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5.04.02 02:43




<우리 선희>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영화의 배경이 수원이란다. 

매번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도 만들었는지도 모른채 마치 비디오 가게에 열편씩 나열된 신작 비디오를 발견할때처럼

습관처럼 보아오던 그의 영화인데 영화의 배경 덕택에 처음으로 기대란걸 하고 기다리게 됐다.  

 수원에 세번을 갔는데 간 목적은 화성이 전부였다. 수원의 시내버스까지 갈아타야 했었는데 그 울렁이는 기분도 추억이 됐다.

고궁 촬영을 즐기는 감독이니 수원에 가서 수원 화성을 지나치진 않겠지? 

게다가 새로운 영화에 <우리 선희>에서 인상 깊었던 정재영이 나온다니 더더욱 기다린다.

정재영한텐 미안하지만 이 배우는 천만배우 이런거 안되고 그냥 뭔가 이런 귀여운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 자신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타지 못해 기분 나빠 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얘는 이번에도 못 탔네', '다음번엔 정말 주연상을 탈 만한 배역을 꿰어찼군' 이라고 말하고 있는 동안

과연 그 본인도 그런 아쉬움과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칼을 갈고 있을까. 왠지 전혀 그럴것 같지 않다.

정재영 같은 배우도 조연에서 주연으로 자리매김한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을 보며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까? 그럴것 같지 않다.

그가 언젠가 남우 주연상을 타고 최고의 흥행배우가 되면 그도 토크쇼에 나와 

유명한데 별다른 히트작 없었던 배우 생활에 대해 자기연민의 어조로 허심탄회 털어 놓을까. 그러지 않길 빈다. 

힘들었던 시간과 서러웠던 순간을 말하며 폭풍 눈물을 흘리고 간신히 얻은 유명세에 구설수에 올라 침체기를 겪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구설수도 웃음의 재료로 써먹는 방송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그런 스타의 삶보다는

잘되는 영화 멋있는 배역만 고르는 톱스타 보다는. 일은 취미처럼 취미는 일처럼 하는 배우의 삶이 멋있는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제프 브리지스, 잭 블랙 같은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난 <내 깡패같은 애인>의 정유미가 가장 좋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연애의 발견>의 정유미를 가장 기억할거다.

엉겁결에 로코퀸이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도 있는 배우가 되어버린 정유미이지만 

드라마에서 호응을 얻은 캐릭터도 어쩌면 홍상수의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말랑말랑한 온라인 버전에 가까워보인다.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다보면 반사적으로 이전 영화들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을 끌여들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옥희의 영화>나 <첩첩산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지만

전작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떠올려보면 영화의 제목이 <누군의 여자도 아닌 선희>였었어도 어울렸겠다 싶다.

대명사라는 품사 자체가 매우 상대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를 함유한다고 생각해볼때

우리가 늘상 '우리'라는 테두리에 가두고 소유하고 의미를 쏟아 붓는 대상들이 사실은

누구도 자기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매우 포괄적이고도 불분명한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선희를 통해 알게되다니.

그리고 선희라는 그 대상 자체도 누구의 소유이려고도 하지 않는 뜨뜨미지근한 자세를 취했을때의 화학작용이란.

그것은 플라스크속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격렬한 화학반응이라기 보다는 

그냥 서서히 산화하여 녹슬어가다가 결국 부식되어가는 습관적이고도 뻔한 인간관계와 비슷해보인다. 

대문짝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치킨집 스티커는 그렇고 그런 뻔함이지만 그 뻔함도 로망이 되고 기다림이 된다.

불분명한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서 한방의 동사를 끄집어 내지 못해 오락가락하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요? 음악을 틀을 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술집 주인 예지원은 또 어떤가.

웃음을 머금은채 손님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가장 관대한 관찰자이지만 

그도 언젠가는 그 미적지근한 화학작용의 주체였단걸 누군가는 눈치챘을거다.  

