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gen2014.07.30 23:45



며칠전에 여권을 사용할 일이 생겨서 서랍을 뒤지다가 지난번 베르겐 여행에서 남겨온 노르웨이 크로네를 발견했다.

다 써버린 줄 알았다가 찾아낸 돈이면 엄청 기뻤겠지만 그런것은 아니고 베르겐말고 노르웨이 딴 도시에도  갈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굳이 환전하지 않았던것인데 그냥 잊고 있었던것. 환전한 돈이 많지 않아서 은행 직원이 500크로네와 100크로네를 섞어서 줬는데 그때 받은 화폐의 인물이 모두 여성이라 신기해서 사진으로 찍었던게 기억이 났다.

리투아니아의 은행에서는 왠만한 주변국 화폐는 거의 손쉽게 환전할 수 있다.  특히 빌니우스 중앙역과 버스 터미널 사이에 있는 환전소는 24시간 운영될뿐만아니라 환율도 좋고 수수료도 비싸지 않다. 서랍을 보니 작은 종이 상자에 담긴 몇몇 나라의 동전들도 보였다. 다음 여행을 상상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재료들이었는데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이어 내년부터 리투아니아도 유로화를 쓰는것을 감안하면  이 남은 동전들을 써먹을수도 없을뿐더러 비유로존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굳이 환전할 필요가 없어지는거다. 화폐 하단에 친절하게 인물이름과 출생년도가 적혀져 있어서 이 여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저 100크로네 속의 여인은 Kirsten falgstad 라는 노르웨이의 오페라 가수.화폐 뒷면에는 오페라 하우스의 도면이 나와있다. 500크로네속의 이 여인은  sigrid Undset 이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뭉크가 그려진 1000크로네는 사실 볼 기회가 없었는데 500유로권이나 우리나라 5만원권만큼 보기 힘든 현금일거다 아마.



노르웨이 여행전부터 마주친 이 여인들때문에라도 베르겐에서 마주친 현지 여성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안그래도 경사가 심한 베르겐인데 조깅복을 입고 위 아래로 뛰어다니는 튼튼한 여성들이 정말 많았다.  바이킹의 후손답게 건장하고 튼튼한 남성들이 많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남자들은 여성스러웠고 여자들이 강해보였다.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이동할때에는 여성 인솔교사 이외의 남성 교사들이 항상 동행했고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아이들 곁에는 잡담하고 있는 남성 교사들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성들도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자신에게 할당된 육아휴가를 보내고 있는 남성들이었을거다.  노르웨이도 알고보면 유전이 발견되서 갑자기 부자가 된 나라가 아닌가.  국가 경제도 졸부의 타락처럼 끝날 수 있는 법인데 이들은 오일머니로 차근차근 빚을 갚고  남은 돈은 다시 저축해서 뒷세대를 위한 거대한 공공펀드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키고 또 투자한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들이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복지의 모토중 하나였다고 하지. 복지 국가의 양면이 분명 있지만 엄마 혹은 여자로써 살기 좋은 나라라는 팩트는 인정해야할 부분인듯.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gen2014.06.01 22:25




어디로든 여행을 갈때마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밴드 스테레오랩.

이집트 여행때쯤이었나? 멤버 한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있어서 조금 더 멜랑꼴리해졌던 기억이. 

추억에 빠져들고 그것에서 헤어나오는데 걸리는 속도를 안다면 그들의 음악을 들을때에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하나의 음반이 마치 하나의 긴 노래와 같으며 여간해서는 곡명을 기억하기 힘들다. 

기승전결이 불분명하지만 축축 늘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음울하지 않으며 밝고 경쾌하고 귀엽기까지한 나만의 슈게이징.

계산 불가능한 사운드는 퀼트처럼 얽히고 섥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의 선명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는 힘들다.

군데군데가 면도칼로 밀린 내 머리에 수많은 플러그가 반창고로 붙여져 있고 

그 선이 연결된 기계의 스크린속으로 내 기억들이 줄줄이 입력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던 베르겐에서 음반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던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가 여행에서 마그넷을 사고 열쇠 고리를 사고 맛집을 찾고 박물관을 부지런히 구경다니는 습관을 가진것처럼

여행을 가면 마음에 드는 음반 하나 정도 데려오는 습관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금 이 사진을 보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약간 후회하며 싱겁게 웃었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gen2014.05.02 03:49



떠나기 두 달 전부터 설정해 놓은 베르겐의 일기예보를 여행에서 돌아 온 지금도 여전히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목적지가 생기면 그때 삭제할 수 있을것 같다. 

한번은 일주일 내내 해가 쨍쨍 맑음이 표시되길래  베르겐에서 신세졌던 친구에게 

'일주일 내내 날씨가 이렇게 좋다는데 그게 진짜야?' 라는 문자를 보냈다.

