪은 출산을 회상하며 수다를 떠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우린 음식을 사러갈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 배고픔을 느꼈을땐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병원 복도의 각종 자판기를 뒤져 초콜릿이 든 크루아상과 초코바를 간신히 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금기 음식이네.  아이를 낳는동안 물을 2리터나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긴 갈증후의 한 모금의 스프라이트는 정말 맛있었고 달짝찌근한 자판기 홍차 한모금에 크루아상은 녹아들어갔다.

삼풍 백화점에서 십몇칠만에 구조된 최명석군이 그랬지. 콜라가 마시고 싶어요.라고. 하핫.

아이의 생일이 되면 미역국이 아닌 스프라이트에 초코바 한사발을 대접해야할까보다.



다음날 아침부터 병실로 음식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오트밀과 간단한 빵류.

예전에 이웃집 할머니 병문안을 다니며 병원 음식을 목격했던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감자와 밀가루가 주식이고 육류섭취가 많은 리투아니아에서 환자들에게 이런 종류의 음식들이 제공되는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것인지도 모른다.

우유와 함께 끓여 약간의 버터를 첨가한 부드러운 오트밀과 빵 한조각에 소시지와 버터를 얹어왔다. 


병원 직원들이 아주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따라 주던 차. 


다양한 반찬이 곁들여진 울긋불긋한 한국의 상차림을 생각하면 몹시 초라하고 부실해보이는 식단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을 생각하면 

내가 평소에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도든다.

점심으로는 이런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내가 몹시 좋아하는 세몰리나semolina. 리투아니아어로는 manų košė

집에서도 곧 잘 끓여 먹는데 보통 우유에 걸쭉하게 끓여서 계피가루를 섞은 설탕을 뿌려서 먹는다. 

버터를 얹은 빵을 또 가져다 주었다. 


이것도 리투아니아에서 먹는 주요 곡물 중 하나인데 grikiai (buckwheat) ,끓인 메밀이다.

역시 버터를 넣어서 고소했다. 귀엽게도 웨하스 한 조각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버터가 저렇게 잘 발라지려면 이미 상온에 오래 놔뒀던가 아님 진짜 버터가 아닌 

마가린과 버터의 중간쯤되는 약간 저렴한 버터였을거다.

이것은 식감이 보리였는데 그러고보니 리투아니아에서 먹는 곡물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쌀을 우유에 달짝찌근하게 끓여주기도 했다.

이틀째부터는 좀 더 딱딱하고 양념이 들어간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빵과 절인 비트. 매쉬 포테이토에 치킨 스튜.

딜이 뿌려진 야채 스프.

가장 맛있었던것은 아마 크루통이 얹어진 버섯 스프. 남편이 피자집에서 사온 것. 

씹어 먹는 음식보다 가볍게 삼킬 수 있는 음식이 확실히 더 맛있었고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가 리투아니아에서 아이를 낳고 국립 병원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그리고 이런 식단에 아량을 베풀 수 없다면 반드시 자기 음식을 챙겨가기를.

하지만 따지고보면 전부 다이어트식에 건강식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5.09.06 23:13



아이를 갖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임신 과정이나 아이 상태에 관한것이라기 보단 의외로 산후조리에 관련된것이었다.

아이를 낳으러 한국에 들어올것인지 리투아니아에 한국과 같은 산후조리원 문화가 있는지 산후조리는 누가 어떻게 해줄것인지에 관한것들이었는데.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리투아니아에는 특별한 산후조리 문화는 없다. 대다수가 이용하는 한국의 산후조리원도 이곳에선 일반적이지 않다.

요양원같은 시설은 있을 수 있지만 오로지 산후조리만을 위한 산모를 위한 전문적인 기관은 없다고 보면 된다.

산모와 신생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병원에선 보통 출산 후 3일 후 퇴원을 시킨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는 한달간의 출산휴가가 주어지고 아마도 그 기간동안 집에서 자연스럽게 산후조리가 이루어지지 않나 싶다.

주변의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서도 맞바람을 조심하라던가 무거운것을 들지말라는 조언외에는 별다른 주의사항을 듣지 못했다.