예지원의 얼굴에 누구의 친구도 아닌 <북촌방향>의 술집 여주인 김보경이 오버랩되는것이 억지는 아닐터.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타인으로도 남고 싶지 않은 어설픈 관계.

한때 일방적인 구애도 있었고 격렬이 사랑했으며 처참하게 싸워 남이 된 순간들도 있었을지 모를 관계이지만

이들 영화에서는 늘상 그런 뜨겁고 인간적인 인간관계 대신

데워먹을까 볶아 먹을까 아니면 라면 국물에 말아먹을까 고민하게 되는 식어버린 찬밥 같은 인간관계만 즐비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 하나 없고 시작하지 못해 애 태우는 사람도 없이 리사이클되는 감정들.

어쩌면 쉽게 변할것 같지 않은 감독의 영화 스타일.

이십년동안 보아온 그의 영화들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게 될 이십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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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5.03.22 21:10




<자유의 언덕>


올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영화제 Kino Pavasaris 에서는 홍상수의 2014년작 <자유의 언덕>도 상영이 된다.

빌니우스의 관객들이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들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들이 있을까도 싶고 

그 연결 장치조차 우연처럼 가장 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알고 볼때에야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작품내에서가 아닌 오히려 작품외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든다.

그는 이미 어떤 등장인물이 참가해도 무리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가진채로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공간에 불러다 놓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버무려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사건의 나열은 뒤죽박죽이고 간신히 정립해놓은 인과관계도 익숙한 공간의 뜬금없는 등장으로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린다.

그의 습관들은 영화속에 녹아있고 그가 영화를 정말 습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우리는 습관처럼 그의 영화를 본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기본 뼈대는 일본인 모리가 권을 찾아오는 여행과 기다림의 장치인데

그 기다림은 이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생겨났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있어오던 영화의 외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전 작품인 <우리 선희>에서 이선균과 김상중이 그리고 정유미 조차 늘상 기다리던 정재영의 집 건너편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있는 모리를 보고 있자면 현해탄을 건너온 그가 기다림에 임하는 자세 역시 그저 단순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것이 없는 새로운 영화에서 감독은 또 무얼 얘기하려는걸까. 



이 영화 포스터는 뭔가 너무 가볍고 화사하고 동적이어서 기분이 좋다.

여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강원도의 힘>에서처럼 찐득거리고 질척거리는 불쾌지수 만빵의 여름이 아니라 

곧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의 적당히 뽀송뽀송한 습도의 여름이랄까.

흑백으로 찍어진 그의 몇몇 겨울 영화가 실제보다 훨씬 추워보여서 실내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따스한것처럼

인물들의 가벼운 옷차림과 화사한 표정처럼 이 영화는 점점 높아져가는 늦여름의 하늘색을 닮았다. 

빚더미에 앉은 남자나 집나와서 유부남과 여관에 머무르는 여학생이나 답장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본인이나

그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에 의식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시덥지 않은 자잘한 현상들을 보는것에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항상 때가 지났다고 밥을 주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모리(카세 료)는 왜 저 사람은 이 시간에 밥을 먹느냐고 묻는다.

마루에서 밥 먹는 사람은 사업하다 큰 빚을 진 조카이지 손님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하는 주인. 

평소 모리와 살갑게 영어로 대화하고 아부떨던 조카는 무슨 그런 얘기까지 하냐며 불만섞인 한국말을 내뱉는다.

공기밥 하나만 얹으면 오손도손 같이 먹을 수 있지만 그런 살갑고 인공적인 전개를 감독이 보여주지 않을것을 우리는 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에 의거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상적인 반응들.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면 인물들은 주춤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까칠해진다.

까칠하다거나 찌질하다는 단어는 특정 성격을 묘사한다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가까운 요소이다.

사실 자유의 언덕이라는 제목 자체도 모리가 일본어 간판인 동명의 카페를 찾는다는 설정에 의거한것일테지

거기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으려드는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영화에서 살짝 보여지는 자유의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통용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편견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말과 타인의 의견에서의 해방같다.

