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투아니아의 겨울

(5)
Vilnius 85_오후 4시 12분 '날이 좀 따뜻해졌어. 좀 가벼운 신발을 신고 나가자.' 그렇게 신고 나간 가을 신발이 결국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은 안돼. 그래. 아직은 겨울이야' 라는 생각 대신 그 사실을 지각하는 데에 5분이 아닌 20여 분씩이나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봄을 향하는 급커브에 마주선다. 퇴각하는 겨울에도 심리적 저지선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는 가장 단적인 예는 하나 둘 제거되는 건물의 크리스마스 조명이다. 일년 중 세 달은 꼬박 매달려있었을 겨울 전구들이 다시 상자 속으로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Pilies kepyklėlė_지난 겨울 브랜디와 초콜릿, 스콘과 카푸치노. 버섯 수프와 녹차. 토마토 수프와 루이보스. 애플 파이위로 쏟아 부어지는 따뜻한 크림. 커피 그리고 커피. 커피 한 잔 하자고 들어간 아늑한 카페의 좁은 탁자가 각자의 입맛에 따라 채워지고 따개비처럼 붙어 앉아 잔을 비우며 하는 이야기들은 각양각색이다. 모두가 동시에 이제 좀 살것 같다 말하는 순간에도 언 발이 녹는 속도가 다르듯 긴 아침식사를 끝낸 누군가의 앞으로 느릿느릿 등장하는 마지막 커피잔이 바닥을 보일때까지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들. 지난 겨울.
나의 카페 06_일요일 아침의 카푸치노 목요일 저녁은 내일이 금요일이니깐 기분이 좋고 금요일 저녁은 다음 날 늦잠을 잘 수 있으니깐 좋은것.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을 기다리게 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카푸치노이다. 출근 전의 뜨거운 음료는 일상이지만 보통은 알갱이 커피에 물을 붓거나 홍차를 끓여 우유를 부어먹는 정도. 그다지 시간에 쫓기는 아침도 아니건만 편리함을 길들여진 무언의 정신적 긴장감같은게 있다. 잔뜩 게으름을 피우며 12시가 넘어서 느릿느릿 일어나면서도 침대까지 커피를 배달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렇게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잠들 수 있다면 12시가 아니라 아침 8시에도 일어날 수 있을텐데. 지난번에 펠리니커피에 딸려 들어온 1인용 모카포트덕을 톡톡이 보고 있다. 모카포트를 자주 사용하는것 ..
st.dalfour 무화과잼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잼이나 마멀레이드 같은 설탕에 절인 저장식품을 돈을 주고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은 식당에서 아오리 같은 옅은 녹색 사과 한봉지를 주문해 놓고 하나씩 꺼내 먹고 있는데 주방 아줌마가 혼을 냈다. 집에서 가져다 줄테니 다음부터는 절대 돈주고 '사과' 사먹지 말라고. 그 집이 과수원을 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섬머 하우스 개념으로 sodyba 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시골집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러시아의 다챠와 같은 여름 별장. 짧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짧은 리투아니아의 여름을 만끽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이 섬머 하우스에서 주말을 보내는것이다. 이곳 저곳 아는 지인들의 섬머 하우스에만 초대 받아 돌아다녀도 여름은 금새 지나간다. 사과 나무 한 그루와..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