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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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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10_각자의 프레임 속에서 아침부터 카페 두군데를 들르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 건물벽에서 열심히 뛰어놀고 있던 아이들을 만났다. 베를린에는 생각보다 동상이나 조각물을 발견하기 힘들었던 대신 듣던대로 벽을 메운 그림들이 많았다. 콘크리트를 캔버스 삼아 작정하고 그린 큰 규모의 벽화들은 물론 거리 구석구석 산만하게 스프레이질된 작은 낙서들까지 빽빽한 도시속에서 각자의 프레임을 확보하고 비를 맞으며 햇살을 받으며 움직이고 있던 이미지들이 항상 있었다. 모든 건물들은 묘사될 여지를 지녀야한다. 독특한 발코니의 구조, 창문의 형태, 건물 입구의 램프 디자인, 현관의 손잡이, 건물을 뒤덮은 초록의 식물들, 벗겨진 페인트 칠이나 갈라진 시멘트 자국같은 건물이 버텨온 세월의 그을음 등등의 다양한것들이 묘사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 개성없는..
Berlin 09_잠시 드레스덴에서 03_토마스 제퍼슨 베를린에서든 드레스덴에서든 이런 시커먼 동상을 보면 친구와 항상 반복된 농담을 하고 웃곤 했다. "토머스 제퍼슨 아니야? 왜 여기있어?' 토머스 제퍼슨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왠지 뭔가 법원이나 국회의사당 같은곳앞에 서있는 토마스 제퍼슨 같은 사람의 느낌이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환상을 깨지 않기위해 일부러라도 누구인지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지 않았다.
Berlin 08_잠시 드레스덴에서 02_토끼님과 보위와 로스코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연두색 플릭스 버스를 타고 나와 함께 이동하여 다시 프라하로 그리고 한국으로 토끼님 손을 잡고 돌아간 이 친구들. 내 품을 떠나기 직전에 토끼님의 주스 옆에서 자비롭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들은 유태인 뮤지엄에 갔을때 산 로스코 엽서와 드레스덴 가기 바로 전날 패브릭 마켓에서 가까스로 만난 데이빗 보위가 프린트된 타일이다. 유태인 뮤지엄 기프트 샵에 로스코 엽서가 여러 종류 있었지만 이 한 작품만 집어온 이유는 파리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단 한 장의 로스코 엽서처럼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도 한 장만 데려가는 원칙을 고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색감의 로스코 그림은 사실 본적이 없기도했고 이미 그때부터 토끼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것인지 똑같은 엽서를 두장을 사는 바람..
Berlin 06_100번 버스를 타고 거리 이름들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돌아 온 지금 어떤 거리들을 돌아다녔는지 그곳이 베를린의 어디쯤이었는지 별로 감이 안온다. 환승을 자주 했던 Hermannplatz 나 Kottbusser tor 역 정도만이 선명하게 기억날뿐이다. 다행히 론리플래닛을 남겨놓고 오는 대신 데리고 온 베를린 지도를 가끔씩 들여다보니 내가 갔던곳들이 어디의 어디쯤이었는지 좌표를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 거기 저기를 가자고하면 친구는 아침에 루트를 만들고 R2D2 와 같은 헌신적인 자세로 모든 여행을 지휘했다. 그 덕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Jabba 처럼 거리에 눕다시피한 무대뽀 마인드로 베를린을 부유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떠나왔기때문이 아니라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구글맵스같은것을 켜면 지도..
Berlin 05_붉은 파라솔 사이로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때 방금 막 비가 내린 상태의 축축함이나 공기중에 아지랑이처럼 묻어나는 흙냄새를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나간 어떤 여행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모든 여행들이 좋았기에 그런것같다. 하긴 여행이 싫었던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는 매우 짧고도 인상적인 비가 딱 한번 내렸다. 내가 비를 맞은 횡단보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지경이다. 밤이되면 친구의 어플속에서 새어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나에게 할당된 빗방울의 전부였다. 그외의 순간들은 모두 해가 쨍쨍났다.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32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다소 덥다 싶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Berlin 04_베를린 쾌변의 뮤즈들 베를린 도착 다음날. 그날 두번째로 갔던 카페의 화장실 문에 저런것이 걸려있었다. 얼마전에 운명을 달리 하신 캐리 피셔 공주님. 베를린 화장실 문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죽어도 죽지 않은 그녀. 묵념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같은 날 자리를 옮겨 혼자 돌아다니다 들어간 카페. 이름하여 'Karl Marx says relax' 칼 마르크스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그래 맛있는 커피나 마시며 칼 옹 말씀대로 릴랙스 하자였는데 화장실 문을 보는순간 카페 이름을 더 실감하게 했던. 10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이분도 베를린의 카페 화장실 문속에서 진한 핑크빛으로 살아계셨다. 사실 꼭 외국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어딜가든 항상 가게되는 장소들이나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물건들에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어쨌..
Berlin 03_케밥집 앞 횡단보도 빌니우스에서 베를린까지 한시간 반. 가방을 올리고 앉자마자 거의 내리다시피 했다. 보딩패스도 미리 프린트를 해갔기에 짐가방의 무게를 체크하는 사람도 없었고 작은 테겔 공항을 아무런 입국 절차도 없이 엉겁결에 빠져나왔을때엔 마치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는듯한 느낌으로 친구가 서있었다. 두달만에 만난 친구. 서울도 빌니우스도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베를린의 첫 느낌은 그랬다. 몹시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횡단보도 스위치는 빌니우스의 그것과 같았지만 길거리를 가득 메운 케밥 가게와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지나가는 아랍 친구들을 불러 세우는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이곳은 분명 내가 모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이곳에서는 여행객이라기..
Berlin 01_두고 올 론리플래닛 언제나처럼 여행의 시작은 론리플래닛. 잘 읽지도 않을거면서 그냥 습관적으로 사게 된다. 이번엔 서점에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살까 말까 하다가 최신판이라 결국 계산해버리고 기한없는 베를린행을 택한 친구에게 남겨두고 오기로 했다. 난 이곳에 사는게 막연히 좋았지만 자부심 같은것은 느껴본적이 없는데 지척으로 온 친구를 별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곳에 살아서 환희에 젖었다. 나중을 기약하면 왠지 기회가 오지 않을것 같아서 검색하자마자 티켓을 사버리고 말았다. 베를린에는 8년전에 프라하에 갔을때 계획에 없던 여행으로 일주일간 다녀온적이 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봉사 가이드를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8월의 베를린.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맡겨본지 언제인지. 2주동안 기내반입수화물만 지니고 더할나위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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