현재 과거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낸 틀일뿐 실체가 아니라는 모리의 책속의 구절도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계단에서 흩어진 편지로 뒤죽박죽된 시간처럼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술적인 장치 정도를 의미할뿐이다.



재밌었던 장면 중의 하나인데. 

<우리 선희>에서 교수님 해외 출장갔다고 뻥치던 이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서> 이자벨 위뻬르가 출연했을때부터 언젠간 홍상수가 외국 남자 배우도 섭외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표정을 지닌 배우 정도면 무슨 영화과 초빙 교수로라 나오면 엉뚱하고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재밌는것은 일본인에게 필요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보이는 문소리를 쳐다보는 이민우의 표정이다.

언젠가 문소리도 저런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자벨 위뻬를 여신대하듯 대하는 권해효를 바라보던 임신 막달의 문소리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보다 우리가 시급히 이해해야 할것은 그것에 어떠한 자세로 대처할것인가의 문제같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적 잣대를 통해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왜 저런 고민을 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편견속에서 

타인의 고민과 삶을 한창 가볍게 여기는 오류를 우리는 자주 범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도 누군가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누군가는 잔혹 호러물을 그리고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연인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남자의 골치아픔의 무게를 우리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의 무게는 그가 들고 다니는 딱 저 작은 책만큼 가벼워 보인다.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행동.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 따위도 알고보면 우리 스스로의 이상이 빚어낸 허상일 뿐.

흘러가는 한 마디의 말, 미세한 표정에서도 부자유스러운 우리가 과연 더 큰 자유를 열망한다는것은 허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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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4.03.21 06:38



<밤과 낮>


<밤과 낮>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까지 이번달에 우연찮게 홍상수의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다.

수년간 인터넷 사이트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그의 영화들을 운좋게 놓치지 않았던것인데 

어쩌다보니 최신작인 <우리 선희>를 빼놓고 그의 모든 영화를 본 셈이 되었다.

매번 거기서 거기인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이 그 캐릭터들 사이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는 느낌을 준다는것은 퍽이나 웃기다.

예를 들어 잠들어 있는 유정(박은혜)의 발가락을 빨다 핀잔을 듣는 김성남(김영호)의 모습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이 이응경의 발가락을 빠는 장면이 오버랩되는것처럼

 어떤 지점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느냐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 따위는 없지만 혹시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머릿속에 따끈하게 남은 전작의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현재 감상중인 영화의 캐릭터를 대입시켜 몰입하는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들처럼 한때는 첫 경험을 갈구했고 철없는 연애를 경험했으며 

어쩌다 결혼을 해서 이제는 연애가 아예 불법이 되어버린 관객 자신의 넋두리 같은것인지도 모른다.

대마초를 피우고 해외 도피를 감행한 화가 김성남은 홍상수의 캐릭터 중에서 나름 가장 극적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최초로 한국을 떠나 낭만의 도시 파리에 당도한 주인공에게 헌정된듯한

'김성남의 감정의 기록' 이라는 부제도 그럴듯하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지구 반바퀴를 돌아 도착한 파리의 낮과 서울의 밤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결국 딱 삼청동에서 북촌, 경주에서 통영, 신안에서 모항까지 만큼만 이동한 느낌이 든다.

김성남의 독백을 들으면서 이 영화가 홍상수 식 로드 무비의 절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보았다.

영화속에서 김성남이 파리에 도착한 날짜가 8월 8월이다.

작년에 파리에 도착했던 날짜가 하루 빠른 8월 7일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신선하고 습도도 하나 없는' 파리의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영화 초반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날짜를 집어 넣는 장면이 잦다가 그 빈도는 점차 줄어들고

김성남 역시 신변의 문제를 잊고 점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밤새 국제전화를 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듯 괴로움을 토로하다 나중에는 아내에게 신음 소리를 요구한다던가 하는 장면 등등. 