마치 토네이도 주의보라도 내려진 베르겐의 친구들이 염려스럽다는 듯, 믿기 힘든 날씨라는 듯 말이다.

친구도 금세 답문을 보내왔다. 정말 흔하지 않은 날씨라며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베르겐의 일반적인 기후를 간파하는데는 충분했다.

지속적인 강우로 항상 축축한 땅, 건너편 산 정상을 뿌옇게 감싼 안개, 수평선 위에 간신히 걸쳐진 구름. 

숲은 각양각색의 초록으로 우거져 어두컴컴했다. 하루만 지나도 바위 틈에 이끼와 버섯이 무성하게 자라날 듯 보였다.

위급할 때 바위로 변한다는 트롤 Troll 이라는 상상 속 괴물이 생겨난것도 우연은 아닐것이다. 

베르겐의 침침함은 뭐랄까. 마치 전구 세개 달린 거실 조명에서 전기세를 아낀다고 전구 하나를 빼놓은 것과 비슷했다.

이른 아침 가정집에서 새어 나오는 노르스름한 불빛과 정오가 넘어서도 꺼지지 않는 거리의 가로등이 

날이 밝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다 잠든 누군가의 탁상 램프처럼 얼마간은 도시의 아침을 밝혔다.

정수리를 내리쬐는 햇살은 그냥 잠시 타오르다 꺼지는 불꽃과 같았다. 

뭉크의 <절규>의 실제 배경이 오슬로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나는 베르겐을 여행하면서도 

절규 속의 배경을 비슷하게나마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붉고 푸르게 출렁이는 하늘과 그런 배경속에 섞이지 못하고 강하게 대비되는 작품 속 인물들.

그의 모든 작품의 배경이 어두운것은 아니지만 배경이 환할때 인물들은 보통 검은 옷을 입은채 무섭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뭉크의 불우한 개인사 탓도 있겠지만 노르웨이의 기후도 큰 영향을 끼쳤을것이다.

일찍 죽거나 정신질환을 앓았던 가족 구성원들 틈에서

 뭉크는 자신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불행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그 자신도 정신분열을 앓았다고 한다.

이런 이들이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 세상이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국 그것도 우리 개개인이 버텨내야 할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 아닐까.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것이 세상의 원리이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절규 속의 절규는 뭉크만의 절규가 아닌것 같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Bergen2014.04.23 05:26



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지닌 내 마음에 드는 그런 물건들만 가지고 싶다.

어릴적에 엄마한테 나중에 크면 숟가락 젓가락에 그릇 몇개만 가지고 단촐하게 살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줄곧 돌아오던 대답은 살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된다는 것. 

나도 살림을 하다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물건의 갯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나름 통제중이다.

<천국보다 낯선>과 <중경삼림>속의 작고도 적막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주인공들을 동경하곤 했는데

요새도 조그마한 접시에 식판처럼 음식을 담아 먹으며 티비디너를 먹던 윌리를 떠올리곤 한다.



이들은 베르겐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커피 잔 세트인데

자물쇠로 잠겨 있던 가게 앞에서 좀 서성거리자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 주인인듯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한 눈에 들어온 이 커피 잔 세트.

어딜가든 습관적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듯 보이는 커피잔을 찾는 나는 하지만 6년 동안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분명 비쌀거야. 하지만 200크론이 넘지 않으면 사자' 하고 나름 가격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물었다.

참고로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60 크론이었고 60크론이면 한국돈으로 대략 만원.

왕복 공항버스가 일인당 160크론. 대략 28000원

미듐 사이즈의 동네 피자가 191크론이니 33000원 정도의 물가이다.

주인은 세트이지만 커피 잔 두개에 접시가 하나 모자르니 그냥 75크론씩해서 150크론을 불렀는데 

수상쩍게도 시간이 없다며 안절부절못해하며 흥정을 하려 들지 않았다.

반대쪽 가게에 비싼 노트북을 켜놓고 문을 열어 놓고 와서 빨리 가봐야 한다며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란다.

200크론 정도면 사겠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이 150크론을 부르니 간사하게 100크론을 불러보고 결국은 120크론에 샀다.

급해서 영수증은 못준다고 서두르면서도 신문지에 돌돌 말아 싸주던 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남자는 아마 손님이 오면 봐달라고 주인이 열쇠를 맡긴 그냥 동네 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보다 가격이 싸서 쾌재를 불렀지만 골동품 가게 특성상 싸구려 쓰레기 같은 물건도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그냥 구경하고 나갈거라고 생각한 돈 없어 보이는 여행객이 갑자기 가격을 물어오니 

당황해서 그냥 아무 가격이나 부른게 아닐까. 하고 또 시나리오를 써본다.

커피에 어울리는 케잌이나 크로와상 같은것을 얹어야 할지 모르는 이 접시에 나는 가능한한 모든 음식을 얹어 먹는다. 



그리고 이것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아침에 만들어 마신 라떼.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