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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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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71_놀이터 매일매일 햇살에 휘청이는 날들이다. 하늘이 잿빛이 아니라면 그래서 오히려 그림자에 집착하게 된다. 얼마전에 미드 Stranger things 시즌 2를 보고 다른 편 세상에 대한 망상도 생겼다.
Vilnius 70_오픈 하우스 빌니우스 하루를 보낸 일기도 결국은 지나간 일에 대한 것이겠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의 일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현재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는다. 잊혀져가는 시간들에 라벨을 붙이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은 희미하게라도 금을 내어 접어 존속 시키고 싶은 마음이겠지. 빌니우스의 요즘은 참 바쁘다. 4월이 되면서 조금씩 봄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도시는 5월에 그 분주함이 절정을 이루고 6월부터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면서 조금은 조용해진다. 지난 4월 말 열렸던 오픈 하우스 빌니우스. 빌니우스의 오픈 하우스는 물론 몇백여개의 건축물을 개방하는 오픈 하우스 런던의 규모에 비하면 소박하겠지만 어쨌든 평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건물들을 자원봉사자 가이드와 함께 둘러 볼 수 있는 좋..
Vilnius 68_19시 57분 Vilnius_2018 겨우내내 어둠을 뚫고 귀가하는 것이 발목에 엉겨붙는 질겅한 눈만큼의 피로감을 주었다. 겨울의 추위는 온도계를 지녔겠지만 그 어둠의 채도는 너무나 한결 같아서 겨울이 추위의 대명사가 된 것은 순전히 그가 어떻게도 해결 할 수 없는 어둠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계절은 그 어둠을 이를 악물고 빠져나온다. 삽으로 파헤쳐지고 발로 다져짐에 쉴틈없는 놀이터 모래 상자속에 보란듯이 고개를 치켜 세운 잡초 한 가닥처럼. 그리고 그 오기가 빚어낸 설익은 계절의 가파름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허무함을 뿌리치지 못했다. 겨울을 좀 더 나른하게 보내면 봄이 좀 덜 무기력하게 느껴질까. 오후 8시 남짓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머타임의 시작으로 4월들어 급격히 밝아진 저녁과 길어지는 낮...
Vilnius 67_어떤 건물 2 Vilnius_2018 리투아니아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기능도 외양도 각기 다른 이 세개의 건축물을 앙상블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나는 줄곧 이들을 대학 앙상블이라고 부른다. 매번 이 위치에 서서 이들을 보고 있자면 결국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놓여져서 고통과 영화를 주고 받았던 이웃일 뿐이라 생각하게 된다. 가장 오른편에 있는 대통령 궁은 뻬쩨르의 겨울 궁전을 복원한 러시아 건축가 바실리 스타소프의 작품이다. 빌니우스에 발을 들여 본 적 없는 건축가는 뻬쩨르의 어디쯤에서 실제 건축 부지 보다 큰 건물을 설계 했고 결국 건물은 건너편 빌니우스 대학 담벼락을 허물고 거리를 좁히면서 설계도 그대로 지어졌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 위치에서 대학 도서관 건물 끄트머리에 놓..
Vilnius 66_어떤 건물 Vilnius_2018 겨울 햇살이 따가운 추위를 뚫고 거리 거리 차올랐던 날, 고요했던 건물들의 마당 구석구석 햇살에 녹아 내리는 물방울 소리가 가득했다. 돌아오는 봄은 다음 겨울을 위해 더 할 나위 없이 응축된 짧은 정거장, 의도한 만큼 마음껏 바닥으로 내달음질 칠 수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 아름다운 곳들은 늘상 조금은 우울한 마음으로 누비고 싶다. 구시가지 곳곳에 바로크식 성당들이 즐비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나의 성당에서도 두세개의 건축 양식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빌니우스이다. 화재로 불타 버린 목조 건물 터에 벽돌을 쌓고 전쟁, 전염병으로 그마저도 파괴되고나면 남은 벽돌 위에 다시 돌을 얹고 바르고 칠하고 새기며 어떤 시간들은 흘러갔고 그만큼 흘러 온 역사를 또 복개하고 걷어내면서 옛 흔적을..
Vilnius 65_어떤 석양 왜 더 사랑해주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더 사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한없이 부족해진다. 어느 도시에 관한 애착과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즈음에 이렇게 아슬아슬 황급하게 사라져가는 석양이 어느 건물의 어느 모서리쯤에 걸쳐져 있을 것을 알고 그 고인 따스함을 마주하러 일부러 그 골목길로 들어설 수 있을만큼 다 알고 싶은 것, 빗물이 흥건하게 채워지는 거리를 걸어나갈때 속도를 늦추지 않는 무심한 자동차가 내 곁으로 다가오기 전에 미리 조금 비껴 설 수 있을 만큼 발바닥 아래 콘크리트의 굴곡을 기억하는 것, 여기서 멈춰 뒤돌아섰을때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 고개를 내민 성당의 종탑이 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 속에 차오르는 무언가, 항..
Vilnius 64_겨울 휴가 토요일이었던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크리스마스 명절. 공식적으로는 24,25,26일이 크리스마스 휴일이지만 보통 새해까지 이어서 겨울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운송회사도 다른 유럽나라의 거래처도 다 긴 휴가에 들어서서 가까스로 물건을 싣어 오느라 지난 한 주일은 꽤나 긴장상태였다. 그래서 평일이었던 오늘 조차 도로가 한산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의 횡단보도 앞 중고 옷가게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이 종이는 크리스마스 훨씬 이전의 14일경에 이미 붙어 있었다. 'Dirbsiu nuo 2018 01 08' '나는 1월 8일부터 일할겁니다.' 라는 뜻. '일할겁니다' 동사는 명백히 1인칭 단수였다. 보통 이런 경우 1인칭 복수 동사 (Dirbsime) 를 써서 '우리는 언제부터 일합니다. 언제까..
리투아니아어 45_오늘의 점심 Dienos pietūs '오늘의 런치', '점심 메뉴'. 구시가지를 걷다가도 식당 입간판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단어. 구시가지 입간판에 메뉴와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면 저렴한 점심 메뉴가 있으니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일 확률이 높다. 이곳은 신시가지의 뒷골목이었다. 뒷골목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굵직하고 투박한 건물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듯한 이 구역은 그냥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끈덕지게 드나들고 아는 사람만 알면 되는 공간들로 가득 채워진 어디가 입구인지 뒷문인지 애매한 매우 배타적인 풍광을 지닌 곳이다. 흡사 영업을 끝낸 식당 아저씨가 한 밤중에 시커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물 것 같은 풍경속에 매달려있던 오늘의 점심 광고. 무엇을 주는 지를 굳이 알려야 할 필요도 없다. 때가 됐으니 끼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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