 파리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파리 여행중에 인상적이었던 모습들을  감독도 포착해낸것같아 신기했다.

그렇게 포착된 특징들은 약간 엉뚱해보이면서도 재치있게 영화 중간중간에 배치되었다.

파리 시내 골목길 한켠에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이 흐른다. 분수대와 식수대도 유난히 많았던 파리. 

영화 <카페 드 플로르>와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물이 흐르는 거리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파리가 배경인 모든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일지도.

도시 환경 정화 차원에서 일까?

어딘가에서 흘려 나와 계속 길을 따라 흐르다가 다시 어딘가로 흘러 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것인가?

영화속에서는 파리의 청소부가 그 물로 똥을 쓸어내고 김성남이 종이배를 접어 그 물에 띄운다.

그 똥을 거기 일부러 가져다 놓은것일 수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것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이미 홍상수에 몹시 익숙해져서 그 단순한 장면도 의도적인 장치였겠거니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는것.

그런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를 장치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기분으로 그냥 지나가는 행인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해변의 여인>에서 옆으로 조깅하며 지나가던 여자들과 나중에 술을 마시게되는 주인공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

유럽 어떤 도시보다 거지가 많았던 파리.파리에는 이불과 박스를 들고 다니며 주택가에서 진지하게 거주하는 거지들이 많았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임대료를 적게 낸다고 참 좋은 나라라고 치켜 세우는 유학생이 있는 한편

다른 가난한 유학생에게 샌드위치를 얻어먹는 파리의 집없는 거지를 대비시키는 센스 같은것.

다른 여자들로 부터는 돈 안쓰고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유정이지만 거지와 대화를 나누고  샌드위치를 사다 준다.

옆에서는 여자들이 은근슬쩍 여자 욕을 하지만 그런 장면에 감동받는 남자를 대비 시킨다. 

여자가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남자.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항상 대조적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굴을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가 굴은 쳐다보기도 싫어한다고 기억하는것처럼

자신이 만든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몹시 이중적인 우리의 습성. 

둥지에서 떨어진 새는 우연히 성남의 어깨에 부딪혀 살아남아 성남은 마치 자신이 새를 구한것처럼 느끼지만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혀 도자기가 깨지자 우연히 그렇게 깨질 수 없다고 온갖 욕을 해대며 몰아붙이는 습성 같은것.

한 두세번 다시 보면 모르고 놓친 장면이 아주 많을 것 같아 꼭 다시 보고 싶은 재밌는 영화였다.

2주라는 시간은 몇몇 파리의 명소들을 서두르지 않고 방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내 관심 위주로 짜여진 여행이 아니어서 가보지 못한곳도 참 많았다.

오르세 미술관도 그렇고 빌라 사보이 같은 르 코르뷔지에 관련 건축물들이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유정의 말처럼  오르세 미술관의 옥상 레스토랑의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오르세 미술관에 가봐야겠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앞에 서면 파랑 봉다리에 성경책을 넣어서 모텔을 빠져나오는 성남의 모습이 생각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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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2.01 03:39

 

 

<북촌방향>

 

내가 언젠가 거닐던 익숙한 풍경들은 흑백의 필터를 통해 시간의 정체성을 잃고 나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추억처럼 모든 이들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영화 <오! 수정>이 그랬던것처럼 <북촌방향>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해 나의 추억을 더듬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은행이 노랗게 물들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곳 정독도서관.

 600원이면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도서관 식당의 가락국수.

전부 읽지도 못할거면서 꾸역꾸역 대출해서 결국은 그대로 반납하곤 하던 소설들.

도서관 무료 상영회에서 동생과 배꼽잡고 보았던 <스쿨 오브 락>.

그리고 그 웃음을 뒤로하고 문제집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했던 우울한 시간들. 

내 기억은 내가 보낸 시간의 일부이고 그 일부의 기억을 우리는 평생 추억하며 살아간다.