임신기간동안에도 그렇고 출산후에도 뭘 먹어야 할지는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태아에게 좋고 안좋고, 먹어도 되는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대한 고민은 둘째치고 최소한 끼니를 거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것이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면 내 냉장고가 아닌 엄마의 냉장고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던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항상 밥솥에 밥은 가득한데 보장된 반찬은 계란 후라이뿐. 가끔 굽는 김과 실리콘 냄비에 데워서 간장 뿌려먹는 두부. 

찢은 양상치에 토마토 한개 몽당몽당 썰어 넣어서 기름을 두른것들이 주메뉴였던듯.

외국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살다보면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된장국을 밥없이 그냥 식전 수프 먹듯 떠먹게 되고 카레를 빵에 발라 먹기도 하며 남은 치킨 육수에 스파게티와 감자를 넣어 칼국수처럼 먹는다던가

아주 잘 익어서 거의 버터처럼 되어버린 아보카도를 밥에 짓이겨 먹기도 하며

따신 밥에 간장게장을 먹는게 아니라 각종 차가운 통조림 용품들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말이다.



산후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준비라면 내가 먹고 싶을지 모를 음식들과 다들 먹어야 한다고 이구동성 부르짖는 미역국을 끓여 냉동시키는것.

지프락 봉지에 생각보다 음식이 많이 들어가서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냉동실을 채울수 있었다. 냉장고가 초소형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준비는 아주 유용했던것 같다. 출산에 임박해서 냉동실의 얼린 음식들을 보며 마음이 편해지곤 했으니.

타지에서 남편이외의 주변인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얼리기를 추천한다.

우선은 파에야용 후라이팬을 샀기도 했으니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섞은 파에야용 소프리토를 한 솥 끓였다. 

물을 부으면 수프로 먹을 수 있고 만두나 라비올리에 얹으면 멋진 소스가 되는 여러모로 아주 유용한 놈이다.



이것 역시 해동해서 크림을 넣으면 치킨 크림 수프가 될 것이고 고형카레를 넣으면 카레가 될 기특한 놈이다.

만두도 한 100개정도 빚었고 떨이로 파는 딸기 2킬로를 설탕과 섞어 얼려놓기도 했다.

 음식을 해서 얼린적은 만두를 빚거나 스파게티용 소스를 만들때 뿐이었는데 여러모로 자주 이용해야겠다.



스파게티 소스로 쓰거나 역시 물을 부어서 바로 수프를 끓일 수 있는 라구소스를 평소처럼 한 솥 끓여 얼렸다.

지금보고 있으니 고추장 불고기의 느낌이 나는데 고추장 안넣은 간장 불고기 같은것도 해서 얼리면 괜찮을것 같다.



이것은 출산당일에 만든 아스파라거스 리조토인데, 

비싼 아스파라거스가 3일후 병원에서 돌아왔을때 썩어있을걸 염려해서 진통의 시작과 함께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계속 육수를 보충해가면서 밥을 익히는 리조토, 진통이 오고 멈추는 시간이 물을 보충하고 밥을 휘젓는 타임과 교묘히 맞아들어가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봉지는 이미 먹고 한봉지가 남았는데 맛있긴 했지만 밥요리는 사실 그다지 얼릴게 못되는듯.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산후조리용 음식이라 생각해 미역국도 세 번 정도 큰 냄비에 끓였다.

지프락이 워낙에 작아보여 출산 이주전에 매일매일 끓여서 얼려놓자 생각했지만 

국그릇에 한끼양을 담아서 계산해보니 이렇게 꽉채워 얼리면 세끼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 될듯했다.

딴에는 냉동홍합도 넣고 소고기도 넣었지만 솔직히 별로 미역국맛을 느낄 수 없었다.  

 국간장이 없어서 인가. 맛이 날때까지 간장을 넣었다간 까만국이 될것 같고 소금도 별로 넣고 싶지 않아 그냥 먹기로 했다.

국자로 국을 퍼담으면서 남편에게 '부인이 사골국을 끓여 냉동실에 얼리기 시작하면 남편은 긴장해야한다'는 한국의 우스개소리를 알려주었다.

그럼 부인이 미역국을 끓여 얼리기 시작하면 출산에 임박했다는 소리인가.크크크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