<북촌방향>을 따라가는 카메라속에 나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곳에는 왠지 내가 나만의 공간처럼 여겨도 되겠다 싶었던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그 공간이 아무리 상업화되고 고급화되어도 내 추억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10년후에도 20년후에도 난 이 흑백장면속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분홍색 열람증따위를 떠올리겠지.

가끔은 '오늘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라는 절망적인 푯말도 함께.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꿈과 생각으로 갈팡질팡했다.

그 숱한 오해와 엇갈림은  분명 우리가 탓 할 수 있는 '과오'같은것은 아니지만

후회도 인간이 가진 미덕이라면 우리는 그 미덕으로 그나마 덜 잊고 더 추억하는것이 아닐까.

그 추억의 깊이를 가늠해보는데에 흑백화면만큼 절묘한 장치도 없는것 같다.

차갑게 절제된 영상속에선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성준(유준상)이 고갈비집에서 만난 처음보는 학생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장면에선 

'한번 웃어봐요'라는 재훈(정보석)의 요구에 '제가 왜요?'라며 황당해하던 수정(이은주)의 표정이 생각나 잠시 쓸쓸해졌고

경진(김보경)의 방바닥에 앉아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성준(유준상)을 보니

언젠가 수정(이은주)이 영수 (문성근)와 여관에 간 그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돌고 돈다. 지나고나면 그저 한페이지의 일기로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쌓여가는것이다.

 

 

'짝'이란 프로그램을 제작년에 한국갔을때 처음 보았다.

그 전까지 포털에서 여자 2호, 남자 3호하는것을 두고 전혀 이해못하다가 프로그램을 보고났을때 아 이거였구나 했다.

그 이후로 매주는 아니어도 간혹 찾아서 보고있는데 요새 몇편의 홍상수 영화를 다시 보고는 생각했다.

이 둘은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인류가 사랑을 멈추지 않는 한 감정의 엇갈림과 집착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멸의 과제로 남을게 분명하지만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이 둘이 표현해내는 것들은 기가막힐 정도로 일치했다.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공통된 명령어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들의 짝이 된 후의 달콤 쌉싸름한 여정이나 만사형통의 결말따위는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녀의 관계에서 우리가 도출하고자 하는 결론은 순정과 일편단심, 찐득한 여관방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과 같은 형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치열한 머릿싸움과  결론없는 드라마 속의 궁상맞고 피튀기는 과정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뿐이다.

 

호감을 표시하고 그 호의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움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우쭐해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표현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양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고 수도없이 좌절하고 안도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느끼는 슬픔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느끼는 슬픔은 같은 종류일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도 나를 좋아할 때의 기쁨,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나를 누군가 좋아해 줄때에 느끼는 기쁨은?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 티비출연까지 감행해야했던 출연진들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방법과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홍상수의 첫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온 김의성이 주인공의 첫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나온다.

술마시고 꼬장부리는 캐릭터는 여기서도 똑같구나.

이번 홍상수의 신작에도 출연하는것 같던데 아마도 비슷한 캐릭터일까?

하지만 김의성의 꼬장은 항상 그럴듯하다.

'별거를 했으면 여자문제때문이겠지.사귀는 사람 없어?'

성준의 의미심장한 거리감 두기에 '넌 날 꼭 '중원이'형으로 부르더라'라며 날카로운 직격탄을 날린다.

갑자기 나타난 어느 누구의 짝도 아닌, 그냥 택시에 빨리 태워서 보내야 할것 같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인 김의성은

인간관계에 대한 몇가지 날 선 분석을 내놓고 사라진다. 

 

 

서울에 올라와 술에 취해 경진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내내 경진의 문자를 받는 성준.

단순한 영화 팬에서부터 제자에 술집 주인에 아는 형의 동료까지

이토록 많은 여자들에 경계의 뉘앙스를 주지않으려 애쓰는 캐릭터도 없었던것 같다.

문자를 읽는 성준의 태도는 시크하기 짝이 없다. 그래 놓고서 일기를 꼭 쓰라느니 정신 바짝차리라니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에서 쇼팽의 녹턴을 치는 주도면밀함까지.  

<생활의 발견>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라는 명숙의 전화를 받는 경수의 태도는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상대가 듣고자 하는 말만 골라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런 얘기를 믿고 감동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솔직한 얘기에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호감이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에나 나오는 이야기.

모두가 운명적인 화학반응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수학과 기술에 가까운 사랑이 더 흔한법이다.

 

 

'얘기를 해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한번 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째도 이렇게 되고보니 보통 인연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우리를 엮어주는것은 변함없이 우연과 의외의 이론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에 있어서 수만가지의 서로 상관없는 우연들이 작용하고

사람들은 몇가지 우연들을 편리하게 강조해서 사건화하고 극대화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화시킨다. 이미 의도했고 그토록 원했던 결론이니깐.

하지만 그 우연을 가능케했던 그 이전의 우연과 그 전의 전의 우연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판단과 결론은 완전할 수 없다. 거기에서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해변의 여인>의 중래의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상이며 <짝>의 등장인물들이 빠져드는 운명론의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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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1.21 07:09

 

 

<다른 나라에서>

 

이번에는 '모항 해수욕장'이 배경이다.

영화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팬션간판을 보여주는데 이런 팬션도 협찬받은게 아닐까 그냥 혼자 생각중.

배우들이 하도 홍상수 영화는 노개런티라고 떠들고 다닌 영향도 있고 

설상가상 김상경이 무릎팍도사에서 소주도 자비로 샀다는 얘기를 한마당에

그래도 절에서 기와에 소원 적는거는 돈내고 했겠지 또 혼자 생각해본다.

그의 영화중에서는 그래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곳이 배경이구나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주도가 배경이었으니 그건 아니고 

아무리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외국배우가 출연을 해서인지 정서적으로 한국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나보다.

한마디로 모항 해수욕장에서 올 로케로 촬영된 <다른 나라에서>이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샤를롯 갱스부르를 섭외했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오롯이 '세명의 안느'를 연기하는 한 여배우를 위한 이런 영화.

물론 그녀의 외모는 너무 비현실적이니깐 별로 어울리지않고  줄리엣 비노쉬나 줄리델피 같은 배우도 있지만

아들 둘이 있는 엄마 역도 겸했어야하니 연령상 안맞고

여러모로 외모가 부각되었던 이런 배우들은 별로 적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자벨 위뻬르는 별로 외국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외국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방한한 외국배우가 연예프로그램에서 상황극하는 느낌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홍상수가 조만간 기욤까네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남자배우를 섭외해서 그에게 영화학과 초빙교수역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트릴로지나 <옥희의 영화>2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상상한다.

 

홍상수가 약관의 나이에 만든 첫번째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선댄스에 출품했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다른 영화들처럼 '구경남'식 구구절절함없이 그냥 호스텔 밖으로 나와서 맞이하던 그들의 아침처럼 청신했다. 

속을 태울일도 찔릴일도 낯뜨거울일도 없이 그냥 솔직하고 가볍고 유쾌하고 귀엽다.

한번쯤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 그들에게 왠지 한번쯤은 구원의 여지를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하지 말아야 하는것에 대한 주관식 정답에 우리 모두가 익숙해져있을뿐

소주병을 바닷가에 버리는것도 외국여자와 뽀뽀하고 싶은것도 그것이 한국인이어서 그러는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경주에서도 인간의 욕망이란 장소를 초월해서 돌고 돌뿐이지.

 

 

돈문제로 엄마와 함께 모항에 와있는 정유미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짧은 시나리오를 쓰기로 한다.

팬션직원인 그녀에게 안느(이자벨 위뻬르)는 세개의 에피소드에서 매번 구경갈만 한 장소를 묻고는 등대를 찾아간다.

등대는 모항해수욕장의 명소이자 안느의 목적이며 그것없이는 소통 불가능한 안느의 언어이기도 하다.

어디 갈만한곳 있어요? 등대가 어디있어요?라는 그녀의 물음으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것이다.

심지어 어쩔때 안느는 등대가 어디있는지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것 같다.

안전요원은 등대를 묻는 안느에게 램프를 보여주며 이것이 등대라고 농담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안느와 안전요원이 텐트에서 잠을 잘때 램프가 켜져있는 장면에서 배꼽을 잡았다.

마치 안느가 그렇게 찾아헤매던 진짜 등대를 찾아낸것처럼

'이런 장면을 기다리신 거죠?'라듯 감독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세개의 독립된 스토리는 반복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때로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는 안전요원이 수영한것을 본적이 없지만

술을 마실때 안전요원이 등장하고 사라지자 윤여정에게 수영을 잘하냐고 묻는다.

안전요원을 보고 수영을 생각해낸것은 자연스러운것이지만 마치 안전요원을 이미 알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안느가 빌리는 우산도 그렇다. 우산을 빌리고 숨기고 잃어버리지만

마지막 이야기속에서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숨겨둔 장소에서 마치 우연히 발견한듯 마냥 남의 우산을 꺼내 쓴다.

보는동안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어서 즐겁다.

권해효도 문성근도 구경남의 연장선상에 있는것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목소리 출연만했던 문소리가 실제 구경남의 아이를 임신한채 껄떡되는 남편을 감시하는 느낌.

항상 누군가의 제자와 동창으로 나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정유미는 마치 모두를 심판하듯 작가가 되어 나왔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낯선 바닷가 도시에서 안느는 어쨋든 자신의 여행을 만끽한다.

들판의 염소를 보고 큰 소리로 염소 목소리를 흉내낸다.

무료함을 이겨보려는 그녀의 노력은 누가봐도 사랑스럽다.

 여행가고 싶다.

낯선 장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지도를 펼쳐들고 어떤 장소를 찾아가고 싶다.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실제로 안느처럼 호스텔 직원에게 갈만한곳을 묻게 된다.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니라 그냥 무심코 들른 그런 작은 도시들이라면 말이다.

지나고보면 뚜렷한 목적없이 들러서 내가 여기 왜 있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던 도시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비가 내려서 호스텔에서 우산을 빌려야 할 때도 진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느에게 다음 여행에서는 접으면 손바닥만해지는 비닐우비를 지닐것을 권한다. ㅋㅋ.

 

 

임신한 아내는 술을 마실 수 없고 외국 여자는 자기보다 주량이 더 세다.

안느와 술마시는 수(문성근)는 어떤가.

문성근이 홍상수 영화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어도 이정도로 얼굴이 뻘개져서 취한것을 본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꿈속에서만 존재하는것처럼 보이고 키스하다가 안느에게 뺨까지 맞는다.

(이 장면은 심지어 문성근에 항상 치이던 정유미의 복수같다.)

몽블랑 아니면 아무것도 못쓴다는 소유욕 만빵의 스님은 또 왠일이냐.

다행히 안느의 무리한 요구에 순순히 만년필을 내놓았으니 스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하자. 

안느가 권해효의 이름을 종수대신 '종'이란고 부른것은

아마 외국 이름을 외우기 쉽지 않았을 여배우의 실수를 감독이 살린게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그러다가 문성근의 이름은 일부러 종수도 종도 아닌 '수'로 부르게 한거고

결국은 다 같은 사람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we have a thousand monkeys in our brain. they chattering all the time'

'우리 마음속이 시끄러운것은 머릿속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떠들어대고 있기때문'

바람피운 남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안느를 절로 데려가는 민속학과 교수.

뭔가를 잊는데에 절하는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 절과 그 절이 동음이의어인것을 처음 알았다.

안느가 절을 나와서는 스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때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용옥이 스님으로 등장해서 팬션을 방문한다.

안느는 왜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왜 힘이 드는지 묻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monkey 와 monk 도 그냥 우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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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